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바람이 날카로운 칼날처럼 뺨을 스쳤다. 단우는 거친 바위 능선을 기어오르며 필사적으로 발버둥 쳤다. 숨은 이미 목 끝까지 차올라 허파가 터질 것 같았다. 아래로는 아찔한 절벽과 끝없이 펼쳐진 설원. 발아래 자잘한 돌들이 미끄러지며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잃을 뻔했다.
“젠장…!”
이를 악물고 중얼거렸다. 보잘것없는 하급 무사인 자신에게 이 설산은 죽음이나 다름없었다. 몇 년 전, 문파의 사형들과 함께 영약 채집에 나섰다가 불의의 사고로 홀로 낙오된 뒤, 단우는 이 거대한 설산 속에서 한낱 미물에 불과했다. 추위와 굶주림, 그리고 언제 덮쳐올지 모르는 맹수들의 위협 속에서 살아남은 것은 기적에 가까웠다.
하지만 오늘은 그 기적조차 희미해지는 날이었다. 며칠 전부터 그의 뒤를 쫓던 그림자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거대한 설호(雪虎), 무려 한 장이 넘는 몸길이에 푸른 빛이 감도는 눈을 가진 맹수였다. 녀석의 으르렁거리는 소리는 심장을 얼어붙게 할 만큼 차갑고 강력했다.
“크으읍…!”
몸을 일으키려던 순간, 발밑의 바위가 우지끈 소리를 내며 무너져 내렸다. 단우는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수십 길 아래의 심연 속으로 추락했다. 뼈가 부서지는 듯한 고통이 전신을 강타했지만, 정신을 잃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추락은 끝없이 이어지는 듯했고, 이대로 온몸이 찢겨 죽는 것인가 하는 절망감이 밀려왔다.
콰아앙!
얼음이 깨지는 듯한 굉음과 함께 단우는 차가운 물속으로 처박혔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온몸의 감각이 마비될 정도로 차가웠지만, 동시에 어딘가에 부딪혀 죽는 것만은 면했다는 안도감이 밀려왔다. 간신히 수면 위로 떠올라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주위를 둘러보자, 그곳은 거대한 얼음 동굴이었다.
푸른빛이 희미하게 감도는 동굴 안은 묘한 신비로움을 풍겼다. 천장과 벽에는 온통 낯선 문양들이 새겨져 있었는데, 단순한 조각이 아니라 살아 숨 쉬는 듯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바닥에는 얼음 결정이 반짝이고,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만이 정적을 깨뜨렸다.
“여, 여기가 어디지…?”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설호에게 쫓겨 우연히 발견한 곳이었지만, 이곳은 분명 평범한 동굴이 아니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얼음 바닥이 쨍그랑 소리를 내며 울렸다. 동굴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갈수록 푸른빛은 더욱 선명해졌고, 공기 중에는 어떤 강력한 기운이 떠다니는 듯했다. 무림인으로서 미약하나마 내공을 익혔던 단우는 본능적으로 그것이 심상치 않은 힘임을 직감했다.
동굴의 가장 안쪽, 거대한 얼음 기둥으로 둘러싸인 작은 공간에 이르자 그의 눈은 휘둥그레졌다. 그곳에는 기이한 형태의 제단이 자리하고 있었다. 고대 문자들이 새겨진 검은색 암석으로 만들어진 제단 위에는, 마치 살아있는 심장처럼 희미하게 박동하는 수정 구슬 하나가 놓여 있었다.
구슬은 짙푸른색을 띠고 있었고, 그 안에는 마치 은하수가 갇혀 있는 듯 수많은 별들이 반짝였다. 동시에 차가운 얼음 동굴과는 상반되는 뜨거운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단우는 홀린 듯 구슬에 다가갔다.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리는 듯했다.
“이게… 뭐지…?”
손을 뻗어 조심스럽게 구슬을 만졌다. 차가운 얼음 같으면서도 뜨거운 불꽃 같았고, 단단한 바위 같으면서도 부드러운 물결 같았다. 형언할 수 없는 감촉이었다. 구슬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은 단우의 몸을 꿰뚫는 듯했다. 그의 어설픈 내공과는 차원이 다른, 거대하고 원초적인 힘이었다.
그 순간, 구슬에서 뿜어져 나오던 푸른빛이 갑자기 폭발하듯 강렬해졌다.
쉬이이이이익!
눈을 멀게 할 듯한 빛과 함께 구슬이 녹아내리는 것처럼 보였다. 녹아내린 푸른빛은 단우의 오른손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뜨거웠다. 너무나 뜨거워서 손 전체가 불타는 듯한 고통이 엄습했다. 하지만 그는 손을 뗄 수 없었다. 마치 손이 구슬에 달라붙은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아악! 으아아악!”
고통에 몸부림치며 비명을 질렀다. 몸속으로 흘러들어오는 푸른빛은 그의 혈관을 타고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세포 하나하나가 찢겨 나가는 듯한 고통 속에서, 단우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전신이 변화하고 있음을 느꼈다. 내공의 흐름이 뒤틀리고, 뼛속 깊이 스며드는 알 수 없는 힘이 그의 존재 자체를 재구성하는 듯했다.
푸른빛은 단우의 오른손바닥에 하나의 문양을 새겨 넣었다. 마치 하늘을 나는 용의 비늘 같기도 하고, 번개가 치는 듯한 형상이기도 한 복잡하고 아름다운 문양이었다. 문양이 완성되자마자 고통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대신 전신에 넘쳐흐르는 압도적인 힘과 맑아진 정신, 그리고…
수많은 이미지와 정보들이 머릿속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그것은 마치 오래전 잊혔던 고대의 지식, 이 세상의 근원과도 같은 힘에 대한 이해, 그리고… 마법.
마법? 단우는 혼란스러웠다. 무림에서 마법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내공과 심법, 검법과 권법이 있을 뿐. 하지만 그의 머릿속에 각인된 지식은 분명 ‘마법’이라 불리는 것이었다. 손바닥의 문양이 꿈틀거리는 듯했다.
그 순간, 동굴 전체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얼음 기둥들이 우르릉거리며 균열이 생겼고, 천장에서 거대한 얼음 조각들이 떨어져 내렸다. 제단이 서 있던 바닥에서 거대한 균열이 갈라지며 짙은 어둠이 뿜어져 나왔다.
크아아아아아아!
심장을 찢는 듯한 포효가 어둠 속에서 울려 퍼졌다. 그것은 설호의 울음소리보다 훨씬 거대하고, 고대의 흉포함이 느껴지는 짐승의 소리였다. 동굴의 벽에 새겨져 있던 문양들이 섬광처럼 빛나더니, 어둠 속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단우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자신이 방금 깨운 힘이, 이 동굴에 잠들어 있던 무언가를 깨웠다는 것을. 그리고 그 깨어난 존재는 자신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오른손바닥의 푸른 문양이 뜨겁게 타올랐다. 그는 이제 겨우 살아남았을 뿐인데, 고대의 힘은 새로운 시작이자 동시에 더 큰 재앙의 서막처럼 느껴졌다.
어둠 속에서 두 개의 붉은 눈이 섬뜩하게 번뜩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