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연의 경계, 첫 번째 탐사
황량한 붉은 흙먼지가 시야를 가로막았다. 억겁의 시간 동안 바람에 깎이고 뭉개져 버린 대지 위를, 나의 애마(愛馬) ‘천둥매’가 묵직한 발걸음을 내디뎠다. 거대한 금속 다리가 한 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땅이 미세하게 진동했고, 파일럿 시트에 앉은 나는 그 울림을 온몸으로 느꼈다. 콕핏 안은 천둥매의 인공지능이 띄우는 각종 정보창과 외부 센서가 포착한 영상으로 가득했다. 시야를 가리는 모래폭풍 속에서도, 전방의 스캐너는 끈질기게 목표 지점을 추적하고 있었다.
“하준, 도착하려면 아직 멀었어? 여기 신호가 너무 불안정해서 너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거친 노이즈가 섞인 유진의 목소리가 통신망을 뚫고 들려왔다. 언제나 차갑고 날카로운 음성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희미한 걱정은 감출 수 없었다.
“이제 겨우 절반쯤 온 것 같아. 이 지독한 모래폭풍만 아니면 한 시간은 단축했을 텐데.”
나는 마른 입술을 혀로 축이며 대답했다. 천둥매의 매니퓰레이터로 전방 시야를 가리는 모래바람을 쳐낼 수는 없으니, 그저 묵묵히 전진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 빌어먹을 환경 속에서 천둥매의 동력 시스템도 점점 과부하가 걸리는 듯했다.
“그럼 더 서둘러. 거기서 발생하는 이상 에너지 반응이 점점 강해지고 있어. 내가 보내준 자료는 봤지? 고대 문명의 유적과 관련된 걸 수도 있다고.”
유진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보내준 자료는 나를 이곳, ‘황혼의 묘지’라는 악명 높은 구역으로 이끈 유일한 단서였다. 수십 년 전, 고대의 지하 도시가 잠들어 있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거친 환경과 탐사 도중 벌어진 의문의 사고들 때문에 모두가 잊어버린 미지의 영역이었다. 하지만 유진은 끈질기게 그 단서를 파고들었고, 마침내 이곳에서 정체불명의 에너지 반응을 포착해냈다.
“봤어. 너무 오래된 기술이라 해독하는 데 애먹었지만… ‘심연의 눈’이라고 불렸던 고대 도시의 흔적일 수도 있다고 했지?”
“그래. 그리고 그 ‘눈’이 지금 막 뜨려는 것 같아. 에너지 반응이 일정 주기마다 폭주하고 있거든.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네가 말려야 해.”
말려야 한다니. 유진은 언제나 나에게 과분한 임무를 던져주곤 했다.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내 손끝 하나로 막을 수 있는 일이라면 진작에 이 고철 덩어리들을 몰고 다니지 않았을 것이다.
천둥매의 거대한 동력 코어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최고 출력으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눈앞의 모래폭풍이 마치 살아있는 벽처럼 천둥매를 삼키려 들었지만, 녀석은 끈질기게 버텨냈다. 내 손에 쥐어진 조종간에서 미세한 진동이 울렸다. 마치 천둥매 자체가 살아서 숨 쉬는 생명체처럼 느껴졌다.
얼마나 더 나아갔을까. 모래폭풍이 걷히는 순간,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나는 저절로 탄성을 질렀다.
거대한 바위 절벽이 마치 칼로 자른 듯 정확하게 나뉘어 있었다. 그 사이로 틈이 보였는데, 틈이라기보다는 거대한 문이라고 하는 게 옳았다.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듯한 매끈한 표면에는 오랜 세월의 흔적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그 문 위로는 이해할 수 없는 고대 문자들이 음각되어 있었고, 그 사이에서 희미한 푸른빛이 깜빡였다.
“찾았다… 심연의 눈.”
내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단순한 소문이나 전설이 아니었다. 이곳에 정말로 고대 문명의 유적이 잠들어 있었던 것이다.
“하준, 주변에 에너지 반응이 감지돼! 다가오고 있어!”
유진의 다급한 경고가 떨어짐과 동시에, 절벽 위에서 섬광이 번쩍였다. 동시에 천둥매의 경보 시스템이 시끄럽게 울려 퍼졌다.
“젠장, 뭐야 저건?!”
내 머리 위로 빠르게 날아드는 물체가 보였다. 작은 크기였지만, 엄청난 속도로 다가오며 붉은 에너지탄을 쏘아냈다. 회피 기동을 할 틈도 없이, 천둥매의 장갑판에 탄이 명중했다.
콰앙!
천둥매의 오른팔에 충격이 가해졌다. 다행히 두터운 장갑 덕분에 큰 손상은 없었지만, 계속해서 날아드는 적들의 공격은 신경 쓰였다. 절벽 위에서 정체불명의 비행체들이 떼 지어 나타났다. 곤충처럼 생긴 그것들은 빠른 속도로 움직이며 쉴 새 없이 에너지탄을 발사했다.
“경비 시스템인가? 유진, 저것들 정체가 뭐야?”
나는 즉시 천둥매의 자동 방어 시스템을 가동했다. 어깨에 장착된 소형 미사일 포드가 개방되며 섬광을 내뿜었다. 미사일들이 굉음을 내며 날아가 비행체들을 요격했지만, 그 숫자가 너무 많았다.
“젠장, 데이터베이스에 없는 기체야! 아마 유적의 자체 방어 시스템일 거야! 고대 문명의 기술이 아직도 작동하고 있다니!”
유진의 목소리에서 놀라움이 섞여 나왔다. 나 또한 경악을 금치 못했다. 수천 년이 흘렀을 이 유적의 방어 시스템이 아직도 완벽하게 작동하고 있다니. 상상 이상이었다.
“너무 많잖아! 천둥매, 전방 집중 사격!”
나는 천둥매의 주무기인 대구경 펄스 캐논을 들어 올렸다. 육중한 총신에서 에너지가 응축되는 소리가 울렸다. 정조준할 틈도 없이, 나는 전방으로 빠르게 다가오는 비행체들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콰아아앙!
푸른색 에너지 빔이 허공을 가르며 날아갔다. 수십 기의 비행체가 한 번에 폭발하며 거대한 불꽃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곧이어 더 많은 비행체들이 절벽 안쪽에서 쏟아져 나왔다.
“이런 식으로 싸우다가는 동력이 바닥나겠어! 입구로 돌진한다!”
나는 판단을 내렸다. 모든 화력을 전방에 집중시키며 천둥매의 거대한 몸을 유적의 문으로 돌진시켰다. 펄스 캐논이 쉴 새 없이 불을 뿜었고, 비행체들은 마치 벌레처럼 터져 나갔다.
드디어 문 앞까지 도착했다. 문틈에서 깜빡이던 푸른빛이 더욱 강렬하게 빛났다. 마치 나를 빨아들이려는 듯한 알 수 없는 힘이 느껴졌다.
“하준! 조심해! 문에서 이상 반응이…!”
유진의 경고가 채 끝나기도 전에, 거대한 문이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양옆으로 스르륵 열리기 시작했다. 문이 완전히 열리자, 그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짙은 어둠이 나를 집어삼킬 듯했다. 어둠 속에서 알 수 없는 고대의 공기가 훅 끼쳐왔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천둥매를 어둠 속으로 몰아넣었다. 뒤에서 날아오던 비행체들의 공격이 더 이상 닿지 않는 깊은 지하로, 미지의 공간으로.
천둥매의 헤드라이트가 어둠을 찢으며 나아갔다. 길고 가파른 통로를 따라 한참을 내려갔을까, 눈앞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발아래는 거대한 심연이었고, 그 심연 속에는 무수한 빛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헤드라이트를 비추자, 그 빛의 정체가 드러났다. 거대한 건축물들, 도시였다. 바닥이 보이지 않는 심연 속에서, 고대 문명의 흔적들이 잠들어 있었다.
이곳이 바로, ‘심연의 눈’이었다.
도시의 중심부, 가장 깊은 곳에서 거대한 구조물이 희미한 푸른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 빛은 마치 심장처럼 규칙적으로 깜빡였다. 너무나도 거대해서 천둥매가 한낱 장난감처럼 보일 정도였다.
나는 조종간을 꽉 쥐었다. 심장이 요동쳤다.
잊혀진 고대 문명의 심장부가, 지금 내 눈앞에 있었다.
그리고 그 심장부가 품고 있는 비밀이, 나를 부르고 있었다.
*위이이잉—*
천둥매의 경보 시스템이 다시 울렸다.
도시의 어둠 속에서, 정체불명의 그림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이곳에 혼자가 아니었다.
그리고 이 고대 유적은, 나를 쉽게 들여보내 줄 생각이 없는 듯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