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심연이었다.
선실 유리창 밖은 칠흑 그 자체였다. 이따금 죽은 별의 잔광이 아득히 멀리서 반짝이며 자신이 존재했음을 알릴 뿐,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끝없는 고독과 침묵만이 우주선 ‘레비아탄’ 호를 감싸고 있었다. 서지혁 함장은 눈을 감고 그 적막을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3년 째 이 심우주를 헤매고 있었다. 인류가 이전에 발을 들여놓지 않은 미지의 영역을 탐사하는 것이 임무였고, 그 임무는 이제 지루함을 넘어선 묵직한 권태로움으로 변해 있었다.
“함장님, 주무시지 그러십니까?”
정적을 깬 건 항해사 강수아의 목소리였다. 그녀는 선장석 옆 보조석에 앉아 홀로그램 스크린에 띄워진 항성 지도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녀의 눈빛은 언제나처럼 날카롭고 총명했지만, 그 깊이에는 피로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잠이 오질 않는군.” 서지혁은 짧게 답하며 눈을 떴다. “무언가 달라진 게 있나?”
“아뇨. 언제나처럼 똑같습니다. 중력 가속도, 자기장, 미세 물질 분포 모두 평이합니다. 특이점은 없습니다.”
강수아의 목소리에는 미묘한 실망감이 섞여 있었다. 그녀는 무엇보다도 새로운 발견을 갈망하는 과학자였다. 지루한 루틴의 반복은 그녀에게 가장 가혹한 형벌과도 같았다.
“이 지루함도 곧 끝나겠지.” 서지혁이 중얼거렸다. “이대로라면 3개월 후면 귀환 예정 포인트에 도달할 테고, 우리 임무는 별다른 성과 없이 종료될 거야. 인류는 또 한 번, 우주가 생각보다 훨씬 더 거대한 공백임을 깨닫게 되겠지.”
그때였다. 레비아탄 호의 함교 전체를 울리는 삐 소리가 짧고 날카롭게 울렸다.
강수아의 눈이 즉시 스크린으로 향했다. 그녀의 손가락이 홀로그램 키보드 위를 빠르게 움직였다.
“함장님! 심층 스캔에… 무언가 잡혔습니다!” 그녀의 목소리에 일말의 흥분과 당혹감이 스쳤다.
서지혁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긴장감이었다.
“무엇이지? 소행성 군집인가?”
“아뇨! 아닙니다! 형태가… 너무나도… 명확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불가능합니다.” 강수아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눈은 스크린에 고정되어 있었다.
스크린에는 칠흑 같은 우주 한가운데, 기이한 형태의 물체가 점멸하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존재해서는 안 되는 그림자처럼, 주변의 별빛마저 흡수하는 듯 검푸른 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거리 720만 킬로미터… 크기 추정치… 측정 불가? 대체 무슨 소리야?” 서지혁이 스크린 앞으로 다가갔다. 데이터가 혼란스러웠다. 크기 추정치가 계속해서 변동하고 있었고, 어떤 물리량도 명확하게 측정되지 않았다.
“이건… 자연 현상이 아닙니다. 너무나도 인공적인 형태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인공물이라기엔… 우주를 초월한 것 같아요.” 강수아의 목소리가 점차 가늘어졌다. “이전에 어떤 기록에서도 본 적 없는 패턴입니다.”
“이선우! 기관실 응답하라!” 서지혁이 마이크를 잡고 외쳤다.
잠시 후, 둔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함장님. 무슨 일입니까? 설마 드디어 지루함에 미쳐서 벽에 머리 박으셨습니까?”
레비아탄 호의 기관장이자, 유일한 엔지니어인 이선우였다. 그는 뛰어난 재능만큼이나 천성이 비꼬는 사람이었다.
“이선우 기관장. 지금 즉시 함교로 올라와라. 그리고 자네는 이제 지루함을 원망하지 않게 될 거야.” 서지혁의 목소리에 평소와 다른 묘한 무게감이 실려 있었다.
이선우는 잠시 침묵하더니, 곧 투덜거리는 소리와 함께 연결이 끊겼다.
서지혁은 다시 스크린의 물체로 시선을 돌렸다. 저 검은 형태는 마치 어둠 자체로 빚어진 조각상 같았다. 어떤 각도에서 보아도 이상하게 비틀려 있었고, 그 윤곽선은 끊임없이 흔들리는 듯했다. 마치 우주가 그것을 존재시키려 발버둥 치는 와중에 일그러진 것처럼.
“접근 지시를 내려라. 최저 속도로.” 서지혁이 명령했다.
강수아가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함장님? 너무 위험합니다. 어떤 종류의 존재인지 알 수 없습니다. 게다가… 센서가 계속 오작동합니다. 저 물체에서 미지의 파동이 방출되고 있습니다. 뇌파와 유사한… 어떠한 의도적인… 압력 같은 것이 느껴집니다.”
“그래서 더 봐야 해.” 서지혁의 눈빛이 스크린의 검은 물체를 꿰뚫었다. “이선우 말마따나, 우주가 우리에게 드디어 뭔가를 보여주는군. 이것이 인류의 새로운 지평이 될지, 아니면… 새로운 무덤이 될지, 우리가 직접 확인해야 한다.”
레비아탄 호의 거대한 엔진이 최저 출력으로 고동하기 시작했다. 거대한 함선은 삐걱거리는 듯한 미세한 진동을 일으키며, 미지의 어둠 속으로 천천히 미끄러져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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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음… 이거 봐라. 제법 폼 나게 생긴 고물 덩어리인데? 아니면 우주 해적들이 버리고 간 비싼 폐품인가?”
이선우 기관장이 함교에 도착하자마자 홀로그램 스크린을 보며 휘파람을 불었다. 그의 손에는 항상 들고 다니는 만능 렌치 대신, 에너지 스캐너가 들려 있었다.
“농담할 상황이 아니야, 이선우.” 강수아가 날카롭게 말했다. “스캐너 결과는 어떤가?”
이선우는 이마를 찌푸리며 스캐너를 이리저리 돌려 보았다. “미쳤군. 이런 반응은 처음 봅니다. 모든 에너지 스펙트럼에서 제로에 가깝게 나옵니다. 에너지를 아예 방출하지 않는다고요. 흡수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근데… 역설적으로 엄청난 밀도의 에너지가 느껴지기도 해요. 무슨 양자 역학 시험용 장난감인가?”
“흡수?” 서지혁이 되물었다. “빛을 흡수하는 건가?”
“빛뿐만이 아닙니다. 주변의 공간 자체가 저 기형적인 덩어리에게 빨려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스크린에서 저 형태가 자꾸 일그러지는 것 보이죠? 저게 센서 오류가 아니라, 실제로 저 물체 주변의 공간이 왜곡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중력 렌즈 효과와는 또 다른… 이건 마치 구멍 같아요. 블랙홀은 아닌데…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의식 없는 입처럼 보입니다.”
레비아탄 호는 천천히 물체에 접근하고 있었다. 이제 육안으로도 그 존재를 어렴풋이 식별할 수 있었다. 그것은 거대한 검은 결정체 같기도 했고, 불규칙하게 솟아오른 산맥 같기도 했다. 그 표면은 빛을 반사하기는커녕, 주변의 별빛마저 집어삼키는 듯 보였다. 심장이 얼어붙을 것 같은 차가운 광경이었다.
강수아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함장님, 뭔가… 느껴집니다. 머릿속이 시끄러워져요.”
“나도 마찬가지다.” 서지혁이 낮게 읊조렸다. 그는 본능적으로 손을 뻗어 조종석 옆의 비상용 리볼버를 쥐었다. 그는 우주를 헤매며 수많은 위기를 겪었지만, 이처럼 알 수 없는 막연한 공포를 느껴본 적은 없었다. 이 공포는 심장이나 위장이 아닌, 뇌 속 깊은 곳에서부터 솟아나는 것이었다.
“이건 그냥 물체가 아닙니다.” 이선우의 목소리가 딱딱하게 굳었다. 그의 얼굴은 창백해져 있었다. “생명체와 유사한 파동이 감지됩니다. 하지만… 생명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무겁고, 차갑고, 거대합니다. 마치 우주의 모든 죽음을 한데 모아놓은 듯한… 그런 존재 같습니다.”
그때, 레비아탄 호의 함체에서 섬뜩한 소리가 울렸다. 금속이 뒤틀리는 듯한, 뼈가 으스러지는 듯한 소리였다.
“함체 압력 격벽에 이상 감지! 미세 균열 발생!” 강수아가 비명을 질렀다.
“이선우! 주엔진 출력 올려! 즉시 후퇴한다!” 서지혁이 외쳤다.
“안 됩니다! 함장님! 엔진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 저 물체가… 저게 우리 배의 동력을 빨아들이고 있어요!” 이선우가 절규했다. 그의 손이 땀으로 축축한 채로 패널 위를 허둥댔다.
레비아탄 호는 마치 거대한 거미줄에 걸린 작은 곤충처럼, 검은 물체에게 서서히 끌려가고 있었다. 점점 더 가까워지자, 그 물체의 기괴한 형태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다. 그것은 완벽하게 비대칭적이었고, 무수히 많은 촉수나 뼈대가 뒤엉켜 솟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표면에는 미지의 언어로 새겨진 듯한 문양들이 어른거렸다. 아니, 문양이 아니라… 수많은 눈동자처럼 보였다. 닫혀 있는, 그러나 언제든 뜨겁게 타오를 준비가 된 것 같은.
서지혁은 손에 쥔 리볼버를 내려놓고, 다시 비상 탈출 버튼에 손을 올렸다. 하지만 그마저도 작동하지 않았다. 함교의 모든 시스템이 먹통이 되어가고 있었다.
강수아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녀는 공포에 질려 스크린의 물체를 가리켰다.
“저 안에… 뭔가 있습니다. 움직입니다… 눈이… 눈이 우리를 보고 있어요!”
그녀의 말과 동시에, 검은 물체의 한 부분이 일그러지며 안쪽으로 움푹 들어가는 듯한 착시 현상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 깊은 심연 속에서, 아주 희미한, 하지만 확고한 빛이 깜빡였다.
그 빛은 마치 고대의 존재가 수십 억 년의 잠에서 깨어나, 굶주린 눈으로 먹잇감을 응시하는 것만 같았다.
서지혁은 등골을 타고 흐르는 섬뜩한 전율에 몸을 떨었다. 저것은 단순한 외계 유물이 아니었다.
이것은… 존재 그 자체였다.
그리고 그 존재는, 지금 깨어나고 있었다.
레비아탄 호는 비명을 지르며, 영원한 어둠 속으로 끌려들어가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