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아포칼립스 생존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어둠이 깊어진 도시의 심장부, 낡았지만 번듯한 오피스텔 숲속에 박힌 내 보금자리는 고요했다. 민준, 스물아홉. 디지털 세상에서 홀로 생존하는 이 시대의 전형적인 유령. 노트북 화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빛이 내 얼굴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시시한 온라인 뉴스를 훑어보는 손가락은 피곤했지만, 잠은 쉬이 오지 않았다. 밤이 주는 특유의 침묵은 나를 더 예민하게 만들 뿐이었다.

그날 밤의 시작은 사소했다.

탁, 탁.
주방 쪽에서 희미한 소리가 들렸다. 별다른 의미 없이 고개를 돌렸다. 내가 마지막으로 정리했던 그릇들이 가지런히 놓여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다시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건조한 공기가 코끝을 스쳤다. 보일러를 약하게 틀었지만, 이상하리만치 서늘한 기운이 발목을 타고 올라왔다.

‘환기를 안 해서 그러나.’

창문을 열까 잠시 고민했지만, 밖은 이미 자정을 넘긴 시간이었다. 도시의 밤은 늘 그랬듯 웅성거렸지만, 왠지 모르게 오늘 밤은 그 소리마저 멀게 느껴졌다. 마치 이 아파트만이 거대한 유리벽 안에 갇힌 듯한 고립감.

그때였다. 거실 천장에 달린 주등이 깜빡이기 시작했다.
한번, 두 번. 짧은 순간, 어둠이 찾아왔다 사라졌다. 나는 눈을 찌푸렸다.
“젠장, 또야?”
이 오피스텔은 지은 지 꽤 되었으니 전기가 불안정한가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몇 달 전부터 간헐적으로 겪던 현상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깜빡임이 멈추지 않았다. 규칙 없이 불이 들어왔다가 꺼지기를 반복했다. 마치 누군가 스위치를 장난스럽게 건드리는 것처럼.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로 향했다. 불빛은 이제 거의 디스코텍처럼 빠르게 점멸하고 있었다. 심장이 이상하게 두근거렸다.

“이봐, 장난치지 마.”
공허한 거실에 내 목소리가 울렸다. 물론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손을 뻗어 벽 스위치를 눌렀다. 틱, 틱. 스위치는 반응했지만, 불빛의 점멸은 계속되었다. 오히려 더 빠르고 거칠게.

순간, 불빛이 일제히 꺼졌다.
그리고 어둠. 완벽한 어둠이 나를 집어삼켰다. 익숙한 내 집 안에서 이렇게 깊은 어둠을 마주한 것은 처음이었다. 손을 뻗으니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젠장, 정전인가?”
휴대폰을 더듬어 찾아 플래시를 켰다. 좁은 빛줄기가 거실을 비추자, 방금 전까지 눈에 익었던 가구들이 낯선 그림자를 드리웠다. 빛이 닿지 않는 구석은 더욱 깊은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그때, 내 뒤편에서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몸이 굳었다. 휴대폰 불빛을 서둘러 돌렸다. 소리의 근원지는 부엌. 그곳에 놓여있던 냄비가 식탁 아래로 떨어져 있었다. 쨍그랑, 하고 깨진 것은 없었지만, 그 소리는 어둠 속에서 유난히 날카롭게 들렸다.

“누구…야?”
목소리가 떨렸다. 아무도 없는 집에, 냄비가 저절로 떨어질 리는 없었다. 바람? 창문은 닫혀있었다. 고양이? 나는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았다.

공포가 심장 박동을 가속시켰다. 나는 한 걸음씩 뒤로 물러났다. 차가운 기운이 이제는 온몸을 감싸는 것 같았다.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느낌.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는 듯한 시선이 느껴졌다.

거실장 위에 놓여있던 리모컨이 스르륵, 움직였다.
천천히, 정말 천천히. 마치 투명한 손가락이 미는 것처럼. 리모컨은 모서리까지 이동하더니, 툭, 하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흐읍!”
나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이건 환각이 아니었다. 분명 내 눈으로 본 현상이었다. 이성을 부여잡으려 애썼다.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은 없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하지만 심장은 이성이 지배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이젠 공포를 넘어서 분노가 치밀었다.
“누구냐고! 나와!”
나는 소리쳤다. 내 목소리는 떨렸지만, 공포에 눌려있기만을 거부했다.
그 순간, 거실 벽에 걸려있던 액자가 삐걱거리며 기울더니, 순식간에 바닥으로 추락했다. 콰앙! 유리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플래시 불빛이 파편에 반사되어 섬뜩하게 반짝였다.

나는 더 이상 이 상황을 버틸 수 없었다.
출입문으로 달아나야 했다.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현관을 향해 발을 내딛는 순간, 차가운 손이 내 발목을 쥐는 것 같았다.
“으악!”
몸의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다. 나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발목을 잡았던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환영인가? 아니, 그 차가운 감각은 너무나도 선명했다. 마치 얼음장 같은 손이 내 피부를 움켜쥐는 듯한 착각이었다.

거실 끝, 창문 밖은 여전히 도시의 불빛으로 가득했지만, 이곳은 완전히 격리된 지옥이었다.
창문 쪽에서 희미한 인기척이 느껴졌다. 빛이 닿지 않는 어둠 속, 무언가가 움직이는 것 같았다. 짙은 그림자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는 듯했다. 그것은 키가 크고, 희미하고, 형태가 없는 검은 덩어리 같았다.

내 심장이 미친 듯이 날뛰었다. 숨이 막혔다.
“뭐, 뭐야…”
그림자가 천천히 내게로 다가왔다. 발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주변 공기가 더욱 차가워지고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눈앞의 그림자가 흔들리더니, 이내 흐릿한 사람 형상을 띠기 시작했다.

그것은 손을 뻗는 것 같았다.
느릿하게, 나를 향해 다가오는 그 손가락들이 희미하게 보였다. 길고 앙상한.
나는 필사적으로 기어서 뒤로 물러났다. 현관문은 코앞이었지만, 마치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것처럼 느껴졌다.

그때, 내 등 뒤, 바로 현관문에서 철컥, 하고 잠금장치가 풀리는 소리가 났다.
설마.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분명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콰앙!
현관문이 활짝 열렸다. 밖은 도시의 불빛과 희미한 소음으로 가득했지만, 그 문턱을 넘어설 엄두가 나지 않았다.

열린 현관문 틈으로, 차가운 밤공기가 스며들어왔다. 그리고 그 바람 속에서, 나는 희미한 속삭임을 들었다.

*이젠… 어디에도… 안전한 곳은… 없어…*

그 목소리는 내 귓가에 속삭이는 듯했지만, 동시에 내 머릿속을 찢어발기는 듯했다.
집 안의 모든 불빛이 다시 미친 듯이 깜빡이기 시작했다. 열린 현관문 너머의 도시가, 내 집 안의 기괴한 현상과 겹쳐지면서 일그러지는 듯했다.

나는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어디로 가야 할까? 이 집 안은 지옥이 되었고, 저 문 밖의 세상도 더 이상 내가 알던 곳이 아닌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순간, 내 휴대폰 화면이 켜지며 메시지 하나가 도착했다.
발신자 불명. 내용은 단 한 문장.

[생존을 시작해야 합니다.]

집 안의 모든 불빛이 꺼지고, 완벽한 어둠 속에 나는 홀로 남겨졌다.
더 이상 나의 안전한 보금자리는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알고 있었다. 이 기괴한 현상들은, 단지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을.
이제는 도망칠 곳도, 숨을 곳도 없었다.
세상이 변하기 시작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