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둠 속의 첫걸음
지하 30미터, 퀴퀴한 흙먼지와 콘크리트 냄새가 뒤섞인 공간에서 김현우는 헤드라이트 불빛에 의지해 비좁은 통로를 기어가고 있었다. 옆구리에 찬 액션캠은 연신 붉은 불빛을 깜빡이며 그의 모든 움직임을 기록 중이었다. 그의 손에 들린 낡은 태블릿은 이 일대의 지하 배관도와 전력선도를 띄우고 있었지만, 현우의 시선은 이미 해상도 낮은 지도를 넘어선 지 오래였다.
“젠장, 오늘도 꽝이네.”
투박하게 튀어나온 배관을 피해 몸을 비튼 현우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의 목소리는 지하 특유의 먹먹한 공기 속으로 흩어졌다. ‘도시 탐험가’라는, 그럴싸한 이름으로 자신을 포장했지만, 실상은 그저 낡고 버려진 공간을 헤집고 다니는 취미 생활에 불과했다. 그래도 가끔 터무니없는 전설 속 유적의 흔적을 발견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가 그를 이 어둡고 습한 곳으로 끌어들였다. 특히 이곳, 재개발 예정지인 구도심 지하 깊숙한 곳은 폐쇄된 지 수십 년이 넘은 터널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어 그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사냥터였다.
한참을 기어가던 현우의 헤드라이트가 문득 한 지점에 멈췄다. 보통의 콘크리트 벽면과 달리 유독 매끄럽고, 검푸른 빛을 띠는 벽돌들이 촘촘하게 박힌 곳이었다. 일반적인 시공 방식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이질적인 부분. 현우는 순간 숨을 들이켰다.
“이건… 뭐야?”
작게 읊조린 그가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벽돌 표면을 쓸어보았다. 차갑고 매끈한 감촉이 손끝에 닿았다. 흙먼지가 쌓여 언뜻 보이지 않았지만, 손으로 쓸어내자 검푸른 벽돌 사이에 희미한 문양이 드러났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기하학적인 무늬가 일정한 간격으로 새겨져 있었다. 그는 즉시 액션캠을 분리해 이 이상한 벽면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자, 여러분. 보십니까? 이건… 뭔가 다릅니다. 제가 지금껏 봐왔던 어떤 지하 시설물에서도 이런 양식은 찾아볼 수 없었어요. 혹시 아시는 분 계신가요?”
혼잣말처럼, 그러나 익숙하게 카메라를 향해 말했다. 그는 조심스럽게 벽면을 더듬었다. 틈새를 찾아 손가락을 넣어보기도 하고, 손바닥으로 두드려보기도 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의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파인 홈에 닿았다. 일반적인 스위치처럼 돌출된 형태가 아니라, 벽면과 완벽하게 일체화된 듯한 홈이었다. 현우는 본능적으로 그 홈에 손가락을 밀어 넣고 아래로 끌어내렸다.
_끼이이이이익—_
귀를 찢을 듯한 마찰음이 고요한 지하 공간을 갈랐다. 현우는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그의 헤드라이트가 가리킨 곳에서, 검푸른 벽돌로 이루어진 벽면의 일부가 서서히 안쪽으로 밀려들어 가기 시작했다. 묵직하고 육중한 소음이 지하 전체를 진동시키는 듯했다. 흙먼지가 사정없이 쏟아져 내렸고, 퀴퀴한 냄새 대신 짙은 곰팡이와 함께 흙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듯한, 알 수 없는 비릿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벽면이 완전히 안으로 들어가자, 그 너머로 어둠이 도사린 통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현우의 헤드라이트 불빛조차 제대로 비추지 못할 만큼 깊고 넓은 공간이었다. 그는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전설로만 듣던, 어쩌면 지도에도 기록되지 않은 ‘잊혀진 지하’가 그의 눈앞에 펼쳐진 것만 같았다.
“젠장… 진짜였나?”
현우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두려움보다는 흥분이 그의 온몸을 지배했다. 어쩌면 그는 지금, 자신의 평범한 일상을 송두리째 뒤흔들 거대한 미스터리의 문을 연 것일지도 몰랐다. 그는 조심스럽게 액션캠을 들고, 열린 문틈으로 발을 내디뎠다. 헤드라이트가 비추는 시야는 한정적이었지만, 불빛 너머로 보이는 공간은 그가 상상했던 것 이상이었다.
통로는 천장이 아득하게 높았고, 양옆으로는 기묘한 문양들이 새겨진 거대한 석벽이 이어져 있었다. 석벽의 돌들은 이전에 보았던 검푸른 벽돌과 비슷한 재질이었지만, 훨씬 거대하고 웅장했다. 수천 년의 세월을 견딘 듯, 표면은 거칠었지만 그 안에 담긴 어떤 힘이 느껴지는 듯했다. 공기마저도 달랐다. 습하고 퀴퀴했던 바깥 통로와 달리, 이곳은 싸늘하면서도 묘하게 건조한 공기가 감돌고 있었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이었다.
“이게… 대체 언제 만들어진 거지?”
현우는 감탄사를 내뱉듯 말했다. 그의 목소리가 긴 통로를 따라 메아리쳤다. 발아래를 조심스럽게 비추자, 길고 넓은 통로 바닥에는 검은색과 회색의 돌들이 정교하게 깔려 있었다. 불빛이 미치지 못하는 저 너머는 끝없는 어둠뿐이었다. 그는 한 발짝, 한 발짝 조심스럽게 통로 안으로 들어섰다.
얼마쯤 걸었을까, 통로가 끝나는 지점에서 거대한 홀이 나타났다. 헤드라이트의 불빛이 희미하게나마 닿자, 현우는 눈을 크게 떴다. 홀의 중앙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석상이 우뚝 솟아 있었고, 주변으로는 여러 개의 작은 기둥들이 서 있었다. 석상과 기둥들에는 벽면에 새겨진 것과 동일한, 혹은 더 복잡하고 거대한 문양들이 빼곡히 새겨져 있었다.
“세상에… 이건… 유적이야. 진짜 유적이라고!”
현우는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그의 목소리에는 경외감과 함께 설명할 수 없는 흥분이 뒤섞여 있었다. 그는 액션캠을 고정시키고 홀 안으로 좀 더 깊숙이 들어갔다. 돌조각 하나하나에 역사의 무게가 느껴지는 듯했다. 고개를 들어 천장을 올려다보자, 수십 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높이에 까마득한 어둠이 드리워져 있었다. 이곳에 인공적인 광원은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어둠 속에서 은은하게 빛나는 무언가가 느껴지는 듯했다. 착각인가 싶었지만, 그의 감각은 선명했다.
그때였다.
_스스스슷…_
홀의 한쪽 벽면에서 아주 미세한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모래가 쓸리는 듯한, 혹은 무언가 기어가는 듯한 소리였다. 현우는 반사적으로 헤드라이트를 그쪽으로 돌렸다. 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묵직한 석벽만이 불빛을 반사할 뿐이었다.
“뭐지? 바람 소리인가?”
그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지만, 동시에 알 수 없는 불길한 예감이 스쳐 지나갔다. 이곳은 너무나 오랫동안 봉인된 공간이었다. 바람이 불 리가 없었다. 심장이 다시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흥분과는 다른, 차가운 불안감이 그의 심장을 옥죄어왔다.
현우는 애써 침착하려 노력하며 헤드라이트를 다시 석상 쪽으로 돌렸다. 그는 석상의 기저부에 새겨진 거대한 문양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거미줄처럼 얽힌 선들과 알 수 없는 상징들. 그는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고, 자신이 알고 있는 고대 상징 자료들과 대조해보려 애썼다.
한참을 들여다보던 현우의 눈이 한 지점에 멈췄다. 석상 바닥에 새겨진 작은 심벌이었다. 다른 복잡한 문양들과는 달리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인상을 주는 심벌이었다. 그는 그것을 휴대폰 카메라로 확대했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고대 언어로 보이는 문자와 함께 그려진, 마치 **’경고’**를 의미하는 듯한 날카로운 형상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홀의 어둠 속에서 차가운 공기가 그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석상의 눈이, 아주 미세하게, 자신을 향해 돌아본 것만 같았다.
현우는 숨을 멈췄다.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이곳은 단순한 유적이 아니었다.
무언가, 잠들어 있던 것이 깨어난 듯한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그가 방금 열어젖힌 문은, 어쩌면 판도라의 상자였을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