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명학원 237회 정규 마나 운용 수업. 창밖으로는 황금빛 햇살이 쏟아지고, 드높은 탑들의 첨탑은 구름을 뚫을 듯 위엄을 자랑했다. 하지만 그 찬란함은 이진의 가슴속 답답함을 덜어주지 못했다. 수업은 언제나처럼 지루했다. 학원장이 직접 고안했다는 ‘조화의 흐름 명상법’은 그의 예민한 감각에는 오히려 혼란스럽기만 했다.
“모두, 의식을 집중하고 마나의 흐름을 느껴보세요. 여러분의 정점에 도달할 수 있도록 이 황홀한 기운을 받아들이세요.”
담임 마법사 벨루시아 교수의 목소리는 언제나 부드럽고 유려했지만, 그 끝에 드리워진 미세한 떨림은 이진의 귀에만 유독 선명하게 들리는 듯했다. 다른 학생들은 눈을 감고 제각기 마나를 응축하며 푸른빛, 은빛, 때로는 옅은 금빛의 오라를 발산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진은 집중할 수 없었다.
*쿵… 쿵…*
낮게 울리는 진동이 발밑에서부터 올라왔다. 아주 미세해서 다른 이들은 아마 평범한 건물 진동 정도로 여길 것이다. 하지만 이진에게는 달랐다. 그의 영혼 깊숙이 새겨진 ‘감지’ 능력은 이 진동이 단순한 것이 아니라고 속삭였다. 그것은 마치 거대한 심장이 뛰는 소리 같았다. 땅속 깊은 곳, 학원의 기반 아래에서부터 울려 퍼지는, 살아있는 어떤 것의 맥동.
“이상하다…” 이진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손을 뻗어 책상에 살짝 얹었다. 손끝에서 전달되는 진동은 더욱 선명했다. 차갑고, 습하고, 그리고… 불길했다.
벨루시아 교수의 시선이 순간 이진에게 닿았다. 그녀의 눈빛은 짧은 찰나였지만, 불안과 경고가 뒤섞여 있었다. 이진은 얼른 시선을 거두고 다시 명상하는 척 눈을 감았다.
그때였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앙!!!!*
낮게 깔려 있던 진동이 갑자기 폭발적인 에너지 파동으로 변했다. 그것은 굉음이라기보다는, 영혼을 꿰뚫는 듯한 날카로운 비명에 가까웠다. 차가운 기운이 강의실을 휩쓸고 지나갔다. 학생들의 마나 오라가 일순간 혼란스럽게 흔들리며 꺼지거나 엉켜버렸다. 몇몇은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으며 이마를 움켜쥐었다.
“으윽!”
“뭐… 뭐야?”
벨루시아 교수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단상에서 휘청였다. 그녀의 입술은 무언가를 중얼거렸지만,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그녀의 시선은 한순간, 강의실 바닥을 꿰뚫고 지하를 향하는 듯했다.
파동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모두 진정하세요! 그저 마나 흐름이 잠시 불안정했던 것뿐입니다. 계절 변화에 따른 일시적인 현상이니 걱정하지 마세요!”
교수는 애써 침착한 목소리로 외쳤지만, 그녀의 떨리는 손은 테이블을 짚고 있었다. 학생들은 혼란스러워하면서도, 교수의 말에 따라 다시 마나를 정돈하기 시작했다. 이 엘리트 학원에서 이런 돌발 상황은 전례 없는 일이었지만, ‘천명학원’이라는 이름이 주는 절대적인 신뢰감 때문인지, 대부분은 곧 안정을 되찾았다.
하지만 이진은 달랐다. 그의 머릿속은 온통 방금의 비명으로 가득 찼다. 그것은 단순히 마나 흐름의 불안정이 아니었다. 명백한 ‘생명의 절규’였다. 엄청난 고통 속에서 터져 나온, 강렬하고도 섬뜩한 절규. 그리고 그 근원은, 의심할 여지 없이 학원 지하 깊은 곳이었다.
“계절 변화라니… 말도 안 돼.”
그는 수업이 끝나는 종이 울리자마자 쏜살같이 강의실을 빠져나왔다. 다른 학생들이 웅성거리며 복도를 채우는 와중에도, 이진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그의 감각은 아직도 지하에서 올라오는 미세한 진동과 잔류하는 차가운 기운을 놓치지 않고 있었다.
이진은 자신의 영혼 감지 능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렸다. 일반적인 마나 감지로는 느낄 수 없는, 영적인 기운과 생명의 파동을 읽어내는 특이한 능력. 그것은 미약하고 불완전했지만,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게 해주었다.
그의 감각은 학원의 중앙 대탑 아래, 도서관 지하 깊숙한 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곳은 학원에서도 ‘접근 금지’ 구역으로 지정된, 가장 오래된 지하실 중 하나였다. 표면적으로는 ‘고대 유물 보관소’라는 명목이었지만, 실제로는 아무도 그곳에 발을 들이려 하지 않는다는 소문만 무성했다.
“젠장, 어째서 늘 이런 기분 나쁜 일은 나한테만 걸리는 거지?”
이진은 중얼거리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도서관 뒷편의 낡은 회랑. 빛 한 점 들지 않는 그곳은 다른 학원 건물들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먼지 낀 창문, 거미줄이 드리워진 석상들, 그리고 발밑에서부터 올라오는 으스스한 냉기.
그는 벽에 손을 짚고 조심스럽게 기운의 흐름을 따라갔다. 차갑고 질척이는 기운. 그것은 금지된 마법의 흔적을 닮아 있었다. 학원에서 철저히 금지하고 있는, 생명을 대가로 하거나 영혼을 비틀어 사용하는 저급한 흑마법의 기운. 하지만 동시에, 너무나도 거대하고 오래된 힘의 흔적이었다.
“여기야…”
회랑 끝, 낡은 양탄자 뒤에 숨겨진 육중한 쇠문이 보였다. 녹슬어 버린 문고리는 오랜 세월의 흔적을 말해주듯 검붉은 색으로 변색되어 있었다. 이진은 문에 귀를 대고 숨을 죽였다.
*쿵… 쿵… 쿵…*
이제는 훨씬 선명해진 맥동 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마치 거대한 짐승이 깊은 잠 속에서 꾸는 악몽처럼, 불규칙적이고 고통스러운 리듬이었다. 문틈에서는 검은 연기 같은 것이 피어오르는 착각마저 들었다.
이진은 침을 꿀꺽 삼켰다. 온몸의 세포들이 본능적으로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라고 외치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알 수 없는 끌림이 그를 사로잡았다. 저 문 너머에 무엇이 있든, 그는 그것을 확인해야만 했다. 그 비명 소리의 근원을, 그 고통의 정체를.
그는 떨리는 손을 뻗어 문고리를 잡았다. 차가운 쇠붙이가 손바닥에 닿는 순간, 거대한 비명이 다시 한번 그의 뇌리를 강타했다. 방금 전 강의실에서 들었던 그 절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고통과 분노로 뒤섞인 비명이었다.
“크윽!”
이진은 순간적으로 무릎을 꿇을 뻔했지만, 겨우 중심을 잡았다. 온몸의 힘을 다해 녹슨 문고리를 돌렸다. *끼이이이익—* 소름 끼치는 굉음과 함께 문이 천천히 안쪽으로 열렸다.
문 안쪽은 완벽한 어둠이었다. 빛 한 조각조차 스며들지 않는, 살아있는 듯한 검은 공간. 그러나 어둠 속에서 수많은 눈동자들이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 듯한 섬뜩한 착각이 이진의 오금을 저리게 했다.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스르륵, 스르륵. 마치 거대한 뱀이 몸을 비트는 듯한 소리.
그리고…
*차가운 숨결*이 그의 뺨을 스쳤다.
그 숨결은 썩은 피 냄새와, 흙냄새, 그리고 끔찍한 죽음의 향기를 품고 있었다. 이진은 본능적으로 한 발짝 물러섰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어둠 속에서, 붉게 빛나는 두 개의 점이 번뜩였다.
그것은… 눈이었다. 거대하고 사악한 존재의 눈.
“누구냐… 감히 이곳에 발을 들인 자는…”
낮고 굵은, 하지만 온몸을 얼어붙게 만드는 목소리가 어둠 속에서 울렸다. 이진의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그는 간신히 입술을 벌렸다.
“…너… 너는 대체…”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어둠 속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솟아올랐다. 그 형태는 알 수 없었지만, 그 압도적인 존재감은 이진의 모든 감각을 마비시킬 정도였다. 어둠이 뿜어내는 기운은 차갑고 끈적이며, 그의 영혼을 조여오는 듯했다.
이곳은 금지된 곳이었다. 학원의 빛나는 명성 아래 감춰진, 살아있는 악몽이었다.
그리고 이진은, 이제 그 악몽의 문턱을 넘어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