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은 낡은 저택의 흉터였다. 억겁의 세월이 켜켜이 쌓인 먼지 냄새와, 곰팡이, 그리고 무언가 알 수 없는 불쾌한 기운이 뒤섞여 마치 살아있는 듯 코를 찔렀다. 오늘 밤, 이 저택은 새로운 흉터를 얻게 되었다. 밀실 살인. 그것도 상식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방식으로.
김현우는 익숙한 체념과 함께 삐걱거리는 계단을 올랐다. 그의 발걸음은 깃털처럼 가벼웠지만, 그의 그림자는 벽에 길게 늘어져 마치 무거운 족쇄처럼 보였다. 현우는 탐정이었다. 타고난 통찰력과 날카로운 직관으로 수많은 미궁을 헤쳐왔지만, 때로는 그 재능이 저주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특히 오늘 밤처럼, 이성의 한계를 넘어서는 사건에 마주했을 때는 더욱 그러했다.
“여기입니다, 김 탐정님.”
현우를 안내한 이는 강 형사였다. 그의 얼굴에는 피로와 함께 짙은 당혹감이 드리워져 있었다. 강 형사는 현우가 오기 전까지 현장을 지휘했던 인물이었다. 그는 철저하고 합리적인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그 단단하던 이성이 흔들리고 있는 듯했다.
“피해자는 박정민 교수입니다. 고고학 분야에서 상당히 저명한 분이셨죠. 얼마 전 학계에서 은퇴하고는 이곳에서 은둔 생활을 해왔습니다.”
“밀실입니까?” 현우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다. 그의 시선은 이미 복도 끝에 위치한 서재의 문에 고정되어 있었다. 육중하고 오래된 오크나무 문. 굳게 닫혀 있었다.
“네. 완벽한 밀실입니다.” 강 형사는 한숨을 내쉬었다. “방 안에서는 빗장이 걸려 있었고, 창문들은 모두 밖에서 못질이 되어 있습니다. 문을 부수고 들어간 순간까지도 빗장은 안에서 걸려 있었고요. 외부 침입 흔적은 전혀 없습니다.”
서재 문이 열렸다. 눅눅한 공기와 함께 쿰쿰한 종이 냄새, 그리고 역한 피 냄새가 현우의 후각을 강렬하게 자극했다. 방 안은 발 디딜 틈 없이 책으로 가득했다. 고대 문헌, 기괴한 상형문자가 그려진 양피지, 알 수 없는 언어로 쓰인 두꺼운 장정의 서적들. 박 교수가 어떤 연구에 몰두하고 있었는지 짐작하게 했다.
그리고 방 한가운데, 낡은 마호가니 책상 앞에 쓰러져 있는 박 교수의 시신이 있었다. 현우의 눈이 가늘어졌다. 박 교수는 경련이라도 일으킨 듯 몸이 심하게 비틀려 있었고, 입은 형언할 수 없는 비명이라도 지른 듯 크게 벌어져 있었다. 눈은 사악한 환상이라도 본 것처럼 튀어나와 있었고, 그 속에는 심연의 공포가 가득했다. 죽은 자의 눈은 어떤 때보다 생생하게 그 순간의 절규를 담고 있었다.
현우는 시신에 다가갔다. 박 교수의 심장이 있어야 할 가슴팍에는 거대한 구멍이 뚫려 있었다. 마치 무언가에 의해 안에서부터 찢겨 나간 듯, 살점은 너덜거렸고 뼈 조각들이 끔찍하게 튀어나와 있었다. 그 어떤 날카로운 무기로도 만들 수 없는, 이형적인 상처였다.
“흉기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애초에 이걸 흉기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요.” 강 형사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과학수사대에서는… 짐작조차 못 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처는 본 적이 없다고…”
현우는 시신을 둘러보았다. 책상 위에는 잉크병과 깃펜, 그리고 펼쳐진 채 핏자국이 묻어 있는 오래된 양피지가 놓여 있었다. 양피지에는 복잡하고 섬뜩한 문양이 정교하게 그려져 있었고, 그 가운데에는 낯선 상형문자가 무수히 적혀 있었다. 그것들은 단순한 글자가 아니었다. 시선을 붙잡고, 정신을 흐리게 만드는, 살아있는 듯한 형태들이었다.
현우는 천천히 방을 둘러보았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밀봉되어 있었다. 문, 창문, 심지어 굴뚝까지 쇠창살로 막혀 있었다. 먼지 하나 앉지 않은 창틀, 어긋남 없는 책꽂이. 완벽한 밀실. 하지만 그 완벽함 속에, 이성은 납득할 수 없는 끔찍한 죽음이 있었다.
그의 눈은 바닥으로 향했다. 박 교수의 시신 주변, 마루바닥에 희미한 자국이 보였다. 얼핏 보면 평범한 먼지처럼 보였지만, 자세히 보면 미세한 회색빛 가루들이 독특한 형태로 뭉쳐 있었다. 그것은 마치… 파동이 휩쓸고 지나간 흔적 같았다. 혹은 공간 자체가 잠시 휘어졌다가 돌아온 후 남은 잔상처럼.
현우는 주머니에서 작은 돋보기를 꺼내 가루를 살폈다. 미세한 입자들이 육안으로는 파악하기 힘든 기이한 패턴을 이루고 있었다. 현우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이 가루… 그는 과거 비슷한 것을 본 적이 있었다. 아주 오래전, 젊은 시절의 한밤중, 우연히 마주친 끔찍한 사건 현장에서. 그때의 그는 그저 “이상한 먼지”라고 치부했지만, 지금은 달랐다.
“강 형사님.” 현우가 입을 열었다. “박 교수님이 최근에 특별히 몰두했던 연구나, 이상 행동 같은 것은 없었습니까?”
강 형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족들 말로는, 최근 한 달간 잠을 거의 자지 않고 이 서재에만 틀어박혀 있었다고 합니다. 밤마다 알 수 없는 소리를 지르거나, 헛것을 보는 듯한 이상 행동도 보였다고요. 무엇보다, 항상 ‘그들이 온다’, ‘문이 열린다’ 같은 말을 중얼거렸다고 합니다.”
“그들이요?”
“네. 그리고 이상하게도, 사망 전날에는 가족들에게 ‘더 이상 연구를 계속할 수 없다, 나는 돌아가야 한다’는 말을 남겼답니다. 그리고 밤새 이 서재에서 무언가를 ‘막으려’ 했던 것 같다고…”
현우는 펼쳐진 양피지를 다시 보았다. 그리고 그 옆에 놓인 작은 은제 장식품. 오각형 별 모양의 기묘한 물건이었다. 그것은 고대의 주술 도구처럼 보였다.
“교수님은… 이 밀실을 스스로 만들었군요.” 현우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강 형사가 의아한 듯 되물었다. “밀실을 만들었다고요? 자살이라도 말씀이십니까? 하지만 가슴의 상처는… 자살과는 거리가 멀지 않습니까?”
“자살이 아닙니다. 이 방은 바깥의 침입을 막기 위한 밀실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안에서 무언가가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겠죠.” 현우는 바닥의 희미한 가루 자국을 다시 한번 쳐다보았다. “혹은… 안으로 무언가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한 시도였지만, 그것이 실패한 겁니다.”
그의 눈은 다시 박 교수의 시신으로 돌아갔다. 공포에 질린 눈빛, 기괴하게 찢겨 나간 가슴. 이것은 물리적인 살인이 아니었다. 이것은… 접촉이었다.
“박 교수님은 오랫동안 이형의 존재를 연구해왔습니다. 아마도 그는 금지된 지식을 파고들었고, 마침내 ‘문’을 여는 방법을 알아낸 것이겠죠.” 현우의 목소리에 차가운 확신이 실렸다. “아니, 어쩌면 그 문은 이미 열려 있었고, 박 교수님은 그것을 닫으려 했던 것일 수도 있습니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이 서재를 완벽히 밀봉하고, 주술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외부의 간섭을 막으려 했겠죠.”
“무슨 말씀이십니까? 문이라니요?” 강 형사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바닥의 자국들을 보십시오. 이들은 미세한 차원의 균열, 혹은 공간의 일그러짐이 발생했을 때 남는 잔상입니다. 박 교수님은 이 서재에서 무언가를 소환했거나, 혹은 무언가에 의해 소환당했습니다.” 현우는 양피지의 상형문자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것들은 단순한 주문이 아닙니다. 차원의 문을 열고 닫는… 일종의 방정식입니다. 박 교수님은 이 방에서 이형의 존재와 직접적인 접촉을 시도했고, 그것이 실패한 겁니다. 아니, 어쩌면 성공했지만 그 대가를 치른 것일 수도 있겠군요.”
“그럼 밀실은…?”
“밀실은 트릭이 아니었습니다. 밀실은 박 교수님이 마지막으로 시도한 방어였습니다. 외부의 침입을 막는 것이 아니라, 이 방 안에서 일어난 일을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막으려 했던 것이죠. 혹은… 그 존재가 밖으로 나가는 것을 막으려 한 겁니다.” 현우는 시선을 들어 서재의 높은 천장을 응시했다. “그의 죽음은… 물리적인 공격이 아닙니다. 그의 심장은 육체적인 힘으로 찢긴 것이 아닙니다. 이형의 존재가 그의 정신을 찢어 발기고, 그 압도적인 공포와 비물질적인 힘이 물리적인 육체에 투사되어 나타난 흔적입니다. 그의 정신이 산산조각 나면서, 육체 역시 감당할 수 없는 충격을 받은 겁니다.”
강 형사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렸다. 그는 현우의 말을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 없었지만, 이성이 이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있었다.
“김 탐정님… 농담이 심하시군요.”
“농담이 아닙니다, 강 형사님. 세상에는 인간의 이성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박 교수님은 그것을 건드렸고, 대가를 치른 겁니다.” 현우는 은제 장식품을 집어 들었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과 함께, 기묘한 에너지가 그의 손끝으로 스며드는 듯했다. “이 오각형 별은… 이형의 존재를 억제하거나, 혹은 특정 차원의 에너지를 조절하는 데 사용되는 주술적인 도구입니다. 박 교수님은 이것을 사용해 무언가를 시도했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럼 범인은… 대체 누구란 말입니까?” 강 형사의 목소리는 거의 울먹임에 가까웠다.
현우는 창문 밖, 저택을 둘러싼 깊은 어둠을 응시했다. 숲 너머,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그곳에서 자신들을 지켜보고 있는 듯한 소름 끼치는 느낌이 들었다.
“범인? 범인은…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박 교수님은 문을 열었고, 그 문 너머의 존재가 교수님의 정신을 갉아먹은 겁니다. 그의 마지막 행동은 그 문을 닫으려 한 필사적인 시도였을 겁니다. 이 밀실은… 그의 피로 쓰인 마지막 경고장이었던 셈입니다.”
현우는 서재를 나섰다. 그의 등 뒤로 육중한 문이 다시 닫혔다. 완벽한 밀실. 완벽한 죽음.
밤은 깊어지고, 저택의 어둠은 더욱 짙어졌다. 현우의 머릿속에는 박 교수의 공포에 질린 눈빛과 바닥에 남은 기이한 가루 자국, 그리고 양피지의 섬뜩한 상형문자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는 밀실의 트릭을 풀었지만, 동시에 인간의 이성이 감당할 수 없는 공포의 문을 조금이나마 엿본 셈이었다. 세상은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넓고, 훨씬 더 위험한 것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그 중 일부는, 평범한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현우는 탐정이었지만, 이제 그에게는 새로운 이름이 하나 더 추가되었다. 목격자. 그리고 그 목격은, 그의 남은 생을 영원히 괴롭힐 흉터로 남을 것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