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마른 바람이 붉은 흙먼지를 휘감아 올렸다. 시야를 가로막는 희뿌연 장막 너머로, 태양은 희미한 오렌지색 점으로 간신히 존재를 알릴 뿐이었다. 현우는 거친 모래바람에 눈을 가늘게 뜨고 저 멀리 지평선을 응시했다. 무너져 내린 고가도로의 잔해가 거대한 뼈대처럼 삐죽이 솟아 있었다. 그 아래로는 끝없이 펼쳐진 폐허, 과거의 인류가 쌓아 올린 모든 것들이 먼지구덩이 속으로 사라져 버린 풍경이었다.
“아무것도 없어.” 지영의 목소리가 들렸다. 마른 나뭇가지처럼 앙상한 팔로 그녀는 햇빛을 가린 채 주변을 둘러보았다. “벌써 사흘째야. 물도, 먹을 것도.”
준호가 축 늘어진 어깨로 배낭을 고쳐 맸다. 그의 얼굴은 푸석했고, 입술은 바싹 갈라져 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다 말라 죽을 거예요. 형. 제발, 방향이라도 바꿔봐요.”
현우는 대답 대신 마른 침을 삼켰다. 그의 목구멍도 사막처럼 메말라 있었다. 하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여기서 방향을 틀면 그건 또 다른 미지의 죽음으로 향하는 길일 뿐이었다. 나침반은 고장 난 지 오래였고, 태양은 방향을 알려주기엔 너무도 희미했다. 그들을 움직이게 하는 건 오로지 이 황량한 세계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는 ‘어떤 것’에 대한 막연한 희망, 그리고 현우의 직감뿐이었다.
“저기.” 현우의 시선이 한곳에 꽂혔다. 붉은 먼지 폭풍 너머, 마치 신기루처럼 희미하게 반짝이는 은빛 섬광. “보여?”
지영과 준호가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뭐… 뭔데요?” 준호가 눈을 비볐다.
“모르겠어. 하지만…” 현우는 걸음을 재촉했다. “저쪽이야. 저 방향으로 가자.”
세 사람은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한 시간, 두 시간. 먼지 폭풍은 점차 잦아들었지만, 은빛 섬광은 여전히 멀게만 느껴졌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의 눈앞에 거대한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코르버스 연구소?” 지영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여기가 원래 이런 곳이었어요?”
그곳은 산맥에 기대어 지어진 거대한 건물이었다. 겉모습은 황폐했지만, 대부분의 구조물이 온전하게 남아 있었다. 티타늄 합금으로 만들어진 듯한 외벽은 희미하게 광택을 잃었을 뿐, 무너지지 않고 버티고 있었다. 건물 곳곳에는 알 수 없는 기하학적 문양들이 새겨져 있었는데, 그 문양들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듯했다.
“여기… 살아있는 것 같아요.” 준호가 중얼거렸다. 그의 목소리에는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현우는 망설이지 않았다. “들어가자.”
“위험할지도 몰라요, 형.”
“이대로 밖에 있다간 확실히 죽어. 안은 적어도 먼지를 피할 수 있고, 뭔가 있을지도 몰라.”
그들은 무너진 주 출입구를 피해 비상 통로를 찾아 안으로 진입했다. 내부는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현우가 손전등을 켜자, 낡은 복도가 길게 이어졌다. 벽면은 온통 녹슨 강철과 뜯겨나간 배선들로 얼룩져 있었다. 하지만 어딘가 기묘하게도, 곰팡이 냄새나 썩은 냄새는 거의 나지 않았다. 대신 희미하고 섬뜩한, 마치 금속과 흙냄새가 섞인 듯한 알 수 없는 향이 코끝을 스쳤다.
“으음… 기분 나쁜 냄새.” 지영이 코를 찡그렸다.
“환기 시스템이 아직 작동하는 건가?” 현우는 중얼거렸다. 그럴 리가 없는데. 전원은 완전히 끊긴 지 오래였다.
복도를 따라 걷자, 여러 갈래의 통로가 나타났다. 그들은 가장 넓고 덜 무너진 길을 택했다. 이따금씩 바닥에 흩어져 있는 서류 조각들이 보였다. 내용은 알아보려 해도 알아볼 수 없는 기호들과 알 수 없는 언어로 가득했다. 글자들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착각에 현우는 고개를 흔들었다.
“이쪽이야.” 현우는 한쪽 벽에 걸린 낡은 안내판을 가리켰다. ‘연구 기록 보관실’. 그 아래에는 희미하게 ‘접근 제한’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기록 보관실이요? 혹시 여기서… 뭘 알아낼 수 있을까요?” 준호의 목소리에 희망이 섞여 있었다.
잠긴 문을 부수고 들어선 기록 보관실은 놀랍도록 온전했다. 수많은 서가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고, 그 위에는 먼지가 두껍게 쌓여 있었다. 하지만 책들은 훼손되지 않은 채 그대로였다. 현우가 손전등을 비추자, 책등에 쓰인 제목들이 드러났다.
“우주론적 변이 이론 연구”, “공간 왜곡 현상에 대한 고찰”, “심연의 기원과 존재 양상”…
지영의 얼굴이 점차 굳어졌다. “이건… 우리가 알던 과학이 아닌데요.”
“크툴루 신화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준호가 푸념했다. “이런 건 나중에 보고, 당장 먹을 거나 찾자구요!”
그때였다. 현우의 손전등이 한쪽 구석에 놓인 낡은 컴퓨터 단말기를 비췄다. 전원은 분명히 끊겼어야 했다. 하지만 스크린은 희미하게 깜빡이고 있었다. 그 빛은 마치 심해의 생물이 발하는 섬광처럼, 어둠 속에서 홀로 고동치고 있었다.
“이게… 왜 켜져 있지?” 지영이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현우가 다가가자, 단말기의 화면이 바뀌었다. 알 수 없는 언어와 기호들이 스쳐 지나가더니, 이내 정지된 화면에는 거대한 눈동자 같은 형상이 떠올랐다. 그 눈동자는 마치 우주의 모든 어둠을 담고 있는 듯했고, 수많은 촉수들이 그 주변을 감싸고 있었다. 화면 하단에는 떨리는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 **[경고: 존재 확인. 격리 실패. 꿈은 현실이 된다.]**
“꿈은 현실이 된다고?” 준호가 헛웃음을 흘렸다. “이게 무슨… 장난질이야?”
그 순간, 단말기에서 낮고 웅웅거리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단순한 기계음이 아니었다. 마치 수천 개의 목소리가 동시에 속삭이는 듯한, 혹은 깊은 바닷속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움직이는 듯한 소리였다. 그 소리는 뇌를 직접 파고드는 듯했고, 세 사람은 귀를 틀어막았다.
“젠장, 이게 뭐야!” 준호가 비명을 질렀다.
지영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이 소리… 내 머릿속에… 뭔가 들어오는 것 같아.”
현우 역시 머리가 깨질 듯한 고통에 시달렸다. 그의 눈앞에는 섬광이 번뜩였고, 이내 화면에 떠 있던 촉수 달린 눈동자가 거대하게 확장되는 환영이 보였다. 마치 화면 속의 그것이 이 공간으로 뚫고 들어오려는 것처럼.
소리는 점점 더 커지고, 형언할 수 없는 존재감이 공간을 압도했다. 서가에 꽂혀 있던 책들이 파르르 떨리더니, 낡은 표지들이 스스로 찢어지기 시작했다. 그 안에서 터져 나오는 것은 글자들이 아니었다. 검푸른 잉크가 번진 듯한 기괴한 형상들이 종이 위에서 꿈틀거렸다.
“도망쳐!” 현우는 정신을 차리고 소리쳤다. “빨리 나가!”
세 사람은 비틀거리며 출구로 향했다. 하지만 단말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소리는 이미 그들의 정신을 잠식하기 시작한 뒤였다. 복도 밖으로 나서자, 그들이 들어왔던 비상 통로는 이미 무너져 내려 있었다. 벽에는 이전에 보지 못했던 거대한 균열이 생겨 있었고, 그 균열 사이로 무언가 끈적하고 검붉은 액체가 스며 나오고 있었다.
“이게… 뭐야…” 지영의 눈이 공포로 물들었다.
액체가 흐르는 벽 너머에서, 낮은 읊조림이 들려왔다. 마치 수백 개의 목구멍에서 동시에 터져 나오는 듯한, 으르렁거리는 소리였다. 그것은 언어라고 할 수 없는 것이었다. 다만 인류의 정신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어떤 존재의 현현이었다.
현우는 손전등을 들고 주변을 비췄다. 캄캄한 복도 끝, 그들 뒤에서 무언가 기어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곧, 빛이 닿는 곳에 그것의 형상이 드러났다.
형태를 알아볼 수 없는 끔찍한 덩어리. 거대한 촉수들이 끝없이 뒤엉켜 있었고, 그 사이사이에 셀 수 없는 눈동자들이 번뜩였다. 액체가 흐르는 벽면의 균열과 같은 검붉은 색을 띠고 있었다. 그것은 천천히, 그러나 끈질기게 그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소리가 점차 가까워졌다. 그것은 더 이상 읊조림이 아니었다. 분명하게 그들의 이름을 부르는 듯한, 하지만 인간의 귀로는 감당할 수 없는 울부짖음이었다.
준호는 주저앉아 귀를 막았다. “안 돼… 안 돼…!”
지영은 얼어붙은 듯 움직이지 못했다. 그녀의 눈은 이미 초점을 잃어가고 있었다.
현우는 식은땀을 흘리며 필사적으로 주변을 살폈다. 도망칠 곳이 없었다. 뒤에는 형언할 수 없는 덩어리가 다가오고, 앞에는 막힌 통로와 기괴한 액체가 흐르는 벽. 그리고 그들의 정신을 좀먹는 알 수 없는 울림이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때, 현우의 눈에 복도 옆으로 비스듬히 열려 있는 작은 철문이 들어왔다. 먼지가 두껍게 쌓여 있어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문이었다. 그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준호의 팔을 잡아끌었다.
“이쪽이야! 빨리!”
그들은 필사적으로 그 문을 향해 내달렸다. 쿵, 쿵, 쿵. 육중한 덩어리가 복도를 기어오는 소리가 등 뒤에서 점점 더 크게 울렸다. 지영은 간신히 몸을 움직여 현우를 따라 문 안으로 들어섰다. 준호가 마지막으로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검붉은 촉수 하나가 문의 틈새로 비집고 들어오려 했다. 현우는 전력을 다해 철문을 닫았다. 쾅! 묵직한 굉음과 함께 문이 닫히자, 바깥의 울부짖음이 한층 작아졌다.
세 사람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어둠 속에 갇혔다. 현우는 손전등을 켰다. 그들이 들어선 곳은 좁은 통로였다. 통로 끝에는 또 다른 철문이 있었다.
“여기… 여기도 막혀있으면 어떡해요…” 준호가 흐느꼈다.
지영은 벽에 기댄 채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여전히 공포로 가득했지만, 어딘가 이상하게도 텅 비어 있었다.
현우는 문득 기시감을 느꼈다. 이 모든 상황이… 마치 정해져 있던 길인 것처럼. 그는 지영의 어깨를 붙잡고 흔들었다. “지영아! 정신 차려! 우리는 살아남아야 해!”
지영은 희미하게 눈을 깜빡였다. “살아남아…? 뭘 위해…?” 그녀의 목소리는 공허했다. “저게… 우리가 찾던 빛이었나 봐. 그 빛을 향해 가면… 이렇게 되는 거였어…”
현우는 그녀의 말에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 빛은 희망이 아니라, 절망의 씨앗이었던가.
그때, 닫힌 철문 너머에서 낮은 긁는 소리가 들려왔다. 득득득… 마치 거대한 발톱이 강철을 긁는 듯한 소리였다. 현우는 다시 손전등을 통로 끝의 철문으로 비췄다.
문득, 문틈으로 희미한 푸른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뭐… 뭐야?” 준호가 넋 나간 얼굴로 중얼거렸다.
현우는 문으로 다가가 조심스럽게 귀를 기울였다. 안쪽에서 들려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기이할 정도로 고요하고, 섬뜩하게 차가운 기운이 새어 나왔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문고리를 잡았다. 찰칵. 잠기지 않은 문이었다. 현우는 천천히 문을 열었다.
어둠 속에 가려져 있던 방은 푸른빛으로 가득했다. 방 한가운데에는 거대한 수정 기둥이 우뚝 솟아 있었는데, 그 안에서 신비롭고 차가운 푸른빛이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수정 기둥의 표면에는 복도에서 보았던 것과 동일한, 알 수 없는 기하학적 문양들이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그 기둥 아래, 누군가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그것은 사람이었다.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말라비틀어진 형상. 낡은 연구복을 입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시선이 닿자, 그 존재는 서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세 사람은 보았다. 그 얼굴에 새겨진 것은 두려움도, 고통도 아니었다. 오직 광기 어린 평온함, 그리고 인간의 것이라고는 할 수 없는, 심연의 바닥에서 막 올라온 듯한 텅 빈 눈동자.
그 존재가 입을 열었다. 쩍 하고 갈라진 입술 사이로,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드디어… 오셨군요.”
그 말과 동시에, 방 안의 푸른빛이 더욱 강렬하게 번뜩였다. 수정 기둥에 새겨진 문양들이 격렬하게 빛나기 시작했고, 그 빛은 마치 살아있는 촉수처럼 그들의 시야를 꿰뚫었다.
현우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 빛 속에서, 그는 알 수 없는 형체들이 일렁이는 것을 보았다. 마치 다른 차원의 존재들이 이쪽 세계로 넘어오려는 듯.
지영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그녀의 입술 사이에서 의미 없는 신음이 새어 나왔다. 준호는 이미 바닥에 주저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푸른빛은 세 사람의 육체를, 그리고 정신을 송두리째 파고들었다. 그들은 그 빛 속에서 자신들의 존재가 조각조각 부서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동시에, 그들은 깨달았다. 이 수정 기둥이 발하는 빛은 단순한 빛이 아니었다.
그것은… 잊혀진 세계의 기억이었고, 우주의 가장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저주였으며, 인류의 시선으로는 결코 담을 수 없는 진실 그 자체였다.
그리고 그 진실은, 그들을 집어삼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제21화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