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2화: 검은 심장
별무리호의 함교는 팽팽한 긴장감으로 가득했다. 무수한 별들이 박힌 검은 벨벳 같은 심우주 한가운데, 거대한 주화처럼 떠 있는 미지의 물체가 메인 스크린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크기는 대략 소행성급. 그러나 형태는 자연물이 아니었다. 완벽한 구형에 가까우면서도, 매끄러운 표면에는 불규칙하면서도 기하학적인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함장님, 목표까지 거리 500킬로미터. 더 이상 접근은 위험합니다.”
강민준 조종사의 목소리가 조심스럽게 울렸다. 그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캡틴 김정훈은 턱을 문질렀다. 거대한 암석 덩어리라면 벌써 탐사선이 달라붙었을 터. 하지만 저것은 달랐다. 모든 센서가 먹통이 되는 기이한 현상 때문에, 별무리호는 조심스러운 접근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이지아 과학 장교, 스캔 결과는 여전히 제로인가?” 김정훈이 물었다.
이지아 장교는 안경을 고쳐 쓰며 고개를 저었다.
“예, 함장님. 모든 대역의 스캐너가 침묵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전자기파는 물론, 중력파, 타키온 입자까지…. 어떤 에너지 시그널도 감지되지 않습니다.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요.”
“존재하지 않는데 눈앞에 있다는 건가?” 박선우 전술 장교가 팔짱을 끼고 중얼거렸다. 그의 얼굴에는 짜증과 흥분이 뒤섞여 있었다. 그는 언제나 미지의 것에 가장 먼저 달려들고 싶어 했다.
“정확히는, 존재하나 우리의 인식 범위 밖에 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겁니다.” 이지아의 목소리에는 학자 특유의 오만함과 동시에 경외감이 묻어났다. “어쩌면 다른 차원에 걸쳐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완전히 새로운 물질로 구성되어 있거나요.”
그때, 한유진 엔지니어가 조용히 모니터를 응시하다 입을 열었다.
“함장님, 혹시… 저 물체가 블랙홀과 같은 중력 이상을 일으키고 있지는 않은지 확인해봐야 합니다. 주변 시공간의 왜곡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이지아, 중력 센서 최대치로 올려서 재스캔 해.” 김정훈의 지시에 이지아가 분주하게 콘솔을 조작했다. 몇 초간의 정적 끝에, 이지아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이상합니다, 함장님. 별무리호 자체의 중력장이 약간 교란되고 있습니다. 아주 미세하지만… 물체에서 멀어질수록 정상으로 돌아오는 걸로 봐선, 저것이 원인인 것 같습니다.”
“블랙홀은 아니라는 건가?” 박선우가 물었다.
“블랙홀이라면 훨씬 더 강한 중력 이상과 함께 강착 원반 같은 현상이 나타났을 겁니다. 이건… 마치 저 물체 자체의 중력이 일정하지 않거나, 혹은 중력을 조작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이지아의 설명에 김정훈의 표정이 더욱 굳어졌다.
“자료화면 올려봐.”
메인 스크린에 미지의 물체의 근접 이미지가 확대되었다. 검은색이지만 빛을 반사하지 않는 흡수체. 표면은 얼핏 보면 매끄러웠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니 미세한 균열이나 이음매 같은 것이 보였다. 마치 거대한 퍼즐 조각들이 모여 하나의 구체를 이룬 듯했다. 가장 의아한 것은, 어떤 동력원도, 입구도, 심지어 외부의 충격을 흡수할 만한 완충 장치조차 감지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완벽한 침묵.
“저 안에… 뭔가 있을까요?” 강민준이 중얼거렸다.
김정훈은 한숨을 쉬었다. 이 심우주에, 인류의 손길이 닿지 않은 이 끝없는 공백 속에 이런 것이 존재한다는 것은, 축복이자 동시에 저주였다. 인류의 상식을 뛰어넘는 존재.
“박선우 전술 장교, 한유진 엔지니어. 발키리 엠팩트 슈트 두 대 준비해. 근접 탐사팀을 편성한다.”
박선우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알겠습니다, 함장님! 제가 선두에 서겠습니다.”
“이지아 과학 장교는 브리핑룸에서 근접 탐사팀에게 지금까지의 모든 데이터를 공유하고, 주의사항을 전달해. 강민준 조종사는 별무리호의 현 위치를 고정하고, 어떤 비상 상황에서도 즉각적인 회피 기동을 할 수 있도록 대비해.”
“네, 함장님!”
“알겠습니다, 함장님!”
함교의 모든 대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하지만 그들의 움직임 속에는 알 수 없는 긴장과 기대, 그리고 두려움이 뒤섞여 있었다. 미지의 물체가 가져올 것이 무엇일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인류의 운명을 바꿀 발견일지, 아니면 파멸의 서곡일지.
***
별무리호의 격납고. 굉음과 함께 거대한 로봇 슈트, ‘발키리 엠팩트’가 도킹 스테이션에서 내려왔다. 티타늄 합금과 전자기 방어막으로 무장한 육중한 기체. 조종석에 앉은 박선우의 손이 컨트롤러를 쥐었다. 옆에는 한유진 엔지니어가 자신의 슈트, ‘크로노스’에 탑승하고 있었다. 크로노스는 발키리만큼 전투용은 아니었지만, 다양한 센서와 특수 장비로 무장한 다목적 탐사 슈트였다.
“자네…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군.” 한유진이 통신으로 박선우에게 말했다.
“하, 이런 기회를 놓칠 수는 없죠. 인류 최초로 미지의 유물을 만지는 순간인데.” 박선우는 자신만만하게 대답했지만, 그의 목소리 끝에는 미세한 떨림이 묻어났다.
이지아의 목소리가 통신망을 통해 들려왔다. “두 분,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절대 직접적인 접촉은 피하십시오. 모든 탐사는 원격으로 진행하고, 어떤 이상 반응이라도 감지되면 즉시 복귀해야 합니다.”
“염려 마십시오, 과학 장교님. 전술 장교 박선우의 판단력을 믿으십시오.” 박선우가 씩 웃었다.
“흥, 자네 판단력으로 우리를 몇 번이나 위험에 빠뜨렸는지 벌써 잊었나?” 한유진이 핀잔을 주자 박선우가 으르렁거렸다.
“그건 ‘전술적 우회’라고 하는 겁니다, 엔지니어님!”
“다 됐고, 각자 슈트 시스템 최종 점검. 별무리호가 발사 준비 중이다.” 김정훈 함장의 묵직한 목소리가 그들의 시시한 언쟁을 끊었다.
슈트 내부의 계기판들이 일제히 초록불을 밝혔다. 모든 시스템 정상.
“발키리 엠팩트 1호, 크로노스 2호, 출격 준비 완료.” 박선우와 한유진이 보고했다.
“좋아. 발사!”
쉬이이잉-! 격납고의 거대한 문이 열리고, 두 대의 슈트가 푸른 엔진 광선을 뿜으며 어둠 속으로 미끄러져 나갔다. 별무리호는 마치 거대한 어미가 새끼를 내보내는 듯, 서서히 멀어졌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암흑 속에서 오직 실루엣만을 드러내고 있는 검은 구체. 인류가 한 번도 마주한 적 없는, 태곳적부터 이 심우주에 존재했을지도 모를 유물이었다.
“목표까지 10킬로미터. 조심스럽게 접근한다.” 박선우가 지시했다. 그의 시야에 검은 구체의 표면이 더욱 선명하게 다가왔다. 미세한 무늬들은 이제 복잡한 기하학적 패턴으로 보였다. 마치 어떤 언어 같기도 했다.
“표면에 어떤 구조물도 보이지 않습니다. 일체의 돌출부도 없고요. 이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게 확실합니다.” 한유진이 보고했다.
“표면 스캔 시작. 혹시 출입구가 될 만한 지점이 있는지 확인해봐.”
크로노스 슈트의 센서들이 물체 표면을 훑기 시작했다. 주사되는 레이저 광선들이 검은 표면에 닿는 순간, 빛은 흡수되어 사라졌다. 어떤 반사도 없었다. 마치 빛을 삼켜버리는 듯한 표면이었다.
“스캔 불가능합니다. 모든 센서가 먹통이 됩니다! 빛 에너지를 전부 흡수하는 것 같습니다!” 한유진의 목소리가 다급해졌다.
“젠장, 함장님! 스캔 불가입니다!” 박선우가 별무리호로 보고했다.
“물체와 직접적인 접촉은 아직 하지 마. 일단 주변을 한 바퀴 선회하면서 육안으로 확인해봐.” 김정훈 함장의 지시가 내려왔다.
두 슈트는 조심스럽게 거대 구체의 주변을 돌기 시작했다. 이윽고, 정면에서 보이지 않던 곳에 다다랐을 때, 박선우의 눈에 무언가가 포착되었다.
“함장님! 뭔가 보입니다!”
메인 스크린에 박선우의 시야가 확대되어 나타났다. 검은 구체의 표면 한가운데, 다른 부분보다 조금 더 어둡고 깊어 보이는 지점이 있었다. 마치… 거대한 틈새 같았다.
“이곳만 스캔이 미약하게나마 통과합니다. 아주 얕은 깊이지만… 마치 문처럼 보입니다.” 한유진의 보고였다.
“문이라고? 진짜 입구가 있다는 건가?” 김정훈의 목소리에 흥분과 경계심이 동시에 묻어났다.
“박선우, 한유진. 그 지점에 근접해. 하지만 접촉은 절대 금지.”
두 슈트가 ‘문’처럼 보이는 지점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어둠 속의 어둠. 주변의 별빛조차 흡수하는 듯한 그곳은, 마치 거대한 심연의 입 같았다. 박선우의 심장이 격렬하게 뛰기 시작했다.
“거리 100미터… 50미터…”
한유진이 크로노스 슈트의 매니퓰레이터 끝에 달린 초고감도 센서 프로브를 조심스럽게 내밀었다.
“20미터… 10미터…”
프로브의 끝이 문처럼 보이는 지점에 닿기 직전.
갑자기 슈트 내부에서 경보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삐이이이-!
“젠장! 무슨 일이지? 슈트 시스템 이상 없습니다!” 박선우가 외쳤다.
“주변 시공간 왜곡이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슈트 자체의 중력장이 변하고 있습니다!” 한유진의 목소리가 공포에 질려 있었다.
그 순간, 그들이 마주하고 있던 검은 ‘문’에서 미세한 떨림이 시작되었다. 떨림은 점차 강해지며, 웅웅거리는 저음의 소리를 만들어냈다. 그 소리는 통신망을 뚫고 그들의 뇌리에 직접 파고드는 듯했다.
“으악! 이게 무슨 소리야?!” 박선우가 머리를 부여잡았다. 그의 슈트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리고 이윽고, 검은 문이 – 마치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 천천히 벌어지기 시작했다.
틈새 사이로 드러난 것은 빛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우주 그 자체를 압축해놓은 듯한, 아무것도 없는 완벽한 암흑.
블랙홀보다 더 깊고, 차갑고, 모든 것을 집어삼킬 것 같은 무(無)의 공간이었다.
“함장님! 문이… 문이 열리고 있습니다!” 한유진의 비명에 가까운 목소리가 통신망을 찢었다.
그리고 그 심연 속에서, 아주 희미하게, 무언가가 *움직이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두 슈트, 즉시 후퇴! 전속력으로 별무리호로 복귀해!” 김정훈 함장의 다급한 명령이 떨어졌다.
그러나 이미 늦은 후회였다.
열린 문의 심연에서, 섬광 한 줄기가 쏘아져 나왔다.
그것은 빛이 아니라, 순수한 에너지의 흐름이었다.
너무나도 강력하여, 박선우의 발키리 슈트와 한유진의 크로노스 슈트를 마치 장난감처럼 집어삼켰다.
“으아아아아아악!!” 박선우의 통신이 끊어졌다.
“한유진! 한유진!” 이지아의 절규가 이어졌다.
별무리호 함교의 메인 스크린에 두 개의 점이 동시에 사라지는 모습이 섬뜩하게 잡혔다.
“박선우! 한유진! 응답해!” 김정훈 함장의 목소리가 절규처럼 울려 퍼졌지만, 답은 없었다.
검은 문은 다시 천천히 닫히기 시작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하지만 그곳에는 이제 두 명의 용감한 대원과 그들의 슈트가 존재하지 않았다.
남은 것은, 침묵하는 심우주와 섬뜩하게 닫히는 미지의 구체, 그리고 별무리호 함교의 공포에 질린 승무원들뿐이었다.
그들은 이제 알았다.
이것은 단순한 유물이 아니었다.
무언가 ‘살아있는’ 존재였다.
그리고 그들은, 그 심장을 건드린 것이다.
다음 화: 미지의 함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