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아포칼립스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 균열

열두 시 사십칠 분. 내 손목의 낡은 시계가 뱉어내는 디지털 숫자는 어둠 속에서 푸르게 빛나고 있었다. 천이백사호. 우리 집 주소이자, 이 빌어먹을 도시 속에서 내가 유일하게 안전하다고 믿었던 나의 보금자리. 하지만 오늘 밤은 조금 달랐다. 아니, 어쩌면 어제부터, 혹은 그저께부터였을지도 모른다.

“젠장….”

낮게 중얼거렸다. 손안에 든 캔맥주가 축축하게 땀을 흘렸다. 거실의 스탠드 조명은 어째선지 오늘따라 노랗게 바래 보였고, 그 빛조차 불안하게 깜빡이는 통에 내 신경은 바짝 곤두서 있었다. 한밤중에 이런 불쾌한 빛이라니. 이런 건 영화에서나 나오는 불길한 전조 같은 거 아닌가.

사건은 일주일 전부터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았다. 밤늦게까지 컴퓨터로 작업을 하다가 잠시 화장실에 다녀왔는데, 분명히 탁자 한가운데 놓아두었던 볼펜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그때는 피곤해서 내가 실수로 건드렸나 보다, 했다.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다. 그다음 날은 열어둔 창문이 닫혀 있었다. 환기를 시키려고 조금 열어두었었는데, 분명 잠그지는 않았다. 바람이 불었나? 고층 아파트라 바람이 세게 불 때도 있으니, 그것 또한 그러려니 했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이틀 전, 아침에 커피를 마시려고 머그컵을 들었는데, 분명 깨끗하게 닦아 건조대에 올려두었던 컵 안쪽에 희미한 흙먼지 같은 게 묻어 있었다. 베란다 창문을 연 적도 없는데. 그리고 어젯밤에는…

툭.

나는 퍼뜩 고개를 들었다.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지는 것 같았다. 분명히 들었다. 싱크대 쪽에서 나는 소리였다.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라고 하기엔 너무나 건조하고, 작은 돌멩이라도 떨어지는 듯한 둔탁한 소리.

나는 벌떡 일어났다. 맨발이 차가운 마룻바닥에 닿았다. 찬 기운이 발끝에서부터 올라오는 것 같았다. 아니, 찬 기운이 아니라, 온몸을 덮는 불쾌한 한기였다. 스탠드 불빛이 겨우 닿는 주방 쪽을 응시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어둠이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것 같았다.

“누구… 있어요?”

내 목소리는 마치 낯선 사람의 것인 양 가늘게 떨렸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누가 있겠어? 혼자 사는 아파트에서. 옆집이겠지. 층간 소음이겠지. 그저 노이로제에 걸린 내가 환청을 들은 것뿐일 거야.

하지만 그 소리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사각… 사각…

이번에는 훨씬 선명했다. 마치 누군가가 발톱으로 벽을 긁는 듯한 소리. 내 심장이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했다. 주방 벽 쪽에서 나는 소리였다. 낡은 아파트라 간혹 수도관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기도 하지만, 이런 소리는 처음이었다. 벽을 긁는 소리라니. 벽에 뭐가 있다고.

나는 천천히 주방으로 걸어갔다. 손이 떨렸다. 마치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홀린 듯이. 스탠드 불빛이 미치지 못하는 어둠 속에서, 나는 손을 뻗어 주방의 스위치를 눌렀다. 딸깍, 하는 소리와 함께 형광등이 번쩍이며 주방을 환하게 밝혔다.

아무것도 없었다.

싱크대 위에는 어제 먹고 남은 설거지 그릇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고, 건조대에는 깨끗한 접시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벽은 깨끗했다. 긁힌 자국도, 이상한 흔적도 없었다.

“젠장, 내가 미쳐가는구나.”

피식, 헛웃음이 나왔다. 과도한 스트레스가 환청과 망상을 불러일으키는 게 분명했다. 다시 거실로 돌아가려는 순간, 무언가 시야에 들어왔다.

수도꼭지였다. 수도꼭지에서 똑, 똑, 하고 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분명히 잠그고 나왔었는데. 밤새 수도세 폭탄이라도 맞으면 어쩌지 하는 생각에 나는 다가가 수도꼭지를 단단히 잠갔다.

그 순간,

콰앙!

바로 등 뒤에서 엄청난 굉음이 터져 나왔다. 내 비명은 목구멍에서 틀어막혔다.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몸이 저절로 움츠러들며 주저앉았다. 주방과 거실을 구분하는 작은 벽에서 나는 소리였다. 마치 거대한 망치로 벽을 내리찍기라도 한 것처럼.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이건 환청이 아니었다. 명백한 물리적 충격음이었다. 아파트 전체가 흔들리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나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바닥을 짚고 겨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충격음이 났던 벽 쪽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벽. 그 평범하고 아무것도 없을 것 같았던 벽에…

균열이 생겨 있었다.

아주 작고 미세한 실금. 하지만 그 균열은 분명히 눈에 보였다. 회색 벽지 사이를 가로지르는 옅은 갈색의 금. 나는 홀린 듯이 손을 뻗어 그 균열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차갑고, 거칠었다.

그리고 그때였다.

벽의 균열 사이에서, 스멀스멀 검붉은 액체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마치 오래된 피처럼 끈적하고 역겨운 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나는 재빨리 손을 떼며 뒷걸음질 쳤다.

“이… 이게 뭐야….”

내 눈앞에 펼쳐진 현실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것이었다. 벽에서 피가 새어 나온다니. 그것도 내 집 벽에서. 그 끈적한 액체는 균열을 따라 천천히 흘러내려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순간, 액체가 흘러내리던 균열이,

**쩍—!**

굉음과 함께 가로로 길게 벌어졌다. 마치 썩은 살점이 찢어지는 듯한 소름 끼치는 소리였다. 균열의 틈새로 보이는 것은 어둠뿐이었다. 하지만 그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분명히 **꿈틀거리고** 있었다.

“흐읍… 으읍….”

내 숨소리는 거칠고 격렬했다. 눈을 비볐지만, 보이는 것은 변함이 없었다.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형체. 그리고 그 틈새에서 풍겨 나오는 끔찍한 악취. 마치 썩어 문드러진 시체 냄새 같았다.

그때, 어둠 속에서 무언가 하얀 것이 불쑥 튀어나왔다.

길고 앙상한 손가락. 그리고 그 손가락 끝에는 거무튀튀하고 더럽혀진 손톱이 붙어 있었다. 손가락은 균열 밖으로 조금씩 나오더니, 벽지를 찢고 긁어내기 시작했다. 마치 이 벽을 뚫고 나오려는 듯이.

사각, 사각, 사각!

끔찍한 소리가 내 귓가에 울려 퍼졌다. 나는 더 이상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등골을 타고 흐르는 식은땀은 이미 온몸을 적시고 있었다. 눈앞의 광경은 악몽 그 자체였다. 벽 안에서 대체 뭐가…

그 순간, 벽 안의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다.

흐으읍… 끄으윽…

그것은 인간의 목소리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기괴하고, 고통스러운 신음 소리였다. 마치 깊은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듯한, 아니, 목구멍이 찢어질 듯한 고통을 참는 듯한 소리.

나는 뒷걸음질 치다 넘어졌다. 엉덩이가 아파왔지만, 그것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눈앞의 균열 속에서 들려오는 소름 끼치는 신음 소리와, 벽을 긁어대는 앙상한 손가락만이 나의 모든 신경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손가락이 균열을 좀 더 벌리자, 그 틈새로 붉고 충혈된, 하지만 생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눈동자가 번뜩였다.

그것은 날 보고 있었다.

벽 안에서, 내 아파트 안에서, 죽은 듯한 눈동자가 나를 꿰뚫어 보고 있었다.

나는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공포에 질린 나는 온몸이 굳어버린 채 그저 바닥에 주저앉아, 벽 안에서 나를 지켜보는 그 기괴한 존재와 시선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밤은, 이제 막 시작된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