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펑크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빗줄기가 굵어졌다. 네온사인의 잔상이 빗물에 번져 흐릿한 무지개처럼 바닥을 기었다. 낡은 상가 건물의 가장 높은 옥상, 나는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도시의 심장을 응시했다. 저 아래, 휘황찬란한 빌딩 숲은 피라미드의 정점처럼 빛나고 있었다. 그 빛은 나에게는 단지 한때 모든 것을 앗아간 지옥의 불꽃일 뿐이었다.

“이현.”

낮게 읊조린 이름이 빗소리에 섞여 사라졌다. 그의 얼굴이 떠올랐다. 한때는 세상 전부였던 미소. 이제는 지옥의 문을 여는 악마의 가면일 뿐이었다. 우리는 함께 꿈꿨고, 함께 싸웠으며, 함께 이 도시를 바꾸려 했다. 그러나 그는, 빛을 좇아 나를 어둠 속에 던져버렸다.

내 왼쪽 팔은 사이버네틱 의수였다. 예전에는 따뜻한 살점과 뼈로 이루어져 있었지만, 지금은 차가운 합금과 섬세한 회로가 내 의지를 따른다. 내 눈은 일반인의 시야를 훨씬 초월해, 저 멀리 빛나는 ‘크로노스 타워’의 최상층을 확대했다. 그곳에 이현이 있었다. 오늘 나의 목표는 그곳이 아니었다. 오늘은 그 첫 번째 발걸음이었다.

나는 옥상 난간을 짚고 몸을 웅크렸다. 발밑의 오래된 콘크리트가 작게 부스러졌다. 빌딩과 빌딩 사이를 잇는 낡은 전선 케이블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었다. 내 옵틱 인터페이스에 목표 건물의 설계도가 오버레이되었다. ‘페넘 테크놀로지’의 데이터 서버룸. 이현이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 아킬레스’의 핵심 데이터가 보관된 곳이었다. 내가 그에게 빼앗겼던, 아니, 그가 나에게서 훔쳐간 프로젝트의 잔해.

손목의 홀로그램 패드를 눌렀다. 도시의 모든 네트워크가 내 손아귀에 잡힐 듯 펄스처럼 스쳐갔다. 보안망은 강했지만, 내 그림자는 더 빨랐다. 타겟 건물 외벽에 설치된 감시 드론들의 순찰 경로를 재조정하고, 광학 위장막을 활성화했다. 빗물에 흐릿하게 반사되던 내 모습이 서서히 공기 속으로 녹아들었다.

“움직여.”

내 목소리는 낮고 건조했다. 발아래 빌딩 숲의 깊은 나락을 내려다보았다. 수십 층 아래까지 이어지는 암흑은 언제나 나를 집어삼키려 했다. 하지만 더 이상 나는 그 어둠에 굴복하지 않는다. 내가 곧 어둠이다.

몸을 날렸다. 강철 의수가 난간을 단단히 붙잡고 탄성을 이용해 추진력을 얻었다. 중력을 거스르는 듯한 움직임으로 나는 공중을 가로질렀다. 거센 빗줄기가 얼굴을 때렸지만, 감각 증폭된 내 신경계는 오직 목표만을 인식했다. 케이블에 착지하며 발목의 서스펜서가 충격을 흡수했다. 균형을 잡고 곧장 다음 건물로 향했다. 마치 그림자처럼, 물 흐르듯 움직였다.

페넘 테크놀로지 빌딩의 27층. 환기구를 통해 내부로 진입하는 계획이었다. 내 옵틱이 환기구 내부의 미세한 진동을 감지했다. 내부에는 소형 센서가 설치되어 있었다. 오래된 모델이었지만, 작동은 정확했다. 나는 허리춤의 나노 섬유 와이어를 뽑아냈다. 와이어 끝에 달린 흡착 장치를 환기구 격자에 붙이고, 정밀하게 소형 EMP 펄스를 방출했다. ‘틱’ 하는 소리와 함께 센서가 일시적으로 정지했다. 시간은 5초. 충분했다.

와이어를 타고 미끄러지듯 환기구 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좁고 습한 공간, 먼지 냄새가 코를 찔렀다. 움직일 때마다 합금 의수가 마찰음을 냈지만, 극도로 조심하며 소음을 최소화했다. 내부에 장착된 저조도 카메라가 어둠 속을 환하게 밝혔다.

환기구의 끝은 서버룸 바로 위였다. 약 10미터 아래, 촘촘히 박힌 서버 랙들이 푸른색과 붉은색 LED를 뿜어내며 기계적인 숨을 쉬고 있었다. 서버룸의 보안은 삼엄했다. 열 감지, 모션 센서, 그리고 몇 대의 순찰 드론.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입구를 지키고 있는 두 명의 강화 경비원이었다. 그들은 단순한 용병이 아니었다. 근육 증강 임플란트와 반응 속도를 극대화한 신경계 개조를 거친 최정예들이었다. 이현이 자신을 지키기 위해 고용한 개들.

‘개는 짖을 뿐, 물 수는 없지.’

나는 와이어를 이용해 소리 없이 바닥에 내려섰다. 경비원들은 등지고 있었다. 규칙적인 순찰 패턴. 한 명은 입구 쪽에, 다른 한 명은 서버 랙들 사이를 돌고 있었다. 20초 후, 그들의 시야가 서로에게서 멀어지는 찰나의 순간이 찾아왔다.

내 사이버네틱 의수에서 칼날이 튀어나왔다. 티타늄 합금으로 만들어진 암 블레이드. 날카로운 빛이 어둠 속에서 번뜩였다.

첫 번째 경비원.
소리 없는 움직임으로 그의 뒤로 접근했다. 그의 강화복에 내장된 센서가 미세한 움직임을 감지했겠지만, 이미 늦었다. 나는 그의 목덜미를 휘감듯 팔로 제압하고, 칼날을 목의 경동맥 바로 위로 정확히 가져갔다. 신경계를 일시 마비시키는 약물을 주입한 후, 깨어나지 못하게 기절시켰다. 그의 몸이 힘없이 쓰러졌다. 나는 그를 재빨리 서버 랙 뒤로 끌어당겼다.

두 번째 경비원.
그가 돌아서기 시작했다. 나는 몸을 숙여 랙 사이로 빠르게 이동했다. 그의 시야에 잡히지 않는 그림자 속을 가로질렀다. 그는 동료의 부재를 눈치채지 못했다. 완벽한 시간 계산이었다. 나는 그의 등 뒤에 바짝 붙었다. 내 몸에서 느껴지는 그의 미세한 떨림, 근육의 긴장. 그에게는 그저 서버룸의 냉기였을 것이다. 똑같은 방식으로 그를 제압했다.

두 경비원이 무력화되자, 서버룸은 다시 기계적인 소음만이 가득했다. 나는 서버 랙 중 하나에 내 데이터 잭을 연결했다. 옵틱 인터페이스가 쏟아지는 정보의 파도에 잠겼다. 암호화된 파일들이 나를 반겼다. 이현의 보안팀이 자랑하는 최신 암호화 프로토콜. 하지만 나는 그 프로토콜을 만들었던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블랙 아웃.
스크린이 일순간 암전되었다가, 다시 푸른색 코드들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렸다. 나는 이현의 코드를 부수고, 그의 약점을 파고들었다. 마치 수십 년 전, 우리가 함께 밤을 새워가며 짜던 그 코드를 해독하는 것처럼. 손가락이 키보드 위를 춤추듯 움직였다. 과거의 기억이 현재의 분노와 뒤섞여, 더 빠르고 잔혹하게 그의 보호막을 찢어발겼다.

“찾았다.”

내 목표는 ‘프로젝트 아킬레스’의 핵심 데이터 모듈이었다. 이현이 내 아이디어를 도용해 독점하고 있는 그 프로젝트. 데이터가 통째로 내 외장 드라이브로 복사되기 시작했다. 예상 전송 시간 3분 12초.

그때였다.

갑자기 서버룸의 비상등이 붉게 번쩍였다. 경보음이 귀를 찢을 듯 울려 퍼졌다. 내가 너무 안일했나? 아니, 이현의 시스템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깊이 연결되어 있었다.

“침입자 감지. 즉시 격리.”

천장에서 금속성 소음과 함께 네 대의 중무장 드론이 내려왔다. 각각의 드론에는 펄스 라이플이 장착되어 있었다. 순찰 드론과는 차원이 다른 전투형 모델. 아마 내가 경비원들을 제압한 시점부터 경고음이 울렸을 것이다. 이현은 나를 너무나도 잘 알았다. 그는 내가 여기 올 것을, 어쩌면 예상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젠장.”

전송률은 아직 60%였다. 멈출 수는 없었다. 나는 서버 랙 뒤로 몸을 숨겼다. 드론들의 펄스 라이플에서 녹색 섬광이 뿜어져 나왔다. 강렬한 에너지 파동이 서버 랙을 강타하며 금속을 녹였다.

나는 몸을 날려 다른 랙 뒤로 이동했다. 내 옵틱이 드론들의 취약점을 분석했다. 상단부의 냉각 벤트. 노출되어 있었다. 팔의 암 블레이드를 다시 꺼내들었다.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드론의 장갑을 뚫기 어려웠다. 나는 직접 근접전을 벌여야 했다.

나는 발로 서버 랙을 박차고 뛰쳐나갔다. 한 드론이 나를 향해 펄스를 발사했지만, 나는 이미 공중에서 몸을 비틀어 피했다. 드론의 플라스틸 장갑에 내 칼날을 박아 넣고, 그대로 냉각 벤트까지 찢어버렸다. 드론에서 스파크가 튀며 균형을 잃고 바닥으로 추락했다.

하지만 동시에 다른 드론의 공격이 내 왼쪽 어깨를 강타했다. 전신을 꿰뚫는 듯한 고통. 사이버네틱 의수는 멀쩡했지만, 어깨 부위의 생체 조직이 불에 타는 듯했다. 강화복이 그나마 충격을 흡수해줬지만, 움직임이 둔해졌다.

“크윽…!”

나는 이를 악물었다. 통증은 나를 멈출 수 없었다. 내게 남은 것은 오직 복수뿐이었다.

남은 세 대의 드론이 나를 포위했다. 나는 좁은 서버 랙들 사이를 춤추듯 움직이며 그들의 시야를 교란했다. 내 손목에서 소형 EMP 수류탄이 발사되었다. ‘펑!’ 하는 작은 폭발음과 함께 강력한 전자기 펄스가 공간을 뒤덮었다. 드론 두 대가 잠시 버벅거렸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한 드론의 프로펠러를 발로 차 균형을 무너뜨리고, 다른 한 대의 카메라 센서를 암 블레이드로 파괴했다. 고통에 무뎌진 감각은 오히려 나를 더 날카롭게 만들었다. 내가 파괴한 드론들이 불꽃을 튀기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마지막 드론이 남아 있었다.
녀석은 전자기 교란에서 풀려나자마자 나를 향해 미친 듯이 펄스를 쏟아냈다. 나는 서버 랙을 방패 삼아 피했다. 전송률 98%. 거의 다 되었다.

나는 드론과의 거리를 좁혔다. 내 사이버네틱 팔의 모든 힘을 끌어모았다. 드론이 펄스를 발사하려는 순간, 나는 날아올라 드론의 하단부를 발로 걷어찼다. 드론이 휘청거렸고, 나는 암 블레이드를 드론의 핵심 동력원에 박아 넣었다. 불꽃과 함께 드론은 폭발했고, 파편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온몸이 땀으로 젖었다. 왼쪽 어깨는 여전히 지독하게 아려왔다. 하지만 내 옵틱 인터페이스에는 ‘전송 완료’ 메시지가 선명하게 떠올라 있었다.

나는 잭을 뽑아들고 서둘러 서버룸을 빠져나갔다. 복도에는 이미 무장 경비원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소리가 들렸다.

“침입자를 발견 즉시 사살하라!”

복수의 첫 번째 발걸음은 생각보다 순조롭지 않았다. 하지만 이현. 네가 숨겨두었던 프로젝트 아킬레스의 심장을, 내가 다시 들고 왔다. 이제 이 데이터는 너의 목을 조일 밧줄이 될 것이다.

나는 낡은 환기구로 다시 몸을 밀어 넣었다. 어둠 속에서 차가운 미소가 번졌다. 빗소리에 섞여 아무도 듣지 못할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제 시작이야, 이현.”
추적자들이 내 뒤를 쫓고 있었지만, 나는 이미 도시의 그림자 속으로 다시 녹아들고 있었다. 나의 복수는 이제 막 날개를 펼쳤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