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 전생 (Isekai)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 균열의 서막

이현우는 오늘도 어김없이 축 처진 어깨를 질질 끌며 현관 비밀번호를 눌렀다. 삐비빅, 삑- 하는 익숙한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눅진한 도시의 냄새 대신 그만의 공간에서 풍기는 퀴퀴하지만 편안한 공기가 그를 반겼다. 퇴근 후의 고단함이 비로소 제자리를 찾아가는 느낌. 현우는 신발을 대충 벗어 던지고 그대로 거실 소파에 몸을 뉘었다. 천장을 올려다보자 스탠드 조명의 빛이 희미하게 번졌다. ‘벌써 밤이네.’ 현우는 무의미한 생각을 하며 눈을 감았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마치고, 냉장고에서 남은 반찬 몇 가지와 햇반을 꺼냈다. 전자레인지에 밥을 돌리는 짧은 시간 동안, 현우는 습관적으로 휴대폰을 들여다봤다. 회사 단체 채팅방에는 여전히 업무 관련 알림이 빼곡했고, 친구들과의 개인 채팅방은 간간이 유머짤이 올라오는 정도였다. 피식 웃음을 흘리며 폰을 내려놓으려는 찰나, 주방에서 ‘쨍그랑’ 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어?”

현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았는데. 식탁 위를 보니 방금 전까지 물이 담겨 있던 유리컵이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다행히 깨지지는 않았지만, 바닥에 흥건한 물자국이 선명했다.

“내가 설마 잘못 뒀나?”

현우는 중얼거리며 컵을 주워 식탁 위에 다시 올려놓았다. 이상한 일이었지만, 피곤한 몸은 이 이상한 현상에 깊이 매달릴 여유를 주지 않았다.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밥을 먹었다. 그저 피곤해서 헛것을 봤거나, 잠시 뇌가 작동을 멈췄거나, 혹은 내가 컵을 불안정하게 두었거나. 수많은 합리적인 설명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깨어 거실로 나온 현우는 미간을 찌푸렸다. 어제 밤 분명히 식탁 중앙에 두었던 컵이 다시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이번엔 물은 없었다. 하지만 명백히 제자리가 아니었다.

“젠장, 내가 어제 술이라도 마셨나?”

전혀 기억에 없는 일이었다. 현우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밤새 문단속을 철저히 했는지 확인했다. 현관문은 굳게 잠겨 있었고, 창문도 마찬가지였다. 도둑이라면 물건을 훔쳐야지, 멀쩡한 컵을 떨어뜨려 놓을 리가 없었다.

그날 저녁 퇴근 후, 현우는 평소보다 예민한 상태였다. 불길한 예감 때문인지 자꾸만 집안 구석구석을 살폈다. 냉장고 문이 살짝 열려 있었고, 현관에 벗어 놓은 신발 한 짝이 어딘가로 밀려나 있었다. 서랍장 위에 가지런히 놓아두었던 책 한 권은 바닥에 떨어져 펼쳐져 있었다.

“뭐야, 진짜?”

현우는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이건 명백히 혼자 사는 집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었다. 누군가 침입한 흔적은 없었지만, 마치 장난이라도 치는 것처럼 물건들이 제자리를 이탈해 있었다. 그는 온 집안을 샅샅이 뒤졌다. 베란다, 화장실, 작은방까지. 아무도 없었다. 잠겨있는 문과 창문은 그대로였다.

잠시 후, 주방에서 칼을 들고 나왔다. 혹시라도 숨어있는 사람이 있을까 봐,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칼을 든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이내 한심하다는 듯 칼을 내려놓고는 거실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내가 미쳤나 봐. 요즘 스트레스가 심했나?”

아무리 생각해도 상식적인 수준에서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어쩌면 이게 다 꿈이거나, 과로로 인한 환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날 밤, 현우는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지만 쉽사리 잠들 수 없었다. 눈을 감자마자 온갖 잡생각과 함께 낮에 겪었던 기이한 현상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시계 초침 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차 소리,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삐걱’ 소리.

문이 열리는 소리 같기도 하고, 무언가가 바닥에 끌리는 소리 같기도 했다. 현우는 벌떡 일어나 거실로 향했다. 불을 켜보니 아무것도 없었다. 안심하고 다시 침실로 돌아와 문을 닫으려는 순간, 거실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리모컨이 천천히 미끄러지더니 바닥으로 떨어졌다. ‘탁!’

이번에는 확실히 보았다. 리모컨이 저절로 움직였다. 현우는 입을 틀어막고 얼어붙었다. 등골을 타고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오싹한 한기가 온몸을 감쌌다.

“누… 누구야?”

현우의 목소리는 잔뜩 겁에 질려 떨렸다. 아무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히, 어둠 속에 무언가가 존재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숨소리마저 조심스러워졌다.

그때였다. 거실 한가운데, 텔레비전 옆에 놓인 작은 화분 하나가 천천히 공중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뿌리가 흙에서 뽑히는 소리가 아주 미세하게 들렸다. 현우는 눈을 비볐다. 환각이 아니었다. 화분은 아무런 지지대도 없이 허공에 떠올라 있었다.

“흐읍… 으아아아아!”

현우는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질 쳤다. 벽에 등이 닿자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 화분은 천천히 움직이더니 거실 한가운데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퍽! 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떨어졌다. 흙과 깨진 도자기 조각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 순간, 집 안의 모든 전등이 미친 듯이 깜빡이기 시작했다. 탁, 탁, 탁! 형광등이 터질 듯이 불을 뿜고 꺼지기를 반복했다. 거실의 스탠드 조명도, 주방의 전등도, 심지어 화장실의 작은 전구까지도 난리였다.

그리고 집 안 전체가 얼어붙을 듯한 한기로 가득 찼다. 창밖에서 불어오는 바람도 없는데, 커튼이 세차게 흔들렸다. 마치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이 휘젓고 있는 것처럼. 현우는 팔로 몸을 감싸 안고 벌벌 떨었다. 공포심에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나가… 나가! 제발!”

그가 간절히 외쳤지만, 상황은 더욱 악화될 뿐이었다. 집 안의 모든 문이 쾅, 쾅, 쾅! 하고 일제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마치 무언가가 안에서 문을 부수려고 하는 것처럼. 쇠붙이가 부딪히는 소리, 나무가 찢어지는 소리가 뒤섞여 울렸다.

현우는 주저앉아 귀를 막았다. 이 집이, 이 아파트가, 자신이 알던 그곳이 아니었다. 어떤 존재가 이 공간을 장악하고, 현실을 왜곡시키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모든 소음과 혼란 속에서, 현우의 눈에 기이한 광경이 들어왔다. 거실 벽 한가운데, 마치 오래된 액자처럼 네모난 공간이 흐릿하게 일렁였다. 공기가 물결치듯 흔들리고, 그 안에서 희미한 빛이 새어 나왔다. 빛은 시시각각 색을 달리하며 불규칙하게 깜빡였다.

점점 더 뚜렷해지는 그 네모난 공간은 마치… 검은 화면에 번지는 오로라 같았다. 그리고 그 빛 너머로, 현우는 보았다.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의 밤 풍경이 아닌, 낯선 풍경을.

푸른 빛으로 가득 찬 숲, 거대한 나무들이 솟아 있고, 저 멀리 반짝이는 이름 모를 별들이 가득한 밤하늘. 이 세계의 것이 아닌, 완전히 다른 풍경이었다. 그 풍경이 자신을 향해 빨려 들어오는 것 같은 강렬한 기시감과 함께, 현우는 몸이 붕 뜨는 것을 느꼈다.

“이… 이건 대체…”

말문이 막혔다. 아파트의 사방 벽이 마치 거대한 빨대처럼 그를 안으로 끌어당기는 것 같았다. 몸이 통째로 뒤틀리는 듯한 고통과 함께, 네모난 공간의 빛이 점점 더 강렬해졌다. 그리고 그 빛 속으로, 현우는 완전히 빨려 들어갔다.

마지막으로 본 것은, 자신이 서 있던 거실 바닥이 뱀처럼 비틀거리며 왜곡되는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