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카디아 마법 학원, 그 웅장한 첨탑들이 밤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명문 중의 명문. 이곳은 수많은 마법사들의 꿈이 시작되고, 동시에 그 꿈이 가장 끔찍한 악몽으로 변질될 수 있는 곳이었다. 특히, 학원 지하 깊숙이 잠들어 있다는 소문 속 ‘금기’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입 밖으로 내는 것을 꺼렸다.
“지훈아, 정말 갈 거야?”
수아의 목소리가 바스락거리는 종이 소리처럼 불안하게 떨렸다. 손에 든 두꺼운 고문서, 고대 결계학에 대한 내용이 빼곡히 적힌 그것이 무색하게, 그녀의 얼굴은 창백했다. 우리 둘은 밤늦도록 도서관 구석에 처박혀 금지된 자료들을 훔쳐보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내가 수아를 끌고 온 것이었다.
“당연하지. 안 그러면 왜 이 시간까지 컵라면도 못 먹고 여기 앉아 있겠어?”
나는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지만, 사실 내 심장도 쿵쾅거리고 있었다. 어둠의 마법사 ‘코르부스’가 남긴 마지막 유산이 아르카디아 지하에 봉인되어 있다는 소문은 학원생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이야기였다. 대부분은 그저 으스스한 괴담 정도로 치부했지만, 나는 달랐다. 지난 학기, 사라진 세 명의 선배들과 학원 측의 모호한 해명은 내게 깊은 의구심을 남겼다. 그들의 실종에 대한 어떤 공식적인 발표도 없었고, 그저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한 자퇴’라는 알맹이 없는 공지만이 전부였다.
“하지만 저번 학기에 사라진 선배들… 그게 우연일 리 없어. 다들 지하 쪽에 얼쩡거리다가 사라졌다고 했잖아.”
수아는 나름대로 논리적인 추론을 펼쳤다. 그녀는 똑똑했다. 그래서 더 겁이 많았고, 나와 함께 무모한 일에 발을 담그는 것을 망설였다. 하지만 그녀의 마법 지식은 이런 탐사에 필수적이었다.
“그래, 그 우연 같지 않은 우연을 밝히러 가는 거야. 이 학원의 자랑스러운 모토가 뭐였지? ‘진실은 언제나 어둠 속에 잠들어 있다’였나?”
나는 실없는 농담을 던지며 수아의 긴장을 풀어주려 애썼다. 사실은 나도 잔뜩 겁을 먹고 있었다. 하지만 내 안의 들끓는 호기심과 불길한 예감은 나를 멈추게 하지 않았다.
“그건 ‘지식은 언제나 어둠 속에 잠들어 있다’거든! 어쨌든, 여기 이 책에 따르면 지하 3층에 있는 ‘불가침의 서고’ 입구에는 고대 봉인 마법이 걸려 있대. 단순한 마법으로는 뚫을 수 없어.”
수아는 고문서의 한 페이지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희미한 마법 문자들이 빼곡히 적힌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오래된 마법서적에서나 볼 법한 복잡한 기호들이었다.
“좋아, 그럼 어떻게 뚫어야 할까? 혹시 파훼법 같은 건 없어?”
“음… ‘특정한 위상과 진동수를 지닌 마력을 정확한 주기로 주입해야 한다’고 적혀 있네. 단순한 방어 마법이 아니라, 일종의 열쇠 같은 개념인가 봐.”
나는 수아에게 마력 감지 수정구를 건넸다. 학원 내의 마력 흐름을 감지하고 기록하는 데 쓰이는 도구였다. 우리는 지난 몇 주간, 밤마다 몰래 학원 지하 복도 곳곳에 이 수정구를 설치해왔다. 그리고 놀랍게도, 지하 3층으로 통하는 금지된 복도에서 이상하리만큼 강하고 일정한 마력의 파동이 감지되었다. 마치 누군가 주기적으로 어떤 의식을 치르는 듯한, 혹은 봉인을 유지하기 위한 마력 주입과도 같은.
“수정구에 기록된 패턴이 여기 적힌 파훼법이랑 맞아떨어지는 것 같아. 이 주기는… 일주일에 한 번, 정확히 자정에 마력이 주입돼. 오늘 밤이 그 주기야!”
수아의 눈이 동그래졌다. 우연치고는 너무나 완벽한 타이밍이었다. 나는 망설일 필요 없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럼 서두르자. 어쩌면 우리가 이 학원의 감춰진 비밀을 밝혀낼 첫 번째 사람이 될 수도 있어.”
우리는 어둠이 짙게 깔린 학원 복도를 조심스럽게 지나 지하로 향했다. 대리석 바닥은 차갑게 식어 있었고, 우리의 발걸음 소리만이 적막을 깨트렸다. 지하로 내려갈수록 공기는 더욱 싸늘해졌고, 곰팡이와 흙먼지 냄새가 코를 찔렀다.
지하 1층과 2층은 일반적인 창고나 오래된 강의실들이었다. 그러나 지하 3층으로 향하는 계단은 분위기부터 달랐다. 낡고 녹슨 철문이 거대한 자물쇠로 잠겨 있었고, 문틈 사이로는 검은 아우라가 희미하게 흘러나오는 듯했다.
“여기가 맞네.”
수아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녀의 손에 들린 고문서가 미세하게 진동하는 것 같았다.
나는 마력 감지 수정구를 꺼내 들었다. 예상대로, 문 저편에서 일정한 주기로 마력 파동이 감지되고 있었다. 우리는 수아의 해독에 따라 정확한 타이밍에 맞춰 마력을 주입할 준비를 했다.
“지금이야!”
수아의 신호와 동시에, 우리는 동시에 마력을 끌어올렸다. 내 손에서 푸른 마력이 뿜어져 나왔고, 수아의 손에서는 은은한 초록빛 마력이 흘러나왔다. 두 마력이 문에 걸린 고대 봉인에 닿자, 봉인 마법진이 섬광처럼 번뜩였다. 콰아아앙! 굉음과 함께 철문이 삐걱거리며 열렸다. 녹슨 쇠붙이가 마찰하는 소름 끼치는 소리가 지하 복도를 가득 채웠다.
문 안쪽은 암흑 그 자체였다. 손전등 마법을 사용하자, 좁고 어두운 복도가 드러났다. 복도 양옆으로는 굳게 닫힌 철문들이 늘어서 있었고, 그 문들 위에는 희미하게 지워진 마법진들이 새겨져 있었다. 먼지는 발목까지 쌓여 있었고, 공기는 습하고 무거웠다. 마치 수백 년간 아무도 드나들지 않은 곳 같았다.
“여기… 학원 기록에는 ‘불가침의 서고’라고만 되어 있는데, 서고 같지는 않아.”
수아의 말대로였다. 서고라면 책 냄새나 마법약 냄새라도 나야 할 텐데, 이곳에서는 쇠 비린내와 흙냄새, 그리고 무언가 썩어가는 듯한 기분 나쁜 향이 뒤섞여 있었다. 등골이 오싹했다.
우리는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복도 끝에는 거대한 원형의 문이 보였다. 주변의 철문들과는 다르게, 그 문은 검은색 대리석으로 만들어져 있었고, 표면에는 섬뜩한 형상의 부조들이 새겨져 있었다. 눈동자 없는 얼굴, 비정상적으로 길쭉한 팔다리, 기괴한 촉수 같은 것들이 서로 얽혀 있었다. 그 문 중앙에는 커다란 마법진이 새겨져 있었는데, 그 마법진에서는 희미하게 붉은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저 문… 뭔가 봉인되어 있는 것 같아.”
수아의 목소리는 거의 속삭임에 가까웠다.
내가 그 문에 손을 대려 하자, 수아가 황급히 내 팔을 잡았다.
“안 돼, 지훈아! 이 마력… 너무 위험해.”
나는 수아의 손을 뿌리치고 문에 손을 댔다. 차가웠다. 대리석의 질감보다 더 차가운, 마치 살아있는 존재의 피부 같은 소름 끼치는 감촉이었다. 그리고 손끝에서 느껴지는 마력은… 붉은빛만큼이나 강렬하고 불길한 기운이었다. 마치 문 저편에서 수천 년 굶주린 무언가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듯한 느낌.
그때, 문틈에서 희미하게 무언가가 흘러나왔다. 검은 연기 같기도 하고, 투명한 촉수 같기도 한 기괴한 형체가 내 손목을 휘감는 듯했다. 나는 비명을 지르며 손을 떼어냈다. 차가운 기운이 피부에 스며들어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크악! 뭐… 뭐야?”
“지훈아! 괜찮아?”
수아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내게 다가왔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손전등 마법을 강화해 문을 비췄다. 붉은 마법진에서 뿜어져 나오던 빛이 일렁이는 듯했다.
그리고 그 순간, 문이 살짝, 아주 미세하게 열리는 듯한 소리를 들었다. 끼이이익- 낡은 쇠붙이가 비명을 지르는 듯한 소리. 우리의 마력으로 열었던 지하 3층 철문이 닫히는 소리였다.
“누가 오고 있어!” 수아가 다급하게 속삭였다.
나는 심장이 쿵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우리가 뚫고 들어온 문이 닫히고 있다면, 누군가 이곳에 정기적으로 드나든다는 증거였다. 학원 관계자일 수도 있고, 아니면… 다른 무언가일 수도 있었다.
“숨어!”
우리는 재빨리 복도 구석, 굳게 닫힌 철문들 사이의 어둠 속으로 몸을 숨겼다. 손전등 마법을 끄자, 다시 암흑이 찾아왔다. 붉은 마법진의 희미한 빛만이 유일한 광원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발소리가 들려왔다. 느리고 규칙적인 발소리. 한 명… 아니, 여러 명인 것 같았다. 발소리는 점점 가까워졌고, 이내 복도에 멈춰 섰다. 그리고 희미한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였지만, 그 음색은 섬뜩할 정도로 음습하고 불길했다. 마치 죽어가는 자의 마지막 숨소리 같기도 하고, 바닥을 기어가는 벌레들의 소리 같기도 했다.
나는 숨을 죽였다. 심장이 귓가에서 천둥처럼 울렸다. 옆에서 수아도 잔뜩 얼어붙어 있었다.
중얼거림은 계속되었다. 그리고 이내, 복도 끝의 검은 대리석 문이 스스로 스르륵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붉은빛이 복도를 물들였다. 단순한 마법진의 빛이 아니었다. 마치 살아있는 피처럼 꿈틀거리는 붉은빛이었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보였다.
길고 검은 그림자. 그것은 사람이 아니었다. 비정상적으로 길고 가는 팔다리, 흉측하게 뒤틀린 몸. 그리고 가장 끔찍했던 것은, 그것의 얼굴이었다. 얼굴은 없었다. 대신, 수많은 눈동자들이 여기저기 박혀 있었고, 그 눈동자들이 일제히 우리를 향해 번뜩이는 듯했다. 환각일까? 아니, 그건 너무나도 생생했다.
그림자는 검은 문 안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그 그림자가 서 있던 자리에서, 바닥에 흐릿하게 붉은 자국들이 보였다. 액체였다. 피와 같은 끈적한 액체.
문이 다시 닫혔다. 콰앙! 거대한 대리석 문이 닫히자, 모든 소리가 먹혀들었다. 중얼거림도, 발소리도, 끔찍한 그림자도 모두 사라졌다. 다시 복도에는 붉은 마법진의 희미한 빛만이 남았다.
나는 얼어붙은 채로 움직일 수 없었다. 수아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서로의 눈빛에서 똑같은 공포를 읽었다. 우리가 본 것은 환각이 아니었다. 학원 지하에 숨겨진 끔찍한 금기는… 살아있는 존재였다. 그리고 그것은 어떤 의식의 일부처럼, 주기적으로 이곳을 오가는 듯했다.
“도망가자, 지훈아…!”
수아가 떨리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녀의 말에 정신을 차렸다. 우리는 더 이상 이곳에 있을 수 없었다. 당장이라도 우리의 존재가 감지될 것 같았다.
우리는 조심스럽게 어둠 속에서 빠져나와 우리가 들어왔던 철문으로 향했다. 문은 아까와 다르게 굳게 닫혀 있었다. 마치 우리가 이곳에 들어온 적이 없다는 듯이. 하지만 아까의 경험은 너무나 생생했다.
“어떻게… 닫혔지?”
수아의 얼굴은 완전히 핏기 하나 없었다.
“우리가 잠입한 걸 알아챘을 수도 있어. 서둘러, 마력을 주입해서 열어야 해!”
나는 다시 마력을 끌어올렸다. 하지만 아까와는 달랐다. 손끝에서 마력이 제대로 모이지 않았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손끝이 마비된 것처럼 저렸다. 공포가 내 몸을 갉아먹는 듯했다.
수아도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손에서 나오던 초록빛 마력은 희미하게 흔들렸다.
“빨리… 빨리 해야 해!”
나는 있는 힘껏 마력을 문에 쏟아부었다. 수아도 필사적으로 도왔다. 끼이이익- 굉음과 함께 철문이 간신히 열렸다. 우리는 미끄러지듯 문밖으로 뛰쳐나왔다.
문이 다시 닫히는 굉음이 등 뒤에서 울렸다. 우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었다. 지하 계단을 두 칸씩 건너뛰며 필사적으로 위로 향했다.
학원 복도로 나왔을 때, 새벽 공기가 폐 속으로 밀려들어왔다. 살 것 같다는 안도감과 동시에, 더 깊은 공포가 밀려왔다. 우리가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학원이 숨기고 있는 끔찍한 진실은 무엇이었을까? 사라진 선배들은… 정말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한 자퇴’였을까?
밤하늘의 달은 여전히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하지만 내 눈에는 그 빛마저도 붉게 물든 피처럼 보였다. 아르카디아 마법 학원, 그 화려한 이름 뒤에 감춰진 어둠이 비로소 그 민낯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그 끔찍한 진실의 목격자가 되어버렸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알게 된 것을 모른 척할 수 있을까? 아니, 이미 우리는 그 금기의 존재와 마주했다. 그리고 그 금기는, 어쩌면 우리를 향해 이미 눈을 뜨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 손목에는 아직도 차가운 감촉이 남아있는 듯했다.
**[다음 장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