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틱 코미디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우리 집엔 어쩐지 수상한 이웃이 산다**

**1. 이 고요한 집에 불청객이라니**

고요함은 서지은의 가장 소중한 친구였다. 서른두 살의 그녀는 오랫동안 꿈꿔왔던 독립을 드디어 이루어냈다. 번잡한 셰어하우스를 떠나 도심 한복판, 고층 아파트의 이 아늑한 공간은 그녀의 성역이었다. 햇살이 잘 드는 거실, 깔끔하게 정돈된 부엌, 그리고 무엇보다 밤이 되면 찾아오는 완벽한 정적. 지은은 이 모든 것을 사랑했다.

오늘 아침도 평소와 같았다. 알람이 울리기 5분 전, 몸은 이미 기상 준비를 마쳤다. 침대에서 미끄러져 내려와 부엌으로 향했다. 새로 들인 캡슐 커피 머신에서 은은한 커피 향이 퍼지는 동안, 지은은 찬장에서 머그컵을 꺼냈다. 언제나 같은 자리, 언제나 같은 컵. 머그컵을 캡슐 커피 머신 아래에 두고 잠시 냉장고로 시선을 돌렸다. 어제 사둔 새 우유를 꺼내기 위해서였다. 톡, 하고 우유 팩을 여는 짧은 소리. 다시 시선을 돌려보니, 컵이.

“어라?”

머그컵이 놓여있던 자리가 아주 미묘하게 어긋나 있었다. 원래는 캡슐 커피가 정확히 떨어질 수 있도록 가운데 놓아두었을 터인데, 지금은 오른쪽으로 조금 치우쳐 있었다.

“내가 이렇게 놨었나?”

지은은 고개를 갸웃했다. 잠결에 실수했겠거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다시 제자리에 놓았다. 캡슐이 다 내려진 커피를 한 손에 들고 방으로 향했다. 출근 준비를 위해 옷을 고르다 어제 입었던 바지를 무심코 내려놓았다. 잠시 뒤 옷장 문을 닫으려는데, 바지가 사라졌다.

“이게 또 어디 갔지?”

분명 침대 위에 던져놨는데. 침대 시트를 들춰보고, 바닥을 훑고, 심지어는 협탁 위까지 뒤져봤지만 보이지 않았다. 5분여를 찾은 끝에 바지는 놀랍게도 화장실 변기 뚜껑 위에 가지런히 개켜져 있었다.

“내가 설마 여기까지 들고 와서 정리한 건가? 미쳤나 봐.”

지은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어쩐지 등골이 오싹했지만, 출근 시간이 촉박했다. 분명 피곤해서 헛것을 봤거나, 잠결에 한 행동을 잊은 것이라고 애써 합리화했다.

문제는 그다음 날부터였다.

퇴근 후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현관문이 지은의 손을 떠나 쾅! 하고 세게 닫혔다. “어우!” 지은은 화들짝 놀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현관문은 평소에도 살짝만 힘줘도 스르륵 닫히는 편이었지만, 오늘처럼 벽을 뚫을 기세로 닫힌 적은 없었다.

“바람이 심한가?”

그날 밤, 지은은 좋아하는 드라마를 보며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한창 몰입하고 있는데, 갑자기 화면이 팟, 하고 꺼졌다. “뭐야?” 리모컨을 들어 전원 버튼을 눌렀다. 다시 화면이 켜졌다. ‘건전지가 다 됐나?’ 건전지를 갈아 넣으려는데, TV가 다시 팟, 하고 꺼졌다. 그리고는 바로 옆에 있던 스탠드 조명이 깜빡깜빡거리기 시작했다. 마치 약이 오른 듯, 약 올리듯.

“야, 너 왜 그래!”

지은은 욱하는 마음에 소리쳤다. 그러자 스탠드 조명이 환하게 켜지더니, TV도 다시 제 혼자 켜졌다. 그것도 지은이 보던 드라마가 아닌, 뜬금없는 홈쇼핑 채널에서. 지은은 입을 쩍 벌렸다. 아무리 봐도 이건 좀 이상했다.

다음 날은 더 가관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샤워를 하고 나오니 칫솔이 칫솔꽂이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한참을 찾다가 서랍 속, 평소에는 절대 칫솔을 넣을 일이 없는 수건 아래에서 발견했다. 점심에는 분명 점심 도시락을 싸 들고 출근했는데, 회사에 도착해 가방을 열어보니 어제 먹다 남은 배달 음식 쿠폰만 덩그러니 들어있었다. 결국 회사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해야 했다.

저녁에는 집에 오자마자 제일 먼저 냉장고를 열었다. “내 도시락은… 집에 있었겠지?” 텅 비어있는 냉장고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식탁 위에는, 가지런히 놓여있는 지은의 도시락 통이 있었다. 분명 아침에 들고 나갔던 도시락 통이었다.

“미쳤나 봐. 진짜.”

지은은 거의 울상이 되어 자신의 휴대폰을 들었다. 저장된 친구 ‘수민’의 이름을 눌렀다. 몇 번의 신호음 끝에 수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지은아. 웬일이야, 이 시간에?”

“수민아, 나 좀 이상해.” 지은은 울먹이며 말했다. “우리 집에… 우리 집에 뭔가 있는 것 같아.”

“뭐? 뭐가 있다는 거야?” 수민은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자꾸 물건들이 제멋대로 움직여. TV가 저절로 켜졌다 꺼지고, 내가 분명 어딘가에 놔둔 물건이 엉뚱한 곳에서 발견돼. 오늘 아침엔 도시락도 사라졌다가 저녁에 나타났어. 이건… 이건 그냥 실수일 수가 없어.”

수민은 한참을 조용히 듣고 있더니 깔깔 웃기 시작했다. “야, 너 혹시 과로했니? 스트레스받았어? 아니면 설마… 귀신이라도 붙었냐?”

“야! 웃지 마! 진짜라고! 나 지금 너무 무서워 죽겠어.” 지은은 절규했다.

“아이, 농담이지. 지은아, 네가 얼마나 깔끔 떠는 애인 줄 아는데, 물건 잘못 놓거나 했을 리가 없지. 하지만 뭐, 피곤하면 착각할 수도 있지. 혹시 어디 아픈 건 아니야? 아니면 그냥 이사 스트레스인가? 요즘 바쁘다고 그랬잖아.”

수민의 말을 들으니 더욱 답답했다. 친구조차 믿어주지 않는데, 내가 미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겨우 전화를 끊고 지은은 다시 한번 집 안을 둘러봤다. 이 깔끔하고 고요한 공간이 언제부터 이렇게 위협적으로 느껴졌는지.

“누구세요. 장난 그만해요.”

지은은 빈집에 대고 중얼거렸다. 어쩐지 오기가 생겼다. 그저 심심한 동네 아이들의 장난이거나, 누가 나를 골탕 먹이는 것이거나, 아니면… 정말로 무엇인가가 여기 있는 것이거나.

그날 밤, 지은은 늦게까지 잠 못 이루고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다. 온몸의 신경이 곤두서서 작은 소리에도 움찔거렸다. 부엌에서 물 마시는 소리만 나도 심장이 쿵 떨어졌다. “이러다 병 나겠어.” 스스로에게 한숨을 쉬었다.

어느덧 자정이 훌쩍 넘어가 있었다. 시끄럽게 울려대던 위층의 쿵쾅거리는 소리도, 가끔 들리던 복도의 발소리도 이제는 완전히 멎었다. 완벽한 정적. 하지만 이 정적이 더 이상 평화롭지 않았다. 오히려 턱 끝까지 차오르는 공포를 자극했다.

지은은 피곤한 눈을 비볐다. 더 이상 이렇게는 못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냥 자자. 어차피 이대로 밤새 깨어있어도 달라질 건 없었다.

냉장고에서 차가운 물을 한 컵 따랐다. 벌컥벌컥 마시고 컵을 식탁 위에 내려놓았다. 순간, 컵이 스르륵 미끄러지더니 식탁 끝에 위태롭게 섰다. 그리고는 균형을 잃고 바닥으로 떨어지기 직전, 컵이 허공에 멈췄다. 마치 누군가 투명한 손으로 잡고 있는 것처럼.

지은은 굳어버렸다. 눈앞에서 벌어진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컵은 허공에서 잠시 멈춰 있더니, 천천히, 아주 천천히 다시 식탁 위로 올라왔다. 그리고는 지은이 처음 놓았던 그 자리에 정확히 놓였다.

“…………”

지은은 숨도 쉬지 못했다. 온몸의 털이 쭈뼛 서는 느낌. 이건 이제 착각이나 과로 같은 변명으로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순간, 부엌 한가운데에서 작은 ‘딸그락’ 소리가 났다. 식탁 위에 놓여있던 펜 하나가 살짝 들리더니, 마치 인사를 하듯 공중에서 한 번 끄덕, 하고 지은을 향해 꺾였다.

“으아아악!”

지은은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질 쳤다. 벽에 등이 닿자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움켜쥐었지만, 누구에게 전화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경찰? 119? 아니면 무당?

지은의 눈에, 부엌 한쪽에 놓인 빨래 바구니가 들어왔다. 그 안에는 어제 세탁한 옷들이 개켜지지 않은 채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지은은 분노와 공포가 뒤섞인 목소리로 겨우 입을 열었다.

“너… 너 거기 있으면, 뭐라도 해봐! 내… 내 옷이나 개든가! 아님 설거지라도 하든가!”

지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빨래 바구니에서 하얀 수건 한 장이 퐁, 하고 솟아올랐다. 그리고는 허공에서 마치 춤을 추듯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잠시 뒤, 수건은 빨래 바구니를 향해 다시 천천히 내려앉더니, 마치 누군가 섬세하게 접듯이 각 잡힌 네모 형태로 깔끔하게 개켜졌다. 그리고 그 위에 다른 수건 한 장이 퐁, 하고 솟아올랐다.

지은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공포는 이제 어이없는 황당함으로 변해 있었다.

수건이 한 장, 한 장. 마치 유령의 손길에 의해 움직이는 인형처럼, 스스로 접히기 시작했다. 톡, 탁, 톡, 탁. 섬세하고 정확하게.

마지막 수건까지 완벽하게 개켜지자, 집 안에는 다시 정적이 찾아왔다. 너무나 완벽한 고요함에 지은은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누구…세요?”

지은의 목소리는 파르르 떨렸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전과는 다른 종류의 떨림이었다. 공포보다는, 압도적인 기이함과 미지의 존재에 대한 호기심이 더 강하게 섞여 있었다.

고요한 아파트에, 지은의 떨리는 숨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아주 미묘하게, 바람 소리 같기도 하고, 작은 한숨 같기도 한, 픽, 하는 소리가 들렸다. 마치 누군가 웃음을 참는 듯한 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