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힐링 애니메이션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제12장: 빛바랜 유리창 너머**

잿빛 하늘 아래, 무너진 고층 건물들이 뼈대만 앙상하게 드러낸 채 서 있었다. 한때 번화했던 도시의 흔적들은 이제 푸른 녹과 회색 먼지에 뒤덮여, 마치 거대한 유령 도시 같았다. 그 틈새로 부서진 아스팔트 위를 조심스럽게 걷는 두 그림자가 있었다. 열일곱 살 미나와 열두 살 소리, 자매였다.

“미나 언니, 여기 맞지? 아빠가 마지막으로 봤다고 한 곳이.” 소리가 고개를 젖히며 거대한 유리 외벽이 깨진 건물을 올려다봤다. 한때는 화려했을 백화점의 입간판은 이제 글자 몇 개만 겨우 읽을 수 있을 정도로 녹슬어 있었다. ‘별빛… 점.’ 그마저도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응, 여기 맞아. 오래되긴 했지만, 그나마 다른 곳보다 약탈 흔적이 적을 거야. 사람들이 굳이 옷이나 장식품 같은 건 안 가져갔을 테니까.” 미나는 낡은 배낭의 어깨끈을 고쳐 매며 대답했다. 그녀의 눈은 끊임없이 주변을 살폈다.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위험, 혹은 희미한 희망의 조짐을 찾아서.

백화점 안으로 들어서는 입구는 거대한 유리문이 산산조각 난 채 방치되어 있었다. 깨진 파편들이 밟히는 소리가 적막한 공간에 울려 퍼졌다. 안은 예상대로 어두웠다. 천장의 조명들은 대부분 파괴되었거나, 전력 공급이 끊긴 지 오래라 빛을 잃었다. 희미한 바깥 햇살이 창문의 깨진 틈새를 통해 들어와 먼지 가득한 공기 속에서 뿌옇게 춤을 추고 있었다.

“와… 여기 진짜 예뻤겠다.” 소리가 감탄사를 흘렸다. 그녀의 시선이 한때 화려했을 마네킹과 진열장 위를 스쳐 지나갔다. 값비싼 옷들은 곰팡이가 피어 얼룩져 있었고, 보석이 전시되었던 곳은 텅 비어 있었다. 하지만 소리는 그런 것 대신, 멀리 보이는 색색의 장난감 코너에 매료된 듯했다.

“소리야, 너무 멀리 가지 마. 그리고 조심해야 해. 건물 자체가 언제 무너질지 모르니까.” 미나는 주의를 주었지만, 소리의 발걸음은 이미 가벼워져 장난감 코너를 향하고 있었다. 저렇게 아무렇지 않게 웃는 모습이, 미나의 마음속에서 잿빛으로 굳어가던 희망을 아주 조금씩 다시 데워주는 것 같았다.

미나는 1층의 잡화 코너를 훑었다. 생존에 필요한 건 뭐든 괜찮았다. 찢어진 옷감을 꿰맬 바늘과 실, 오래되어도 쓸 수 있을 법한 튼튼한 끈, 방수포 대신 쓸 수 있을 만한 두꺼운 천 조각. 먼지투성이의 선반을 뒤지자 의외로 쓸 만한 것들이 눈에 띄었다. 녹슬지 않은 가위 한 자루와 여러 색깔의 실타래들. 그리고 작지만 단단한 손전등 하나.

“언니! 이거 봐!” 소리의 목소리가 장난감 코너에서 들려왔다. 미나는 손전등을 챙겨들고 조심스럽게 소리에게 다가갔다. 소리가 서 있는 곳은 유리 진열장이 대부분 깨져 있었지만, 한쪽 구석에 얌전히 놓인 나무 상자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게 뭐야?” 미나가 물었다. 소리는 조심스럽게 상자를 열었다. 그 안에는 먼지 한 톨 앉지 않은, 작고 섬세한 오르골이 들어있었다. 뚜껑을 열자, 태엽이 감겨져 있었는지 익숙한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작고 귀여운 발레리나 인형이 빙글빙글 돌면서, 잊고 있던 옛날 동화책 속 풍경을 눈앞에 펼쳐 보였다.

“와…” 미나도 저도 모르게 멍하니 오르골을 바라봤다. 황폐한 세상에서 너무나도 이질적인, 아름답고 온전한 소리였다. 어딘가에서 듣던 익숙한 동요였지만, 언제 들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잊고 살았던 평화로운 시절의 단편이, 낡은 오르골의 멜로디를 타고 마음속으로 스며드는 것 같았다.

“이거 가져가도 돼, 언니? 진짜 예쁘다!” 소리가 조심스럽게 오르골을 두 손으로 받쳐 들었다. 눈빛은 마치 세상의 모든 보물을 발견한 아이 같았다.

“음… 글쎄, 이걸 어디다 쓸까.” 미나는 실용적인 면을 먼저 생각했다. 식량도 아니고, 도구도 아니었다. 짐만 될 뿐이라고 생각했지만, 소리의 초롱초롱한 눈을 보니 차마 안 된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그때였다.
“크윽…”
어디선가 묵직한 마찰음이 들려왔다. 백화점의 거대한 구조물이 뒤틀리는 듯한 소리였다. 먼지가 한 차례 크게 솟구쳐 올랐다.

미나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소리야, 엎드려!” 그녀는 본능적으로 소리의 팔을 잡아끌고 가장 가까운, 무너지지 않은 듯 보이는 진열장 뒤로 몸을 숨겼다. 등골이 오싹해지는 차가운 불안감이 밀려왔다. 이 건물, 결국 이렇게 무너지는 건가?

잠시 후, 굉음은 잦아들었다. 대신, 철근이 뒤틀리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또 다른 먼지 기둥이 천장을 뚫고 쏟아졌다. 미나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내밀어 소리가 난 쪽을 살폈다. 멀리 떨어진 에스컬레이터 부근이었다. 천장의 콘크리트 조각이 떨어져 나가면서, 일부 구조물이 내려앉은 모양이었다.

“언니… 우리 괜찮아?” 소리의 목소리가 조그맣게 떨려왔다. 그녀는 오르골을 품에 꼭 안은 채 미나의 등 뒤에 바싹 붙어 있었다.

“응, 괜찮을 거야. 하지만 여기 더 있다가는 위험해. 빨리 필요한 것만 챙겨서 나가자.” 미나는 마음을 다잡고 재빨리 주변을 둘러봤다. 가져갈 만한 물건은 아까 찾아둔 것들과 소리의 오르골뿐이었다.

그들은 서둘러 백화점을 빠져나왔다. 햇살 아래로 나오자 안도감이 몰려왔다. 밖으로 나온 후에도 미나는 혹시라도 자신들을 쫓는 존재가 있을까 싶어 몇 번이고 뒤를 돌아봤다. 하지만 황폐한 도시에는 그들 말고는 아무도 없는 듯, 정적만이 가득했다.

“진짜 놀랐잖아…” 소리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이내 그녀는 다시 오르골을 내밀며 활짝 웃었다. “그래도 이거 건졌어! 완전 럭키!”

미나는 소리의 미소를 보며 덩달아 옅은 미소를 지었다. 어쩌면 소리의 말이 맞을지도 몰랐다. 생존에 직접적인 도움은 안 될지라도, 이 낡은 오르골이 가져다준 작은 위안은 그 어떤 식량보다도 값진 것일 수 있었다.

그날 밤, 임시 거처로 삼은 낡은 창고 안에서, 미나는 주워온 실과 바늘로 찢어진 옷을 꿰맸다. 소리는 그 옆에서 조심스럽게 오르골 뚜껑을 열었다. 작고 아름다운 멜로디가 낡은 창고 안에 퍼져나갔다. 바깥세상은 여전히 위험과 불안으로 가득했지만,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두 자매에게 작은 평화가 찾아온 듯했다.

오르골의 멜로디가 끊어질 때마다 소리는 다시 태엽을 감았다. 그 소리를 들으며 미나는 생각했다. 이 멜로디가 사라지지 않는 한, 우리에게도 내일이 올 거라고. 희망이라는 이름의, 아주 작은 빛이라도.

그리고 먼 하늘 너머, 붉게 물든 노을이 무너진 빌딩의 실루엣 위로 길게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또 다른 밤이 찾아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