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32화: 이상한 탐정과 사라진 그림자
차갑고 무거운 공기가 저택의 복도를 가득 채웠다. 낡은 샹들리에의 희미한 불빛 아래, 조심스러운 발걸음 소리만이 으스스하게 울렸다. 이하루는 품에 꼭 안은 녹음기를 확인하며 심장이 쿵쿵거리는 걸 느꼈다. 팟캐스트 녹음은커녕, 지금은 그저 이 기이한 상황에서 살아남는 것이 목표인 것 같았다.
“진짜… 밀실 살인이라니,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네.”
그녀의 눈은 오직 한 사람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탐정 강세한. 그는 마치 주변의 모든 비극을 투명인간 취급하듯, 오로지 눈앞의 진실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주변에 모여든 형사들이 웅성거리는 소리도, 피해자 정진원 회장의 가족들이 흘리는 울음소리도 그의 귓가에는 닿지 않는 듯했다.
세한은 손에 하얀 면장갑을 끼고, 방 안을 거니는 대신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그의 시선은 일반인이라면 그저 ‘먼지’라고 치부할 지극히 사소한 것에 꽂혀 있었다. 그는 손가락으로 마룻바닥의 틈새를 아주 조심스럽게 쓸어보더니, 손끝에 묻은 무언가를 마치 보석 감정사처럼 관찰했다.
“저 사람, 진짜 독특해.”
하루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처음 그를 만났을 때, 탐정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그의 엉뚱함에 기함을 했었다. 하지만 사건 현장에만 들어서면, 그의 눈빛은 맹수처럼 변했다. 그리고 지금, 그 맹수의 눈은 무언가를 집어삼킬 듯이 빛나고 있었다.
“강 탐정님, 외부 침입 흔적은 전혀 없습니다. 창문은 모두 잠겨 있었고, 문은 안에서 걸쇠까지 채워진 상태였습니다. 피해자는 등 뒤에 칼이 박힌 채 발견되었고요. 전형적인 밀실 살인입니다.” 베테랑 형사 김 반장이 침통한 얼굴로 보고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답답함과 함께 일말의 절망감이 묻어 있었다.
세한은 아무 대꾸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바닥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몸을 일으켜 방 한가운데 놓인 거대한 엔틱 책상을 빙글 돌았다. 그의 시선은 책상 위가 아니라, 책상 다리의 아주 미세한 스크래치에 꽂혀 있었다.
하루는 그를 따라다니며 녹음기를 바짝 댔다. “강 탐정님, 뭐 발견하신 거라도…?”
세한은 하루를 힐긋 보더니, 다시 책상 다리에 시선을 고정했다. “음… 여기에… 살짝 끈적이는 것이 묻어있군. 그리고… 이 스크래치. 새로 생긴 겁니다. 며칠 안 됐어요.”
하루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끈적이는 것? 스크래치? 그게 이 완벽한 밀실 살인과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그게… 범인이 남긴 흔적일까요?”
세한은 피식 웃었다. 그 웃음은 비웃음이라기보다는, 하루의 순진한 질문에 대한 가벼운 반응 같았다. “범인요? 음… 아직 단정하기는 이릅니다. 하지만, 이 방 안에 없던 것이 이곳에 나타났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죠.”
그의 눈은 다시 방 전체를 훑었다. 앤틱 가구들, 벽에 걸린 값비싼 명화들, 그리고 한쪽 벽을 가득 채운 서재. 모든 것이 완벽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죽음의 흔적이라고는 피해자의 시신뿐이었다.
“피해자가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은 누구죠?” 세한이 불쑥 물었다. 김 반장은 수첩을 뒤적였다. “비서의 말로는, 어젯밤 9시경 정 회장님 서재로 들어간 뒤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가족들도 모두 거실에 있었고, 이후 회장님이 나오지 않아 새벽에 확인해보니… 이렇게.”
“흐음.” 세한은 턱을 문질렀다. 그의 눈은 서재 벽에 걸린, 유난히 작은 액자 하나에 멈췄다. 그것은 다른 그림들과는 달리, 왠지 모르게 빛바랜 느낌이었다.
하루는 그의 시선을 따라갔다. “저 그림은… 어쩐지 저택의 다른 그림들보다… 평범해 보이네요? 너무 오래된 건가.”
세한은 하루의 말에 처음으로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는 액자 앞으로 다가가 그림을 유심히 살폈다. 오래된 풍경화였다. 딱히 특이할 것도 없는.
“평범하다… 그렇죠. 아주 평범합니다.” 세한은 중얼거렸다. 그의 손이 그림 액자의 테두리를 쓸었다. “그런데, 이 그림… 다른 그림들보다 유독 먼지가 적네요. 누군가 최근에 닦았거나… 아니면… 이곳에 걸린 지 얼마 안 된 것이겠죠.”
하루는 깜짝 놀랐다. 그녀는 그림을 멍하니 바라봤지만, 먼지의 유무를 구분할 안목은 없었다. 역시 천재는 다르구나.
세한은 한 손으로 그림을 살짝 들어 올리려 했다. 그런데 그림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벽에 단단히 고정된 듯했다.
“이상하군.” 세한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이렇게 작은 그림을 굳이 벽에 못으로 박아 고정할 이유가…?”
그 순간, 그의 손가락이 그림 액자의 뒷면 어딘가를 스치듯 건드렸다. `철컥-` 하는 아주 미세한 소리가 울렸다. 하루는 거의 듣지 못할 뻔했다.
세한의 눈빛이 순식간에 날카로워졌다. 그는 그림을 자세히 보더니, 그림의 한쪽 모서리를 잡고 살짝 힘을 주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그림 액자가 마치 문처럼 안쪽으로 스르륵 밀려들어 가는 것이 아닌가!
“세상에!” 하루는 저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그림 뒤에는 작은 틈이 있었고, 그 안에는… 빈 공간이 아니라, 또 다른 벽면이 나타났다. 하지만 그 벽면은 왠지 모르게 깨끗했다. 마치 최근에 새로 칠해진 것처럼.
세한은 틈 안으로 손을 넣어 벽면을 만져보았다. 그리고 그의 얼굴에 기묘한 미소가 떠올랐다.
“강 탐정님, 이게 대체… 비밀 통로인가요?” 김 반장마저 놀라 달려왔다.
세한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비밀 통로가 아닙니다. 애초에… 이 방은 완벽한 밀실이 아니었습니다. 적어도 범인에게는 말이죠.”
그는 빙긋 웃으며, 시선을 하루에게로 돌렸다. 그의 눈빛은 평소의 멍한 시선과는 달리, 강렬하고 명료했다.
“하루 씨. 당신 말이 맞았습니다. 이 그림은… 아주 평범한 그림이죠.”
하루는 그의 예상치 못한 칭찬에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하지만 평범한 그림이, 이렇게 특별한 기능을 할 줄이야 누가 알았겠습니까.” 세한은 그림 뒤의 벽면을 한 번 더 쓸어보았다. 그리고 모두가 예상치 못한 말을 던졌다.
“김 반장님. 이 그림은… 이 방의 벽면 일부를 가리고 있을 뿐입니다. 아마도… 누군가 이 방을 드나들었을 때, 이곳의 완벽한 밀실성을 믿게 하기 위해 임시로 설치한 장치였을 겁니다.”
그의 눈은 반짝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두를 얼어붙게 할 한마디를 내뱉었다.
“범인은 이 방으로 들어온 적이 없습니다. 대신, 이 그림 뒤의 벽을 이용해… 애초에 이 방에서 나간 적이 없는 겁니다.”
모두의 얼굴에 경악이 스쳐 지나갔다.
밀실 살인의 트릭은, 범인이 방에서 ‘나간’ 방법이 아니라, 애초에 ‘나갈 필요가 없었던’ 것이었단 말인가?
하루는 녹음기를 든 손을 덜덜 떨었다. 강세한. 그는 정말 천재였다. 그리고 그의 천재성은 지금,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사건을 뒤집어 놓고 있었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미스터리에 대한 흥분과, 그의 비상함에 대한 경외감, 그리고… 왠지 모를 로맨틱한 떨림까지. 다음 화가 궁금해서 미칠 것만 같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