타임슬립 (시간여행)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 1화: 균열의 시작

2024년, 서울의 잿빛 하늘은 이진우의 삶과 하등 다를 바 없었다. 아침 7시 40분, 출근길 지하철 2호선의 습한 공기는 언제나처럼 그의 폐부를 찌르고, 빼곡한 인파 속에서 어깨를 움츠린 채 버텨야 하는 하루는 이미 시작부터 버거웠다. 그는 3년 차 대리 이진우. 무미건조한 엑셀 시트와 상사의 잔소리, 그리고 퇴근 후 텅 빈 편의점 맥주 한 캔이 삶의 전부인, 그야말로 대한민국의 흔하디흔한 청년이었다.

“진우 씨, 그 기획안 오늘까지 마무리에요. 아시죠?”
“네, 팀장님.”

영혼 없는 대답과 함께 그는 다시 모니터 속 숫자의 바다로 뛰어들었다. 따분하고 지루한 일상. 가끔 그는 키보드를 두드리는 자신의 손이 아니라, 검을 휘두르거나 기공을 펼치는 손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런 황당한 상상은 잠시뿐, 곧 다시 현실의 무게에 짓눌리곤 했다. 그의 유일한 낙이라면 퇴근 후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으로 무협 웹소설을 읽는 것이었다. 칠종단금신법이니, 태극혜검이니 하는 용어들을 접하며 잠시나마 현실을 잊는 것. 그것이 그에게 허락된 유일한 일탈이었다.

그날도 다르지 않았다. 야근 끝에 간신히 퇴근해 너덜너덜해진 몸으로 침대에 쓰러진 그는, 평소처럼 즐겨 읽던 무협 소설 앱을 켰다. 막 마교 교주가 절세의 무공을 펼쳐 강호를 뒤흔드는 장면을 읽던 참이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방 안의 불빛이 깜빡이더니, ‘치지직’ 하는 듣도 보도 못한 소리와 함께 일순 모든 전기가 나갔다. 진우는 짜증 섞인 한숨을 내쉬며 휴대폰을 들었지만, 휴대폰조차도 먹통이 되어버렸다.
“젠장, 이게 무슨 일이야?”

그가 몸을 일으키려던 순간, 창밖에서 섬광이 터져 나왔다. 잿빛 하늘을 찢고 내려온 듯한, 마치 오색 찬란한 번개 같은 것이 아파트 단지를 꿰뚫는 듯했다. 빛은 너무나 강렬해서 맨눈으로는 도저히 볼 수 없었다. 진우는 팔로 눈을 가렸지만, 그 빛은 마치 몸 안으로 스며드는 것처럼 온몸을 휘감았다.

귓가에 울려 퍼지는 굉음은 비행기 엔진 소리 같기도 하고, 수십 대의 트럭이 한꺼번에 충돌하는 소리 같기도 했다.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찢겨 나가는 듯한 고통이 엄습했고, 정신은 마치 거대한 회오리에 휘말린 종잇조각처럼 이리저리 내던져지는 느낌이었다. 그는 살려달라는 비명조차 지를 수 없었다.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한 엄청난 힘에 짓눌려, 의식은 서서히 암흑 속으로 침잠해 들어갔다.

***

진우가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를 맞이한 것은 익숙한 천장이 아니었다.
몸을 일으키자마자 느껴지는 축축한 흙냄새와 풀 내음. 시야를 가득 채운 것은 빼곡하게 우거진 거대한 나무들이었다. 나뭇잎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은 붉고 노란 빛을 띠며 마치 금가루처럼 흩뿌려지고 있었다. 그는 황급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드넓게 펼쳐진 숲, 그 어디에도 아파트도, 도로도, 하다못해 작은 오솔길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 이게 어디야?”

목소리는 잔뜩 쉬어 있었다. 몸을 지탱하려 짚은 손바닥에는 거친 흙과 마른 나뭇가지가 만져졌다. 등에는 출근할 때 메고 나왔던 평범한 백팩이 여전히 매여 있었고, 땀으로 축축한 옷차림은 어제 퇴근할 때 그대로였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그는 서울 한복판 자신의 방 침대에 누워 있었는데. 눈앞에 펼쳐진 것은 영화에서나 볼 법한 원시림이었다.

“설마… 꿈인가?”

자신이 꾸는 꿈이라고 생각하기엔 모든 것이 너무나도 생생했다. 발밑의 흙의 감촉, 코끝을 찌르는 짙은 숲의 향기, 멀리서 들려오는 새들의 지저귐, 그리고…

‘사악!’

갑작스러운 소리에 진우는 움찔하며 고개를 돌렸다. 숲 저편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본능적으로 몸을 웅크린 그는 나무 뒤에 숨어 조심스럽게 상황을 살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세 명의 그림자가 숲을 헤치며 나타났다. 그들은 현대인의 복장이 아니었다. 한 명은 짙은 녹색 도포를 걸치고 허리춤에 긴 검을 차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푸른색 비단 옷에 쌍도를 들고 있었다. 마지막 한 명은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노인으로, 회색 도포를 입고 등에 기다란 장창을 메고 있었다. 그들의 모습은 마치 자신이 읽던 무협 소설 속에서 튀어나온 등장인물 같았다.

진우는 자신도 모르게 숨을 죽였다. 그들은 진지한 표정으로 숲 속을 살피며 걸어왔다.

“대사형, 이쪽으로 온 것이 확실합니까? 마교 놈들의 기운이 점점 짙어지고 있습니다.” 푸른 도포를 입은 남자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위를 경계하며 말했다.
“느껴진다. 섬서성 쪽에서 올라오는 기운이 심상치 않아. 분명 그들이 모이고 있는 거야.” 녹색 도포의 사내가 묵직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의 손은 이미 검의 손잡이에 얹혀 있었다.
“벌써 그리 되었단 말인가. ‘천하결정 무림대회’가 코앞인데, 마교 놈들이 이리도 설쳐대다니.” 노인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연륜과 함께 걱정이 깃들어 있었다.

진우는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마교? 천하결정 무림대회?’
머릿속에서 읽었던 무협 소설의 단어들이 떠올랐다. 심장이 두방망이질 쳤다. 설마, 설마 자신이 소설 속에 들어온 것이란 말인가?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소림의 고승들도, 아미의 여협들도, 그리고 우리의 대화산파도 모두 이번 대회에 목숨을 걸고 있습니다. 이번에야말로 마교의 발호를 뿌리 뽑아야 할 터인데…” 노인이 말을 이었다.

진우는 순간 귀를 의심했다. 대화산파? 소림? 아미? 자신이 즐겨 읽던 무협 소설의 배경이 되는 문파들이 아닌가. 그리고 ‘천하결정 무림대회’라니. 그것은 천하의 패권을 다투는, 최고수의 자리를 결정하는 대회가 아니던가.

그때, 녹색 도포를 입은 사내의 시선이 진우가 숨어 있는 쪽을 향했다. 그의 눈빛은 마치 맹수의 그것처럼 날카로웠다.

“누구냐!”

사내의 외침과 동시에 그의 검이 바람을 가르며 뽑혔다. 진우는 본능적으로 몸을 굳혔다. 들켰다.

“저… 저는…”

겁에 질린 진우의 목소리는 파르르 떨렸다. 세 명의 무인이 동시에 진우를 향해 다가왔다. 그들의 눈에는 경계와 의심이 가득했다. 진우의 현대적인 복장과 어리숙한 태도는 그들에게 더 큰 의심을 불러일으킨 듯했다.

“정체를 밝혀라! 이런 깊은 산중에 네놈처럼 기이한 차림의 자가 홀로 나타나다니. 마교의 끄나풀이냐?” 푸른 도포의 사내가 쌍도를 겨누며 위협적으로 물었다.

“마… 마교라니요! 저는 그저 길을 잃었을 뿐입니다. 저는 이진우라고 합니다! 서울에서 왔어요!”

진우는 다급하게 해명했지만, 그들의 표정은 더욱 굳어졌다. ‘서울’이라는 단어를 알아들을 리 만무했다.

노인이 험상궂은 얼굴로 진우를 훑어보았다. “서울? 그런 지명은 들어본 적이 없구나. 게다가 이 옷차림은 또 무엇이며, 네놈의 몸에는 내공의 흔적조차 느껴지지 않는군. 허나, 이 기괴한 복색과 이 알 수 없는 말투… 어딘가 수상쩍지 않은가.”

녹색 도포의 사내가 진우에게 한 걸음 더 다가왔다. 그의 검 끝이 진우의 목덜미를 스치듯 겨눴다. 싸늘한 금속의 감촉에 진우는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헛소리는 그만하고, 네놈의 소속을 대라. 감히 천하결정 무림대회를 앞두고 무림의 평화를 위협하려 드는 불순분자라면, 이 대화산파의 검이 용서치 않을 것이다.”

천하결정 무림대회. 그 단어가 다시 한번 진우의 뇌리를 강타했다. 그는 자신이 읽던 소설 속의 세상에, 그것도 천하의 운명을 건 거대한 무림 대회를 앞둔 시점에 떨어져 버렸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눈앞의 무인들은 자신을 마교의 끄나풀로 의심하고 있었다. 내공 한 줌 없는 평범한 현대인이 무림 고수들로 가득한 세상에 떨어진 것이다.

진우는 절망감에 휩싸였다. 이곳은 그가 읽던 소설 속 세상. 한마디로 ‘죽음’ 아니면 ‘죽음’밖에 없는 곳이었다.
그의 눈앞에는 녹색 도포 사내의 날카로운 검날이 번뜩였다.

“살려… 살려주세요…”

목숨을 구걸하는 그의 목소리는 더 이상 떨리지 않았다. 공포에 질려 아예 쉬어버린, 처절한 외침이었다.
과연, 이진우는 이 낯선 무림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리고 천하의 운명을 건 이 거대한 대회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는 어떤 역할을 하게 될까?

그의 표류는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