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 탐험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 어둠 속 한 줄기 빛 – 1화: 잿빛 도시의 절규

황혼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지며 잿빛 도시를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거대한 석조 건물들은 숨 막힐 듯이 솟아 있었고,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선 빈민가의 목조 판잣집들은 오늘 밤도 무사히 버티기를 기원하듯 위태롭게 서 있었다. 대제국 아르카나의 수도, 그 심장부에 자리 잡은 가장 초라한 변방. 이곳은 ‘지하수로 7구역’이라 불렸다. 이름처럼 해와는 멀었고, 흙먼지와 사람들의 고통스러운 신음만이 가득했다.

진은 낡은 외투 깃을 바싹 여몄다. 찬 바람이 갈라진 틈새를 비집고 들어와 살을 저미는 듯했다. 그의 눈길은 바싹 마른 손으로 작은 나무 인형을 만지작거리는 미나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여섯 살배기 미나는 한때 통통했던 볼살은 온데간데없이 홀쭉해져 있었고, 창백한 입술은 겨우 숨을 쉬고 있음을 알렸다.

“오빠… 추워.”
미나의 작은 목소리가 얇은 천막 너머로 새어 들어오는 바람 소리에 파묻힐 듯 희미했다. 진의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난로에는 불씨 하나 남아있지 않았다. 땔감은 어제 저녁 미나에게 따뜻한 죽 한 그릇을 끓여주는 데 마지막으로 사용되었다. 그마저도 보잘것없는 양이었지만, 미나는 허겁지겁 받아먹었다. 진은 자신의 몫을 미나에게 몰래 넘겨주며 애써 배가 부른 척해야 했다.

“조금만 참아, 미나. 오빠가 곧 따뜻한 거 가져올게.”
말은 그렇게 했지만, 당장 오늘 밤을 어떻게 버텨야 할지 막막했다. 제국 병사들은 며칠 전부터 식량 창고를 털어갔고, 굶주린 이들의 마지막 희망마저 빼앗아갔다. 세금 체납을 명분으로, 가진 것 없는 이들의 목숨줄을 쥐고 흔들었다.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
옆집 살던 노인의 절규가 귓가를 때렸다.
“이 빌어먹을 제국 놈들! 자기들은 황금 술잔에 넘치는 포도주를 마시면서, 우리 같은 흙수저들은 굶어 죽으라는 거냐!”

진은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노인의 울부짖음은 이곳 7구역에서는 흔한 비명이었다. 하지만 그 흔한 절규가, 오늘은 유독 날카롭게 가슴을 파고들었다. 미나의 희미한 숨소리가 그의 결심을 굳건히 만들었다. 더는 이렇게 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밤이 깊어지자, 7구역의 음산한 골목길은 더욱 싸늘해졌다. 진은 낡은 곡괭이와 손전등, 그리고 허리에 단단히 묶은 썩은 밧줄을 챙겼다. 그는 빈민가의 가장자리에 위치한 낡은 여관으로 향했다. ‘부러진 칼날’이라는 간판이 위태롭게 매달려 있는 곳이었다. 이곳은 제국의 눈을 피해 비밀스러운 거래나 정보 교환이 이루어지는 곳이기도 했다.

문 안으로 들어서자, 퀘퀘한 담배 연기와 싸구려 술 냄새가 코를 찔렀다. 몇몇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술잔을 기울이거나, 그림자 속에 숨어 무언가를 속삭이고 있었다. 진은 익숙하게 구석 자리로 향했다. 그곳에는 덩치 큰 사내가 앉아 있었다. 사내의 이름은 ‘카엘’. 한때 용병이었으나, 제국의 감시가 심해지자 광산에서 일하며 근근이 살아가고 있었다.

“왔군, 진.”
카엘은 무표정한 얼굴로 진을 맞았다. 그의 눈은 피로에 절어 있었지만, 그 안에 숨겨진 날카로움은 여전했다.
“들었지? 제국 놈들이 식량 창고를 완전히 비웠어. 이번 주말까지 세금을 내지 못하면, 우리 모두 추방될 거라고.”

진은 주먹을 꽉 쥐었다. 추방은 곧 죽음이었다. 이 혹독한 겨울에 밖으로 내던져진다면, 아무리 강인한 사람이라도 살아남을 수 없을 터였다.

“그래도 방법이 있을 거 같아서 왔어.” 진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오래된 광산 갱도, 아직 남아 있는 곳이 있다고 들었어. 제국이 봉쇄한 곳 말이야.”

카엘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 미친 짓을 하겠다는 거냐? 거긴 제국 놈들이 쥐 새끼 한 마리 얼씬 못 하게 막아놓은 곳이야. 게다가… 거기는 ‘저주받은 광산’이라고 불려. 예전에도 들어가려던 사람들이 괴물들에게 찢겨 죽거나, 독가스에 질식해서 돌아오지 못했어.”

진은 고개를 저었다. “알아. 하지만 미나를 살리려면, 다른 방법이 없어. 저주받았든, 괴물이 있든, 상관없어. 거기서 뭐라도 찾아야 해. 굶어 죽는 것보단, 싸우다 죽는 게 낫지 않겠어?”

카엘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의 시선은 진의 낡은 옷차림과 굳게 다문 입술을 오갔다. 그는 진의 눈에서 절박함을 보았다. 자신과 다르지 않은, 아니, 자신보다 더 깊은 절망 속에서 피어난 불꽃을.

“젠장.”
카엘이 거친 숨을 내쉬었다.
“알았다. 혼자서 그 지옥에 갈 바에는, 내가 옆에서 네 시체를 수습하는 게 낫겠군. 그래, 내일 새벽에 동트기 전에 그곳에서 보자. 망할 제국 놈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진의 심장이 쿵, 하고 크게 울렸다. 카엘의 동의는 그의 외로운 싸움에 한 줄기 빛이 되어주었다.

다음 날 새벽, 칠흑 같은 어둠이 아직 걷히지 않은 시간. 진과 카엘은 제국 병사들의 순찰을 피해 폐광산 입구에 도착했다. 철제 빗장이 단단히 걸려 있었지만, 그 옆에는 사람이 겨우 드나들 수 있을 만한 틈새가 있었다. 오래전 광부들이 몰래 드나들던 비상 통로였다.

“이봐, 너무 깊숙이 들어가진 마. 제국이 봉쇄한 건 다 이유가 있을 거야.”
카엘이 속삭였다. 그의 표정에는 긴장감이 역력했다.

진은 고개를 끄덕이고 틈새로 몸을 구겨 넣었다. 좁고 축축한 흙냄새가 코를 찔렀다. 흙벽은 차가웠고, 이끼가 잔뜩 끼어 미끄러웠다. 손전등 불빛이 희미하게 어둠을 가르자, 눈앞에 펼쳐진 것은 광산의 끝없는 어둠이었다.

한 발짝, 한 발짝. 조심스럽게 발을 내디뎠다. 갱도의 천장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위태로웠고, 바닥에는 물이 고여 있었다. 뚝, 뚝, 하고 어딘가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만이 정적을 깨뜨렸다. 숨 쉬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다. 매 순간이 긴장의 연속이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멀리서 희미하게 번들거리는 불빛이 보였다. 진은 순간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제국 병사들인가? 아니면… 괴물?
카엘이 옆에서 진의 어깨를 툭 쳤다. “움직이지 마.”

그들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작은 광장 같은 공간이었다. 그리고 그 중앙에… 검은 그림자 두 개가 서로를 공격하고 있었다. 날카로운 발톱이 공기를 가르고, 짐승 같은 울부짖음이 갱도 전체를 뒤흔들었다. 몸집은 사람만 했지만, 사지와 등에서 솟아난 비늘과 뿔은 명백히 이세계의 존재임을 알렸다. 이빨과 발톱에 피가 잔뜩 묻어 있었고, 그 피는 갱도의 축축한 흙바닥에 스며들고 있었다.

“저게… 괴물인가?”
진의 목소리가 떨렸다. 단순한 짐승이 아니었다. 제국이 봉쇄한 이유가 이제야 명확해졌다. 이곳은 자원이 아니라, 위험 그 자체였다.

두 괴물은 서로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고는 이내 움직임을 멈췄다. 하나의 괴물이 완전히 쓰러지고, 다른 하나도 비틀거리며 핏자국을 남긴 채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남겨진 것은 거대한 괴물의 시체뿐이었다.

진과 카엘은 숨을 죽인 채 기다렸다. 모든 소리가 멎고, 다시 정적이 찾아왔을 때, 카엘이 진을 바라보았다.
“젠장. 첫발부터 이런 걸 마주치다니.”
그의 눈빛에는 공포와 함께, 미묘한 기대감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저 놈의 시체에선 뭔가 건질 게 있을지도 몰라. 제국 놈들이 괜히 괴물 시체를 수거해 가는 게 아니라고.”

괴물의 시체에 가까이 다가가자, 역겨운 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비늘은 검고 단단했으며, 곳곳이 찢겨나간 살점에서는 검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진은 낡은 곡괭이를 든 손에 힘을 주었다.

“우선… 저걸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생각해봐야겠어.”
진은 차가운 시체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미나의 창백한 얼굴이 다시금 그의 뇌리를 스쳤다.
이 지옥 같은 광산에서, 그는 과연 한 줄기 빛을 찾아낼 수 있을까?
아니, 반드시 찾아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것이 끝이었다.
그의 눈빛에 죽음조차 불사할 강한 의지가 타올랐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