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현실 게임 (VRMMO)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회색빛 하늘은 언제나처럼 무심했다. 류진은 부서진 콘크리트 잔해 위를 걷는 발걸음에 힘을 실었다. 건조한 목 안에서 침이 바싹 말라붙었다. 물이 없었다. 사흘째였다. 오염된 물을 마셨다가는 순식간에 몸에 이상이 생기거나, 며칠 고생하다가 의식불명에 빠지는 게 이곳의 흔한 엔딩이었다.

세라는 류진의 뒤를 따르며 낡은 지도 스크롤을 확인했다. 그녀의 손가락 끝이 홀로그램 지도의 닳아버린 부분을 가리켰다. “오빠, 이 근처 맞아요? ‘구 역참 지대’라고 되어 있는데… 아무것도 안 보이잖아요. 폐허밖에.”

“보이는 게 다라면 우리가 여기 왔겠냐.” 류진은 툭 내뱉었다. 그의 눈은 부서진 건물들 사이를 쉴 새 없이 스캔하고 있었다. “여기 지하에 오염되지 않은 취수원이 있다는 소문이 돌았어. 아니면 최소한 정수 모듈이라도 건질 수 있겠지. 오래된 물류 창고나 터미널엔 그런 시설들이 남아있을 확률이 높으니까.”

폐허가 된 빌딩 숲은 기괴한 침묵에 잠겨 있었다. 바람 소리마저 쇳소리처럼 거칠게 들렸다. 류진은 손에 든 개조된 돌격소총의 안전장치를 해제했다. 찰칵, 하고 묵직한 소리가 어둠을 갈랐다. 언제든 방아쇠를 당길 준비가 되어 있다는 뜻이었다.

주변의 분위기는 왠지 모르게 음산했다. 다른 탐색자들이 다녀간 흔적조차 찾기 어려웠다. 보통 이런 곳에는 누군가 남긴 표식이나, 사냥꾼들이 설치한 함정이 있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이곳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 멸망 전의 고요함이 아니라 멸망 후의 섬뜩한 침묵만이 감돌고 있었다.

“여기… 뭔가 있는 것 같아요.” 세라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그녀의 손에 들린 탐지기가 희미하게 깜빡였다. 약한 에너지 반응. 그러나 그것이 무엇인지, 아군인지 적군인지 알려주지 않았다. 그저, 무언가 살아있는 것이 이 근처에 있다는 경고일 뿐이었다.

류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감각 또한 탐지기와 비슷한 것을 느끼고 있었다. 설명할 수 없는, 미약하지만 분명한 생명 반응. “경계를 늦추지 마. 우리 말고 다른 게 있을 가능성이 더 커.”

목적지로 추정되는 건물은 거대한 철골 구조물이었다. 한때는 번화했던 물류 센터였겠지만, 지금은 거대한 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괴물의 잔해 같았다. 건물 입구는 뭉개진 금속 문과 무너진 콘크리트 더미로 막혀 있었다. 류진은 휴대용 레이저 절단기를 꺼내 들었다. 붉은 빛이 굉음과 함께 철골을 잘라내기 시작했다.

찌이이잉-!

금속이 타는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절단음이 어둠 속으로 멀리 퍼져나갔다. 이 소리는 분명 주변의 모든 것을 자극할 터였다. 류진은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대로 노출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간신히 사람이 드나들 만한 틈을 만들어낸 류진은 먼저 안으로 들어섰다. 내부는 온통 먼지와 곰팡이 냄새로 가득했다. 천장은 대부분 무너져 내렸고, 햇빛이 드문드문 콘크리트 파편 사이로 쏟아져 들어왔다. 그의 시선은 켜켜이 쌓인 먼지 위를 훑었다. 발자국, 또는 끌린 자국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이 건물은 오랜 시간 동안 외부의 침입이 없었던 것처럼 보였다. 그것은 좋은 징조일 수도 있고, 나쁜 징조일 수도 있었다. 너무 완벽한 고요함은 오히려 더 큰 위협을 숨기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지하로 내려가는 통로를 찾아야 해.” 류진은 작게 중얼거렸다.

세라는 조심스럽게 건물의 내부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손에 들린 탐지기가 이번에는 좀 더 강렬하게 반응했다. “오빠, 저기요! 저기 뭔가… 계단 같아요!”

세라가 가리킨 곳은 붕괴된 잔해 더미 아래에 희미하게 드러난 지하 통로였다. 류진은 주변을 경계하며 통로 쪽으로 다가갔다. 녹슨 철문은 굳게 닫혀 있었지만, 힘을 주어 밀자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천천히 열렸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은 곰팡이와 녹슨 철 냄새로 가득했다. 한 발짝 내디딜 때마다 부스러진 잔해가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냈다. 아래는 암흑 그 자체였다. 류진은 헤드 랜턴을 켜고 조심스럽게 계단을 내려갔다. 세라는 그의 바로 뒤를 따랐다.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스르륵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마치 거대한 뱀이 몸을 비트는 듯한 소리였다. 류진은 즉시 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살폈다. 그의 총구가 어둠 속을 지향했다.

“크으…!” 세라가 짧은 비명을 질렀다. 어둠 속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튀어나왔다. 날카로운 발톱과 짐승 같은 울음소리. 변종 ‘그림자 추적자’였다. 녀석은 빛을 싫어하는지, 희미한 렌턴 빛에도 몸을 움츠리는 듯했다.

류진은 반사적으로 총을 들어 올렸다. 변종의 눈이 붉게 번뜩이는 것을 확인한 그는 망설임 없이 섬광탄을 꺼내 던졌다.

쉬이이이익- 펑!

번쩍이는 섬광이 좁은 지하 통로를 순식간에 환하게 밝혔다. 눈앞의 변종은 잠시 움직임을 멈추고 고통스러운 울음소리를 내며 몸부림쳤다. 그 틈을 타 류진은 방아쇠를 당겼다. 탄피가 튀고 화약 냄새가 진동했다. 정확히 변종의 몸통 중앙을 노린 사격이었다.

하지만 변종은 예상보다 빨랐다. 섬광의 잔상 속에서 다시 형체를 흐리며 달려들었다. 세라가 들고 있던 단검을 휘둘렀지만 헛스윙이었다. 녀석은 마치 그림자처럼 빠르게 움직이며 세라의 목덜미를 노렸다.

“세라! 뒤로 물러서!” 류진은 소리쳤다. 그는 재빨리 자세를 낮추며 변종의 측면으로 파고들었다. 녀석의 약점은 분명히 목 부분이었다. 몇 번의 총알로는 꿈쩍도 하지 않았지만, 중요한 부위를 노린 공격은 통할 터였다.

류진은 변종의 다리 사이로 미끄러지듯 들어가며 총구를 위로 향했다. 한 발, 두 발. 심장을 노린 사격이었다. 변종의 움직임이 잠시 멈칫했다. 고통스러운 신음소리가 지하 공간을 가득 채웠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류진은 개머리판으로 녀석의 옆구리를 후려쳤다. 퍽!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변종은 휘청였다.

마지막 일격. 류진은 총의 총열 끝에 달린 칼날로 변종의 목덜미를 정확히 노렸다. 쩌억! 하는 소리와 함께 변종의 피가 솟구쳤다. 거대한 몸뚱이가 힘없이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비릿한 피 냄새가 코를 찔렀다.

간신히 변종을 쓰러트리고, 류진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바닥에 쓰러진 추적자의 몸뚱이에서 역한 비린내가 풍겼다.

“괜찮아?” 류진이 세라에게 물었다. 세라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얼굴은 창백했다. 손에 든 단검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찾았어요, 오빠! 저기…!” 세라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는 낡았지만 온전해 보이는 ‘자동 정수 모듈’이 있었다. 벽 한쪽에 박힌 채로 녹이 슬어 있었지만, 기계 특유의 단단한 외형은 여전했다.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드디어 물을 얻을 수 있었다. 갈증으로 타들어가던 목마름을 해소할 수 있다는 생각에 류진은 긴장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그는 모듈을 작동시키기 위해 다가갔다. 전원 버튼을 누르자 희미하게 깜빡이는 녹색 불빛이 들어왔다. 작동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때였다.

위층, 즉 그들이 내려온 계단 쪽에서 희미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하나가 아니었다. 여러 개의 발소리. 그리고 낮게 으르렁거리는 소리.

류진의 눈이 가늘어졌다. 순간적으로 모든 피로감이 사라졌다. ‘젠장, 또 다른 놈들이었나.’

세라의 얼굴에 다시 공포가 번졌다. 그녀는 류진의 등 뒤에 바싹 달라붙었다.

위층에서 내려오는 그림자들은 이전의 그림자 추적자와는 뭔가 달랐다. 더 크고, 더 위협적이었다. 분명히 더 많았다. 녀석들의 붉은 눈이 어둠 속에서 섬뜩하게 빛났다. 그들은 정수 모듈을 사이에 두고 그들을 포위하려는 듯 천천히 움직였다.

류진은 총을 고쳐 잡았다. 물은 찾았지만, 과연 이걸 가지고 살아나갈 수 있을까.

그들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또 다른 생존의 기로였다.

과연 이들은 무사히 이 지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