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기계 도시, 아르카디움의 심장이 쿵, 쿵, 쿵, 하고 불규칙하게 울렸다. 짙은 안개와 석탄 연기가 뒤섞여 회색빛 하늘을 이루었고, 그 아래로 톱니바퀴처럼 맞물린 건물들이 마치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숨 쉬고 있었다. 번쩍이는 황동빛 첨탑과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증기 기관의 굉음은 이 도시의 비정한 활력을 증명했다.
류진은 그 활력의 그림자 속에서 움직였다. 검은색 방한복은 밤의 어둠에 완벽하게 녹아들었고, 얼굴의 절반을 가린 방풍 고글 너머로 푸른색 레이저 포인터가 번뜩였다. 그의 왼팔은 매끈하게 다듬어진 기계 의수였다. 과거의 상흔이자,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증표.
“목표, 태혁의 신형 비행선 격납고.”
그의 귀에 내장된 통신 장치에서 작고 기계적인 목소리가 속삭였다. ‘에코’, 류진이 직접 만든 초소형 정찰 드론이었다. 에코는 격납고 외부의 보안망을 이미 해킹한 상태였다.
류진은 지상에서 수십 미터 위에 걸쳐진 육중한 강철 파이프 라인을 따라 기어갔다. 차가운 금속 감촉이 그의 기계 의수에 닿았다. 아래로는 쉴 새 없이 증기를 뿜어내며 거대한 기계 마차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파이프를 타고 이동하는 그의 그림자가 마차의 헤드라이트에 길게 늘어졌다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거의 3년. 지옥 같은 3년이었다. 귓가에 강태혁의 비열한 웃음소리가 다시 들려오는 듯했다.
* * *
_“류진, 네 천재성은 인정하지만, 세상은 그걸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아.”_
_그때의 강태혁은 언제나처럼 자신만만했고, 그의 눈빛은 탐욕으로 번들거렸다. 우리는 나란히 서서 우리가 공동으로 개발한 ‘에테르-코어’를 바라보고 있었다. 미완성된 채였지만, 그 무한한 잠재력은 분명했다. 그것은 아르카디움의 미래를 송두리째 바꿀 발명품이었다._
_“세상은 이 발명품에 대한 믿음이 필요해. 그리고 그 믿음을 줄 수 있는 건, 너처럼 그림자 속에 숨는 재주만 있는 발명가가 아니라… 나 같은 사업가이지.”_
_쿵. 거대한 증기 해머가 작동하는 소리였다. 강태혁의 연구실 천장에서 거대한 강철 빔이 굉음을 내며 떨어져 내렸다. 우리의 에테르-코어가 불안정하게 붉은빛을 내뿜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태혁을 향해 손을 뻗었지만, 그의 눈빛은 이미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차갑고, 계산적이며, 망설임이 없었다._
_“미안하다, 친구.”_
_그 한마디와 함께, 거대한 폭발이 모든 것을 삼켰다. 강태혁은 그 지옥 속에서 유유히 걸어 나갔고, 나는 파편과 불꽃 속에서 신음했다. 나의 에테르-코어, 나의 연구 노트, 나의 미래, 그리고 나의 왼팔… 모든 것이 그날 사라졌다._
* * *
류진은 이를 악물었다. 피로 얼룩진 과거는 아직도 선명했다. 그날의 통증과 절망, 그리고 강태혁을 향한 불타는 증오가 그의 심장을 쿵쾅거리게 만들었다. 이제 그는 그림자 속에 숨는 발명가가 아니었다. 그림자 그 자체가 되었다.
목표 지점에 도달했다. 격납고 외부의 거대한 환기구 덮개가 에코의 해킹으로 스르륵 열렸다. 내부에서 뜨거운 증기가 쉬익, 하고 뿜어져 나왔다. 류진은 망설임 없이 그 좁은 통로로 몸을 밀어 넣었다.
내부는 거대한 철골 구조물과 복잡한 파이프 라인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습하고 뜨거운 공기가 피부에 달라붙었다. 그는 고글에 내장된 야간 시야 모드를 작동시켰다. 어둠 속에서 거대한 비행선의 윤곽이 서서히 드러났다. 강태혁의 야망이 담긴 최신작, ‘천공의 사자(Lion of the Sky)’.
“보안 시스템 우회 완료. 경비 드론 3기, 내부 순찰 중.” 에코의 목소리가 들렸다.
류진은 허리춤에서 작은 금속 구슬을 꺼냈다. ‘미스트 스모크’라 불리는 교란 장치였다. 구슬을 바닥에 던지자, 쉬이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주변을 순식간에 짙은 안개로 뒤덮었다. 시야가 흐려진 경비 드론들이 혼란스러운 윙윙거리는 소리를 내며 방향을 잃었다. 그 틈을 타 류진은 신속하게 움직였다.
그는 비행선의 하부에 설치된 보조 엔진실로 향했다. 거대한 증기 엔진이 뿜어내는 열기는 살갗을 태울 듯 뜨거웠다. 류진은 기계 의수의 손가락 끝에서 튀어나온 소형 렌치를 이용해 복잡한 패널을 열었다. 내부에는 수많은 전선과 톱니바퀴, 그리고 증기 파이프가 얽혀 있었다.
“이곳에 나의 메시지를 남겨야 해.”
류진은 품속에서 작은 은색 부품을 꺼냈다. 그것은 정교하게 세공된 톱니바퀴였다. 그의 과거 발명품에 새겨져 있던, 오직 그만이 사용하는 고유의 표식. 그는 그 톱니바퀴를 비행선의 핵심 제어 장치의 틈새에 조심스럽게 끼워 넣었다. 이 톱니바퀴는 당장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비행선이 특정 고도에 도달하고, 특정 부하를 받게 되면… 제어 시스템에 치명적인 오작동을 일으킬 것이다. 그때가 되면 강태혁은 비로소 자신의 “천공의 사자”가 류진의 손아귀에 놀아났음을 깨닫게 될 터였다.
작업을 마쳤을 때, 문득 뒤에서 서늘한 기척이 느껴졌다. 류진은 본능적으로 몸을 돌렸다.
“거기 누구냐!”
거대한 체구의 자동화 경비병이 전방에서 섬광등을 비추며 다가오고 있었다. 눈부신 빛 속에서 경비병의 육중한 황동 몸체가 위압적으로 빛났다. 그들의 발소리가 쿵, 쿵, 쿵, 하고 격납고에 울려 퍼졌다.
류진은 냉정함을 잃지 않았다. 그는 왼손의 기계 의수를 들어 올렸다. 의수의 손바닥이 열리며 작은 압축 증기 캐논이 튀어나왔다.
“옛 친구가 방문한 것뿐.” 류진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다.
쉬이익- 콰과광!
압축된 증기탄이 맹렬한 속도로 날아가 경비병의 머리를 강타했다. 황동으로 된 머리 부분이 산산조각 나며 톱니바퀴와 증기를 뿜어냈다. 다른 경비병들이 일제히 무기를 겨누며 류진에게 달려들었다.
류진은 순식간에 몸을 낮춰 복잡한 파이프 사이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그의 등 뒤로 경비병들의 총알이 쉭쉭거리는 소리를 내며 날아갔다. 그는 파이프를 밟고 뛰어올라 비행선의 날개 위로 올라섰다.
“에코, 탈출 경로 확보!”
“확보 완료. 격납고 상부 출입구 개방.”
류진은 날개 위를 질주했다. 아래에서 경비병들이 무차별적으로 총격을 가했지만, 그의 움직임은 번개처럼 빨랐다. 그는 격납고 상부에서 열린 작은 출입구를 향해 몸을 던졌다.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순간, 류진은 마지막으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불이 켜진 강태혁의 사무실 창문이 격납고 저편에서 보였다. 어렴풋이 그의 실루엣이 보였다. 아마도 자신의 “천공의 사자”를 자랑스러워하며, 다가올 비극을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을 터였다.
류진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걸렸다.
“강태혁… 이제부터 시작이야. 네가 훔쳐 간 것들을… 하나하나 되찾아 줄게.”
그의 등 뒤로 거대한 아르카디움의 야경이 펼쳐졌다. 수많은 증기 굴뚝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 속에서, 류진의 그림자는 더욱 깊고 선명해졌다. 그의 복수는 이제 막 날개를 달기 시작한 참이었다. 그리고 그 날개는 ‘천공의 사자’의 날개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하고 강력한 폭풍을 일으킬 것이었다. 이 밤은 복수의 서막에 불과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