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틱 코미디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드넓은 천하 무림의 심장부, ‘용호대회’의 결전장인 거대 원형 경기장에는 이미 수만 명의 인파가 발 디딜 틈 없이 운집해 있었다. 웅장한 목조와 단단한 화강암으로 지어진 경기장 지붕은 맑은 하늘을 뚫고 솟아오른 듯했고, 그 아래는 기합 소리와 함성, 그리고 미묘하게 섞인 땀과 매운 닭꼬치 냄새로 가득 찼다. 무림맹주가 될 단 한 사람을 가리는 자리. 곧 천하의 운명이 결정될 순간이었다.

정중앙에 위치한 흑요석 무대 위, 두 인물이 서로를 마주하고 있었다. 한쪽은 붉은 검을 휘두르며 ‘혈도무제’라는 악명을 떨친 사내. 그의 눈빛은 피에 굶주린 맹수처럼 번뜩였고, 온몸에서는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다른 한쪽은… 김철수였다.

“크아아악! 감히 나의 앞을 막아서느냐, 애송이!” 혈도무제는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포효하며, 손에 든 핏빛 검을 번뜩였다. 마치 그 검이 곧 김철수의 심장을 꿰뚫을 것만 같았다.
김철수는 그저 멀뚱히 눈을 깜빡였다. 그의 무표정한 얼굴에는 아무런 감정의 동요도 읽히지 않았다. “막는 게 아니라, 겨루는 건데요. 순서가 그렇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차분하다 못해 심심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관중석에서는 이미 익숙한 풍경이라는 듯 낮게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김철수. 그는 강호에 등장한 이래 단 한 번도 패배한 적 없는 ‘강호제일검’이었다. 늘 최소한의 움직임과 최대한의 무관심으로 상대를 제압하며 그 별칭을 굳건히 해왔다.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났지만, 그 재능만큼이나 사회성이 떨어지는, 실로 독특한 인물이었다.

경기 해설을 맡은 ‘천라지망’ 진경은 마이크에 입을 바싹 대고 열변을 토했다. 그녀의 미모는 무림 최고라는 평이었지만, 그보다 더 뛰어난 것은 바로 현장을 압도하는 해설 실력이었다.
“자, 여러분! 드디어 강호제일검, 김철수 선수가 등장했습니다! 이번 상대는 피로 물든 검객, 혈도무제 선수! 과연 김철수 선수는 이번에도 그의 전설적인 ‘삼초결’을 선보일 것인가요?! 아니면 혈도무제가 강호제일검의 불패 신화를 깨뜨릴 것인가!”

혈도무제가 벼락같이 달려들었다. “혈풍검!” 핏빛 검이 잔상처럼 번지며 김철수의 심장을 겨냥했다.
김철수는 움직이지 않았다. 손가락 하나 까딱 않는 부동의 자세. 붉은 검날이 그의 도포자락에 닿기 직전, 그제야 김철수는 아무렇지 않게 왼쪽으로 한 걸음 옮겼다. 섬뜩했던 검날은 허공을 가르고, 그와 동시에 김철수의 손이 느릿하게 뻗어나갔다.
*탁!*
둔탁한 소리가 경기장에 울려 퍼졌다. 김철수가 혈도무제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튕긴’ 소리였다. 주먹도 아니었고, 검끝도 아니었다. 그저 ‘튕겼다’.
혈도무제는 눈을 번뜩인 채 그대로 굳어버렸다. 이마에는 만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붉은 자국이 선명하게 솟아올랐다. 그리고 느릿하게, 마치 인형처럼 뒤로 쓰러져 의식을 잃었다.

경기장은 일순간 정적에 휩싸였다. 2초. 모든 이들이 숨을 죽이고 다음 장면을 기다렸다.
그리고 2초 후, 거대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우와아아악!”
“정말 삼초결이야!”
“아니, 이번엔 일초결이잖아!”

진경은 귀청이 터질 듯한 목소리로 외쳤다. “말도 안 돼! 일초! 일초 만에 혈도무제 선수가 쓰러졌습니다! 김철수 선수, 그의 별명은 ‘삼초결’이었으나, 이제부터는 ‘일초결’로 불려야 할 것 같습니다! 과연 그의 끝은 어디란 말인가요?!”
김철수는 그저 희미하게 한숨을 쉬었다. 땀 한 방울 묻지 않은 도포를 한 번 쓸어 올리며 무대 뒤편으로 향했다. “다음.” 그는 무심하게 중얼거렸다. 그의 머릿속에는 오직 하나, 오늘 저녁 한정 판매하는 최고급 닭볶음탕 세트를 맛볼 생각뿐이었다. 품절되기 전에 서둘러야 했다.

***

VIP 관중석, 마치 날카로운 매처럼 우아하게 앉아 있는 한 여인이 있었다. 그녀의 검은 도복은 군더더기 없이 몸에 밀착되어, 가늘지만 강인한 체형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날카롭고 총명한 눈빛에는 평소의 불꽃 같은 기세 대신, 미묘한 기색이 서려 있었다. 짜증? 재미? 아니면… 인정?
“흥, 또 저 모양이군.” ‘흑호 여협’ 이지혜는 콧방귀를 뀌었다. 짧게 자른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그녀는 중얼거렸다. “재능만은 기가 막히지. 문제는 그 재능을 사용하는 방식이… 너무 김철수답다는 거야.”
그녀의 경기는 다음 차례였다. 김철수의 어처구니없는 승리 때문은 아니었지만, 벌써부터 짜증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의 저런 천재적인, 그러면서도 어딘가 나사 풀린 듯한 실력은 종종 사람을 불쾌하게 만들었다. 아니, 무림의 고수를 이마 한 번 튕겨서 쓰러뜨리다니! 대체 무슨 도리인가!

김철수는 오직 닭볶음탕 생각에 골몰한 채 붐비는 복도를 걸었다. 그는 너무나도 진지하게 저녁 식사를 계획하고 있었기에, 다가오는 인물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다.
*쾅!*
두 인물이 둔탁한 소리와 함께 격렬하게 충돌했다.
“아야야야!”
“어이쿠!”

김철수는 정신을 차려보니 바닥에 나동그라져 있었다. 그의 등 아래에는 의외로 단단하면서도 부드러운 쿠션 같은 것이 느껴졌다. 그가 몸을 일으키자, 머리 위에서 섬뜩하리만치 분노에 찬 아몬드형 눈동자가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검은 머리카락이 엉망진창으로 헝클어져 있었다.
“너, 너 이 자식! 앞 좀 보고 다녀!” 이지혜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외쳤다. 그녀는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은 채였고, 약간의 육체적 통증보다 훨씬 더 큰 자존심의 상처를 입은 듯했다.
“어… 이지혜 씨.” 김철수의 눈이 미세하게 커졌다. 그는 자신이 지금 그녀의 무릎 위에 앉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죄송합니다. 제가… 닭볶음탕 생각을 하느라.”
이지혜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변했다. 당황스러움과 순수한 분노가 뒤섞인 색깔이었다. “닭… 닭볶음탕?! 지금 나를 깔고 앉아서 닭볶음탕 이야기를 하는 거냐?!”
“아니, 그게 아니라… 죄송합니다!” 김철수는 화들짝 놀라 그녀의 위에서 벗어났다. 그의 얼굴도 이제는 옅은 분홍빛을 띠었다. 그는 황급히 손을 내밀었다. “괜찮으십니까?”

이지혜는 그의 손을 찰싹 때려냈다. “흥! 괜찮기는! 내 뒤통수가 얼얼하다, 얼얼해!” 그녀는 불필요할 정도로 격렬하게 도복을 털며 일어섰다. “대체 정신을 어디다 팔고 다니는 거야, 강호제일검 나으리께서는?”
김철수는 바닥만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그의 뺨은 여전히 따뜻했다. “그… 닭볶음탕이요.”
이지혜는 기가 막히다는 듯 하늘로 손을 내저었다. “그놈의 닭볶음탕! 대회 중에 밥 타령이나 하고! 그러면서도 매번 우승이나 하고 있으니, 이 어찌 하늘의 이치란 말인가!”
그녀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나저나, 너 다음 상대가 나인 건 알고 있느냐?”

김철수는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진심으로 놀란 표정이었다. “아,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닭볶음탕은 다음 기회에…” 그는 말을 흐리다 이내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이지혜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다음 기회는 무슨! 네놈의 닭볶음탕을 다음 기회로 미뤄도, 내가 너를 가만두지 않을 테다!” 그녀의 목소리는 낮고 위험했다. “각오해라, 김철수. 내일 경기장에서는 네놈의 엉뚱한 검법으로는 어림도 없을 테니!”

이지혜는 씩씩거리며 복도를 나섰다. 김철수는 텅 빈 복도에 홀로 남았다. 그녀가 지나간 자리에는 희미하게… 뭔가 은은한 꽃향기와 날카로운 비누향이 뒤섞인 듯한 냄새가 남아 있었다.
김철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다. 혈도무제는 매운 음식 냄새가 났었는데… 이지혜 씨는 꽃냄새가 나는군. 게다가… 닭볶음탕은 오늘이 아니면 안 될 텐데…”
그의 머릿속은 언제나 그랬듯, 실제 상황과는 동떨어진 엉뚱한 생각으로 가득했다. 천재적인 무술 실력과 피클 무와 같은 감성 지능을 가진 강호제일검 김철수. 그의 내일 경기는 과연 어떻게 될까. 닭볶음탕을 포기한 만큼 그의 검이 더욱 날카로워질까? 아니면… 흑호 여협의 일격에, 그의 엉뚱한 정신세계가 한 번쯤 흔들리기라도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