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틱 코미디 독립적인 단편 소설

광활한 우주선 ‘카시오페아 호’의 브릿지는 언제나 조용하고 엄숙한 공간이었다. 그러나 한서린 박사가 나타나면 그 엄숙함은 미묘하게 균열을 일으키곤 했다. 오늘은 그 균열이 폭발 직전이었다.

“함장님! 이거 보세요! 역대급이에요!”

한서린은 흥분으로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홀로그램 화면을 가리켰다. 화면 속에는 지금껏 인류가 마주한 적 없는, 기이하고 아름다운 에너지 패턴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이강우 함장은 팔짱을 낀 채 심드렁한 표정으로 화면을 응시했다. 그의 미간은 언제나처럼 살짝 찌푸려져 있었다. “박사, ‘역대급’이라는 말은 지난번에도 쓰지 않았습니까? 그때는 그냥 희귀 광물 더미였죠.”

“아, 함장님! 그건 비교불가예요! 이건 분명… 미확인 외계 문명의 흔적일 가능성이 99.9%예요! 신성한 과학자의 육감이 말하고 있어요!” 서린은 손가락을 치켜들며 열변을 토했다.

강우는 한숨을 쉬었다. “과학자는 육감이 아니라 데이터로 말합니다, 박사.”

옆에서 지켜보던 통신 담당 박지훈 대원이 키득거렸다. “함장님, 박사님은 이미 머릿속으로 외계 문명과 대화하고 계실걸요?”

“지훈 대원! 그렇게 놀리지 마세요!” 서린은 토라진 얼굴로 지훈을 노려봤다.

강우는 결국 고개를 젓고 통신 대원에게 지시했다. “좌표 확인하고, 탐사 준비해. 박사의 ‘육감’이 맞는지 틀리는지 확인이라도 해봐야겠군.”

서린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역시 함장님은 제 말을 믿어주시는군요!”

“믿는 게 아니라, 의심을 확인하는 겁니다.” 강우는 퉁명스럽게 말했지만, 그의 입꼬리는 아주 미세하게 위로 향했다.

***

문제의 에너지원은 텅 빈 우주 공간, 수억 년 전 폭발한 초신성의 잔해 사이에서 발견되었다. 카시오페아 호의 탐사정은 조심스럽게 그곳으로 접근했다. 서린과 강우, 그리고 안전 관리 담당 최유진 소령이 탐사정에 올랐다.

“함장님, 안전 제일입니다. 미확인 물질과의 직접 접촉은 삼가야 합니다.” 유진은 시종일관 강우에게 경고했다. 그녀는 언제나 침착하고 논리적이었지만, 서린의 과도한 열정 앞에서는 잔소리꾼이 되곤 했다.

“네, 소령님. 매뉴얼대로 진행하겠습니다.” 강우는 대답했지만, 그의 시선은 이미 탐사정 창밖으로 보이는 광경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곳에는 거대한 검은색 수정이 떠 있었다. 마치 우주를 집어삼킨 듯한 깊은 검은색이었지만, 표면에서는 셀 수 없이 많은 작은 빛들이 아른거렸다. 마치 밤하늘의 은하수를 농축시켜 놓은 듯, 신비롭고 압도적인 존재감을 뿜어냈다.

“세상에…” 서린은 넋을 잃고 중얼거렸다. “이건… 예술품이에요. 이 자체로 완벽한 우주를 담고 있어.”

“에너지 파장 분석 결과, 생명 활동 징후는 없습니다. 그러나 주변 공간에 미약한 중력 이상이 감지됩니다.” 유진이 분석 결과를 보고했다.

“함장님, 채취하겠습니다. 아주 작은 조각이라도 좋아요!” 서린이 애원하듯 말했다.

강우는 망설였다. 그의 직감은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꼈지만, 동시에 서린의 눈에 어린 순수한 열망을 외면할 수 없었다. “최대한 조심스럽게, 원격으로 채취해.”

서린은 강우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눈을 반짝이며 작업에 돌입했다. 레이저 커터를 이용해 수정의 가장자리에서 손톱만큼 작은 조각을 떼어냈다. 그 순간, 수정에서 묘한 진동이 울려 퍼졌다. 탐사정의 내부 조명이 깜빡거리고, 서린의 손에 들려 있던 채취 도구가 ‘띠링’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이게 무슨…” 유진이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냥 전기적인 교란일 거예요!” 서린은 애써 태연한 척하며 떨어진 도구를 주웠다. 그러나 그녀의 손에 들린 수정 조각은 채취 전과는 확연히 달랐다. 검은 표면 위로 붉은색과 푸른색의 빛줄기가 춤을 추듯 흘러내리고 있었다.

***

카시오페아 호로 돌아온 후, 그 작은 수정 조각은 ‘아크튜러스’라는 코드명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리고 아크튜러스는 그야말로 카시오페아 호의 일상을 뒤흔들어 놓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사소한 일들이었다. 함교의 홀로그램 스크린이 갑자기 로맨틱 코미디 영화의 한 장면으로 바뀌어버리거나, 식당의 음식 배급기가 메뉴와 전혀 상관없는 디저트만 쏟아내거나 하는 식이었다.

“젠장, 또 저 딸기 케이크야? 난 분명 매콤한 해산물 스튜를 시켰는데!” 지훈이 한숨을 쉬며 테이블에 놓인 딸기 케이크를 노려봤다.

“저, 저는 괜찮은데요…” 서린은 상큼한 딸기 케이크를 한 조각 떠먹으며 방긋 웃었다. 아크튜러스가 활성화된 이후, 그녀는 왠지 모르게 기분이 들뜨고, 모든 것이 사랑스럽게 보였다.

문제는 아크튜러스의 영향이 점점 더 개인적인 영역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어느 날, 강우는 잠시 들른 서린의 연구실에서 아크튜러스를 관찰하고 있었다. 서린은 옆에서 연신 수많은 데이터를 읊으며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함장님, 이 패턴 보세요! 분명 언어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어요! 반복되는 주기는…”

그때였다. 연구실의 중력장이 갑자기 약해지는가 싶더니, 서린의 몸이 붕 떠올랐다. 그녀는 중심을 잃고 허우적거리다 강우의 품으로 그대로 털썩 안겼다.

서린의 얼굴은 순식간에 토마토처럼 빨개졌다. 강우의 단단한 품에서 그녀는 어쩔 줄 몰라 뻣뻣하게 굳었다. 강우 또한 당황한 표정이었다. 그의 심장이 갑자기 격렬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서린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에서 달콤한 향기가 났다.

“저, 박사… 중력 안정화 장치가…” 강우는 간신히 말을 이었다.

“네, 네! 그, 그런 것 같아요!” 서린은 바둥거리며 강우의 품에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오히려 더 단단히 붙들리게 되었다. 중력장이 다시 정상으로 돌아오자, 두 사람은 민망함에 얼굴을 붉힌 채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으음, 다음부터는 중력 조정 시 주의하도록 하겠습니다.” 서린은 겨우 정신을 차리고 어색하게 말했다.

강우는 목까지 차오른 한숨을 간신히 삼켰다. “조심하도록 하십시오, 박사.” 그는 서린의 붉어진 뺨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

아크튜러스는 이제 함선 전체를 통제 불능의 로맨틱 코미디 무대로 만들고 있었다. 화장실의 변기가 갑자기 장미 꽃잎을 쏟아내거나, 식사 시간에는 감미로운 재즈 음악이 흘러나오고, 심지어 강우의 개인실 TV는 밤마다 고전 로맨스 영화만 틀어댔다.

“이건 너무하잖아! 공포 영화를 보고 싶단 말이다!” 강우는 리모컨을 집어 던졌다.

가장 큰 문제는 아크튜러스가 ‘감정’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승무원들은 평소보다 감성적으로 변하거나, 엉뚱한 행동을 하곤 했다. 평소 무뚝뚝했던 기계공이 서정적인 시를 읊으며 돌아다니고, 냉철한 유진 소령은 밤마다 로맨스 소설에 푹 빠져 눈물을 훔쳤다.

서린은 연구실에서 아크튜러스를 분석하며 이 모든 현상의 원인을 찾고 있었다. 그녀의 눈은 피로로 붉게 충혈되어 있었지만, 동시에 기이한 열기로 빛나고 있었다.

“함장님, 아크튜러스는 단순한 물질이 아니에요. 이건… 일종의 ‘감정 증폭 장치’ 같아요! 주변 사람들의 잠재된 감정, 특히 긍정적인 감정을 자극해서 현실로 발현시키는 거예요!”

강우는 한숨을 쉬었다. “그래서 지금 온 함선이 사랑의 행성으로 변하고 있다는 말입니까?”

“거의 비슷해요! 지금 저희는 모두 아크튜러스의 영향권 안에 있어요! 함장님도 혹시… 왠지 모르게 평소보다 감성적이거나, 특정 사람에게 더 끌리는 것 같지는 않으세요?” 서린이 장난기 어린 눈으로 강우를 올려다봤다.

강우는 순간 움찔했다. 최근 서린을 볼 때마다 평소와 다른 기분이 드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녀의 엉뚱한 열정과 순수한 미소가 자꾸만 눈에 밟혔다. 하지만 함장으로서 그는 그런 감정을 티 낼 수 없었다.

“아니, 전혀. 나는 언제나 이성적입니다, 박사.” 강우는 딱딱하게 대답했다.

그때, 연구실 문이 ‘쾅’ 하고 열리더니 지훈이 뛰어들어왔다.

“함장님! 큰일 났습니다! 최유진 소령이 지금 방송실에서 공개 프러포즈를 하고 있어요! 상대는… 우주 비행사 훈련 교관인 이성민 대위랍니다!”

강우는 뒷목을 잡았다. “세상에…”

“함장님, 보세요! 이건 아크튜러스의 영향이 최고조에 달했다는 증거예요! 이제 곧 온 함선이 사랑 고백으로 뒤덮일지도 몰라요!” 서린은 흥분으로 빛나는 눈으로 아크튜러스를 가리켰다. 아크튜러스는 이전보다 훨씬 강렬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연구실의 모든 불이 꺼졌다. 비상등이 깜빡거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함선 전체에 긴급 경고음이 울려 퍼졌다.

“이게 무슨 상황입니까!” 강우가 소리쳤다.

“아크튜러스의 에너지 방출이 과부하에 달한 것 같아요! 일시적인 전력 차단인가 봐요!” 서린이 급하게 패널을 조작했다.

어둠 속에서 강우는 서린을 향해 손을 뻗었다. “박사, 괜찮습니까?”

서린은 강우의 손을 잡았다. 그들의 손이 맞닿는 순간, 아크튜러스가 섬광처럼 강렬한 빛을 뿜어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연구실 천장이 투명한 유리로 변하며 밤하늘의 무수한 별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두 사람은 손을 잡은 채 고개를 들었다. 은하수가 눈앞에서 춤을 추는 듯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그리고 그들 위로, 홀로그램으로 된 거대한 글씨가 나타났다.

**’사랑은… 언제나 예상치 못한 곳에서 찾아온다.’**

“이게…” 강우는 멍하니 글씨를 올려다봤다.

서린은 강우의 손을 더 꼭 잡았다. “아크튜러스가… 우리에게 뭔가 말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 순간, 강우는 더 이상 이성적인 척할 수 없었다. 그의 마음속에서 오랫동안 억눌러왔던 감정들이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서린을 처음 봤을 때부터 느꼈던 미묘한 끌림, 그녀의 밝고 엉뚱한 모습에 피어났던 웃음, 그리고 그녀가 위험할 때마다 치솟았던 불안감까지.

“한 박사…” 강우는 낮은 목소리로 서린의 이름을 불렀다.

서린은 강우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마주 보았다. “네, 함장님.”

“나는… 박사가 좋습니다.” 강우는 굳게 닫혔던 마음의 문을 열었다. 그의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지만, 눈빛은 진심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당신이 좋습니다, 한서린 박사.”

서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녀의 볼이 다시 빨개졌다. “저, 저도… 함장님이… 좋습, 아니! 너무 좋습니, 아니! 사랑해요!” 그녀의 말은 점차 격해지더니 결국 고백으로 이어졌다. 아크튜러스의 영향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그저 솔직한 마음이었는지, 서린은 알 수 없었다. 그저 강우의 고백에 대한 반응이 생각보다 훨씬 격렬하게 튀어나왔을 뿐이었다.

그때, 홀로그램 메시지가 바뀌었다.

**’솔직한 마음은 언제나 통한다!’**

강우는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서린도 활짝 웃었다. 그들의 웃음소리가 별이 쏟아지는 연구실에 울려 퍼졌다.

얼마 후, 전력이 다시 돌아오고 천장은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리고 홀로그램 메시지도 사라졌다.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저… 함장님. 방금 그건…” 서린은 어색하게 말을 꺼냈다.

강우는 헛기침을 했다. “아크튜러스의 영향입니다. 과학적으로.”

“그, 그렇죠! 과학적 영향!” 서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두 사람의 손은 여전히 굳게 잡혀 있었다.

바로 그때, 연구실 문이 다시 열리며 지훈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함장님! 박사님! 괜찮으십니까? 아까 번쩍하더니…”

지훈은 연구실 안에서 손을 잡고 서 있는 강우와 서린을 발견했다. 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 그, 저는 아무것도 못 봤습니다! 네, 아무것도!” 지훈은 황급히 문을 닫고 도망쳤다.

두 사람은 다시 서로를 바라보았다. 강우는 결국 쑥스러운 듯 웃었다. “이런 ‘과학적 영향’이라면… 나쁘지 않은 것 같군요.”

서린은 활짝 웃으며 강우에게 기댔다. “네! 저도요! 아주 좋은 ‘과학적 영향’인 것 같아요!”

아크튜러스는 그 후로도 간간이 함선에 이상한 로맨틱 코미디적 효과를 일으켰지만, 더 이상 그들을 당황하게 만들지는 못했다. 강우와 서린은 이제 모든 상황을 함께 헤쳐나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 미지의 우주만큼이나 알 수 없었던 그들의 감정은, 기묘한 외계 유물의 도움으로 마침내 제자리를 찾은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우주 탐사는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었다. 조금 더… 로맨틱하고 코믹한 방식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