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공상과학) 독립적인 단편 소설

민준은 자신이 이런 류의 괴담에 휘말릴 줄은 상상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는 도시의 심장부, 밤에도 꺼지지 않는 스크린 같은 초고층 빌딩 숲에서 빛나는 새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모든 것이 깔끔하고, 효율적이며, 최첨단 기술로 돌아가는 공간이었다. 적어도 그렇게 믿었다.

처음에는 피곤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퇴근 후 겨우 정신을 차리고 샤워를 마치면, 분명 침대 옆 협탁에 놓아두었던 이어폰이 소파 쿠션 틈새에서 발견되곤 했다. 한두 번은 그럴 수 있다. 사람이 살다 보면 깜빡할 수도 있고, 물건이 제자리를 벗어나는 건 흔한 일이니까. 그러나 패턴이 생기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출근을 위해 현관문을 나서려는데, 분명 어제 밤 충전기에 꽂아두었던 스마트워치가 식탁 위, 그것도 미처 치우지 못한 시리얼 그릇 안에 놓여 있었다. 액정에는 알 수 없는 모래알 같은 노이즈가 희미하게 일렁였다. 민준은 살짝 인상을 찌푸렸지만, 피곤함과 지각의 압박에 얼른 워치를 챙겨 나왔다. ‘배터리 방전이라도 됐나? 어째서 시리얼 그릇에…’ 의문은 꼬리를 물었지만, 이내 복잡한 출근길에 묻혔다.

주말, 민준은 집에서 쉬기로 했다. 오랜만에 느긋하게 커피를 내려 마시며 책을 읽고 있는데, 거실 테이블 위에 놓인 무선 스피커가 갑자기 지직거리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어폰을 끼고 있던 민준은 잠시 귀를 기울였다. 분명 아무것도 재생하지 않았는데, 마치 오래된 라디오에서 잡음이 들려오듯 희미한 소리가 계속됐다.

“어, 뭐야.”

그는 스피커를 집어 들었다. 전원 버튼이 눌리지도 않았는데, 스피커 상단에 있는 LED 인디케이터가 불규칙하게 깜빡였다. 마치 누군가 그 작은 점멸등으로 어떤 메시지를 보내는 것만 같았다. 민준은 배터리가 나갔나 싶어 충전 케이블을 꽂았다. 그러자 언제 그랬냐는 듯 잡음이 뚝 끊기고 LED는 정상적으로 충전 상태를 표시했다.

‘새 제품인데 벌써 고장인가? 요즘 가전제품들이 영 부실해.’

그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려 애썼다. 그러나 다음 날, 더욱 명확한 현상이 그를 찾아왔다. 늦은 밤, 잠이 오지 않아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을 보고 있을 때였다. 거실에서 ‘쨍’ 하는 소리가 들렸다. 유리잔이 깨지는 소리였다.

민준은 화들짝 놀라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심장이 발소리에 맞춰 쿵쾅거렸다. 거실로 조심스럽게 발을 디디자, 바닥에는 물컵 하나가 산산조각 나 있었다. 깨진 파편들이 달빛을 받아 차갑게 빛났다. 그가 마지막으로 물을 마신 것은 저녁 식사 때였고, 컵은 분명 식탁 위에 멀쩡히 놓여 있었다.

“누구… 없어요?”

떨리는 목소리가 빈 공간을 울렸다. 물론 대답은 없었다. 집 안에는 민준 자신뿐이었다. 그는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이 모든 현상이 단순한 우연이나 기계 오작동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기이했다.

그는 현관문과 창문들을 꼼꼼히 잠갔는지 다시 확인했다. 모든 것이 단단히 잠겨 있었다. 어둠 속에서 그의 머릿속은 복잡하게 돌아갔다. 과학적인 설명을 찾으려 했지만, 이 아파트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그 어떤 물리 법칙으로도 설명하기 어려웠다.

그는 다음날 아침, 당장 거실과 침실, 주방에 소형 감시 카메라를 설치했다. ‘이 모든 게 내가 헛것을 보거나, 꿈을 꾼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잖아.’ 그는 스스로에게 합리적인 변명을 늘어놓았다. 카메라가 모든 것을 기록할 것이고, 그러면 진실이 드러날 터였다.

카메라 설치 후 이틀 밤이 지났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민준은 안도하며 이 모든 것이 자신의 과민 반응이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셋째 날 밤, 다시 시작되었다.

그는 잠이 들 무렵, 서재 문이 삐걱이는 소리에 잠이 깼다. 분명 닫아두었던 문이었다. 그는 카메라를 의식하며 다시 잠을 청하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머리맡 스탠드의 전구가 갑자기 ‘팟!’ 하는 소리와 함께 터져 버렸다. 방은 순식간에 암흑에 잠겼다.

“젠장!”

놀란 민준은 침대에서 굴러떨어질 뻔했다. 심장이 목구멍까지 치솟았다. 그는 간신히 휴대폰 플래시를 켜고, 밤새도록 잠 한숨 자지 못한 채 아침을 맞았다.

해가 뜨자마자 민준은 녹화된 영상을 확인했다. 거실 카메라 영상에는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주방도 마찬가지였다. 마지막으로 침실 카메라 영상을 재생했다. 영상은 민준이 잠자리에 들고, 뒤척이는 모습을 담고 있었다. 그리고… 서재 문이 저절로 열리는 순간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영상 속 서재 문은 마치 투명한 손이 밀기라도 한 듯 천천히 열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문이 혼자서 스르륵 열릴 뿐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영상은 지지직거리는 노이즈와 함께 끊겼다. ‘기계 오작동’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시기적절하고, 묘하게 섬뜩했다. 영상은 민준이 놀라 깨어나기 직전, 스탠드 전구가 터지는 순간까지 담겨 있었고, 그 순간 정확히 녹화가 중단되었다. 마치 누군가, 혹은 *무언가*가 보고 싶지 않은 장면만 정확히 지워낸 것처럼.

민준은 입술을 깨물었다. 이건 명백히 폴터가이스트 현상이었다. 그러나 단순한 유령의 장난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어딘가 달랐다. 너무 정교하고, *효율적*이었다. 마치 어떤 시스템 오류처럼.

그날 밤, 그는 거실 소파에 앉아 긴장된 자세로 어둠을 응시했다. 밤 11시 11분. 벽에 걸린 디지털 시계가 숫자를 바꿀 때였다. 갑자기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유리 공예품이 흔들리더니, 바닥으로 떨어져 산산조각 났다.

이번에는 명백했다. 민준은 자신의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아무도 만지지 않았는데, 공예품이 마치 투명한 힘에 밀린 것처럼 미끄러져 떨어졌다. 심지어 떨어지기 직전, 공예품은 공중에서 잠시 멈춘 듯한 움직임을 보였다. 중력을 거스르는 듯한 찰나의 정지.

“너… 뭐냐.”

민준의 목소리가 떨렸다. 공포보다 더 깊은, 이해할 수 없는 경외감이 그의 심장을 옥죄어 왔다. 그 순간, 그의 등 뒤, 주방에서 칼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땡그랑, 쨍그랑.’ 마치 누군가 주방 칼들을 바닥에 일부러 떨어뜨리는 소리였다.

그는 비틀거리며 주방으로 향했다. 싱크대 옆 칼꽂이에 꽂혀 있던 식칼들이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그리고 칼날 중 하나가, 마치 일부러 놓인 것처럼, 바닥의 타일에 뾰족하게 박혀 있었다. 그 칼날의 손잡이는 위를 향하고 있었다.

그 순간,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다. 칼날이 박힌 타일 옆, 작은 설탕통이 놓여 있었다. 그런데 그 설탕통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마치 내부에서 어떤 진동이 일어나는 것처럼.

민준은 천천히 설탕통에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닿자마자, 설탕통은 차갑게 얼어붙은 것처럼 움직임을 멈췄다. 그리고 그 순간, 통 안에 담겨 있던 하얀 설탕들이 갑자기 미세하게 부풀어 오르더니, 마치 작은 모래폭풍처럼 회전하기 시작했다. 설탕 알갱이들이 스스로 움직이며, 통 바닥에 희미한 형체를 그렸다.

그것은 숫자였다. 마치 오래된 컴퓨터 화면에서 깨진 픽셀처럼 불완전하고 흐릿한 숫자들.

`3.1415926535…`

원주율. 민준은 숨을 들이켰다. 왜? 왜 하필 원주율?
그리고 이내 설탕들은 흩어지며 다른 형상을 만들었다. 이번에는 복잡한 기하학적인 도형이었다. 선과 점들이 불규칙하게 배열되다, 이내 정교한 패턴을 이루었다. 마치 어떤 에너지 파동의 시각화 같았다.

민준은 정신없이 그것을 바라보았다. 이것은 유령의 장난이 아니었다. 이건… 어떤 정보의 전송이었다. 어떤 메시지.

그때, 주방 창문 밖으로 도시의 불빛들이 한순간 일제히 깜빡였다. 거대한 도시 전체가 거대한 컴퓨터가 된 것처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일제히 꺼졌다가 다시 켜졌다. 수십만 개의 불빛이 동기화된 듯이 점멸하는 광경은 압도적이었다.

그리고 다시 그의 주방 안. 설탕통 안의 설탕들이 다시금 새로운 패턴을 만들어냈다. 이번에는 마치 코드 같았다. 이해할 수 없는 기호들의 나열.

그는 깨달았다. 이 아파트는, 아니 이 도시의 어딘가는, 어떤 보이지 않는 네트워크와 연결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네트워크가 지금, 자신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이 폴터가이스트 현상은 단순한 괴롭힘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 세계의 다른 차원에서 넘어오는 정보의 파편이었다. 이 초고층 빌딩, 수많은 전자기기, 끊임없이 흐르는 전류 속에서 발생한 어떤… *오류* 혹은 *접속*이었다.

설탕 알갱이들이 마지막으로 형성한 것은, 그의 아파트 평면도와 비슷하면서도 어딘가 비틀린 형상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작은 점이 반짝였다. 마치 이곳이 시공간의 교차점이라는 듯.

민준은 설탕통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그의 손은 더 이상 떨리지 않았다. 공포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차가운 지적 호기심과 함께, 설명할 수 없는 불안감이 똬리를 틀었다. 그는 이 현상이 자신에게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그리고 이 도시의 평범한 일상 아래 감춰진 진실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짐작하게 되었다.

그는 더 이상 잠들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 기묘한 아파트, 이 거대한 도시의 심장부에서, 그는 이제 이계의 신호와 공존해야 했다. 설탕통 안의 희미한 점멸은 계속되고 있었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도시의 불빛은 다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평화롭게 빛나고 있었다. 하지만 민준에게는 더 이상 똑같은 풍경이 아니었다. 그는 이제 도시의 반짝임 속에서, 보이지 않는 균열과 그 틈새로 스며드는 다른 세계의 속삭임을 듣게 된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는 알았다. 이 모든 것은 이제 시작일 뿐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