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카 액션 독립적인 단편 소설

거대한 강철의 그림자가 도시의 밤을 뒤덮었다. 넥서스 연구 단지의 중심, 수백 미터에 달하는 ‘천궁’ 전투 병기가 밤하늘을 찢을 듯 솟아 있었다. 그 위용을 자랑하는 강철의 신. 그러나 그 거대한 존재감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곳을 지배하는 건 팽팽한 정적, 그리고 음습한 긴장이었다.

류진하, 천재 탐정이라는 거창한 수식어가 따라붙는 남자는 구겨진 트렌치코트 차림으로 차가운 격납고 바닥에 서 있었다. 그의 낡은 코트와 주변의 번쩍이는 최첨단 장비들은 어딘가 묘한 부조화를 이루었지만, 그의 시선만큼은 그 어떤 고성능 센서보다도 예리하게 공간을 꿰뚫고 있었다.

“류 탐정님, 드디어 오셨군요.” 박형사가 땀으로 축축한 이마를 닦으며 다가왔다. 그의 얼굴에는 피로와 절망감이 뒤섞여 있었다. “이건… 정말 미쳐버릴 것 같습니다.”

진하는 아무 말 없이 발치에 놓인 최신형 홀로그램 지도 위로 시선을 내렸다. 붉은 점멸등이 한 곳을 집요하게 가리키고 있었다. 격납고 가장 안쪽에 위치한, 한도진 수석 연구원의 개인 연구실.

“피해자는?” 진하가 짧게 물었다.
“한도진 수석 연구원입니다. 이번 ‘천궁’ 프로젝트의 총괄 책임자시죠. 발견 당시, 책상에 엎드린 채…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습니다.”

박형사의 목소리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답답함이 배어 있었다. 그는 진하를 안내하며 무거운 발걸음으로 복도를 따라 걸었다. 복도 양옆으로는 엄청난 크기의 메카닉들이 정비 모드에 들어가 잠들어 있었고, 그들의 묵직한 강철 팔다리는 거대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저마다의 목적과 기능에 따라 설계된 거대한 기계들은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숨을 죽이고 있는 듯했다.

마침내 한 연구원의 연구실 문 앞에 도착했다. 단단한 합금으로 만들어진 문은 그 자체로 요새 같았다. 보안 전문가들이 철저히 조사했지만, 강제 침입의 흔적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잠금장치는 완벽했고, 모든 출입 기록은 ‘한도진 본인’의 지문 인식 외에는 아무것도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보시는 바와 같습니다. 외부 침입은 불가능합니다. 창문도 없고, 환풍구조차 성인 남성이 통과할 수 없는 규격입니다. 모든 공기 순환 시스템은 내부에서만 조작이 가능하고요. 문자 그대로… 밀실입니다.” 박형사가 한숨을 쉬었다. “최첨단 시설이라 오히려 이런 미스터리가 더 이해가 안 됩니다.”

진하는 아무 말 없이 연구실 안으로 들어섰다. 텅 빈 방은 차가운 금속과 기계 냄새로 가득했다. 중심에는 유리 상판으로 된 거대한 책상이 놓여 있었고, 그 위에 한도진 연구원이 미동도 없이 엎드려 있었다. 그의 등에는 얇은 실험복이 구겨져 있었고, 손은 허망하게 바닥을 짚고 있었다. 핏자국 하나 없이 깔끔한, 아이러니하게도 평화로운 죽음의 모습이었다.

진하는 주변을 한 바퀴 천천히 둘러보았다. 벽에는 ‘천궁’ 프로젝트의 설계도가 홀로그램으로 떠 있었고, 한쪽 벽면에는 수많은 모니터들이 꺼진 채 검게 빛나고 있었다. 깨진 유리 조각 하나, 흐트러진 종이 한 장조차 없었다. 완벽하게 정돈된 죽음.

“사인(死因)은?” 진하가 시신에 가까이 다가가며 물었다.
“국과수 일차 소견으로는 신경독 중독입니다. 아주 미량의 독극물이 체내에서 급속히 퍼져 심장 마비를 일으켰다고 합니다. 흔적도 남기지 않아 부검으로도 찾아내기 쉽지 않았다고….”

진하는 한도진의 손끝을 응시했다. 무언가를 움켜쥐려다 만 듯, 손가락이 살짝 구부러져 있었다. 하지만 그 손에 잡힌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없어 보였다*. 류진하의 날카로운 시선이 그 미묘한 차이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한참을 시신 주위를 맴돌았다. 그리고는 불현듯,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았다. 천장 한가운데, 환풍구와는 별개로 보이는 작은 직사각형 모양의 패널이 눈에 들어왔다. 일반적인 조명 패널과 흡사했지만, 아주 미세하게 주변과 다른 색감을 띠고 있었다. 육안으로는 거의 구별 불가능한 차이였다.

“저건 뭡니까?” 진하가 손가락으로 패널을 가리켰다.
박형사가 고개를 갸웃했다. “아, 저건 비상용 압력 조절 밸브입니다. 기압 변화가 심할 때 자동으로 열려서 내부 압력을 조절하는 거죠. 평소엔 닫혀 있습니다. 메카닉 조정실에서 사용하는 것과 비슷한 원리라고 들었습니다.”

진하는 흥미롭다는 듯 패널을 응시했다. 그리고는 다시 시신으로 시선을 돌렸다. 한도진의 손끝… 그리고 그의 책상 모서리. 미세한, 아주 미세한 스크래치 자국이 눈에 띄었다. 사람의 손톱으로 낼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얇고 날카로운 무언가가 긁고 지나간 흔적. 마치 금속이 금속을 긁었을 때 남는, 정교하면서도 흠집이 깊은 자국이었다.

“책상 위에 놓여 있던 물건은요?” 진하가 물었다.
“특별한 건 없었습니다. 태블릿, 스타일러스 펜, 그리고 설계 도면 몇 장 정도요. 모두 압수해서 분석 중입니다.”

진하는 잠시 눈을 감았다. 머릿속에서 퍼즐 조각들이 빠르게 맞춰지고 있었다. 신경독, 밀실, 미세한 스크래치, 그리고 비상용 압력 조절 밸브.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천궁’ 프로젝트의 핵심 기술.

그는 천천히 몸을 돌려 연구실 밖으로 나왔다. 박형사가 그의 뒤를 따랐다.

“박형사님, 이 연구실 옆 방은 어떤 곳입니까?”
“아, 옆방은 ‘천궁’의 주요 부품을 진단하고 보정하는 진단 연구실입니다. 보통은 사람의 출입이 적고, 대부분 자동화 로봇 팔들이 작업을 합니다.”

진하의 눈이 번뜩였다. “진단 로봇 팔… 그게 어느 정도까지 정밀한 작업이 가능합니까?”
박형사는 의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네? 음… 아주 미세한 나사를 조이거나, 머리카락보다 얇은 전선 회로를 보정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천궁’의 핵심은 정밀함이니까요.”

“그 진단 로봇 팔의 제어 기록을 전부 확인해 주세요. 특히 살해 추정 시각 전후로 말입니다.” 진하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이미 답을 찾았다는 듯한 희미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박형사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만… 설마 로봇 팔이 살인을 저질렀다는 말씀이신가요?”

진하는 피식 웃었다. “로봇 팔은 그저 도구일 뿐입니다. 중요한 건, 누가 그 도구를 조종했는가죠.”

***

며칠 후, 넥서스 연구 단지의 보안실.
진하와 박형사가 모니터 앞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화면에는 진단 연구실에서 작동하는 로봇 팔의 기록이 빽빽하게 채워져 있었다. 수많은 데이터와 로그 파일들 속에서, 이상 징후를 보이는 한 지점이 붉게 강조되어 있었다.

“살해 추정 시각, 정확히 22시 17분 32초부터 22시 18분 05초까지… 인접한 진단 연구실의 ‘R-703’ 진단 로봇 팔이 비정상적인 작동을 했습니다.” 박형사가 침을 꿀꺽 삼켰다. “평소 보정 작업이 아닌, 길이를 최대로 늘이고… 마치 무언가를 뚫는 듯한 움직임이 포착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 아주 미세한 진동이 감지되었는데… 마치 액체를 주입하는 것과 같은 패턴입니다.”

진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죠. 한도진 연구원의 연구실 천장에 있던 비상용 압력 조절 밸브는, 그 구조상 얇고 긴 물체가 틈을 비집고 들어올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었습니다. 단, 완벽하게 밀봉된 것처럼 보일 뿐이죠. 그 미세한 틈을 뚫고 로봇 팔이 들어갔을 겁니다.” 그의 손가락이 화면 위를 스쳤다.

“하지만 어떻게… 외부에서 독극물을 주입할 수 있었던 거죠?” 박형사가 여전히 혼란스러워했다.

진하는 모니터 한 구석에 작게 표시된 ‘R-703’ 로봇 팔의 상세 설계도를 가리켰다. “R-703은 ‘천궁’의 연료 주입구 정비에도 사용되는 모델입니다. 즉, 액체를 정밀하게 주입할 수 있는 노즐이 장착되어 있다는 뜻이죠. 그 노즐에 신경독을 채워 넣고, 로봇 팔을 조종해 한도진 연구원의 연구실 밸브 틈으로 침투시킨 겁니다. 독극물은 기체 상태로 빠르게 분사되어 순식간에 피해자의 호흡기로 들어갔을 겁니다.” 그의 설명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마치 눈앞에서 범행을 목격한 듯 생생했다.

“그럼 밀실은…?”

“완벽한 밀실이었습니다. 다만, 살인자는 그 밀실의 ‘취약점’을 기계적인 방식으로 파고든 겁니다. 사람이 침입할 수 없으니, 아무도 의심하지 않을 장치를 이용한 거죠. 로봇 팔이 독극물을 주입하고 원위치 한 뒤, 비상용 압력 조절 밸브는 다시 자동으로 닫혔을 테고, 모든 흔적은 사라졌을 겁니다. 한도진 연구원이 죽기 직전 책상을 긁었던 것은, 아마도 침투하는 로봇 팔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저항하려던 흔적이었겠죠.” 진하의 눈빛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박형사는 전율했다. “그럼, 누가 R-703을 조종했습니까?”

진하는 화면을 응시했다. ‘R-703’ 진단 로봇 팔의 제어 기록에는 특정 개인의 접근 기록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 기록은 한 사람을 지목하고 있었다.

“강태훈 연구원입니다.” 진하의 입에서 나온 이름에 박형사가 경악했다.

강태훈. ‘천궁’ 프로젝트의 경쟁 모델인 ‘비상(飛上)’ 프로젝트의 총괄 책임자였다. 늘 한도진의 그림자에 가려져 있던 인물. 그의 천재적인 재능은 한도진의 혁신적인 아이디어에 늘 밀려 있었다.

“강태훈은 한도진 연구원 바로 옆 연구실에서 일했습니다. R-703 로봇 팔은 양쪽 연구실에 걸쳐 작동하도록 설계되어 있었죠. 그는 한도진 연구실의 보안 시스템, 그리고 비상용 압력 조절 밸브의 취약점을 완벽하게 꿰뚫고 있었던 겁니다. 아마도 한도진이 개발하던 ‘천궁’의 혁신적인 AI 시스템이 자신의 ‘비상’ 프로젝트를 완전히 무용지물로 만들 것이라는 불안감에 시달렸을 겁니다. 그래서…” 진하는 잠시 말을 멈췄다. “자신이 개발한 로봇 팔을 이용해, 천재의 생명을 앗아간 거죠.”

바로 그때, 문이 벌컥 열리고 강태훈 연구원이 뛰어 들어왔다. 그의 얼굴에는 잔뜩 겁에 질린 표정과 함께 미약한 분노가 서려 있었다.

“무슨 소리들을 하는 겁니까! 제가 한도진을 죽였다고요?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전 그 시각에 제 연구실에서…!” 그는 마치 발버둥 치는 짐승 같았다.

진하가 차갑게 그를 응시했다. “강태훈 연구원님, 당신은 22시 17분부터 22시 18분까지, R-703 진단 로봇 팔을 수동 조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 R-703은 한도진 연구원의 연구실 천장에 있는 비상용 압력 조절 밸브를 향해 독극물을 주입했죠. 당신의 컴퓨터 로그인 기록, 로봇 팔의 제어 기록, 그리고 미세한 독극물 잔류 흔적… 모두 당신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진하는 한 치의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모든 증거를 들이밀었다.

강태훈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그건… 그건 우연입니다! 제가 잠시 시스템을 확인했을 뿐이라고요! 그 압력 밸브는…!”

“그 밸브는 그 누구도 손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셨겠죠. 하지만 그 밸브를 통해 죽음이 찾아올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을 겁니다. 당신의 천재성은 오직 당신의 경쟁자를 없애는 데에만 쓰였군요.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진하가 고개를 저었다.

박형사는 강태훈의 양팔을 잡고 수갑을 채웠다. 찰칵, 하는 금속음이 정적을 깨뜨렸다. 강태훈은 허망한 눈빛으로 진하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좌절과 후회, 그리고 한 줄기 광기가 스쳐 지나갔다.

“천궁… 완성되지 못하게 할 수는 없어…!” 강태훈이 발악하듯 소리쳤다. 그의 목소리에는 한도진에 대한 증오와 자신의 좌절감이 뒤섞여 있었다.

진하는 그 뒷모습을 보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완벽한 밀실 살인이었지만, 완벽한 범죄는 아니었군.”

차가운 강철의 도시, 그 속에 숨겨진 정교한 살인극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진하는 다시금 낡은 트렌치코트의 깃을 올리며, 다음 미스터리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거대한 메카닉들이 잠들어 있는 격납고를 뒤로하고, 그의 눈빛은 여전히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세상에 완벽한 밀실은 없다는 듯이. 오직, 완벽한 탐정만이 존재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