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공상과학)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도시의 핏줄처럼 얽히고설킨 고층 빌딩 숲, 그중에서도 유독 볕이 잘 들지 않는 동향의 낡은 아파트 13층. 이진우는 언제나처럼 흐트러진 책상 앞에 앉아 멍하니 화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스물네 살. 복학을 앞둔 백수 아닌 백수. 그의 유일한 낙이라면 늦은 밤까지 웹 소설을 읽거나, 이름 모를 우주 어딘가를 배경으로 한 SF 영화를 탐독하는 것뿐이었다.

“흐음… 벌써 새벽 두 시라니.”

그는 작게 중얼거리며 키보드에서 손을 뗐다. 방 안은 희미한 모니터 불빛과, 창밖 멀리서 깜빡이는 도시의 불빛만이 지배하고 있었다. 찌뿌둥한 몸을 일으켜 세우자, 낡은 마루 바닥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이 아파트로 이사 온 지 반년. 싼 가격에 혹해 계약했지만, 그는 곧 이 건물이 생각보다 훨씬 더 ‘연식’이 오래되었음을 깨달았다. 벽 곳곳에 금이 가 있고, 수도관은 종종 알 수 없는 소음을 내뱉었다.

컵에 물을 따르기 위해 주방으로 향하던 진우는 문득 걸음을 멈췄다. 서늘한 기운이 발목을 감쌌다. 보일러를 약하게 틀어두었으니 집 전체가 이렇게까지 차가울 리가 없었다. (기분 탓이겠지.) 그는 어깨를 한번 으쓱하고는 냉장고 문을 열었다.

그때였다. 쨍그랑!

“크아악!”

놀란 진우가 몸을 움츠렸다. 방금 그 소리는… 주방 찬장에서 들려왔다. 유리컵이 깨지는 소리였다. 진우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려 찬장을 응시했다. 유리컵 두 개가 비스듬히 꽂혀 있던 곳, 그중 하나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그 아래 바닥에는 파편들이 흩뿌려져 있었다.

“뭐야? 이게 왜 떨어져?”

그는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분명 조금 전까지도 멀쩡히 제자리에 있었던 컵이었다. 바람이 불 리도 없고, 지진이 난 것도 아니었다. 진우는 한숨을 쉬며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가져와 조각들을 쓸어 담았다. 괜스레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은 떨쳐버릴 수 없었다. (너무 오래 앉아 있어서 몸이 찌뿌둥한가? 아니면 설마… 피곤해서 헛것을 본 건가?)

그날 밤, 잠자리에 든 진우는 좀처럼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컵이 떨어진 것도 찜찜했지만, 자꾸만 귓가에서 알 수 없는 웅얼거림이 들리는 듯했다. 마치 벽 너머에서, 혹은 천장 위에서 누군가가 아주 작게 속삭이는 것 같았다. 잠이 오지 않아 스마트폰을 들고 웹 소설을 읽으려는데, 화면이 갑자기 지직거리며 꺼졌다.

“어? 뭐야, 배터리 충전해 놨는데?”

다시 전원을 켜자, 이번에는 화면에 알 수 없는 노이즈가 가득했다. 마치 아주 오래된 TV에서나 볼 법한 모래알 같은 점들이 무수히 반짝였다. 진우는 몇 번 전원을 껐다 켰지만 소용없었다. 결국 그는 한숨을 쉬며 폰을 옆에 던져두고 이불을 뒤집어썼다.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깬 진우는 침대 옆 탁자에 둔 스마트폰이 원래대로 돌아와 있는 것을 발견했다. (간밤에 너무 피곤해서 이상한 현상을 겪었나 보네.) 그는 고개를 저으며 애써 불쾌한 기분을 떨쳐내려 했다.

문제는 그날 저녁부터였다.

진우는 배달음식을 시켜 먹기 위해 현관문을 열었다. 음식을 받아 들고 거실로 들어서려는 순간, ‘쿵’ 하는 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저절로 닫혔다.

“어? 바람도 안 부는데?”

그는 고개를 갸웃하며 문을 다시 열었다. 그리고 정확히 거실로 발을 들여놓자마자, 또다시 ‘쿵!’ 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다. 이번에는 더 세게, 마치 누군가 뒤에서 밀기라도 한 것처럼. 진우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아니, 이건 좀 심하잖아. 바람이라기엔 밀폐된 공간인데?)

그는 문손잡이를 잡고 한참을 응시했다. 아무런 인기척도, 바람도 없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자신을 놀리듯이 문을 닫는 것만 같았다. 그는 찝찝한 기분을 애써 외면하며 식사를 했다.

하지만 그 후로도 기괴한 일들은 계속되었다.

책상 위에 분명히 올려두었던 충전기가 침대 밑에서 발견되거나, 샤워를 마치고 나왔을 때 화장실 문이 굳게 잠겨 있기도 했다. 한번은 잠결에 눈을 떴을 때, 거실 복도에서 희미한 발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온몸의 털이 곤두서기도 했다.

“누구… 계세요?”

진우는 벌벌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대신 복도 끝에서, 작은 물건이 바닥에 떨어지는 듯한 ‘짤그랑’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그는 침대에서 내려와 조심스럽게 복도 쪽으로 향했다. 스탠드 불빛이 닿는 곳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불빛이 닿지 않는 어둠 속에서, 아주 희미한 푸른색 빛이 깜빡이는 것을 그는 보았다. 마치 전기의 스파크처럼, 하지만 소리 없이.

“뭐… 뭐야.”

진우는 공포에 질려 뒷걸음질 쳤다. 그때, 그의 등 뒤에서 ‘탁!’ 하는 소리와 함께 전등 스위치가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거실의 모든 불이 동시에 꺼졌다. 순식간에 암흑에 잠긴 공간에서, 그의 심장은 미친 듯이 날뛰었다.

“젠장! 이거 대체 무슨 일이야?!”

그는 스마트폰의 플래시를 급하게 켰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주변을 비추자, 방금 전 복도에서 보았던 푸른색 빛이 이제는 거실 한가운데서 마치 춤을 추듯 일렁이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스파크가 아니었다. 마치 작은 형체처럼, 하지만 실체가 없는. 유령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이질적인, 차가운 에너지를 뿜어내는 듯한 빛이었다.

그때, 거실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유리컵이 공중으로 솟아올랐다.

“으악!”

컵은 허공에서 잠시 멈춰 서 있는가 싶더니, 진우를 향해 엄청난 속도로 날아왔다. 진우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숙였고, 컵은 그의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가 벽에 부딪히며 산산조각 났다. 쨍그랑! 유리 파편들이 사방으로 튀었고, 일부는 그의 뺨을 스쳤다.

진우는 바닥에 주저앉아 떨리는 손으로 뺨을 만졌다. 따끔한 통증과 함께 피가 묻어났다. 이것은 환각이 아니었다. 명백한 현실이었다.

그는 플래시를 비추며 벽을 더듬어 전등 스위치를 찾았다. 하지만 스위치는 이미 누가 손을 쓴 듯 완전히 부서져 있었다. 마치 망치로 내리친 것처럼.

(이건… 사람이 한 짓이 아니야.)

등골을 타고 오르는 오싹함에 진우는 온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그때, 플래시 빛에 비친 거실 한쪽 구석에서, 아파트에 이사 오기 전부터 고장 나 있었던 낡은 라디오가 지직거리는 소리를 내며 저절로 켜졌다. 아무런 주파수도 잡히지 않는 백색 소음만이 가득했지만, 그 속에서 웅얼거리는 듯한, 아니, 마치 기계음 같은 알 수 없는 목소리가 섞여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이… 이건 대체… 뭐야…”

진우는 주저앉은 채 바닥을 짚고 뒷걸음질 쳤다. 그의 눈앞에서 아파트의 낡은 벽지가 물결처럼 일렁였다. 마치 공간 자체가 왜곡되는 듯한 착각이었다. 그리고 벽 한가운데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무언가가 짓누르는 듯한 형체가 선명하게 불거져 나오기 시작했다. 마치 벽 뒤에, 살아있는 무언가가 숨 쉬고 있는 것처럼. 푸른색 에너지는 더욱 격렬하게 일렁였다.

“크아아악!”

진우는 비명을 지르며 벌떡 일어섰다. 벽에서 불거져 나온 형체는 점점 더 커지고, 튀어나오고 있었다. 마치 벽을 뚫고 나오려는 듯이. 그것은 살아있는 그림자 같기도 했고, 정체 모를 거대한 장치 같기도 했다. 알 수 없는 위압감이 온몸을 짓눌렀다.

진우는 도망치기 위해 현관문으로 향했다. 필사적으로 문고리를 돌려보았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문은 안에서 굳게 잠겨 있었다. 아니, 잠긴 것을 넘어 마치 벽에 용접이라도 된 것처럼 단단하게 움직이지 않았다.

그 순간, 라디오의 백색 소음 속에서 튀어나온 기계음이 더욱 선명하게 들렸다.

[–계측… 불안정… 왜곡… 확장… 감지… 유기체–]

진우의 눈앞에서 벽의 돌출부가 기괴하게 꿈틀거렸다. 그리고 그 중심에서, 방금 전 유리컵을 날렸던 것과 똑같은 푸른색 에너지가 강력한 빛을 내뿜으며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폴터가이스트가 아니었다. 단순한 유령의 장난도 아니었다.
이 아파트, 이 공간에,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존재, 혹은 현상이 기생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 진우를 향해 명백한 적의를 드러내고 있었다.

진우는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온몸의 감각이 마비되는 듯한 극심한 공포 속에서, 그는 오직 한 가지 생각만을 할 수 있었다.
(내가 이 아파트에 갇혔어. 이 괴물 같은 것에 갇혔다고!)
그리고 그의 눈앞, 벽의 중심에서 뿜어져 나온 푸른 빛이 그의 시야를 완전히 뒤덮었다.
마치 공간 자체가 흡수되는 것처럼.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이 기괴한 아파트에서 벌어질 일들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