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적인 한국인 작가로서, 차분하게 그러나 집요하게 지혁의 복수극 최신 화를 써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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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균열 (Crack)**
현우는 숨이 막혔다. 서늘한 공기가 폐부 깊숙이 스며들었다. 창문 밖으로는 밤의 장막이 깊게 드리워져 있었지만, 그의 눈앞에는 낮보다 더 선명한 지옥이 펼쳐져 있었다. 거대한 스크린에 띄워진 차트들은 그의 회사가, 그의 삶이 마치 모래성처럼 허물어지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붉은색 화살표는 가파른 경사를 그리며 수직 낙하했고, 옆에는 ‘거래 정지’라는 글자가 섬뜩하게 박혀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그의 목소리는 갈라져 나왔다. 며칠 밤낮으로 잠을 설친 탓에 눈은 충혈되어 있었고, 거울 속 자신은 마치 굶주린 짐승처럼 보였다. 수염은 덥수룩했고, 셔츠는 구겨져 있었다. 그는 한때 ‘젊은 성공의 아이콘’이라 불렸던 현우가 아니었다. 이제 그는 모든 것을 잃을 위기에 처한, 초라하고 겁에 질린 남자일 뿐이었다.
탁자 위에는 한 달 전, 의문의 택배로 도착했던 낡은 보드게임 상자가 놓여 있었다. ‘체스: 전략과 전술’. 그는 처음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누군가의 장난이겠거니 했다. 하지만 그가 겪는 모든 불행이 마치 체스 게임의 수순처럼 정확하게 들어맞으면서, 그 상자는 더 이상 단순한 장난이 아니게 되었다.
그때, 휴대폰이 진동했다. 발신자 제한. 현우는 본능적으로 손을 뻗었다가 멈칫했다. 망설임 끝에 결국 전화를 받았다. 차가운 기계음이 그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받을 줄 알았어.”
나직하고 담담한 목소리. 동시에 싸늘한 비웃음이 섞여 있었다.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지는 듯했다. 현우는 순간 숨을 멈췄다. 그의 입술은 바싹 말라붙었고, 손바닥에서는 식은땀이 흘렀다.
“지… 지혁이냐?”
억지로 짜낸 그의 목소리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떨렸다. 화면 너머의 존재는 대답 대신 나지막이 웃었다. 그 웃음은 칼날처럼 그의 심장을 꿰뚫었다.
“겨우 알아봤네, 친구. 너무 오랜만인가?”
‘친구’라는 단어가 마치 조롱처럼 들렸다. 현우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섰다.
“네가… 네가 꾸민 짓이었어? 말도 안 돼! 너는… 너는 죽었잖아!”
지혁의 웃음소리가 더 커졌다. 귓전을 때리는 그 소리는 현우의 정신을 조금씩 갉아먹는 듯했다.
“죽었다고? 그래, 현우. 너는 나를 죽였지. 너의 욕망과 배신으로, 나는 산 채로 땅에 묻혔어. 하지만 봐. 난 다시 일어섰고, 이제 네 삶을 관통하는 칼날이 되었지.”
목소리는 여전히 차분했지만, 그 속에는 심연의 증오가 담겨 있었다. 현우는 머리를 감쌌다. 온몸의 핏줄이 터질 것처럼 곤두섰다. 그는 지혁의 얼굴을 본 적이 없었지만, 마치 그의 눈동자가 자신을 꿰뚫어 보고 있는 듯한 섬뜩한 착각에 빠졌다.
“도대체… 왜…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야? 우리가 함께 쌓아 올린 회사였잖아! 네가 그렇게나 아끼던 꿈이었잖아!”
현우의 목소리는 절규에 가까웠다. 그의 시선은 자신도 모르게 탁자 위의 체스 상자로 향했다. 킹은 그대로였지만, 나이트 하나가 없어져 있었다. 비어있는 공간이 섬뜩하게 느껴졌다.
“꿈? 그래, 내 꿈이었지. 네가 한순간에 짓밟아버린 내 꿈. 난 네가 그 꿈을 얼마나 철저하게 부수고, 그 위에 너의 성을 쌓았는지 똑똑히 기억하고 있어. 어둠 속에서, 나는 네가 쌓아 올린 그 성벽에 금이 가는 소리를 하나하나 들었지.”
지혁의 목소리는 낮게 깔렸다.
“기억나? 네가 내 아이디어를 가로채고, 나를 회사에서 내쫓았던 날. 내가 죽을힘을 다해 만든 프로젝트를 네 것처럼 포장해서 발표하던 네 그 뻔뻔한 얼굴.”
현우는 말을 더듬었다. “그건… 오해야! 나는… 나는 그저…!”
“변명하지 마. 네 눈빛은 모든 것을 말해주었어. 성공을 향한 광기, 그리고 나를 향한 경멸.”
지혁은 잠시 말을 멈췄다. 그 침묵은 천둥보다 더 무서웠다.
“난 네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상상돼. 초조함, 공포, 그리고 나를 향한 분노.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야, 현우. 네 깊은 곳에는 아직도 남아있는 한 조각의 죄책감이 있을 거야. 그게 네 심장을 갉아먹는 거야.”
현우는 숨을 헐떡였다. 지혁은 그의 심리를 꿰뚫고 있었다. 최근 며칠 밤, 꿈속에서 나타나는 지혁의 모습은 그를 잠 못 이루게 했다. 그의 눈빛은 원망과 비난으로 가득했다.
“나는 네가 가진 모든 것을 하나씩 부술 거야. 네가 내게 그랬던 것처럼. 회사, 명예, 그리고… 너를 믿었던 모든 것들까지.”
“무슨 소리야? 더 이상 뭘 어쩌겠다는 거야!” 현우는 절규했다. 손이 덜덜 떨렸다.
“첫 번째 수는, 네 자만심을 꺾는 거였어. 네가 쌓아 올린 왕국을 무너뜨리는 것. 그건 내가 너에게서 빼앗긴 것과 똑같지. 시장을 교란하고, 투자자들을 돌아서게 만들고, 네 약점을 파고드는 것. 이제 다 끝났어, 현우. 네 회사는 오늘부로 숨통이 끊겼어.”
현우는 거친 숨을 내쉬며 스크린의 차트를 다시 응시했다. 붉은색 막대들이 끝없이 추락하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다. 정말로 끝이었다. 그의 제국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그건 시작일 뿐이야.”
지혁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현우는 고개를 들었다.
“다음 수는… 네가 숨기고 싶어 했던 추악한 진실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거야. 네가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이용하고, 기만하고, 짓밟아왔는지. 네가 나를 배신했을 때 썼던 그 수법들, 그대로 돌려줄게.”
현우의 눈이 크게 뜨였다. “안 돼! 그건… 그건 안 돼! 나는… 나는 끝장이야!”
“이제야 제대로 된 반응이 나오네.” 지혁은 비릿하게 웃었다.
“아직 하나 더 남았어. 네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 네가 가장 의지하는 것. 그걸 빼앗는 것. 하지만 그건 조금 더 후에 할게. 네가 절망의 끝에서 허우적거릴 때, 그때 내가 직접 찾아가서… 그 비참한 얼굴을 두 눈으로 똑똑히 봐줄 테니까.”
전화는 뚝 끊겼다. 현우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심장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에 가슴을 움켜쥐었다. 스크린의 붉은 그래프는 여전히 그의 눈앞에서 아른거렸고, 낡은 체스 상자는 마치 죽음의 그림자처럼 그의 앞에 놓여 있었다. 그는 이제 킹이 아니었다. 한낱 버려진 졸개처럼, 그는 숨통이 조여오는 공포 속에서 파들파들 떨고 있었다.
그 순간, 지혁은 자신의 아지트에서 한 손에 낡은 체스 말을 쥐고 있었다. 없어진 나이트가 그의 손에 들려 있었다. 그는 창밖의 도시 야경을 내려다보며 희미하게 웃었다. 그의 눈은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이제 시작이야, 현우. 네가 느꼈던 고통, 그보다 더한 절망을 선물해줄게.”
그리고 그의 시선은, 노트북 화면에 떠 있는 또 다른 문서 파일로 향했다. 그 파일의 제목은 섬뜩한 글씨로 박혀 있었다.
**[최종 계획: 심판 (Judg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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