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카 액션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 제142화. 붉은 노을 아래, 금지된 맹세

강철 발굽이 행성 ‘에트리아’의 붉은 흙을 짓밟았다. 천둥매의 거대한 동체가 지축을 흔들며 전장을 가로질렀다. 시야에 가득 찬 섬광과 폭음 속에서도 강휘의 시선은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전투는 격렬했다. 놈들은 물러서지 않았고, 우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좌익 사수, 산개하라! 제3방어선 돌파 시도 중이다!”

통신망을 타고 사령관 한태준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찢어질 듯 울려 퍼졌다. 강휘는 그의 명령에 기계적으로 응답하며 왼손 조작간을 틀었다. 천둥매의 오른팔에 장착된 펄스 캐논이 굉음을 토하며 푸른 에너지를 뿜어냈다. 목표는 정확했다. 전방 300미터 지점, 놈들의 주력 메카인 ‘미명(未明)’이 서서히 녹아내렸다.

하지만 그 순간, 그의 시야를 스쳐 지나가는 잔상에 강휘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일반적인 미명과는 확연히 다른, 날렵하면서도 유려한 은빛 기체. 놈들의 지휘형 메카, ‘오리진(Origin)’. 그리고 그 기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묘하게도 익숙한 푸른 섬광.

_안 돼…_

강휘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는 알고 있었다. 저 오리진의 조종석에 누가 타고 있는지. 아니, 정확히는 누가 타고 *있을 수도* 있는지.

“강휘 소령, 뭘 망설이나! 전방 목표물 조준!” 한태준 사령관의 불호령이 다시 귓전을 때렸다.

강휘는 이를 악물었다. 망설일 때가 아니었다. 이곳은 전장이다. 인간 연합과 Xylos 종족 간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 한복판. 개인적인 감정은 사치였다. 하지만…

그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과거의 한 조각을 떠올렸다.

에트리아의 붉은 노을이 두 존재를 감싸 안았다. 인간의 체온과 이질적인 Xylos 종족의 차가운 피부가 닿는 순간, 세상의 모든 것이 멈춘 듯했다. 엘리아는 투명한 눈동자로 강휘를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피부에 흐르는 미묘한 푸른 발광은 마치 별빛처럼 아름다웠다.

“강휘… 이것은… 금지된 일이야.”

그녀의 목소리는 낮고 부드러웠다. Xylos 종족 특유의 공명음이 섞여 있었지만, 수십 번의 노력 끝에 인간의 언어를 익힌 그녀의 말투는 이제 완벽에 가까웠다.

강휘는 그녀의 뺨을 부드럽게 감쌌다. 그의 손가락 끝에 닿는 그녀의 피부는 차갑지만, 그 안에서 뛰는 미약한 맥동은 생명으로 가득했다.

“알아. 하지만… 멈출 수가 없어.”

어째서였을까.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 포로 수용소의 차가운 철창 너머에서 마주했던 그 순간부터, 강휘의 심장은 다른 방식으로 뛰기 시작했다. 그녀는 Xylos 종족의 유전학자이자, 동시에 그들의 평화 협상단 대표였다. 하지만 휴전 협정은 결렬되었고, 그녀는 다시 인간의 포로가 되었다. 강휘는 그녀의 감시병이었고… 그리고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종족의 경계를 넘는다는 것은 상상 이상의 대가를 치르는 일이었다. 인간 사회에서는 ‘이종족과의 유대’는 반역에 가까운 행위로 취급되었다. Xylos 종족 또한 외부 종족과의 접촉, 특히 감정적인 교류를 엄격히 금지했다. 두 사람의 사랑은 태생부터 금지되었고, 들키는 순간 모든 것을 잃을 터였다. 목숨까지도.

엘리아의 푸른 눈동자가 떨렸다. “우리는 너무 달라. 심장의 박동부터, 숨 쉬는 공기까지… 이 모든 것이 우리를 반대하는 이유야.”

“상관 없어.” 강휘는 그녀를 더욱 끌어안았다. “다르다는 건, 서로를 더 많이 알아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해. 심장의 박동이 달라도… 서로에게 울릴 수 있다면, 그게 사랑 아니겠어?”

그의 말에 엘리아는 고개를 숙였다. 붉은 노을빛이 그녀의 은빛 머리카락에 부딪혀 오묘한 빛을 냈다. 그녀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렸다.

“만약… 우리가 함께 한다면, 이 전쟁은… 결코 끝나지 않을 거야. 우리는… 모두에게 배척당할 거야.”

“알아. 하지만… 후회하진 않을 거야. 널 사랑한 것을.”

그 순간, 멀리서 경보음이 울려 퍼졌다. 인간 연합 순찰대의 접근이었다. 둘은 황급히 몸을 숨겼고, 강휘는 다시 차가운 감시병의 얼굴로 돌아갔다. 그들의 금지된 맹세는 붉은 노을 아래, 비밀스럽게 심장 깊숙이 각인되었다.

“강휘! 집중해!”

한태준 사령관의 절규에 가까운 목소리가 강휘를 현실로 끌어당겼다. 전장은 아비규환이었다. 놈들의 오리진 기체는 놀라운 기동성으로 아군 전선을 유린하고 있었다. 그 기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 섬광은, 마치 엘리아의 피부에서 발산되던 빛처럼 느껴졌다.

그 순간, 오리진이 아군 후방으로 빠르게 파고드는 것이 보였다. 목표는 명확했다. 사령부 지휘관. 한태준 사령관의 주력 메카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오리진의 캐논이 불을 뿜었다.

_안 돼!_

강휘의 손이 저절로 움직였다. 천둥매의 강력한 부스터가 굉음을 내며 전장을 가로질렀다. 그는 아군 지휘관을 지키기 위해 오리진의 예상 경로에 자신의 기체를 밀어 넣었다. 거대한 충격이 천둥매의 동체를 강타했다. 방어막이 번쩍이며 겨우 공격을 막아냈다.

“강휘 소령! 무모한 짓이다!” 한태준 사령관의 목소리에 분노와 당황스러움이 뒤섞여 있었다.

강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오직 오리진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오리진은 잠시 주춤하더니, 다시 한번 캐논을 천둥매에게 겨냥했다. 그 순간, 강휘의 망막에 오리진의 통신 암호가 잡혔다.

익숙한 암호. 엘리아만이 사용하는 고유의 암호.

_엘리아… 네가 정말 거기에 있는 건가._

오리진이 다시 공격을 시작하려던 찰나, 강휘는 천둥매의 비상 통신 채널을 열었다. 그리고 누구도 예상치 못한 메시지를 짧게 송신했다.

“…코드: 붉은 노을.”

전장 전체가 일순 정지한 듯했다. 인간 연합군과 Xylos 종족 모두 강휘의 예상치 못한 행동에 혼란스러워했다. Xylos의 오리진 기체는 멈칫했다. 그리고 잠시 후, 오리진의 통신 시스템에서 강휘의 개인 채널로 답신이 날아왔다.

익숙한, 그러나 이제는 너무나도 낯선 음색. 엘리아의 목소리였다.

“강휘… 정말 당신이었군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믿을 수 없다는 듯한 슬픔과 체념이 섞여 있었다. “우리는… 적으로 만날 수밖에 없었네요.”

“엘리아… 왜 여기 있는 거야?” 강휘의 목소리는 격앙되어 있었다. 그녀가 전장의 최전선에, 그것도 지휘형 메카를 타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난… 내 종족을 위해 싸울 뿐이에요. 당신처럼.”

“하지만… 너무 위험해.”

“이 전쟁터에서 위험하지 않은 자가 있나요? 당신을 향해 무기를 겨눠야 하는 이 상황이… 나에겐 더 큰 고통이에요.”

그녀의 말에 강휘의 심장이 저며 들었다. 그때, 한태준 사령관의 고함이 다시 터져 나왔다.

“강휘 소령! 즉시 그 통신을 끊어! 반역이다! 적과 내통이라니!”

강휘는 사령관의 명령을 무시했다. 그의 눈에는 오직 오리진, 그리고 그 안에 있을 엘리아만 보였다. 그는 자신의 메카 제어판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손가락이 위험한 버튼을 향해 움직였다.

_이것은… 우리 둘 중 하나가 죽는 싸움이 될 거야._

그러나 그의 뇌리에 스쳐 지나가는 것은 붉은 노을 아래 나눴던 맹세였다. 서로에게 울렸던 심장의 박동.

“엘리아.” 강휘는 낮게 읊조렸다. 그의 목소리에는 결연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나는… 널 잃을 수 없어.”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천둥매의 모든 무장 시스템이 재활성화되었다. 그러나 그가 조준한 것은 적군 진영의 가장 약한 방어선이었다. 그것은 Xylos 종족을 향한 공격이 아니었다.

오히려, **엘리아를 구하기 위한 길을 여는 행위였다.**

강휘의 눈이 이글거렸다.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기로 결정했다. 이 전쟁에서, 그는 자신의 사랑을 위해 다른 길을 택할 것이다.

“코드: 해방.”

천둥매의 주포가 맹렬한 섬광을 내뿜었다. 그것은 명령 불복종이자, 모든 것을 건 도박의 시작이었다. 전장의 붉은 흙 위에서, 금지된 사랑을 위한 거대한 균열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단지 강휘의 심장만이, 미친 듯이 격렬하게 울리고 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