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1: 숲의 그림자 속에서**
[장면 시작]
**#1. 폐허의 경계, 노을 지는 시간**
무너진 도시의 실루엣이 붉게 물든 서쪽 하늘을 가르고 있었다. 앙상한 철골 구조물들이 거대한 유령처럼 솟아 있고, 그 아래로는 끝없이 펼쳐진 폐허가 희뿌연 먼지를 머금은 채 침묵하고 있었다. 차가운 바람이 불어와 녹슨 금속 구조물 사이를 훑고 지나가며 음산한 소리를 만들어냈다.
세라는 낡았지만 튼튼한 가죽 재킷을 바짝 여미며 걷고 있었다. 닳아 해진 부츠는 흙먼지로 뒤덮였고, 등에는 내용물이 가득 찬 배낭이 묵직하게 매달려 있었다. 허리춤에는 녹슨 단검과 짧은 석궁이 흔들거렸다. 헝클어진 갈색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렸지만, 그녀의 눈빛만큼은 날카로운 짐승처럼 주변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수풀이 우거진 도로변에서 멈춰 선 세라의 시선은 한때 주유소였을 법한 건물 잔해에 고정되었다. 찌그러진 간판에는 희미하게 ‘에너지’라는 글자가 남아 있었다. 이곳에서 연료 찌꺼기라도 찾을 수 있다면, 며칠은 더 버틸 수 있을 터였다.
**세라 (독백):** (낮게 읊조리듯) 벌써 나흘째. 물도, 식량도 바닥이야. 오늘 안에 뭘 찾아야 해…
경계심 가득한 발걸음으로 건물 안으로 들어선 세라는 코를 찌르는 역한 부패 냄새에 미간을 찌푸렸다. 거미줄과 곰팡이가 뒤덮인 벽을 따라 좁은 통로를 지나자, 바닥에 뒹굴고 있는 녹슨 드럼통 몇 개가 눈에 들어왔다. 희망을 품고 한 드럼통을 조심스럽게 기울이자, 꿀렁이는 소리와 함께 끈적한 검은 액체가 흘러나왔다.
**세라:** (작게 안도의 한숨) …다행이야. 이걸로 며칠은…
그 순간, 세라의 등골을 차가운 전율이 훑고 지나갔다. 찢어진 천막 사이로 불어온 바람이 드럼통 하나를 넘어뜨렸고, 그 소리가 텅 빈 공간에 크게 울려 퍼졌다. 정적이 찾아왔다. 너무나 완벽한, 그래서 더욱 불길한 정적.
세라의 손이 반사적으로 허리춤의 단검으로 향했다. 그녀의 심장이 불안하게 쿵쾅거렸다.
어둠 속에서, 희미한 그림자가 드리웠다.
**세라:** (나지막이, 경고하듯) 누구야? 나와.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느낄 수 있었다. 자신 외의 다른 ‘무언가’가 이 공간에 존재한다는 것을. 쇠 긁는 듯한 날카로운 소리가 어둠 속에서 울렸다. 그림자는 점차 커지고, 이내 붉은 두 개의 눈이 섬뜩하게 빛을 발했다.
그것은 그림자 사냥개였다. 늑대보다 훨씬 거대하고 사나운, 변이된 짐승. 뼈가 튀어나온 앞다리, 길고 날카로운 이빨, 뻣뻣한 검은 털로 뒤덮인 몸은 흉측하기 그지없었다. 녀석의 코에서는 거친 숨소리가 뿜어져 나왔다.
**세라:** (이를 악물고) 젠장… 하필 이 타이밍에.
그림자 사냥개가 으르렁거리며 세라를 향해 돌진했다. 세라는 재빨리 몸을 옆으로 틀었고, 녀석의 발톱이 긁고 지나간 자리에 콘크리트 가루가 흩날렸다. 그녀는 망설임 없이 단검을 휘둘렀지만, 녀석의 두꺼운 가죽에는 흠집조차 나지 않았다.
**세라:** (거친 숨을 몰아쉬며) 빌어먹을 괴물…
사냥개가 다시 한번 덤벼들었다. 이번에는 세라의 왼쪽 어깨를 스치고 지나가며 재킷을 찢었다. 날카로운 발톱이 피부를 깊숙이 할퀴고 지나가는 고통에 세라는 이를 악물었다. 피가 찢어진 옷 사이로 스며 나왔다. 그녀는 뒤로 물러섰지만, 퇴로는 이미 막혀 있었다.
궁지에 몰린 세라의 눈에 절박함이 스쳤다. 그녀는 석궁을 겨누려 했지만, 사냥개는 그 틈을 주지 않았다. 거대한 몸으로 그녀를 덮치려는 순간,
**콰앙-!**
갑작스러운 폭발음과 함께 사냥개의 몸이 옆으로 튕겨 나갔다. 세라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곳을 바라봤다. 사냥개의 머리 옆구리에 깊은 상처가 났고, 녀석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뒹굴었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2. 숲의 주인**
세라는 숨을 멈췄다. 그녀의 눈앞에 서 있는 것은 그림자 사냥개보다 훨씬 크고 위압적인 존재였다. 인간과 흡사한 형태였지만, 온몸에는 짙은 회색의 비늘 같은 피부가 덮여 있었고, 뾰족하게 솟아난 귀와 날카로운 발톱이 노출되어 있었다. 무엇보다도, 등 뒤로는 마치 맹수의 척추처럼 굵은 뼈대가 솟아 있었다. 그의 눈은 깊은 어둠 속에서도 형형하게 빛났다.
그는 인간이 아니었다. 소문으로만 듣던, 숲 깊은 곳에 산다는 ‘그림자 부족’의 일원. 혹은 인간들이 ‘괴물’이라 부르는 존재였다. 세라는 자신을 구원한 존재 앞에서 본능적인 공포에 사로잡혔다. 인간을 무자비하게 사냥하고 잡아먹는다는 흉악한 소문의 주인공.
하지만 그 존재는 그녀를 돌아보지 않았다. 대신, 고통에 몸부림치는 그림자 사냥개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그의 움직임은 조용했지만, 어마어마한 힘이 느껴졌다. 한 손을 들어 사냥개의 머리통을 잡고, 망설임 없이 **척-!** 꺾어버렸다. 녀석의 몸이 축 늘어졌다.
그리고 그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세라를 바라봤다. 깊은 어둠 같은 눈동자는 아무런 감정도 담겨 있지 않은 듯했다. 세라는 뒷걸음질 쳤다. 숨을 쉬는 것조차 잊어버린 채였다.
그 존재는 움직이지 않았다. 다만 세라를 빤히 바라볼 뿐이었다. 그의 시선에서 위협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알 수 없는 압도감이 세라를 짓눌렀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정적을 깬 것은 세라의 어깨에서 흘러내리는 피였다. 찢어진 재킷 아래로 붉은 피가 스며 나와 바닥에 작은 웅덩이를 만들고 있었다. 그 존재의 시선이 그녀의 어깨로 향했다.
그는 망설이는 듯하더니, 이내 세라에게로 한 걸음 다가왔다. 세라는 반사적으로 단검을 치켜들었다.
**세라:** (목소리가 떨린다) 오지 마…
그 존재는 멈춰 섰다. 그리고 그의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그는 천천히 한 손을 들어 올렸다. 그의 손바닥에는 상처를 치유하는 데 쓰이는 약초 같은 것이 들려 있었다. 연녹색 잎사귀에는 은은한 빛이 감돌고 있었다.
세라는 혼란스러웠다. 자신을 구해준 것도 모자라, 치료까지 해주려는 건가? 숲의 괴물이라 불리는 존재가?
**그 존재 (낮고 거친 목소리):** …다친…다.
서툰 인간의 언어였다. 마치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 굳어버린 혀로 겨우 내뱉는 듯한 발음. 세라는 눈을 크게 떴다. 그가 말을 한다는 것 자체도 놀라운데, 그 내용이 자신을 염려하는 말이라니.
세라는 단검을 내리지 못했다. 하지만 공포와 동시에 알 수 없는 감정이 밀려들었다. 호기심, 그리고 혼란.
그 존재는 조용히 약초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다시 뒷걸음질 쳤다. 마치 세라가 불편해하는 것을 알아차린 것처럼.
**세라:** (자신도 모르게) …이름이… 뭐야?
그 존재는 잠시 멈칫했다. 그리고 다시 그녀를 돌아봤다. 그의 눈동자에 아주 희미하게, 감정의 물결이 스치는 듯했다.
**그 존재:** …카이.
낮고 굵은 목소리. ‘카이’라는 이름은 숲의 바람처럼, 혹은 잊혀진 돌멩이처럼 낯설게 다가왔다.
**세라:** (작게 중얼거린다) 카이…
카이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천천히 몸을 돌려 어둠 속으로 사라지려 했다.
**세라:** (급히) 잠깐만! 왜… 왜 날 도와줬어?
카이는 다시 멈춰 섰다. 그리고는 어깨 너머로 세라를 돌아봤다. 그의 눈이 잠시 흔들리는 듯했다.
**카이:** (낮게, 하지만 또렷하게) …너는… 다르다.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다르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다른 인간들과 다르다는 건가? 아니면 자신과 다르다는 건가?
카이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어둠 속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세라는 홀로 남겨졌다. 깨진 콘크리트 바닥에 굴러떨어진 드럼통들과, 그림자 사냥개의 축 늘어진 시체, 그리고 카이가 남긴 약초만이 그곳에 있었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어깨의 상처를 눌렀다. 고통보다 더 강렬한 것은, 낯선 존재에 대한 복잡한 감정이었다.
그녀는 ‘괴물’이라 불리던 존재에게 목숨을 빚졌다. 그리고 그 존재는 그녀에게 ‘다르다’고 말했다.
세라는 천천히 바닥에 놓인 약초를 집어 들었다. 아직 온기가 남아 있었다. 그녀는 혼란스러운 눈으로 카이가 사라진 어둠을 응시했다.
숲의 그림자 속에서, 금지된 연결의 씨앗이 아주 작게 싹트기 시작했다.
[장면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