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펑크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챕터 1: 폐허 속의 잔해]

축축하고 비좁은 방 안. 강하진은 눅진한 벽에 기대어 흐릿한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낡은 환풍구에서는 곰팡이 냄새가 섞인 습한 공기가 겨우 비집고 들어왔고, 그마저도 천천히 타들어 가는 저질 전구의 오존 냄새에 파묻혔다. 바깥에서는 쉴 새 없이 비가 쏟아지는 소리가 들렸다. 거대한 도시의 심장이 뛰는 듯한 둔탁한 진동이 닳아빠진 매트리스를 타고 전해져 왔다.

왼쪽 어깨의 통증이 욱신거렸다. 싸구려 인조 근육과 구형 합금으로 어설프게 교체된 팔은 가끔 제멋대로 경련을 일으켰다. 그것은 지난날의 영광, 그리고 추락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잔혹한 징표였다. 하진은 한때 이 도시의 그림자 속에서 가장 빠른 손과 가장 예리한 정신을 가진 자 중 하나였다. ‘넷 러너’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시절, 그녀의 시냅스는 도시의 모든 데이터 흐름과 연결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녀는 섹터 7의 가장 음습한 골목, 폐기물 더미 속에서나 볼 법한 초라한 방에서 눈을 뜨고 있었다.

그 모든 것의 시작은, 아니 끝은 바로 그 녀석 때문이었다. 오재혁. 한때 그녀의 가장 친한 동료이자, 같은 꿈을 꾸던 유일한 친구라고 믿었던 남자.

하진은 침대 옆 협탁에 놓인 조악한 데이터 크리스탈 조각을 만지작거렸다. 오래전, 폐기된 서버 뭉치에서 겨우 건져낸 잔해. 그 안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아니, 남아있을 리 없었다. 모든 것은 깨끗하게 지워지고, 재혁의 이름으로 다시 쓰였다.

그날 밤, 그녀는 재혁과 함께 코퍼레이션 ‘헤라클레스’의 최심부 보안 서버를 해킹하고 있었다. 도시 전체를 쥐락펴락하는 거대 기업의 은밀한 금고를 여는 일. 위험했지만, 둘의 완벽한 호흡이라면 불가능할 것도 없었다. 시스템의 마지막 방어막이 뚫리는 순간, 재혁은 뒤돌아섰다. 그의 얼굴에는 난생 처음 보는 섬뜩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미안하다, 하진. 이건 네 몫이 아니야. 애초에, 네 능력으로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었지.”

그 말과 함께, 그녀의 뇌 속으로 침투한 전자기 충격이 시야를 새하얗게 태웠다. 온몸의 신경망이 불타는 듯한 고통과 함께 그녀는 의식을 잃었다. 깨어났을 때 그녀는 차가운 감옥 바닥에 버려져 있었고, 왼쪽 팔은 거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으스러져 있었다. 재혁은 사라졌고, 헤라클레스 서버 침투의 모든 공은 그에게 돌아갔다. 그는 영웅이 되었고, 하진은 희생양이 되었다.

바닥에 널브러진 낡은 단말기에서 지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 멀리 도시 중심부의 스카이라인을 수놓은 거대 전광판의 불빛이 얇은 창문을 통해 희미하게 새어 들어왔다. 전광판 속에서는 재혁의 얼굴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코퍼레이션 ‘프록시마’의 새로운 AI 기반 시티 운영 시스템 발표회였다. 재혁은 이제 프록시마의 핵심 임원이자, 차세대 기술의 선구자로 추앙받고 있었다. 그의 옆에는 헤라클레스의 최고 책임자가 서 있었다.

하진의 눈이 가늘어졌다. 불과 2년 만이었다. 2년 전, 감옥에서 풀려난 그녀는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살아남았다. 폐기물 더미를 뒤져 쓸만한 부품을 찾아내고, 버려진 서버의 잔해 속에서 데이터를 복구하며, 기어이 자신만의 작은 은신처를 만들었다. 모든 것은, 오직 하나의 목적을 위해서였다.

화면 속 재혁의 미소는 너무나도 밝아서, 비웃음처럼 느껴졌다. 손끝에서 찌르르한 전류가 흘렀다. 부서진 왼팔의 인조 근육이 제멋대로 수축했다. 그녀의 내면에 잠자고 있던 무언가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비좁은 방에 그녀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다. 낡은 단말기 앞에 앉아, 부서진 데이터 크리스탈 조각을 단말기의 포트에 끼웠다. 당연히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끈기 있게 작업을 시작했다. 닳아빠진 키보드 위로 그녀의 손가락이 춤추기 시작했다. 투박한 합금 팔이었지만, 움직임은 여전히 날카로웠다.

사라진 데이터를 복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데이터가 사라진 흔적을 추적하는 것은 가능했다. 재혁이 모든 것을 깨끗이 지웠다고 생각했겠지만, 완벽한 흔적 지우기란 없었다. 특히, 그녀가 손수 구축했던 보안 프로토콜을 통과하면서 남긴 미세한 흔적들은.

하진의 눈동자가 단말기 화면의 복잡한 코드 속을 훑었다. 초록색 글자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그녀의 두뇌가 다시금 활성화되는 듯한 기분이었다. 고통스러웠던 과거가 그녀의 발목을 잡는 대신, 오히려 그녀를 더 날카롭게 연마하고 있었다.

몇 시간이 흘렀을까. 바깥의 비는 잦아들었지만, 도시는 여전히 빛과 어둠의 대비 속에 잠겨 있었다. 하진은 복구된 아주 작은 데이터 조각을 발견했다. 암호화된 파일명. 그러나 그녀에게는 낯설지 않았다. 그것은 재혁과 함께 코드를 만들 때 사용했던 자신들만의 암호였다.

**<0410.프로젝트_나비효과>**

하진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번졌다. 나비효과. 작은 나비의 날갯짓이 거대한 폭풍을 일으킨다는 그 말. 재혁이 그렇게나 좋아했던 개념이었다. 그리고 이제, 그녀가 그 나비가 될 차례였다.

“그래, 재혁. 네가 일으킨 작은 바람이, 이제 태풍이 되어 너를 덮칠 거야.”

그녀는 어둠 속에서 빛나는 도시의 중심부를 향해 시선을 던졌다. 그곳에 재혁이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 그녀의 복수가 있었다. 이제 시작이다. 폐허 속에서 다시 일어선 그녀의 처절한 복수극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