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카 액션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제127화: 잿빛 도시, 붉은 복수**

잿빛 하늘 아래, 무너진 고층 빌딩의 잔해가 흉물스러운 그림자를 드리운다. 강준혁은 자신의 ‘아수라’ 조종석에 앉아 거친 숨을 내쉬었다. 폐허가 된 도시의 정적을 찢는 것은 오직 아수라의 둔탁한 발걸음 소리와, 그의 귀에 직접 울리는 심장의 격렬한 고동뿐이었다. 낡고 녹슨 강철 외피는 수많은 전투의 상흔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한때 그의 모든 것이었던 그 날렵하고 아름다운 ‘천사’ 유닛과는 비교도 안 되는 초라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 흉측한 강철 괴물이야말로, 지금 그를 살게 하는 유일한 이유였다.

“찾았다.”

낮게 읊조린 그의 목소리는 무선 통신망을 통해 공허하게 울렸다. 전방 3시 방향, 붕괴된 통신 타워의 잔해 뒤에서 희미하게 감지되는 에너지 시그널. 최재원, 그의 손에 자신의 모든 것을 앗아간 그 악마의 흔적이었다.

준혁의 손가락이 콘솔 위의 홀로그램 키패드를 춤추듯 눌렀다. 아수라의 굵고 투박한 팔뚝에서 숨겨진 개틀링 포가 기계음과 함께 미끄러져 나왔다. 오래된 기계지만, 준혁은 이 녀석의 모든 한계를 꿰뚫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자신의 육체처럼 익숙하고, 자신의 분노처럼 날카로웠다.

“네가 감히 날 피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나?”

입술 끝에 걸린 비소가 터져 나왔다. 3년 전, 그 지옥 같은 밤. 가장 믿었던 친구의 칼날이 자신의 등에 꽂혔을 때, 준혁은 모든 것을 잃었다. 명예, 미래, 그리고 심지어 그가 직접 개발한 핵심 기술까지. 폐기 직전의 고철 더미 속에서 겨우 숨을 돌린 그는, 오직 한 가지 목표만을 위해 이 빌어먹을 생을 연장했다. 최재원, 그 이름을 피로 물들일 때까지.

아수라가 거대한 그림자를 드리우며 통신 타워 뒤편으로 육중한 몸을 숨겼다. 준혁은 조심스럽게 스캐너를 켰다. 재원은 자신의 최신형 ‘헤르메스’ 유닛에 탑승해 있었다. 매끄러운 은색 합금 외피는 태양빛을 받아 번쩍였고, 유선형의 디자인은 그 자체로 속도와 파괴력을 자랑했다. 자신과는 비교도 안 되는 최신 기술의 집약체. 준혁의 심장이 다시 한번 격렬하게 뛰었다. 이번엔 분노만이 아니었다. 기대, 그리고 섬뜩한 쾌감이었다.

“거기 있었군, 쓰레기.”

준혁은 융단폭격을 퍼붓듯 개틀링 포의 방아쇠를 당겼다. 콰광! 콰콰광! 묵직한 탄환들이 잿빛 공기를 갈랐다. 통신 타워 잔해가 먼지 구름을 일으키며 폭발했다. 비명과 함께 재원의 헤르메스가 균형을 잃고 비틀거렸다. 준혁은 이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아수라의 육중한 몸이 폭발의 잔해를 뚫고 튀어나갔다.

“강준혁…! 네가 감히!”

재원의 분노에 찬 목소리가 통신망을 통해 들려왔다. 그는 예상치 못한 기습에 당황한 듯했지만, 이내 냉정을 되찾았다. 헤르메스의 어깨에 장착된 플라즈마 캐논이 섬광을 뿜으며 준혁을 향해 발사되었다.

콰아아앙!

준혁은 본능적으로 아수라를 오른쪽으로 급선회시켰다. 플라즈마 볼트가 아수라의 왼쪽 팔을 스치며 지나갔고, 낡은 장갑에 검은 그을음을 남겼다. 이어진 충격으로 아수라의 팔뚝에 장착된 개틀링 포가 잠시 오작동하며 삐걱거렸다.

“여전히 성질만 급하군, 재원.”

준혁은 비웃듯 중얼거렸다. 재원은 항상 그랬다. 탁월한 재능에도 불구하고 감정 제어가 서툴렀다. 그게 그의 약점이었고, 준혁이 노리는 지점이었다.

“네 꼴이 말이 아니군, 강준혁. 살아있을 줄이야. 아니, 살아있었다니 놀라지도 않아. 네 끈질김은 예전부터 알아줬어야 하는데 말이야.”

재원의 목소리에는 비웃음이 가득했다. 그의 헤르메스는 플라즈마 캐논을 재정비하며 능숙하게 거리를 벌렸다. 빠르고 날렵한 움직임은 아수라와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네 눈엔 내가 고철 덩어리로 보일 테지. 하지만 이 고철 덩어리가 네 숨통을 끊을 거다.”

준혁은 말을 마침과 동시에 아수라의 오른팔에 내장된 고정 칼날을 뽑아들었다. 날이 선 칼날은 빛을 받아 섬뜩하게 번뜩였다. 아수라의 육중한 몸이 예상보다 빠르게 지면을 박차고 전진했다.

재원은 당황한 듯 헤르메스를 뒤로 물렸지만, 준혁은 이미 그의 움직임을 읽고 있었다. 준혁은 미리 지형을 스캔하여 파악해둔 붕괴된 빌딩 잔해 사이로 아수라를 몰아붙였다. 좁은 공간은 헤르메스의 기동력을 제한하는 데 효과적이었다.

“하찮은 잔기술로 날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으냐!”

재원은 분노에 차서 소리쳤다. 헤르메스의 양쪽 손목에서 레이저 블레이드가 튀어나왔다. 푸른빛 칼날이 춤추듯 아수라의 칼날과 맞부딪혔다. 쨍그랑! 날카로운 금속음이 폐허에 울려 퍼졌다. 스파크가 사방으로 튀었고, 두 거대한 기체는 춤을 추듯 치열하게 격돌했다.

재원은 헤르메스의 빠른 속도를 이용해 준혁의 아수라를 교란하려 했다. 치고 빠지는 전술로 아수라의 육중한 움직임을 둔하게 만들고, 빈틈을 노려 치명타를 입히려는 전략이었다. 하지만 준혁은 이미 그의 모든 공격 패턴을 꿰뚫고 있었다. 수없이 함께 훈련했고, 수없이 함께 전장을 누볐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때는 동료였지만, 이제는 적. 그것도 가장 증오하는 적이었다.

준혁은 재원의 공격을 예측하며 아수라의 칼날로 헤르메스의 레이저 블레이드를 쳐냈다. 튕겨 나간 반동을 이용해 아수라의 왼발이 거대한 콘크리트 잔해를 걷어찼다. 퍽! 날아간 잔해가 헤르메스의 어깨를 강타했다.

“크악!”

재원의 짧은 비명이 통신으로 흘러나왔다. 헤르메스의 어깨 장갑에 금이 갔다. 준혁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아수라가 굉음을 내며 돌진했다. 그의 손에 들린 칼날은 이미 재원의 심장을 겨냥하고 있었다.

“이게 네가 날 배신한 대가다, 재원!”

준혁의 칼날이 헤르메스의 흉부를 향해 맹렬하게 꽂혔다. 재원은 필사적으로 방어막을 올렸지만, 아수라의 칼날은 방어막을 뚫고 헤르메스의 코어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혔다. 찌이이이잉! 섬광과 함께 헤르메스의 동력 코어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기체 전체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네… 네가 어떻게…! 날 이런 고철 덩어리로…!”

재원의 목소리에는 당황과 분노, 그리고 희미한 공포가 서려 있었다. 그의 헤르메스는 더 이상 날렵하게 움직일 수 없었다. 왼팔은 너덜거렸고, 동력 코어는 위태롭게 깜빡거렸다.

준혁은 아수라의 칼날을 뽑아내며 뒤로 물러섰다. 그는 재원을 즉시 죽일 생각이 없었다. 그건 너무나도 간단한 죽음이었다. 이 고통을 온전히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절망, 분노, 그리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 3년 전 자신이 느꼈던 그 감정들을 고스란히 돌려줄 차례였다.

“이건 시작일 뿐이다, 재원. 네가 나에게서 앗아간 모든 것을, 그 몇 배로 되갚아줄 때까지, 네놈은 지옥을 맛볼 거다.”

준혁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갑게 재원의 귓속을 파고들었다. 헤르메스는 동력을 잃고 털썩 주저앉았다. 재원은 겨우 통신망을 복구하며 외쳤다.

“강준혁…! 널 이대로 두지 않겠다…! 후회하게 될 거다!”

헤르메스의 잔해에서 비상 탈출 장치가 작동했다. 재원은 비상 포드를 타고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그는 굴욕감과 함께 도망쳤다.

준혁은 도망치는 재원의 잔상을 차가운 눈으로 응시했다. 아수라의 거친 숨소리가 폐허에 메아리쳤다. 그의 기체는 곳곳에 깊은 상흔을 입었지만, 그의 눈빛은 흔들림 없었다. 오히려 더욱 강렬하게 불타올랐다.

“이제 겨우 첫걸음일 뿐이다. 최재원. 네가 나에게 선물한 지옥의 끝이 무엇인지, 내가 반드시 보여주마.”

준혁은 땀으로 젖은 얼굴에 옅은 미소를 지었다. 복수의 칼날은 이제야 제대로 벼려진 참이었다. 잿빛 도시 위로 붉은 노을이 번져갔다. 그리고 그 노을 아래, 그의 아수라는 다음 사냥을 준비하고 있었다. 다음번엔, 절대로 놓치지 않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