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툴루 신화 독립적인 단편 소설

고요한 밤, 아파트 13층, 1303호.

박지훈은 노트북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간,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만이 정적을 깼다. 일에 치여 매일 야근하는 삶은 고단했지만, 적어도 이 작은 원룸은 그에게 유일한 안식처였다. 뜨거운 커피 한 모금을 마시기 위해 컵을 집어 드는데, 엉뚱한 곳에서 미약한 소리가 들렸다.

“딸칵.”

시선을 돌리자, 방금 전까지 닫혀 있던 옷장 문이 아주 살짝 벌어져 있었다. 삐걱이는 소리도 없이, 마치 누군가 부드럽게 열어젖힌 것처럼.

“뭐지?”

지훈은 의아했다. 옷장 문은 잠금장치가 튼튼했고, 아무리 오래된 아파트라도 이 정도로 저절로 열릴 리 없었다. 그는 컵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옷장으로 향했다. 잠금장치를 확인하고 닫힌 문을 한 번 더 밀어 꼼꼼히 잠갔다. 피곤해서 헛것을 봤나 싶었다.

다시 자리로 돌아와 작업을 이어갔지만,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왠지 모르게 등골이 서늘했다. 묘한 이질감이 방안을 감싸는 듯했다. 그는 창밖을 내다봤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도시의 불빛만이 반짝였다.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그는 피로 때문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다시 작업에 몰두했다.

그 다음날이었다.
아침 일찍 출근 준비를 하는데, 화장실 선반에 놓아두었던 칫솔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습관적으로 ‘또 왜 이래?’ 하며 칫솔을 주워 올렸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떨어질 만한 위치가 아니었다. 선반은 깊었고, 밤새 지진이 일어났던 것도 아니었다.

“하… 요즘 내가 너무 예민한가.”

지훈은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 애썼다. 그러나 그날 밤, 기이한 현상은 더욱 분명해졌다.
퇴근 후 맥주 한 캔을 따서 소파에 앉았다. 거실 한쪽 벽을 차지한 책장에는 몇 안 되는 책들이 꽂혀 있었다. 그때, 책장 가장 위 칸에 놓여 있던 낡은 문학 전집 중 한 권이 스르륵 앞으로 밀려 나오더니,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젠장!”

맥주캔을 놓칠 뻔한 지훈은 벌떡 일어섰다. 심장이 발끝까지 떨어지는 듯했다. 그는 책에 손을 댈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바닥에 펼쳐진 채 엎드려 있는 책은 마치 스스로의 의지를 가진 것처럼 보였다.
지훈은 공포감에 휩싸였다. 분명 혼자 사는 집에 자신 말고 다른 존재가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용기를 내어 책을 집어 들었다. 책장을 꼼꼼히 살펴보았지만, 책이 떨어질 만한 틈새나 경사는 없었다.

“이건… 대체 뭐야?”

그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밤새 작은 소리에도 귀를 기울였고, 어둠 속에 숨어 있을지 모를 어떤 것을 경계했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의 감각이 과민해진 탓일까?

다음 며칠은 평화로웠다. 지훈은 안도했다. 역시 피로와 스트레스 때문이었을 거라고, 잠시 스쳐 지나가는 해프닝이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어느 날 새벽, 잠결에 기분 나쁜 한기가 느껴져 눈을 떴다. 보일러는 분명히 틀어져 있었는데, 방안은 한겨울처럼 싸늘했다. 이불을 턱 밑까지 끌어올리며 다시 잠을 청하려는데, 귓가에 알 수 없는 속삭임이 들려왔다.

“스으읍… 흐으읍…”

마치 숨을 쉬는 듯한 소리, 혹은 젖은 무언가가 바닥을 긁는 듯한 소리. 불분명하고 기분 나쁜 소리가 어둠 속에서 울렸다. 지훈은 얼어붙은 채 눈만 깜빡였다. 소리는 점점 더 가까워지는 듯했다. 숨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흐읍… 크르륵…”

그것은 인간의 목소리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이질적이었다. 긁는 소리는 침대 발치에서 멈췄고, 그 순간 방안의 모든 공기가 얼어붙는 듯한 차가움이 지훈을 덮쳤다. 그의 심장이 격렬하게 울렸다.
지훈은 재빨리 침대 옆 스탠드를 켰다. 방안은 순식간에 환해졌고, 아무것도 없었다. 텅 빈 공간, 평소와 다를 바 없는 그의 방이었다. 하지만 싸늘한 한기는 여전했고, 귓가에 남아있는 기분 나쁜 소리의 잔향은 그가 헛것을 들은 것이 아니라고 속삭였다.

그날 이후, 지훈의 삶은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세상에서 가장 안전해야 할 ‘집’이 그에게는 가장 공포스러운 공간이 되어버렸다.
갑자기 전등이 깜빡이다 꺼지고, TV가 저절로 켜져 의미 없는 백색 소음을 뿜어내고, 문이 닫힌 채 잠겨 있었던 냉장고 문이 활짝 열려 식료품들이 나뒹굴었다. 한 번은 잠에서 깨어보니, 침대 발치에 놓아두었던 시계가 벽에 거꾸로 걸려 있었다.
그것들은 단순히 물건을 움직이는 수준을 넘어, 지훈의 정신을 잠식하는 듯했다.
그는 카메라를 설치했다. 거실, 방, 부엌. 모든 공간에 렌즈를 들이밀었다. 하지만 녹화된 영상에는 아무것도 찍히지 않았다. 물건이 움직이는 순간은 항상 카메라의 사각지대였고, 그나마 찍힌 영상에는 뿌연 노이즈만 가득했다. 마치 어떤 존재가 자신의 모습을 감추려는 듯했다.

지훈은 친구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요즘 집에 자꾸 이상한 일이 생겨. 물건들이 저절로 움직이고… 전등도 자꾸 깜빡거리고.”
친구들은 그저 피곤해서 헛것을 보는 것이라고, 아니면 누가 장난치는 것이 아니냐며 웃어넘겼다. 어떤 친구는 정신과 상담을 권하기도 했다. 그의 이야기를 믿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는 고립되었다.

밤이 깊어질수록 현상은 더욱 극심해졌다.
이제 물건들은 허공을 떠다니기 시작했다. 주방 식탁 위 포크와 나이프가 공중에서 빙글빙글 돌다가 벽에 부딪혀 박혔고, 그릇들은 스스로 산산조각 났다. 지훈은 공포에 질려 방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온몸이 덜덜 떨렸다.
그때, 벽시계가 툭 하고 떨어졌다. 액자가 기울어지고, 천장의 전등이 미친 듯이 깜빡였다.

“끼이이익… 끼이이익…”

마치 낡은 배가 바람에 흔들리는 듯한 소리가 온 집안을 채웠다. 벽과 바닥, 천장에서 동시에 울려 퍼지는 소리였다. 지훈은 두 손으로 귀를 막았다.

“이게… 대체… 뭐야…!”

그의 눈앞에서 거실 벽지의 무늬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벽지가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거리고, 무늬들이 뒤틀리며 기괴한 형상으로 변해갔다. 마치 벽 자체가 거대한 피부처럼 꿈틀거리는 듯했다.

“안 돼… 안 돼!”

지훈은 소리를 질렀다. 벽지가 완전히 다른 그림으로 변했다. 검고 어두운, 하지만 희미하게 빛나는 어떤 문양들이 서로 뒤엉켜 있었다. 그는 그 문양들을 본 순간, 마치 뇌가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그것은 단순히 무늬가 아니라,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존재해서는 안 되는 기호였다. 고대의, 이해할 수 없는 언어.

방안의 가구들이 삐걱거렸다. 테이블은 다리가 휘어지고, 의자는 등받이가 부러졌다. 소파는 마치 거대한 입을 벌린 괴물처럼 변형됐다.
그리고 그때, 지훈의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다. 거실 한가운데, 허공에 떠 있는 검은 그림자. 그것은 형태가 없었다. 단순히 어둠의 덩어리였지만, 그 안에서 수많은 눈들이 번뜩이는 것 같았다. 수백, 수천 개의 눈이 자신을 응시하는 듯한 착각.
그림자는 서서히 커졌다. 동시에 방안의 모든 빛이 흡수되는 듯했다. 어둠이 모든 것을 집어삼켰고, 한기 또한 더욱 뼈아프게 파고들었다.

“흐읍… 흐읍… 크르륵… 흐읍…”

이번에는 귓가에서가 아니라, 그림자 덩어리에서 직접 그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숨을 쉬는 소리, 혹은 차가운 점액질이 끓어오르는 소리처럼 들렸다. 그 소리는 묘하게도 지훈의 이름을 부르는 것 같았다.

“지… 훈… 지… 훈…”

분명한 한국어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이름이라고 느껴졌다. 차갑고 끈적이며, 동시에 모든 것을 파괴할 듯한 힘을 담은 목소리.
그는 그 존재가 이 아파트에 깃든 영혼이나 귀신 같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다. 그것은 훨씬 더 오래되고, 훨씬 더 거대하며, 인간의 이해를 넘어선 무엇이었다. 우주 저편에서 온, 혹은 인간이 알 수 없는 차원에 숨어 있던 존재. 단지 이 아파트라는 껍데기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을 뿐이었다.

지훈은 온몸의 근육이 경직된 채로 겨우 몸을 일으켰다. 그의 본능이 비명을 질렀다. 도망쳐야 해. 지금 당장, 이 공간에서 벗어나야 해.
그는 비명을 지르며 현관문으로 돌진했다. 그림자는 그에게 아무런 물리적인 방해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존재가 내뿜는 광기와 공포는 그의 정신을 짓눌렀다. 현관문 손잡이를 잡는 순간, 손잡이가 차갑게 녹아내리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끼이이익!”

현관문이 열리고, 그는 미친 듯이 밖으로 뛰쳐나갔다. 복도를 가로질러 엘리베이터를 향해 달렸다. 머리칼이 곤두서고, 심장이 찢어질 듯 아팠다. 등 뒤에서 들려오는 기이한 속삭임과 변형된 공간의 이미지는 그의 뇌리에 깊이 박혔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그는 안으로 몸을 던졌다. 닫힘 버튼을 연달아 누르자, 문이 닫히기 시작했다. 닫히는 문틈 사이로, 어둠에 잠긴 1303호의 현관문이 보였다. 그 안쪽에서 어떤 형태 없는 그림자가 일렁이는 듯했다.

쿵.
엘리베이터 문이 완전히 닫혔다.
지훈은 바닥에 주저앉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의 정신은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그는 다시는 1303호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아니,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아파트라는 평범한 공간에서 벌어진 기이한 일들은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그는 이제 안다.
인간의 인지 너머에 존재하는 어떤 것들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들은 언제든, 평범한 일상 속으로 스며들어 올 수 있다는 것을.
그날 밤 이후, 박지훈은 길고 긴 밤을 잠들지 못했다. 도시의 불빛은 여전히 밝았지만, 그에게는 더 이상 위안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불빛 너머의 어둠이, 언제든 다시 자신을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공포로 다가왔다.

1303호는 다시 고요해졌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만, 그 안에는 여전히 무언가가 잠들어 있었다. 새로운 방문객을 기다리며, 알 수 없는 고대의 언어로 속삭이는 듯한 정적만이 감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