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소녀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연재 웹소설 <도시의 별무리> 17화**

창문 밖으로 희미한 도시의 불빛이 번져 들어왔지만, 방 안의 공기는 그 어느 때보다 차갑고 무거웠다. 시계는 새벽 두 시를 훌쩍 넘기고 있었다. 쨍그랑! 거실에서 들려온 날카로운 소리에 민아는 침대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벌써 일주일째였다. 처음엔 그저 접시가 미끄러진 줄 알았고, 다음엔 컵이 저절로 떨어진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우연’이라고 치부할 수 없었다.

“유나…?”

조심스럽게 동생의 방 문을 열었다. 유나는 이불을 턱 밑까지 끌어올린 채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다행이다. 깨지 않은 모양이다. 하지만 그 평화로운 모습이 오히려 더 섬뜩하게 느껴졌다. 저 아이는 이 모든 기이한 현상 속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자고 있었다. 혹은, 너무 지쳐서 잠이 들었을 수도 있었다.

민아는 거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바닥에는 며칠 전 새로 샀던 머그컵이 산산조각 난 채 흩어져 있었다. 컵 조각들이 달빛을 받아 차갑게 빛났다. 분명히 테이블 한가운데 잘 놓여 있던 컵이었다. 누가 건드릴 리도 없었다. 민아는 무릎을 굽히고 조각들을 응시했다. 유리 파편 사이로 스며드는 한기가 손끝을 저리게 만들었다. 공기 중에 떠다니는 미약한 진동. 아주 희미하지만 분명히 느껴지는, 불길한 파동.

이건 ‘그것’의 짓이었다. 민아는 이를 악물었다.

“이제 그만해.”

나직하게 읊조렸지만, 답은 없었다. 아니, 오히려 답하듯 거실 등에서 팟, 하는 소리와 함께 불꽃이 튀더니 이내 깜빡거리기 시작했다. 불규칙하게 명멸하는 빛이 거실을 더욱 기괴한 공간으로 만들었다. 민아는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섰다. 등골이 오싹했다. 이 감각. 비명처럼 찢어지는 듯한 감정의 잔재. 분노, 슬픔, 그리고 깊은 좌절.

순간, 유나의 방에서 “엄마…!” 하는 작은 흐느낌이 들려왔다. 민아의 심장이 다시 한번 내려앉았다. 유나가 깼다. 민아는 거실의 혼란을 뒤로하고 서둘러 유나의 방으로 향했다.

“유나야, 괜찮아? 무슨 꿈 꿨어?”

유나는 침대에 웅크리고 앉아 눈을 비비고 있었다. 얼굴은 식은땀으로 축축했다.

“언니… 무서운 꿈 꿨어… 누가 나를 계속 노려보는 꿈…”

유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는 그 시선이 너무나 불안해 보여 민아는 유나를 끌어안았다. 유나의 체온이 차갑게 느껴졌다.

“괜찮아, 언니가 있잖아. 아무것도 아니야.”

하지만 민아의 속마음은 이미 지옥이었다. 아무것도 아니긴. 이제는 꿈까지 침범하는 모양이었다. 민아는 유나를 토닥이며 침대에 다시 눕혔다. 유나는 민아의 손을 꼭 잡은 채 한참을 더 훌쩍이다 잠이 들었다.

민아는 유나의 방을 나오자마자 거실을 살폈다. 깜빡이던 등은 꺼져 있었고, 대신 주방 쪽에서 ‘달그락달그락’ 하는 소리가 들렸다. 민아는 숨을 참고 소리의 근원을 쫓아갔다. 주방 한가운데에는 싱크대 위에서 떨어져 나온 듯한 칼들이 바닥에 꽂혀 있었다. 식칼, 과도, 심지어는 날카로운 커터 칼까지. 칼끝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숨이 턱 막혔다. 이제 장난이 아니었다. 이건 명백한 위협이었다. 유나가 저 칼들을 발견했더라면…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이제 한계를 넘었어.”

민아의 눈빛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더 이상 지켜볼 수만은 없었다. 가족을 위협하는 존재를 가만둘 수는 없었다. 민아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방문을 잠그고, 창문으로 스며드는 달빛 아래 섰다.

민아는 손을 들어 목에 걸린 펜던트를 쥐었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손가락에 닿자마자, 펜던트에서 미약한 빛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작고 섬세한 보석이 박힌 펜던트. 평범한 액세서리처럼 보이지만, 이것은 그녀에게 주어진 특별한 힘의 증거였다.

“변신!”

낮고 단호한 목소리가 방안을 울렸다. 펜던트에서 뿜어져 나온 빛이 민아의 몸을 감쌌다. 빛의 물결이 그녀의 평범한 잠옷을 진청색과 은색이 어우러진 신비로운 전투복으로 바꾸었다. 긴 생머리 위로는 은은하게 빛나는 티아라가 얹혔고, 등 뒤로는 투명하게 반짝이는 날개 형상의 에너지가 솟아났다. 평범한 여대생 민아는 사라지고, 혼란 속에서 질서를 찾아내는 존재, ‘아르카나’가 그 자리에 섰다.

그녀의 눈빛은 더 이상 불안에 떨지 않았다. 오직 확고한 결의만이 서려 있었다. 이제 그녀는 두려워하는 소녀가 아니었다. 이곳에 존재하는 미지의 위협에 정면으로 맞설 전사였다.

방 문을 열고 거실로 나선 아르카나는 심호흡을 했다. 공기 중의 냉기가 더욱 짙어졌다. 아까보다 훨씬 강력한 감정의 파동이 아파트 전체를 휘감고 있었다. 분노가 가득한 절규, 비통함이 서린 슬픔.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이 엉겨 붙어 거대한 응어리를 형성하고 있었다.

“어디에 있지?”

아르카나는 손을 뻗어 공간의 흐름을 감지했다. 그녀의 손끝에서 은은한 푸른빛이 퍼져나가자, 보이지 않던 에너지의 실타래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어둡고 혼탁한 기운이 주방을 넘어 작은 방 하나로 향하고 있었다. 비어있는 방이었다. 이전에 이 아파트에 살던 사람들의 짐이 보관되어 있던 곳이었다.

아르카나는 발소리를 죽인 채 그 방으로 향했다. 문고리를 잡으려 하자, 문고리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차갑게 얼어붙으며 경련했다. 찌이이익, 하는 섬뜩한 소리와 함께 문고리가 녹아내리듯 변형되었다. 안에서 강렬한 거부감이 뿜어져 나왔다.

“나는 너와 싸우러 온 것이 아니야.”

아르카나는 조용히 말했다.

“그저, 네가 왜 여기에 있는지 알고 싶을 뿐.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멈춰야 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방 안에서 엄청난 에너지가 폭발했다. 문이 산산조각 나며 파편들이 아르카나에게 쏟아졌다. 아르카나는 한순간에 날개를 펼쳐 파편들을 막아냈다. 파편들이 날개에 부딪히며 사라졌다.

방 안은 마치 폭풍이 지나간 듯 난장판이었다. 낡은 상자들이 뒤집혀 내용물들이 흩어져 있고, 벽에는 손톱으로 긁은 듯한 붉은 자국들이 선명했다. 방 한가운데에는 희미하게 일렁이는 검은 그림자가 떠 있었다. 사람 형상을 띠고 있었지만, 형체는 끊임없이 왜곡되고 흔들렸다.

“어째서… 어째서…!”

귀청을 찢는 듯한 절규가 방안을 가득 채웠다. 그 소리는 목소리라기보다는, 수많은 원한이 한데 뭉쳐 터져 나오는 듯한 비명이었다.

아르카나는 침착하게 왼손을 들었다. 손바닥에서 은색 빛이 뿜어져 나오며 방 안의 혼탁한 기운을 가르기 시작했다.

“진정해. 네가 겪었던 고통은 알아.”

“아니…! 아무도 몰라! 아무도 날 보지 않아…!”

검은 그림자는 더욱 격렬하게 요동쳤다. 방 안의 물건들이 굉음과 함께 공중으로 떠올랐다. 낡은 책상, 의자, 심지어는 벽에 박혀 있던 못까지, 모든 것이 아르카나를 향해 돌진했다.

아르카나는 침착하게 몸을 피하며 빛의 방패를 만들어 공격을 막아냈다. 그녀의 시선은 오직 검은 그림자에 고정되어 있었다. 이 모든 난동은 그 존재의 내면에 있는 고통의 표출이었다. 싸움을 멈추는 것이 아니라, 그 고통을 이해하고 해방시켜야 했다.

“네가 원하는 게 뭐야? 무엇 때문에 이곳에 묶여 있는 거지?”

아르카나의 목소리가 에테르를 타고 그림자에게 직접 닿는 듯했다. 그림자의 움직임이 순간 멈칫했다. 그리고 그 순간, 아르카나의 눈앞에 흐릿한 영상이 스쳐 지나갔다.

작은 아이의 모습. 어두운 방. 그리고 들려오는 부부의 싸움 소리. 쿵, 쿵, 쿵. 문을 두드리는 소리. 흐느끼는 아이의 모습. 그리고… 차가운 바닥에 쓰러진 채 움직이지 않는 아이…

아르카나의 숨이 턱 막혔다. 이 아파트에서 벌어졌던 비극적인 사건이었다. 이전 세입자, 혹은 그 이전 세입자에게 벌어졌던 끔찍한 일. 이 공간에 묶인 것은… 어린 아이의 영혼이었다. 부모의 싸움 속에서 방치되고, 결국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 아이의.

“나는 아무도 미워하지 않아… 그저… 너무 무서웠을 뿐이야… 엄마… 아빠…”

절규가 점차 슬픔으로 변해갔다. 검은 그림자의 형체가 흐트러지더니, 어린 아이의 모습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눈물로 얼룩진 작은 얼굴. 그 아이는 더 이상 분노하지 않았다. 그저, 홀로 남겨진 아이의 슬픔만이 가득했다.

아르카나의 가슴이 찢어지는 듯 아팠다. 이런 아픔이 이곳에 잠들어 있었다니. 그녀는 한 걸음 다가서며 오른손을 뻗었다. 손바닥에서 따뜻한 노란빛이 피어올랐다. 치유와 위로의 빛이었다.

“이제 괜찮아. 혼자가 아니야.”

빛이 아이의 형체에 닿자, 아이의 몸이 점차 투명해지기 시작했다. 아이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아르카나를 올려다보았다. 그 눈빛은 더 이상 원한이 아닌, 오랜 갈증 끝에 찾아온 안도감으로 가득했다.

“고마워요… 따뜻해…”

나지막한 속삭임이 마지막으로 방안을 감돌았다. 아이의 형체는 완전히 빛이 되어 아르카나의 손끝에서 부드럽게 스며들었다. 방 안을 가득 채웠던 냉기와 혼탁한 기운도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엉망이 되었던 방도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아르카나는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손바닥에 남아있는 온기. 그리고 가슴속에 차오르는 묘한 감정. 슬픔과 평화가 뒤섞인 듯한 기분이었다. 하나의 비극이 이렇게 끝을 맺었다.

***

민아는 다시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 변신을 해제했다. 몸에 남은 피로감보다 마음속의 공허함이 더 컸다. 침대에 걸터앉아 창밖을 바라보았다. 새벽이 깊어지고 있었다. 동이 트기 직전의 가장 어두운 시간.

“민아 언니…?”

유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민아는 화들짝 놀라 돌아보았다. 유나가 문가에 서서 졸린 눈으로 민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 안 자고 여기 있어?”

“어… 그냥, 잠이 안 와서.”

민아는 얼버무렸다. 유나는 민아의 옆으로 다가와 침대에 앉았다.

“언니, 근데 아까… 왠지 기분이 이상했어. 뭔가… 아주 슬픈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마지막엔 따뜻해진 것 같아.”

유나의 말에 민아는 놀라 유나를 바라보았다. 유나는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이제는 무서운 꿈 안 꿀 것 같아.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해졌어.”

아이의 순수한 감각이 자신이 해낸 일을 증명하는 듯했다. 민아는 유나를 끌어안았다. 모든 것이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이 도시에는 아직도 수많은 ‘아픔’들이 존재했고, 그녀는 그 모든 것을 알아차릴 수는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오늘 밤, 하나의 슬픔을 위로할 수 있었다.

유나는 민아의 품에 안겨 스르르 잠이 들었다. 민아는 유나의 고른 숨소리를 들으며 창밖을 다시 바라보았다. 동이 트기 시작하는 하늘. 새벽의 푸른빛이 도시 위로 번져나갔다. 어쩌면, 이 아파트에서 시작된 기이한 현상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녀의 시선이 문득 방 한구석에 놓인 낡은 액자에 닿았다. 오래전 이 아파트에 살았던 가족사진이었다. 환하게 웃고 있는 아이의 얼굴이 보였다. 어쩌면 그 아이는…

민아는 왠지 모를 불안감에 휩싸였다. 오늘 밤은 끝났지만, 또 다른 어둠이 어딘가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았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