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짙게 깔린 우주, 수천 개의 암석 조각들이 마치 죽은 별들의 무덤처럼 떠다니는 곳. 그곳에서도 가장 깊고 은밀한, 코드명 ‘은신처-7’이라 불리는 거대 소행성 기지에는 바쁜 활기가 돌고 있었다. 낡고 투박한 수송선들이 자원을 싣고 하역장에 줄을 섰고, 훈련용 전투기들이 굉음을 내며 이착륙장을 스쳐 지나갔다. 이곳은 제국의 눈을 피해 혁명을 꿈꾸는 이들의 유일한 안식처이자 전초 기지였다.
리안은 통신기의 잡음을 들으며 광물 하역 작업이 진행되는 격납고를 응시했다. 젊지만 지친 기색이 역력한 그의 얼굴에는 이 순간의 평화가 언제 깨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그림자처럼 드리워져 있었다. 몇 시간 전, 그들은 제국 함대의 보급선을 성공적으로 습격했다. 작은 승리였지만, 지쳐있던 대원들의 사기를 올리기엔 충분했다.
“또 다른 정찰선이 보고됐어, 리안.”
낮고 침착한 목소리가 그의 곁을 스쳤다. 기술 담당관 세라였다. 그녀는 한 손에 데이터 패드를 든 채, 홀로그램 성도를 가리켰다. 점멸하는 붉은 점들이 제국군의 활동 영역을 표시하고 있었다.
“벌써 세 대째인가? 놈들이 우릴 찾는 건 시간 문제겠군.”
리안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세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습격이 놈들의 심기를 꽤 건드렸을 거야. 함대 재편성 움직임도 포착됐고.”
“하지만 후회는 없어. 시민들은 더 이상 제국의 착취를 감당할 수 없었으니까.” 리안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는 제국민의 아들로 태어나, 제국민의 고통을 보며 자랐다. 혁명은 그에게 선택이 아닌 필연이었다. “우린 계속 싸울 거야, 세라. 마지막 한 명까지.”
세라는 그런 리안의 어깨를 툭 쳤다. “알아. 나도 마찬가지야. 그러니 너무 혼자 짊어지려 하지 마.”
그녀의 말에 리안은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그의 주위를 스쳐 지나가는 대원들의 얼굴에는 피로와 함께 희망이 서려 있었다. 평범한 광부, 기술자, 상인들이었다. 이들이 제국의 거대한 폭정에 맞서 싸우고 있었다. 이들을 지켜야 했다. 그 순간, 기지 전체를 뒤흔드는 경보음이 울려 퍼졌다.
🚨🚨🚨 “경보! 경보! 미확인 함대 출현! 전방위에서 접근 중!” 🚨🚨🚨
붉은 비상등이 깜빡이며 복도를 온통 피처럼 물들였다. 리안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미확인? 탐지망에 아무것도 없었는데!”
세라의 얼굴도 굳어졌다. “위성 센서가 먹통이 됐어! 놈들이 전자기 교란기를 사용하고 있어!”
그들은 통제실로 향하는 복도를 전력 질주했다. 통제실의 거대한 중앙 홀로그램에는 수십 개의 붉은 점들이 빠른 속도로 은신처-7을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그 점들의 크기는 단순한 정찰선이 아니었다.
“이게 무슨… 함대 전체인가?” 리안의 목소리에 절망감이 묻어났다.
“은신처-7 위치가 발각됐습니다! 제국 함대 제3 전단입니다! 기함 ‘철혈의 맹세’ 포착!” 한 대원이 절규하듯 외쳤다.
화면 한가운데, 압도적인 크기의 제국 기함 ‘철혈의 맹세’가 붉은 엔진 불꽃을 뿜으며 거대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 옆으로 수십 척의 순양함과 구축함, 그리고 셀 수 없는 수의 전투기들이 마치 우주를 뒤덮은 메뚜기 떼처럼 몰려오고 있었다.
“전 함선 전투 태세! 방어막 최대 출력! 요격기 발진!” 리안은 목이 터져라 소리쳤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이미 패색이 짙게 깔려 있었다. 그들은 상대가 되지 않았다. 제국은 이 작은 반란 세력을 말살하기 위해 군대의 절반이라도 보낼 기세였다.
파지지직! 첫 번째 제국군 레이저가 은신처-7의 외벽에 작렬했다. 거대한 충격이 기지 전체를 강타하며 대원들이 휘청거렸다. 이어서 수십, 수백 개의 광선이 쏟아져 내렸다.
“후방 방어선이 뚫렸습니다! 놈들이 내부로 진입하고 있어요!”
“제7 격납고 폭발! 전원 사망!”
“아아아악!”
통신망은 아비규환의 비명과 보고로 가득 찼다. 낡은 방어막은 제국 함대의 맹공을 버티지 못하고 곳곳에서 찢겨 나갔다. 반란군 전투기들은 용감하게 돌진했지만, 수적으로 압도적인 제국군 전투기들에 의해 순식간에 격추당했다. 우주 공간에는 폭발하는 파편과 잔해들이 빗발쳤다.
리안은 이를 악물었다. 이대로는 전멸이었다. 겨우 일궈낸 희망이 이렇게 허무하게 사라질 수는 없었다. 그의 눈이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는 홀로그램 화면을 훑었다. 수천 개의 소행성들, 그리고 그 사이에 숨겨진 위험한 ‘망자의 나선’이라 불리는 지대. 그곳은 짙은 가스 구름과 불안정한 에너지 포켓으로 가득한 곳이었다. 반란군에게는 익숙하지만 제국군에게는 미지의 영역.
“세라! 전 함선에 명령을 내려! 코드명 ‘유성우’ 개시! 전열을 ‘망자의 나선’으로 유인해!”
세라는 경악한 얼굴로 리안을 돌아봤다. “미친 짓이에요, 리안! 우리도 위험해요! 그곳은…”
“이대로 죽는 것보단 나아! 믿어줘, 세라! 우린 여기서 살아남아야 해!” 리안의 목소리는 절박했지만, 그 안에 담긴 결의는 단단했다.
세라는 한순간 주저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전 함선, 망자의 나선으로 긴급 회피! 제국 함대를 유인해!”
반란군 전투기들과 수송선들은 일제히 방향을 틀어, 마치 거대한 유성우처럼 망자의 나선으로 쇄도했다. 제국 함대는 이들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았다. 승리를 눈앞에 둔 사령관 칼락스는 망설임 없이 추격 명령을 내렸다. “겁쟁이 쥐새끼들! 도망칠 곳은 없다! 전 함선, 추격! 놈들을 망자의 나선에서 끝장내라!”
제국 함대의 거대한 함선들이 둔중한 몸체를 이끌고 소용돌이치는 가스 구름 속으로 진입했다. 그들의 거대한 센서는 불안정한 기류와 에너지를 감지했지만, 승리에 눈먼 제국군에게는 사소한 방해물에 불과했다.
리안이 탑승한 기함 ‘새벽’호가 선두에 서서 망자의 나선을 가로질렀다. 거대한 가스 기둥이 번개처럼 섬광을 터뜨렸고, 주변의 소행성들이 격렬하게 흔들렸다. 그들은 지금 지옥의 문턱을 지나고 있었다.
“목표 지점 확인! 리안!” 세라가 다급하게 외쳤다.
리안은 망설임 없이 명령했다. “발사! 연쇄 반응을 일으켜!”
새벽호와 남은 반란군 함선들이 일제히 특수 제작된 교란 장치를 발사했다. 교란 장치들은 망자의 나선 곳곳에 숨겨진 불안정한 에너지 포켓에 정확히 명중했다.
콰앙! 콰콰콰콰앙!
광란의 연쇄 폭발이 시작되었다. 거대한 가스 구름이 불타올랐고, 수십 개의 소행성이 내부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산산조각 났다. 폭발의 충격파는 거대한 파도처럼 우주 공간을 휩쓸었다.
제국 함대는 미처 피할 틈도 없었다. 선두에 서서 추격하던 순양함들이 불타는 파편과 함께 사라졌다. 거대한 함선들이 우왕좌왕하며 방향을 틀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다. 폭발은 거대한 불꽃의 폭풍을 일으키며 제국 함대의 절반을 집어삼켰다.
사령관 칼락스의 기함 ‘철혈의 맹세’도 맹렬한 폭발의 충격에 휘청거렸다. 거대한 방어막이 찢겨 나갔고, 선체 곳곳에서 불꽃이 솟아올랐다. 그는 경악에 찬 눈으로 홀로그램 화면을 바라봤다. 놈들의 자살 특공 전술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제국 함대를 삼키는 거대한 함정이었을 줄이야.
“함대 후퇴! 즉시 이 지옥에서 벗어나라!” 칼락스가 이성을 잃고 소리쳤다.
간신히 살아남은 제국 함선들이 뿔뿔이 흩어져 퇴각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반란군은 살아남았다. 하지만…
리안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홀로그램 화면을 응시했다. 폭발의 여파로 망자의 나선은 불지옥이 되었고, 그 너머로 은신처-7의 잔해가 보였다. 기지 전체가 파괴된 것은 아니었지만, 한쪽 면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수많은 인명이 희생되었을 터였다.
세라가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녀의 얼굴에도 흙먼지와 땀방울이 뒤섞여 있었다. “성공했어요, 리안. 그들이 후퇴합니다.”
리안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성공? 대가를 치렀을 뿐이야.”
그의 시선은 은신처-7의 잔해를 넘어, 끝없이 펼쳐진 우주를 향했다. 제국은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이번 실패로 인해 그들의 분노는 더욱 거세질 것이다.
“우린 더 깊은 곳으로 숨어야 해. 그리고… 더 강해져야겠지.”
리안의 눈빛이 흔들렸다. 지쳐 있었지만, 포기하지 않는 강렬한 불꽃이 그 안에서 타올랐다. 이제 겨우 시작일 뿐이었다. 이 기나긴 전쟁은 이제 막, 잔혹한 서막을 열었을 따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