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도시의 밤은 언제나 끈적했다. 매연과 증기의 냄새, 금속의 비린내가 뒤섞인 공기는 폐부를 찌르고, 도시를 가로지르는 무수한 비행선들의 엔진 소리는 잠 못 드는 영혼들의 불면을 부추겼다. 김현우는 낡은 태엽식 손목시계가 가리키는 자정을 확인하며, 피곤에 절은 몸을 이끌고 시계탑 아파트 7층, 703호 문을 열었다.
“하아…”
깊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현우의 아파트는 겉보기엔 강철 도시의 여느 아파트와 다를 바 없었다. 콘크리트와 강철로 지어진, 효율성을 최우선으로 한 격자형 건축물. 하지만 내부는 달랐다. 현우는 오래된 것에 대한 집착이 강했고, 그 결과 그의 작은 공간은 온갖 앤티크 기계 장치와 구리 파이프, 황동 기어들로 채워져 있었다. 거실 한쪽 벽면에는 증기압으로 작동하는 거대한 오르골 시계가 묵직한 톱니바퀴 소리를 내며 시간을 새기고 있었고, 천장에서는 가스등이 흔들리는 노란 불빛을 드리웠다.
현우는 현관에 놓인 태엽식 통신기, 즉 휴대용 전화기를 거친 숨을 내쉬며 아무렇게나 던져두었다. 짤랑, 하는 금속음과 함께 바닥에 굴러떨어지는 소리에 그는 잠시 인상을 찌푸렸지만, 피로가 모든 신경을 마비시킨 터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이따금 이런 식으로 굴러떨어지는 일이 있었고, 그는 늘 제 자신을 탓했다. ‘피곤해서 그래. 집중력이 없으니.’
차가운 증기 압축 냉장고에서 식은 맥주 한 병을 꺼내 단숨에 들이켰다. 목울대를 타고 넘어가는 탄산의 따끔거림이 잠시 정신을 번쩍 들게 했다. 불을 끄지 않은 거실의 가스등 아래, 그는 늘 앉는 낡은 가죽 소파에 몸을 파묻었다. 그의 눈은 반쯤 감겨 있었지만, 습관적으로 시선을 돌려 벽 한쪽을 응시했다. 그곳에는 그가 아끼는, 섬세하게 제작된 태엽식 비행선 모형이 진열되어 있었다. 황동 선체에 새겨진 정교한 문양, 가느다란 구리 파이프가 얽혀 동력을 전달하는 듯한 모습, 그리고 아주 작은 증기 배출구가 그것을 더욱 생생하게 만들었다.
그때였다. 귓가에 낯선 소리가 들렸다. *스르륵.*
현우는 감겨 있던 눈을 번쩍 떴다. 피곤함 때문일까, 헛것을 들은 건가? 그는 다시금 눈을 감고 소파에 깊이 기댔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스르륵* 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좀 더 선명했다. 현우는 몸을 일으켰다. 그의 시선은 바닥으로 향했다.
조금 전 그가 아무렇게나 던져두었던 태엽식 통신기. 그것은 현관에서 몇 뼘 떨어진 복도 한가운데에 놓여 있었다. 그가 기억하는 위치보다 훨씬 안쪽으로 들어와 있었다. 그는 눈을 비볐다. 분명 잘못 본 것이라고 생각했다. 굴러떨어진 게 아니라 어딘가에 살짝 기댔는데, 미끄러져 내려온 것일 수도 있었다.
“피곤해서… 망상까지 하는군.”
현우는 중얼거리며 통신기를 다시 현관 신발장 위로 올려두었다. 그리고는 그대로 방으로 향했다. 잠이 먼저였다.
***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깬 현우는 어제보다 개운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피곤한 기분이었다. 침대에서 일어난 그는 부엌으로 향했다. 증기압으로 작동하는 커피 메이커에 물을 붓고 원두를 넣었다. 구리 파이프를 통해 증기가 ‘쉬이익’ 소리를 내며 끓어오르는 동안, 그는 식탁에 앉아 신문을 펼쳤다.
강철 도시의 아침 신문은 언제나 기계적인 소음과 공해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오늘은 한 기사에 그의 시선이 멈췄다.
[밤새 작동한 구형 증기 압축기, 시민들의 숙면 방해]
‘어제도 분명 그 소리였겠지.’ 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밤새 기계 소리가 유독 시끄러웠던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마치 그의 아파트 안에서 나는 소리처럼 가까이 느껴졌지만, 늘 그랬듯 외부 소음이 심한 탓이라고 생각했다.
커피가 다 되어가는 소리에 맞춰, 현우는 잠시 신문에서 눈을 떼었다. 그때였다. 거실 벽에 걸린 거대한 오르골 시계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평소 묵직하게 움직이던 톱니바퀴 소리가 아니라, ‘드르륵, 틱, 틱, 드르륵!’ 하고 불안정하게 움직이는 소리였다. 마치 시계 내부의 어떤 부품이 갑자기 격렬하게 움직이기 시작한 것 같았다.
“젠장, 또 고장인가.”
현우는 짜증을 내며 오르골 시계로 다가갔다. 어제 분명 태엽을 감아두었지만, 가끔씩 오작동을 일으키는 낡은 시계였다. 그가 시계 가까이 다가서는 순간, 시계의 분침과 시침이 맹렬한 속도로 돌기 시작했다. 마치 누가 손으로 잡고 돌리는 것처럼, 그러나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두 개의 바늘이 ‘우우웅’ 하는 가느다란 마찰음을 내며 시계판 위를 질주했다. 이내 바늘은 멈췄다. 엉뚱하게도 새벽 3시 17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현우는 입을 꾹 다물었다. 이런 적은 없었다. 태엽이 풀리거나, 시간이 멈추거나, 혹은 아예 작동을 멈추는 경우는 있어도, 이렇게 제멋대로 시간이 돌아가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그는 시계에 귀를 기울였다. 미세하게 ‘쉬이익’ 하는, 마치 증기가 새는 듯한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오묘하게 비릿하고 차가운, 금속성 냄새가 콧속을 스쳤다.
등골이 오싹했다. 이 오래된 아파트에서 종종 기이한 일이 일어나곤 했지만, 어쩐지 이번엔 그 느낌이 달랐다. 그는 조심스럽게 시계에서 손을 떼고 다시 식탁으로 돌아왔다. 따뜻한 커피는 이미 식어 있었다.
***
그날 밤, 현우는 평소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침대 맡 협탁 위에는 그가 읽던 ‘증기 역학의 이해’라는 두툼한 책이 놓여 있었다. 그는 가스등을 끄고 어둠 속에 몸을 맡겼다. 밖에서는 강철 도시의 불빛과 희미한 엔진 소리가 스며들었다.
잠이 오지 않았다. 오늘 낮에 겪었던 오르골 시계의 기이한 움직임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았다. 혹시 건너편 아파트에서 울리는 기계음이 시계에 영향을 준 건 아닐까? 아니면, 이 낡은 아파트의 지반이 불안정한 걸까? 온갖 합리적인 이유를 찾아 애써 불안감을 잠재우려 했다.
그때였다.
*털썩!*
침대 맡 협탁 위에서 들린 소리였다. 현우는 화들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그는 손을 뻗어 벽에 붙은 가스등 스위치를 더듬었다. 가스등이 ‘쉬익’ 소리를 내며 불을 밝혔다.
바닥을 내려다본 현우는 얼어붙었다.
그의 책, ‘증기 역학의 이해’가 협탁 아래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마치 누군가 강하게 밀어 떨어뜨린 것처럼, 바닥에 펼쳐진 채 놓여 있었다. 그는 협탁을 살폈다. 책이 떨어질 만한 어떠한 진동도, 경사도 없었다. 그는 책을 주워 들었다. 차가웠다. 마치 금속 덩어리를 만지는 듯한 차가움이 느껴졌다.
현우는 책을 다시 협탁 위에 올려두었다. 그리고는 침대에 앉아 방 안을 샅샅이 살폈다. 그의 눈이 닿는 곳마다 낡은 기계장치들이 조용히 놓여 있었다. 벽에 걸린 태엽식 지구본, 책상 위의 작은 나침반, 창가에 놓인 구리 망원경. 모든 것이 고요했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그 고요함이 편안하지 않았다.
‘이건… 실수로 떨어뜨린 게 아니야.’
그는 굳은 얼굴로 침대에서 내려왔다. 목이 말랐다. 부엌으로 가 물이라도 한 잔 마셔야겠다고 생각하며 방문을 나섰다.
그리고, 거실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그의 눈은 완전히 굳어버렸다.
거실 중앙, 허공에 그것이 떠 있었다.
현우가 가장 아끼는, 섬세하게 제작된 태엽식 비행선 모형. 평소 벽 선반 위에 고이 모셔두었던 그것이었다. 불빛이 미약한 가스등 아래, 비행선 모형은 마치 보이지 않는 실에 매달린 것처럼 공중에 정지해 있었다.
더욱 기괴한 것은, 모형의 작은 프로펠러들이 아주 느리게, 하지만 분명하게 돌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쉬이익… 쉬이익…’ 하는 작은 증기 배출음이 희미하게 들려왔고, 모형의 구리 파이프 끝에서는 아주 작은 증기 입자들이 연기처럼 피어 오르고 있었다.
현우는 숨을 멈췄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그의 모형은 스스로 동력을 발생시킬 수 없었다. 그저 장식용이었을 뿐이었다.
그때, 허공에 떠 있던 비행선 모형이 *덜컥!* 하고 요동쳤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그것을 거칠게 쥔 듯했다. 프로펠러의 회전 속도가 갑자기 빨라지더니, 모형은 ‘부우웅!’ 하는 소리를 내며 거실 한 바퀴를 맹렬히 선회했다.
현우는 비명을 지를 뻔했다. 그의 심장이 목구멍까지 치솟았다. 비행선 모형은 마치 사나운 벌처럼 거실을 마구 날아다녔다. 낡은 오르골 시계의 톱니바퀴를 스치고, 천장의 가스등 주변을 맴돌았다. 그 움직임은 분노에 찬 것처럼 거칠었다.
그리고 이내, 비행선 모형은 엄청난 속도로 현우가 서 있는 방향의 벽으로 돌진했다.
*콰아앙!*
굉음과 함께 모형은 벽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났다. 황동 선체가 찌그러지고, 구리 파이프가 꺾였으며, 수많은 작은 톱니바퀴들이 바닥에 흩뿌려졌다. ‘지지직, 툭, 팅!’ 하는 금속이 부서지는 소리가 적막한 거실을 채웠다. 파편들 사이로 희미하게 증기가 뿜어져 나왔다.
현우는 그 자리에 굳어 선 채, 떨리는 눈으로 바닥을 응시했다. 차가운 금속 냄새, 비릿한 증기 냄새가 그의 코를 자극했다. 그의 아파트에서, 그의 물건들이, 그의 눈앞에서 스스로 움직이고 파괴되었다.
이것은… 단순한 오작동이 아니었다.
그의 아파트에, 무언가가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히 기계적인 힘을 빌려 현우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그것은 무엇일까. 현우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그날 밤, 강철 도시의 어떤 기계 소음도 현우의 귓가에 들리지 않았다. 오직 파괴된 모형에서 희미하게 피어오르는 증기 소리만이, 그의 정신을 갉아먹는 듯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