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공상과학)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지훈은 현관문을 닫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서른을 갓 넘긴 그에게 서울의 밤은 언제나 피곤했고, 이 좁은 오피스텔만이 유일한 안식처였다. 재킷을 벗어 의자에 걸치고,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었다. 거실의 작은 식탁 위에는 어제 먹다 남은 배달 음식 용기가 놓여 있었다. 그는 그것들을 치울 기력조차 없이 소파에 몸을 던졌다.

천장 조명은 언제나처럼 차가운 백색광을 뿜었고, 창밖으로는 건너편 빌딩의 수많은 불빛들이 점점이 박혀 있었다. 지훈은 늘 이 도시의 불빛들을 보며 자신이 이 거대한 기계의 작은 부품 중 하나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무의미하지만, 없어서는 안 될.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딱히 확인할 메시지도 없었고, 연락할 사람도 없었다. 그저 습관적으로 스크롤을 내리다 잠시 생각에 잠겼다. 피로가 눈꺼풀을 짓눌렀지만, 이대로 잠들기엔 뭔가 아쉬웠다. 냉장고에서 맥주 한 캔을 꺼내 컵에 따랐다. 시원한 탄산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갈 때마다 하루의 찌꺼기가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그때였다.
주방 쪽에서 쨍그랑, 하고 아주 작은 소리가 들렸다. 컵과 컵이 부딪히는 듯한 소리.
지훈은 고개를 갸웃했다. “뭐지?”
그는 거실에서 주방이 훤히 보이는 구조의 오피스텔에 살고 있었다. 그의 시야에는 싱크대 위에 놓인 설거지 거리와 컵들이 보였다. 하지만 모든 것은 정지해 있었다. 바람이 들어올 틈도 없는 밀폐된 공간에서, 혼자 사는 집에, 그런 소리가 난다는 건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피곤해서 헛것이 들리나.”
지훈은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다시 맥주를 마셨다. 하지만 미세한 위화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왠지 모르게 주방 쪽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몇 분 후, 다시 한번 쨍그랑, 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번엔 아까보다 조금 더 크고 명확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컵을 아주 살짝 건드린 듯한 소리.

지훈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의 발걸음은 주방을 향했다. 싱크대 위, 컵들이 쌓여 있는 곳. 아무리 봐도 이상한 점은 없었다. 하지만 그는 확실히 들었다. 두 번이나.
“누가 장난치나? 옆집?”
그는 고개를 저었다. 벽은 두꺼웠고, 옆집 소리가 이렇게 선명하게 들릴 리 없었다. 게다가 컵 부딪히는 소리라니. 너무 특이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휴대폰 카메라를 켜서 컵들을 잠시 비추어 보았다. 녹화 버튼을 누르려던 찰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다시 소파로 돌아왔다.

‘내가 너무 예민한가.’

TV를 켰다. 드라마 속 주인공의 대사가 허공을 가로질렀다. 시선을 화면에 고정하려 애썼지만, 주방에서 들렸던 그 묘한 소리는 계속 그의 신경을 갉아먹었다.
그리고 세 번째.
이번엔 컵 소리가 아니었다. TV장 옆, 작은 협탁 위에 놓여 있던 리모컨이 느리게, 아주 느리게 움직이더니 협탁 끝에서 툭, 하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지훈의 눈이 커졌다.
리모컨은 방금 전까지 협탁 정중앙에 놓여 있었다. 누구도 건드리지 않았다. 아무런 진동도 없었다. 그런데 스스로 움직였다.
그는 벌떡 일어났다. 심장이 격렬하게 뛰기 시작했다. 피로 때문에 생긴 환각이라고 치부하기엔 너무나도 생생한 움직임이었다.
떨어진 리모컨을 주워 들었다. 멀쩡했다. 아무런 물리적인 충격의 흔적도 없었다.

“이게… 대체… 뭐야?”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공포가 목구멍을 조여왔다. 혼자 있는 공간이 갑자기 낯설고 위협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는 거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모든 가구, 모든 물건들이 제자리에 있었다. 하지만 어딘가 분위기가 달라져 있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자신과 함께 이 공간을 공유하고 있는 듯한 기분.

찰나의 정적.
그 순간, 거실 천장 조명이 깜빡이기 시작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마치 숨을 쉬듯이 규칙적으로 점멸했다. 백색광은 순간마다 밝아졌다가 희미해지기를 반복했다.
지훈은 뒷걸음질 쳤다. 벽에 등이 닿자 차가운 한기가 온몸을 타고 올라왔다.
“누… 누가… 거기 있어?”
그는 겨우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오직 깜빡이는 조명의 리듬과 자신의 거친 숨소리만이 공간을 채웠다.

갑자기, 그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그의 상식을 완전히 뒤엎었다.
책장 제일 위 칸에 꽂혀 있던, 한 번도 꺼내 본 적 없는 두꺼운 과학 서적이 쿵, 하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까 리모컨처럼 스르륵 밀려 떨어진 것이 아니었다. 마치 누군가 위에서 아래로 세게 던진 것처럼, 순식간에 낙하했다.
그는 비명을 지를 뻔했다.
책은 펼쳐진 채로 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양자 역학과 다차원 공간》.
그는 얼어붙은 채 책을 응시했다. 이 책은 원래 책장 깊숙이, 가장자리에 박혀 있어서 빼내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조명의 점멸은 더욱 빨라졌다. 마치 폭주하는 심장 박동처럼.
그리고 이어지는 연쇄적인 현상들.
협탁 위에 놓여 있던 유리컵이 공중으로 두어 바퀴 돌더니 바닥으로 떨어져 산산조각 났다.
창문에 걸려 있던 블라인드가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는데도 갑자기 위아래로 미친 듯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싱크대에 쌓여 있던 접시들이 제자리에서 덜그럭거리며 서로 부딪히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지훈은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몸이 통째로 굳어버린 듯했다.
그는 현실을 부정하려 애썼다. 꿈일 거야. 과로 때문에 환영을 보고 있는 거야.
하지만 산산조각 난 유리 파편들은 너무나도 현실적이었고, 귀를 찢을 듯한 소음들은 너무나도 생생했다.

그때, 그의 휴대폰이 울렸다.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휴대폰이 스스로 진동하며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아니, 미끄러지는 게 아니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가락이 터치패드를 무작위로 누르는 것처럼, 화면이 정신없이 바뀌었다. 잠금 화면이 해제되고, 알 수 없는 앱들이 실행되고, 다시 종료되기를 반복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존재가 그의 휴대폰을 가지고 장난치는 것처럼.

“그만… 그만해…!”
지훈은 소리쳤다. 그의 목소리는 갈라지고 떨렸다.
휴대폰의 화면은 마지막으로 알 수 없는 앱을 띄웠다. 그 앱의 아이콘은 희미한 육각형 모양이었다. 화면 가득히 알 수 없는 숫자와 기호들이 빠른 속도로 스크롤 되고 있었다. 마치 복잡한 코드나 데이터의 흐름을 보여주는 듯했다.
그리고 그 숫자들 사이에서, 하나의 문자가 느리게 깜빡였다.

[ERROR]

지훈의 오피스텔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파편, 엉망이 된 블라인드, 요동치는 불빛, 그리고 그의 심장을 옥죄는 알 수 없는 공포.
이 모든 현상이 시작된 것은 불과 몇 분 전이었다.
그는 무너지는 다리로 주저앉았다.
자신이 살고 있는 이 평범한 도시의 아파트가, 더 이상 안전한 안식처가 아니었다.
이건 단순한 폴터가이스트가 아니었다.
무언가, 이해할 수 없는, 전혀 다른 차원의 존재가 그의 공간을 침범한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모든 혼돈 속에서, 휴대폰 화면에 깜빡이던 [ERROR] 메시지는 더욱 선명하게, 마치 경고처럼 그의 눈에 박혔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는 듯이.
지훈은 숨을 헐떡였다. 그의 눈은 공포와 혼란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 밤이, 앞으로 그의 삶이 어떻게 변할지, 그는 전혀 예상할 수 없었다.
이 모든 기이한 현상 뒤에 숨겨진 진실은 무엇일까.
그것은 단순히 유령의 장난일까, 아니면 더 거대하고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과학적인 현상의 발현일까.

다음 순간, 천장 조명이 완전히 꺼졌다.
어둠 속에서, 휴대폰 화면의 [ERROR] 메시지 홀로 푸른빛을 내며 섬뜩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어디선가 아주 작게, 삐걱거리는 듯한 기계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마치 이 공간 어딘가에, 거대한 기계가 느릿하게 움직이기 시작한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