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틱 코미디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 1화. 첫 만남은 늘 격정적이지. 돌멩이든 사람이든.

북쪽 설산의 얼어붙은 칼바람도, 남쪽 바다의 거친 파도도, 서쪽 사막의 뜨거운 모래폭풍도, 동쪽 밀림의 음습한 맹독도, 그 무엇도 막을 수 없었다. 수많은 무림인들이 숨죽여 기다려온 바로 그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으니, 바로 천하제일 무림 대회의 서막이었다.

“젠장, 여기가 맞나? 지도는 무슨 암호문이여. ‘제2 연무장 뒤편, 소나무 세 그루 옆’이라니, 소나무가 여기 한두 그루여야 말이지!”

거대한 비석으로 만든 ‘천하제일 무림 대회’라는 글자가 입구에 우뚝 솟아 있었지만, 그 웅장함과는 달리 나의 목적지는 미로와 같았다. 쨍한 햇살 아래, 삐죽삐죽 솟은 소나무들이 도처에 널려 있었다. 나는 손바닥만 한 지도를 펴들고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등에 짊어진 기다란 검은 보자기가 축 늘어졌다. 그 안에는 남들이 보면 그저 폐품으로 여길, 녹슨 쇠붙이 하나가 들어 있었지만, 나에게는 전부나 마찬가지였다.

대회장 입구부터 왁자지껄한 기운이 넘쳐흘렀다. 화려한 문파의 깃발들이 바람에 휘날리고, 저마다 기상천외한 무공을 자랑하는 문파의 복색을 한 무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자신의 무용담을 뽐내고 있었다. 귓가에는 벌써부터 ‘천룡문의 검법은 어쩌고, 혈마문의 장법은 저쩌고’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며 투덜거렸다. “흥, 누가 보면 지들만 무림인인 줄 알겠네. 다들 허세 부리는 건 똑같구먼.”

사실 나는 어떤 문파에도 소속되지 않은 떠돌이 무인이었다. 어릴 적 우연히 주워들은 무공 비급을 달달 외워 수련했고, 혼자서 실전 경험을 쌓았다. 물론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배고픔에 시달리며 산속을 헤매기 일쑤였고, 멧돼지 엉덩이를 걷어차고 도망 다니기 바빴다. 하지만 그 덕분에 나는 웬만한 문파의 정예 제자들 못지않은 실력을 갖추게 되었다. 문제는, 아무도 그걸 알아주지 않는다는 거였지만.

“아니, 등록은 어디서 하는 거야? ‘서쪽 문루 옆 간이 천막’이라더니, 여기 천막이 서쪽 문루 옆에만 백 개는 있겠네!”

나는 기어이 짜증을 폭발시키며 지도를 구겨버렸다.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은자 몇 푼을 꺼내 주막으로 향했다. 등록이고 뭐고, 일단 배를 채우는 게 먼저였다. 대회가 시작되기 전에 기력을 보충해야지.

주막은 이미 인산인해였다. 땀 냄새와 음식 냄새, 그리고 왠지 모를 알코올 냄새가 뒤섞여 진동했다. 나는 겨우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아, 탁자를 닦지도 않은 채로 국밥 한 그릇을 시켰다.

“어이, 여기 국밥 한 그릇이랑… 탁주 한 잔 주쇼!”

시끄러운 주막 안에서 목청껏 소리치자, 주모가 땀을 뻘뻘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였다. 쿵,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내 옆자리 의자를 거칠게 빼내어 앉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얼어붙었다.

내 옆에 앉은 사내는… 한마디로 ‘그림’이었다. 먹물로 휘갈긴 듯한 새카만 머리칼은 마치 폭포수처럼 어깨 아래로 흘러내렸고, 날카로우면서도 깊이 있는 눈매는 얼음처럼 차가웠다. 높고 오뚝한 콧대, 굳게 다문 입술, 그 어느 것 하나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한 조각상이었다. 새하얀 도포를 입고 있었는데, 그 단정함이 그의 압도적인 존재감을 더욱 부각시켰다.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아니, 이건 좀 심했잖아. 세상에 저런 얼굴이 존재한다고? CG 아니야?

그는 아무 말 없이 탁자 위에 자신의 검을 내려놓았다. 검집에는 섬세한 용 문양이 새겨져 있었고, 얼핏 보기에도 예사로운 물건이 아니었다. 주막 안의 모든 시선이 그에게로 쏠리는 것이 느껴졌다. 모두가 숨을 죽이고, 감히 말을 걸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그의 차가운 눈매가 스르륵 움직여 나를 향했다. 나는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

“거기, 좀 비켜라.”

낮게 깔린 목소리는 듣는 사람의 심장을 얼어붙게 만들 만큼 서늘했다. 나는 눈을 깜빡였다. 저기요, 제가 먼저 앉았는데요?

“저… 제가 먼저 앉았는데요.” 내가 얼떨떨하게 말했다.

그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그 자리는 내가 앉을 자리다.”

“무슨 소리예요? 여기가 무슨 전세 낸 자리도 아니고….”

나는 어이가 없었다. 아무리 잘생겼기로서니 이렇게 무례할 수가! 내 안의 ‘쌈닭’ 기질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는 내 말을 무시하고 손을 뻗어 탁자 한가운데 놓인 술병을 잡으려 했다. 그런데 하필 그 술병 바로 옆에, 내가 아껴 마시려고 꺼내 놓은 육포 조각이 놓여 있었다. 그는 거침없이 손을 뻗었고, 그의 손끝이 육포 조각을 툭 건드렸다.

육포 조각은 힘없이 탁자 아래로 떨어졌다.

나는 순간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야! 너 지금 뭐 하는 짓이야!”

내 고함에 주막 안의 모든 대화가 뚝 끊겼다. 모든 시선이 우리 둘에게로 향했다. 나는 그들의 시선 따위는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내 육포! 내 소중한 육포 조각!

사내는 내가 던진 고함에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그저 싸늘한 눈으로 나를 내려다볼 뿐이었다.

“그까짓 육포 조각 하나로 소란이군.”

“그까짓 육포라니! 너는 이게 얼마나 귀한 건 줄 알아? 내가 이걸 사려고 얼마나 돌아다녔는데! 그리고 남의 물건을 떨어뜨렸으면 사과를 해야 할 거 아니야!”

나는 벌떡 일어섰다. 그의 얼굴이 내 코앞에 있었다. 여전히 냉랭한 표정.

“사과?” 그의 입술이 비웃듯이 움직였다. “그대의 불찰로 벌어진 일이다. 감히 내게 소리친 것을 용서할 수 없군.”

“뭐? 내 불찰? 지금 누가 누굴 탓하는 거야? 이 얼음 송곳 같은 녀석이 정말!”

주먹을 꽉 쥐었다. 이 잘생긴 얼굴에 한 방 먹이고 싶다는 충동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의 주변에서 은은하게 풍겨오는 기운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지만, 분노는 이성을 마비시켰다.

바로 그때, 주모가 허둥지둥 달려왔다.

“아이고, 도련님! 아가씨!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요! 이 분은 천무혁 도련님이시고, 이 분은… 어험, 처음 뵙는 아가씨신데….”

천무혁. 나는 그 이름을 되뇌었다. 어딘가 익숙한 이름인데. 아, 맞다. 이번 대회 우승 후보 1순위로 거론되던 그 천무혁! 천룡문의 차기 문주이자, 어린 나이에 이미 최고 경지에 도달했다는 천재 무인!

하지만 내 눈엔 그저 잘생긴 싸가지였다.

“됐소, 주모.” 천무혁이 차갑게 말했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나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이 여인은 무례를 범했다. 가만히 두어서는 안 될 것 같군.”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주막 안의 모든 무인들이 일제히 무기를 뽑아 들 기세로 자세를 취했다. 살벌한 기운이 주막 안을 가득 채웠다.

나는 피식 웃었다. “오호라, 무례를 범했다고? 그럼 네놈은 남의 육포를 떨어뜨린 무례를 범했으니, 당장 바닥에 엎드려 빌어야 할 거 아니야? 안 그래? 천룡문 도련님?”

내 말에 천무혁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의 얼굴에 비로소 작은 균열이 생기는 것을 보았다. 그게 재미있었다.

“좋다. 결투를 신청한다. 이 주막에서 감히 내게 도전할 배짱이 있다면 말이다.” 천무혁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주막 안은 한순간 정적이 흘렀다. 감히 천무혁에게 결투를 신청하다니? 그것도 이름 없는 떠돌이 무인이? 다들 미쳤다고 생각하는 눈치였다.

나는 피식 웃으며 등을 휙 돌렸다. “결투는 무슨 결투야. 여기는 대회장이 아니라 밥집이거든? 육포 값이나 물어내!”

나는 천무혁의 반응을 보지 않고 주모에게 국밥값과 탁주 값을 던져주고 문을 나섰다. 육포 값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어차피 저 인간에게 받을 생각이었다.

주막 문을 나서자, 시끄러운 대회장 분위기가 다시 나를 감쌌다. 나는 허리에 손을 얹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젠장, 천하제일 무림 대회가 아니라 천하제일 짜증 대회겠구먼. 시작부터 저런 얼음 송곳 같은 녀석을 만나다니!”

하지만 이내 씨익 웃었다. 그래, 잘생기면 뭐 해. 내 육포를 건드렸는데.

어차피 이 대회에서 만나게 될 운명이었을 터. 천하의 운명을 건 대회에서, 제일 먼저 만난 인간이 그 재수 없는 천무혁이라니. 운명치고는 꽤나 격정적인데?

나는 발걸음을 재촉해 등록처를 향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육포 값까지 다 뽑아내야겠다. 저 잘생긴 놈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서!

어쩌면 이 대회가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을지도 모른다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 * *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