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멈춘 골동품 가게 – 제3화

서연은 손바닥 위에 놓인 낡은 회중시계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어제의 일들이 꿈처럼 아득했다. 삐걱이는 문, 먼지 쌓인 진열장, 그리고 마치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하던 그 골동품 가게. 그 모든 것들이 비현실적인 안개 속 풍경 같았지만, 차가운 금속의 감촉은 지독히도 선명했다. 사장님은 그저 이 시계를 ‘시간의 조각’이라 불렀을 뿐, 어떤 설명도 덧붙이지 않았다. 마치 서연 스스로 깨닫기를 바라는 듯한, 기묘한 침묵이었다.

자신의 작은 자취방 책상에 앉아, 서연은 시계의 뚜껑을 열었다. 멈춰버린 듯 움직이지 않는 시침과 분침, 그리고 유난히 또렷하게 새겨진 로마 숫자들. 시간을 알려주는 대신, 그 시계는 그저 존재의 무게만을 증명하는 듯했다. 창밖으로 흘러가는 도시의 소음,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사람들의 그림자, 시계의 째깍거림 없는 침묵이 기묘한 부조화를 이루었다.

그날 밤부터였다. 미세한 균열처럼 일상이 어긋나기 시작한 것은. 처음에는 착각이라고 생각했다. 그림을 그리다 잠시 붓을 놓았을 때, 분명 10분 전쯤이었다고 생각한 시간이 한 시간이나 지나 있는 식이었다. 혹은 끓여 놓은 라면이 채 익기도 전에 면이 불어터져 버리거나, TV 속 드라마의 대사가 갑자기 느리게 늘어졌다가 다시 제 속도를 찾곤 했다. 마치 세상의 박자가 서연의 의지와 상관없이 제멋대로 빨라지거나 느려지는 것 같았다. 그럴 때마다 손목에 감겨 있지 않은 회중시계의 무게가 손바닥 위에서 느껴지는 듯했다.

가장 섬뜩했던 경험은 어제저녁이었다. 식탁에 앉아 저녁을 먹고 있을 때였다. 거실 시계는 여전히 째깍이고 있었고, 창밖 자동차 소리도 평소와 다름없었다. 그런데 문득, 모든 소리가 멀어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숟가락이 접시에 부딪히는 소리, 씹는 소리, 심지어 자신의 숨소리마저 아득한 저편으로 밀려났다. 그리고 그 순간, 눈앞에 아주 선명한 환상이 스쳐 지나갔다.

어린 동생, 수아였다. 앞니가 빠져 헤벌쭉 웃고 있는 수아의 얼굴. 열 살 남짓의 아이가 작은 손으로 서연의 손을 잡고 “언니, 우리 언제 꽃 보러 갈 거야?” 하고 묻는 목소리. 그 목소리는 너무나 생생해서 서연은 저도 모르게 “수아…” 하고 중얼거렸다. 수아는 몇 년 전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그 기억은 서연의 가슴에 영원히 아물지 않을 상처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생생하게, 마치 바로 어제 일처럼 눈앞에 펼쳐진 적은 없었다. 그녀의 눈가에 뜨거운 것이 맺혔다.

환상은 짧게 끝나고 현실이 다시 서연을 덮쳤다. 숟가락이 접시에 부딪히는 소리, 창밖의 소음, 그리고 다시금 미친 듯이 박동하는 자신의 심장 소리. 서연은 숨을 헐떡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모든 것이 제자리였다. 하지만 테이블 위에 놓인 회중시계는 차가운 금속으로 묵묵히 그 모든 순간을 지켜보고 있는 듯했다.

그날 밤, 서연은 한숨도 자지 못했다. 수아의 웃는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고통스럽지만 동시에 지독히도 간절한 그리움이었다. 이 시계가, 정말로 과거의 한 조각을 보여준 것일까? 아니면 그저 자신의 상처와 절망이 만들어낸 환영일까? 하지만 어제의 그 생생함은 환상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현실 같았다. 서연은 시계를 쥐어보았다. 그리고 다시 한번, 간절하게 수아를 떠올렸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밤새도록 애썼지만, 시계는 그저 무겁고 차가운 금속 덩어리일 뿐이었다.

다음 날, 서연은 폐인처럼 학교에 갔다. 수업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친구들의 말도 멀리서 들리는 듯했다. 그녀의 정신은 오로지 회중시계와 그 속에 감춰진 미스터리에 갇혀 있었다. 자신이 미쳐가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동시에 어쩌면 수아를 다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미한 희망이 그녀를 짓눌렀다. 이대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 기묘한 현상의 근원을 알아내야만 했다. 그녀의 발길은 자연스럽게 어제 그 골동품 가게로 향했다.

골목을 지나 익숙한 냄새가 나는 길에 접어들자, 심장이 격렬하게 뛰기 시작했다. 햇살이 쏟아지는 도시의 한복판인데도, 그 가게 주변은 묘하게 그림자가 길고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듯했다. 낡은 간판에는 여전히 글자 없는 그림이 걸려 있었다. 어제처럼 굳게 닫힌 문 앞에서 서연은 잠시 망설였다. 다시 저 문을 열면, 또 어떤 비현실적인 일들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을까.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문고리를 잡았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손가락 끝으로 전해져왔다. 숨을 깊이 들이마신 후, 서연은 천천히 문을 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