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챕터 1: 망각의 흔적
심연.
아크튜러스 호의 함교 통창 너머로 펼쳐진 우주는 그 어떤 단어로도 형용할 수 없는 검은 절망과도 같았다. 닿을 수 없는 저 멀리, 은하의 성운들이 아스라한 물감처럼 번져 있었지만, 이곳은 그조차 삼켜버린 암흑의 한복판이었다. 캡틴 서윤은 비스듬히 함장석에 몸을 기댄 채, 검푸른 빛을 내는 홀로그램 패드를 느릿하게 스크롤했다.
“이상 없음. 여전히 이상 없음. 뭐, 이상이 있는 게 이상한 일이지만.”
파일럿 류가 나른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의 눈동자는 왼쪽 눈을 덮고 있는 인공 홍채 렌즈와 함께 푸른빛으로 깜빡였고, 손가락은 조종간 위에서 리듬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의 신경계는 아크튜러스 호의 비행 시스템과 직접 연결되어 있었기에, 지루함은 더욱 증폭되는 듯했다. 이 드넓은 우주에서, 류에게 가장 큰 적은 언제나 지루함이었다.
“너무 평화로운 것도 문제죠. 이 광활한 빈 공간에서 혼자 떠다니다 보면, 내가 정말 존재하는 건가 싶고.”
서윤이 짧게 웃었다. 그녀의 오른팔에는 얇은 금속 피부가 정교하게 덮여 있었는데, 과거 어떤 사고로 잃어버린 팔을 대체한 것이었다. 그 금속 피부 아래로는 함선의 모든 정보가 실시간으로 흐르는 미세 회로가 박혀 있어, 그녀의 시야에 직접 투사되고 있었다. 지금은 그저 텅 빈 에너지 수치와 항로 데이터만이 의미 없이 깜빡일 뿐이었다.
“그럼 자네는 뭔가 특이한 거라도 발견하고 싶은 건가? 저 너머에서 우리를 환영할 알 수 없는 지성체라도?”
엔지니어 강이 뒤쪽 작업대에서 고개를 들었다. 그의 얼굴은 기름때와 땀으로 번들거렸고, 낡은 작업복은 곳곳이 헤져 있었다. 강은 사이버네틱스 의수족 덕분에 온갖 위험천만한 작업을 능숙하게 해낼 수 있었지만, 그의 손은 늘 무언가를 만지고 뜯고 조립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듯했다.
“지성체까지는 바라지도 않아요. 그냥, 아주 작고 예쁜 유성이라도 하나 지나갔으면 좋겠다고요.” 류가 투덜거렸다.
“그럼 저기 과학부 지혁에게 부탁해 봐. 자네가 원하는 유성 하나쯤은 어디선가 스캔해 줄지도 모르지.” 서윤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때였다.
함교 전체를 감싸던 잔잔한 기계음이 순간적으로 높아졌다. 모니터마다 비상 알림이 깜빡이기 시작했다.
“뭔가 잡혔습니다! 비정상적인 에너지 패턴. 일반적인 항성 물질과는 다른데요.”
과학 담당 지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혁은 검은색 안경 너머로 잔뜩 상기된 눈을 빛내며 자신의 콘솔을 조작하고 있었다. 그의 얇은 손가락은 홀로그램 키보드 위를 춤추듯 오갔고, 팔목에 이식된 데이터 포트에서는 녹색 빛이 연신 뿜어져 나왔다.
“지혁, 무슨 일이야?” 서윤이 자세를 바로 하며 물었다.
“캡틴, 저희가 예상 항로를 벗어나긴 했지만… 이 구역은 관측된 적 없는 미개척 영역입니다. 그런데, 아주 특이한 에너지 서명을 포착했습니다.”
메인 스크린에 낯선 그래프와 숫자들이 빠르게 지나가기 시작했다. 보통 우주에서 발견되는 자연 현상과는 확연히 다른, 불규칙하면서도 동시에 정교한 파형이었다.
“인위적인 것 같다는 건가?” 서윤의 목소리에 미묘한 긴장감이 실렸다.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만, 자연 현상이라고 보기엔 너무도… 질서 정연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너무도 무질서합니다. 패턴이 있지만, 예측할 수 없습니다.” 지혁이 더듬거리며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학구적인 호기심과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뒤섞여 있었다.
“거리가 얼마나 되지?”
“초속 1.5광년 속도로 이동 중인 것으로 보아… 약 3시간 안에 시각 범위에 들어올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에너지는 매우 강합니다. 너무 강해서, 저희 센서가 왜곡되는 것 같아요.”
“왜곡?” 류가 조종간을 고쳐 잡았다. “그게 무슨 의미인데?”
“음… 마치 주위 공간 자체가 일렁이는 것 같달까요. 제가 가진 데이터로는 설명이 불가능합니다. 마치 센서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데이터를 거부해요. 하지만 에너지는… 존재합니다.”
서윤은 잠시 침묵했다.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이 광대한 공허 속에서, 그들은 그저 오래된 계약에 따라 미개척 성계를 탐사하는 것 외에는 아무런 임무도 없었다. 우주력 2650년. 인류가 이 암흑 우주에 발을 내디딘 지 수백 년이 지났지만, ‘외계 문명’의 흔적을 발견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인류가 이해할 수 있는 형태의 문명을 찾지 못했다.
“강, 엔진 출력 점검해. 비상 상황 대비해서 모든 시스템 스캔하고.” 서윤이 지시했다.
“알겠습니다, 캡틴. 하지만… 이런 상황은 매뉴얼에 없었는데요.” 강이 묵직한 목소리로 대답하며 서둘러 자신의 콘솔로 돌아갔다. 그의 사이버네틱스 의수가 정교하게 패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류, 진로 수정. 최저 항속으로 접근한다. 접근 코드는 ‘은하의 속삭임’으로.”
“최저 항속이라니… 설마 직접 보시겠다는 겁니까, 캡틴?” 류의 목소리에 경외감이 섞였다.
“그래. 이건 우리가 이 항해를 시작한 이유일지도 모르니까.” 서윤의 시선이 메인 스크린에 고정되었다. 아직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검은 심연 속, 알 수 없는 에너지가 흔들리고 있었다.
세 시간이 흐르는 동안, 아크튜러스 호의 함교에는 팽팽한 침묵이 흘렀다. 센서의 왜곡 현상은 더욱 심해졌고, 지혁은 연신 미간을 찌푸린 채 새로운 데이터를 해석하려 애썼지만 소용없었다.
“지휘부와 연락은?” 서윤이 물었다.
“외부 통신망 역시 심하게 교란되고 있습니다, 캡틴. 간신히 비상 신호는 보냈지만, 답신은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통신 담당 유진이 대답했다. 그녀의 차분한 목소리는 이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평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녀의 귀 뒤에는 작은 커뮤니케이션 임플란트가 빛나고 있었다.
“알았다. 각자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서윤의 시선은 다시 통창 너머로 향했다. 그리고 마침내, 검은 심연의 저편에서 무언가가 형태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희미한 얼룩 같았다. 하지만 아크튜러스 호가 한 걸음, 한 걸음 더 다가갈수록, 그 얼룩은 점차 선명한 윤곽을 띠기 시작했다.
그것은… 어떤 건물도, 우주선도, 자연의 암석도 아니었다.
거대한 검은색의… 결정체였다.
표면은 빛을 전혀 반사하지 않았다. 마치 모든 빛을 흡수해버리는 듯, 주변의 별빛조차 왜곡되어 보였다. 완벽한 다각형의 형태로 이루어져 있었지만, 그 배열은 기하학적으로 설명 불가능한 복잡성을 띠고 있었다. 육안으로도 감지되는 강렬한 에너지가 결정체의 표면에서 꿈틀거리는 듯했다.
“이게… 대체…?” 류의 목소리가 떨렸다.
“센서가… 먹통이 되었습니다. 아무것도 읽히지 않아요. 질량, 구성 원소, 에너지 수치… 모두 ‘측정 불가’입니다.” 지혁은 거의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그의 안경 너머 눈동자가 공포에 질려 커져 있었다.
아크튜러스 호가 그 거대한 결정체에 약 100킬로미터까지 접근하자, 함선 전체가 미세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함교의 홀로그램 패드들이 일제히 깜빡였고, 몇몇 보조 스크린은 지지직거리는 노이즈를 뿜어냈다.
“캡틴, 메인 동력 불안정! 보조 시스템 가동 중이지만, 알 수 없는 에너지 간섭입니다!” 강이 소리쳤다. 그의 이식된 팔에서 불꽃이 튀는 듯한 에러 메시지가 깜빡였다.
서윤은 팔에 박힌 금속 피부를 통해 흘러들어오는 정보에 집중했다. 함선 시스템의 모든 경고가 붉은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시선은 오직 저 검은 결정체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 순간, 거대한 결정체의 한가운데에서 섬광이 터져 나왔다.
그것은 일반적인 빛이 아니었다. 어떤 색깔로도 정의할 수 없는, 너무나도 순수하고 압도적인 빛이었다. 그 빛은 우주 공간을 찢어발기는 듯, 아크튜러스 호의 통창 너머로 그대로 쏟아져 들어왔다.
“모든 시스템 비상 정지! 선체 방어막 최대 출력!” 서윤이 절규하듯 외쳤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빛은 아크튜러스 호의 방어막을 뚫고 함교 내부로 파고들었다. 눈을 가릴 틈도 없이, 승무원들의 시야는 순식간에 압도적인 빛으로 뒤덮였다. 그 빛은 고통스럽게 망막을 꿰뚫는 동시에, 영혼의 가장 깊은 곳을 건드리는 듯한 알 수 없는 전율을 선사했다.
그리고, 침묵.
모든 것이 멈춘 듯했다.
함선의 기계음도, 승무원들의 숨소리도.
서윤의 정신이 아득해지는 가운데, 그녀의 머릿속에 알 수 없는 영상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무수히 많은 별들, 생명의 시작, 그리고… 끝.
형언할 수 없는 존재들의 그림자.
미지의 언어로 속삭이는 듯한, 고통과 경외가 뒤섞인 목소리들.
정신을 차렸을 때, 서윤은 함장석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온몸의 근육이 경직된 듯 굳어 있었고, 심장이 미친 듯이 요동치고 있었다.
눈앞의 메인 스크린은 여전히 꺼져 있었고, 함교는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 빛나는 것이 있었다.
바로 그녀의 눈앞, 메인 콘솔 위에,
손바닥만 한 크기의 검은색 조각이 놓여 있었다.
거대한 결정체와 완벽하게 똑같은 재질과 형태.
주변의 빛을 모두 흡수하는 듯한, 완벽한 어둠을 품은 조각.
서윤은 느릿하게 손을 뻗었다.
그 조각을 만지는 순간, 손끝에서부터 전율이 시작되어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그녀의 뇌리에 새로운 영상이 섬광처럼 스쳐 지나갔다.
검은 공간 속에서, 무수히 많은 눈동자들이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물질이 아니었다.
그것은… 우주의 기억이자,
모든 것의 시작이며,
모든 것의 끝이었다.
“캡틴… 괜찮으십니까?”
류의 떨리는 목소리가 어둠 속에서 들려왔다.
서윤은 숨을 들이켰다.
손안의 검은 조각은 차갑도록 싸늘했다.
하지만 그 차가움 속에서, 알 수 없는 온기가 느껴지는 듯했다.
“아니.”
서윤은 낮게 읊조렸다.
“우리는… 괜찮지 않다.”
그녀의 시선은 다시 통창 너머의 거대한 검은 결정체를 향했다.
그것은 여전히 그곳에 존재했지만, 어딘가 달라진 듯했다.
아니, 달라진 것은 그녀 자신이었다.
이것은 인류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진정한 미지의 시작이었다.
그들은 망각된 우주의 가장 깊은 곳에서,
말 그대로 ‘흔적’을 발견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흔적은 이제, 그들 안에 새겨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