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마른 먼지가 폐허가 된 도시의 뼈대 사이를 지친 숨처럼 흘러 다녔다. 한때 위용을 자랑했을 거대한 건물들은 이제 기울어지거나 무너져 내린 채 거대한 괴물의 시체처럼 널려 있었다. 그마저도 없는 곳에는 붉은 흙과 자갈만이 끝없이 이어졌다. 태양은 찢어진 하늘 구멍 사이로 간간이 모습을 드러냈지만, 그 빛은 따사로움 대신 맹렬한 고통을 쏟아내는 듯했다.
무진은 낡은 방진 마스크 위로 모자챙을 깊게 눌러썼다. 등에는 삐걱거리는 작은 배낭이, 허리춤에는 녹슨 단검이 매달려 있었다. 그의 발걸음은 잿빛으로 변한 아스팔트 위를 조심스럽게 옮겨졌다. 이곳은 한때 ‘번화가’라 불렸던 곳이다. 이름 모를 괴물들과 인간 사냥꾼들의 발길이 뜸한 곳, 그만큼 남은 것이 거의 없는 곳이기도 했다.
오늘로 사흘째였다. 배 속에서는 거대한 짐승이 으르렁거리는 듯했다. 마지막으로 입에 넣었던 것이라곤 며칠 전 겨우 찾아낸 딱딱한 건빵 부스러기 몇 조각이 전부였다. 물은 어제 바닥이 났다. 이대로라면 오래 버티지 못할 터였다.
그의 눈은 부서진 상점들의 잔해 속을 훑었다. 유리창은 산산조각 나고, 상품 진열대는 쓰러져 파편이 되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실낱같은 희망이 무진의 발걸음을 이끌었다. 먹을 것, 마실 것, 아니면 하다못해 팔아치울 만한 고철 덩어리라도.
“젠장, 또 아무것도 없어.”
깊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마스크 안에서 맴돌았다. 벌써 열 번째 상점이었다. 그는 한숨을 쉬며 주저앉으려다, 문득 발에 채이는 무언가를 느꼈다. 쿵,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굴러간 것은 찌그러진 금속 캔이었다. 캔의 겉면은 녹슬고 헤져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무진은 본능적으로 멈칫했다.
조심스럽게 캔을 주워 들었다. 묵직한 무게감. 안에 무엇인가 들어있다는 뜻이었다. 심장이 기대감과 동시에 불안감으로 뛰었다. 이런 황무지에서 완벽하게 보존된 물건은 대개 함정이거나, 그 주변에 더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신호였다.
캔을 흔들어보니 찰랑이는 소리가 들렸다. 물이다! 무진의 입술이 바싹 말라붙었다. 거의 정신을 놓을 뻔했다. 이 한 캔의 물은 그에게 생명 그 자체였다. 그는 주변을 빠르게 살폈다. 별다른 움직임은 없었다. 다만, 저 멀리 부서진 고층 건물 그림자 아래에서 길게 이어진 어두운 골목길이 왠지 모르게 불길하게 느껴졌다.
그는 캔을 조심스럽게 따려고 했다.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 순간이었다.
쉬이이익!
귓가를 스치는 섬뜩한 소리. 무진은 본능적으로 몸을 돌리며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그의 뒤편, 방금 전까지 그가 서 있던 곳에 묵직한 철 조각이 박혔다. 쾅! 굉음과 함께 콘크리트 바닥이 움푹 파였다.
“누, 누구야!”
무진은 바닥에 엎드린 채 허리춤의 단검을 뽑아 들었다. 녹슨 칼날이 태양 빛을 받아 섬뜩하게 번뜩였다. 그의 눈은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시야를 가리는 잔해와 먼지 속에서 희미한 그림자 하나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그림자는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낡고 더러운 가죽옷을 입은 사내였다. 그의 한쪽 팔은 기계로 되어 있었고, 그 기계 팔에 달린 집게에서 방금 그 철 조각을 날린 것이 분명했다. 사내의 얼굴은 흙먼지로 뒤덮여 있었지만, 찢어진 입가에 걸린 비웃음만은 또렷하게 보였다.
“크크크… 쥐새끼 한 마리가 먹을 걸 찾고 있었나 보군.”
사내의 목소리는 쇳소리처럼 거칠었다. 그의 뒤로는 두 명의 그림자가 더 나타났다. 모두 낡은 무기와 사나운 눈빛을 가진 자들이었다. 무진은 침을 꿀꺽 삼켰다. 세 명. 이들은 ‘사냥꾼’들이었다. 이런 폐허에서 살아남기 위해 다른 생존자들을 사냥하는 인간 쓰레기들.
“그 손에 든 물건, 고스란히 내놓고 사라져라. 안 그러면, 네 목숨도 버려야 할 거다.”
기계 팔을 가진 사내가 비릿하게 웃으며 말했다. 무진은 캔을 움켜쥔 손에 힘을 주었다. 사흘간의 갈증과 굶주림 속에서 겨우 찾아낸 생명수였다. 이걸 포기할 수는 없었다.
“싫다.”
무진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단호했다. 사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뭐라고? 감히 이 몸에게 대들어?”
기계 팔을 가진 사내는 코웃음을 치며 한 걸음 다가왔다. 그의 뒤에 있던 두 사냥꾼도 무기를 들고 양옆으로 벌어졌다. 퇴로는 막혔다.
무진은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몸 안에 흐르는 희미한 기운을 느꼈다. 어릴 적, 떠돌이 노인이 가르쳐 주었던 몇 가지 ‘술법’의 흔적이었다. 이 메마른 세상에서 그 기운은 한없이 약하고 미약했지만,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그래, 이대로 죽을 수는 없어.’
그는 오른손에 쥔 단검을 단단히 잡았다. 심장이 격렬하게 뛰었다.
싸움이 시작될 참이었다.
어두운 폐허 속에서, 찢어진 하늘 아래에서, 작은 생존자의 사투가 다시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