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강후는 메마른 강바닥을 걷고 있었다. 한때 맑은 물줄기가 굽이쳐 흐르던 곳이었다지만, 이제는 쩍쩍 갈라진 진흙 바닥만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열기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지면 위로 발자국을 남길 때마다, 먼지가 훅 끼쳐 올라 목구멍을 칼칼하게 만들었다. 며칠째 제대로 된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해 혀는 사포처럼 거칠었다.

이곳이 강이었노라 말해주는 유일한 증거는, 녹슨 철골과 뒤틀린 교각의 잔해뿐이었다. 한때 거대한 다리였을 구조물은 이제 거대한 괴물의 뼈처럼 앙상하게 드러나 있었다. ‘대재앙’이라 불리는 그날 이후, 세상은 숨 쉬는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거대한 입처럼 변해 버렸다. 하늘은 언제나 흙빛이었고, 땅은 메말랐으며, 푸른 것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강후는 무심한 눈으로 멀리 보이는 언덕배기를 훑었다. 부서진 기와 조각들이 널려 있는 폐가 몇 채. 아마도 작은 마을의 흔적일 터였다. 저곳이라면 혹시, 우물이라도 남아 있을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살아야 했다. 이유 같은 건 이제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살기 위해 움직이고, 살아남기 위해 숨 쉬었다.

과거에는 이러지 않았다. 천 년 문명이라 불리던 시절, 강물은 맑았고, 숲은 우거졌으며, 사람들은 배고픔을 몰랐다. 무림맹이니, 마교니, 정파와 사파의 대결이니 하는 이름들은 이제 그저 썩어가는 고서 속 이야기일 뿐이었다. 살아남은 이들에게 무협이란, 고작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발버둥, 더럽고 추한 생존 기술에 불과했다.

폐가에 다다르자, 퀴퀴한 곰팡이 냄새와 함께 묘한 적막감이 감돌았다. 강후는 허리춤에 찬 녹슨 검의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이런 곳일수록 경계를 늦추면 안 된다. 그의 눈은 부서진 문틈을 통해 집안을 훑었고, 귀는 바람 소리마저 놓치지 않으려 예민하게 움직였다.

마을은 예상대로 버려진 지 오래였다. 간혹 짐승의 뼈가 뒹굴거나, 시커멓게 눌어붙은 재의 흔적이 발견될 뿐이었다. 강후는 부지런히 우물을 찾아 헤맸다. 그러다 마침내, 무너진 담벼락 구석에서 돌로 쌓아 올린 우물터를 발견했다. 심장이 격렬하게 뛰었다.

급히 우물로 다가섰지만, 끓어오르던 희망은 이내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우물 안은 마른 나뭇가지와 흙먼지로 가득 차 있었고, 물은 바닥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이 가라앉아 있었다. 절망감이 목을 조르는 순간, 강후의 귀에 미세한 소리가 포착되었다. 인기척.

그는 본능적으로 몸을 숙여 무너진 담벼락 뒤로 숨었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적이 보이면 피하는 것이 상책. 하지만 피할 수 없다면… 그의 손이 무의식적으로 검집에 닿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세 명의 그림자가 우물터로 다가왔다. 깡마른 몸에 찢어진 옷을 걸친 사내들. 그들의 눈은 굶주린 짐승처럼 번들거렸다. 허리춤에는 녹슨 단검이나 날카로운 괭이 같은 것이 매달려 있었다. 약탈자, 혹은 그저 절박한 생존자들. 이런 시대에 그 둘을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했다.

“젠장, 여기도 아무것도 없잖아!”
한 사내가 거칠게 투덜거렸다. 다른 사내는 우물 안을 들여다보고는 침을 뱉었다.
“젠장할, 죽으라는 거냐?”
그들의 대화는 절망과 분노로 가득했다. 강후는 그들의 상태를 파악했다. 지쳐 있고, 굶주려 있으며, 극도로 예민하다. 싸움이 벌어진다면 맹렬하게 달려들 것이다.

그때, 그들의 시선이 강후가 숨어 있는 담벼락 쪽으로 향했다. 강후는 숨을 멈췄다. 들킨 것인가? 아니, 그들의 시선은 담벼락이 아니라, 담벼락 근처에 뒹굴고 있던 강후의 작은 가죽 주머니에 닿았다. 주머니 안에는 어제 겨우 사냥한 작은 쥐 고기 몇 점과 마른 약초 몇 뿌리가 들어 있었다. 이들에게는 생명줄과도 같은 귀한 것들.

“이봐, 저거 좀 보라고.”
한 사내가 손가락으로 주머니를 가리켰다. 다른 사내의 눈빛이 탐욕스럽게 변했다.
“호오, 운이 좋은데? 저 안에 먹을 게 있을지도 몰라!”
세 사내는 서로 눈짓을 교환하며 주머니 쪽으로 천천히 다가섰다. 강후는 더 이상 피할 수 없음을 직감했다. 가진 것이 없던 시절이라면 미련 없이 포기했겠지만, 이제는 한 조각의 쥐고기조차 목숨과 바꿀 만큼 귀한 것이었다.

“거기 누구야!”
선두에 서 있던 사내가 소리쳤다.
강후는 천천히 담벼락 뒤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의 눈은 차분했지만, 그 안에는 끓어오르는 생존 본능이 담겨 있었다.
“…”
강후는 대답 대신 허리에 찬 검을 뽑았다. 녹슨 칼날이 햇빛을 받아 희미하게 번뜩였다. 화려한 검무나 멋들어진 발경 같은 것은 없었다. 오직 살아남기 위한 날 선 기세만이 그를 감쌌다.

세 사내의 얼굴에 당혹감과 함께 굶주린 맹수 같은 광기가 스쳤다.
“뭐야, 혼자잖아! 네놈이 가진 걸 모두 내놔라, 그럼 목숨만은 살려주지!”
으름장을 놓는 사내의 말에 강후는 피식 쓴웃음을 흘렸다. 이 황량한 세상에서, ‘목숨만은 살려주지’라는 말은 가장 공허한 협박이었다. 죽지 않는다면 결국 굶어 죽거나, 병들어 죽거나, 다른 놈들에게 잡혀 죽을 뿐이었다.

“내가 가진 건… 목숨뿐이다.”
강후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지만, 단호했다. 그의 몸에서 잔뜩 웅크렸던 기세가 살짝 풀리며, 곧바로 공격 태세로 전환되었다.

세 사내가 동시에 덮쳐왔다. 괭이를 든 사내는 묵직한 일격을 날렸고, 단검을 든 사내는 옆구리를 노렸다. 강후는 본능적으로 몸을 틀어 괭이 날을 피하고, 동시에 검을 휘둘러 단검을 든 사내의 손목을 노렸다. 챙! 쇳소리가 공기를 갈랐다.

강후의 검은 화려하지 않았다. 맹렬하게 뻗어 나가 상대를 제압하는 검이 아니었다. 그의 검은 마치 그림자처럼 움직였다. 상대의 공격을 흘리고, 틈을 만들고, 그 틈을 파고들어 치명타를 날리는 방식이었다. 절실함이 만들어낸 생존의 검이었다.

단검을 든 사내가 손목에 깊은 상처를 입고 비명을 질렀다. 그 순간, 강후는 몸을 낮춰 괭이를 든 사내의 다리 사이로 파고들었다. 뒤이어 달려들던 마지막 사내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강후의 검이 번개처럼 뻗어 나가 괭이를 든 사내의 목덜미를 스쳤다. 쿨럭! 핏방울이 허공에 흩뿌려졌다. 사내는 컥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그대로 고꾸라졌다.

한 명이 쓰러지자, 남은 두 사내의 눈빛에 공포가 서렸다. 하지만 그들의 굶주림은 공포보다 강했다. 특히 팔을 다친 사내는 분노에 찬 눈으로 다시 강후에게 달려들었다. 강후는 냉정했다. 이런 상황에서 망설임은 곧 죽음이었다.

검이 다시 한 번 번뜩였다. 이번에는 한층 더 빠르고 정확하게, 두 사내의 심장을 노렸다. 피 튀는 소리가 메마른 마을에 울려 퍼지고, 이내 두 명의 그림자가 싸늘한 시신이 되어 쓰러졌다.

강후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몸 곳곳이 쑤셔왔고, 허벅지에는 괭이 날에 긁힌 상처가 벌겋게 부어올라 있었다. 피가 배어 나왔지만, 지금 당장 치료할 여유도, 깨끗한 물도 없었다. 그는 쓰러진 사내들의 시신을 살폈다. 굳어진 얼굴에는 절망과 굶주림이 역력했다.

옷을 뒤져 흙먼지가 잔뜩 묻은 마른 빵 조각 몇 개와 작은 가죽 물통을 찾아냈다. 물통 안에는 탁한 물이 절반쯤 채워져 있었다. 악취가 났지만, 강후는 망설임 없이 그 물을 목구멍으로 털어 넣었다. 비릿하고 텁텁한 맛이었지만, 그의 메마른 식도를 적시는 단비와 같았다.

사투 끝에 얻어낸 보잘것없는 수확이었다. 빵 조각을 품에 넣고, 물통을 허리춤에 찼다. 그리고 우물 안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여전히 희망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그는 물통의 물과 빵으로 잠시나마 버틸 수 있었다.

동이 트기 시작했다. 흙빛 하늘은 점차 잿빛으로 물들었고, 멀리 수평선 위로 희미한 태양이 고개를 내밀었다. 폐허가 된 마을을 뒤로하고, 강후는 다시 길을 나섰다. 그의 등 뒤에는 작은 꾸러미가 매달려 있었다. 그 안에는 이제 더 많은 절망과, 그럼에도 꺾이지 않는 생존의 의지가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 꾸러미 맨 아래에는, 먼 과거 그의 어머니가 직접 수놓아 준 낡은 천 조각이 소중하게 숨겨져 있었다.

또 다른 하루의 시작이었다. 또 다른 생존의 여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