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역사물 독립적인 단편 소설

어둑한 새벽, 경성(京城)의 하늘은 아직 밤의 잔영을 품고 있었다. 대정원 제국의 수도, 이 거대한 도시는 수많은 증기 기관과 전등의 불빛 아래 잠시의 평화와 끊임없는 소음을 동시에 뿜어내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동북쪽 산자락에 고고하게 자리 잡은 윤대감 댁은 잠시 고요한 침묵에 잠겨 있었다. 그러나 그 침묵은 오래가지 못했다.

“윤대감께서… 돌아가셨습니다!”

비명에 가까운 하인의 목소리가 고요를 갈랐다. 대정원 제국 제일의 철강왕, 윤덕환 대감이 자신의 서재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된 것이다. 시내를 가로지르는 전신망을 통해 소식이 번개처럼 퍼져나갔고, 곧 경성 제1 경무국 수사관들이 증기 자동차를 타고 저택으로 향했다. 그들을 이끄는 건 젊은 수사관 김현수였다. 그는 비록 경험은 적었으나, 날카로운 직감과 탁월한 성실함으로 상부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었다.

“현수 나으리, 이쪽입니다!”

저택의 문을 지키던 경위가 현수를 맞았다. 서둘러 윤대감의 서재로 향한 현수의 눈에 들어온 것은 절망적인 광경이었다. 거대한 서재는 수천 권의 장서로 가득했고, 그 한가운데 놓인 육중한 책상에는 윤대감이 고개를 떨군 채 쓰러져 있었다.

“피해자는 윤덕환 대감입니다. 사인은 아직 불명확합니다만… 독살로 추정됩니다.”

현장감식반의 최 반장이 곤혹스러운 얼굴로 보고했다.

“밀실입니다. 현수 나으리.”

최 반장의 말에 현수는 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서재의 문은 육중한 떡갈나무로 만들어져 있었고, 안쪽에서는 굵은 쇠빗장이 단단히 잠겨 있었다. 빗장 옆에는 육중한 황동 열쇠가 꽂힌 채였다.

“창문은 어떻습니까?” 현수가 물었다.

“모두 안에서 잠겨 있었고, 외부에는 견고한 철창이 박혀 있습니다. 사람 한 명이 드나들 틈조차 없습니다.”

현수는 방 안을 둘러봤다. 책상 위, 바닥, 벽장, 그 어느 곳에도 침입의 흔적은 없었다. 완벽한 밀실이었다. 범인은 대체 어떻게 이 방에 들어와 살인을 저지르고, 또 어떻게 사라진 것일까? 현수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이건…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사건이 아닙니다.” 최 반장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분을 부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분. 경성 경무국 모두가 머리를 싸매는 기묘한 사건이 터질 때마다 호출되는 단 한 사람. 이지우. 그는 경성 뒷골목의 허름한 서재에서 하루 종일 책만 파고드는 괴짜였으나, 제국의 수도에 떠도는 기이한 소문들처럼, 그가 풀지 못하는 수수께끼는 없었다.

***

두어 시간 후, 삐걱거리는 증기 자동차 한 대가 윤대감 저택 앞에 멈춰 섰다. 차에서 내린 것은 예상대로 이지우였다. 낡은 두루마기 차림에 머리는 산발이었고, 눈 밑에는 깊은 다크서클이 드리워져 있었다. 하지만 그의 눈빛만은 차가운 밤하늘의 별처럼 번뜩였다.

“이지우 나으리, 바쁘신 와중에 송구합니다.” 현수가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윤대감의 죽음보다 더 바쁜 일은 없지. 밀실이라 했던가?” 지우는 묻는 말에 대답도 없이 중얼거리며 서재로 향했다.

방 안으로 들어선 지우는 맨 먼저 문을 응시했다. 그는 손가락으로 문틀과 빗장을 몇 번이고 쓸어보았다. 그다음엔 창문으로 향해 철창과 창살을 세심하게 살폈다. 그의 움직임은 마치 숲속의 맹수가 먹잇감을 노리듯 민첩하고 조용했다.

“독살이라고 했지?” 지우가 몸을 굽혀 윤대감의 시신을 살폈다. 그는 시신의 옷깃을 조심스럽게 헤치고 목덜미, 팔목, 그리고 손등을 꼼꼼히 살폈다. 그의 눈은 마치 현미경처럼 미세한 흔적까지 놓치지 않았다.

“예, 육안으로는 상처가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입술이 푸르게 변색되어 있고, 호흡기가 마비된 듯 보입니다. 맹독임이 틀림없습니다.” 최 반장이 설명했다.

지우는 대답 없이 시신 옆에 놓인 반쯤 비워진 찻잔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았다.

“차는 누가 올렸나?”

“하녀 ‘복례’가 올렸습니다. 아침에 윤대감께 차를 올리러 왔다가 시신을 발견했습니다.”

지우는 시신의 손가락을 하나하나 살폈다. 그리고는 그의 눈이 순간적으로 빛났다. 그는 윤대감의 검지 손가락에 있는 아주 작은 핏자국, 마치 바늘에 찔린 듯한 흔적을 발견했다. 일반인의 눈에는 보이지 않을 만큼 미세한 흔적이었다.

“최 반장, 이 상처를 보시오.” 지우가 손가락으로 시신의 검지를 가리켰다.

최 반장은 돋보기를 꺼내어 자세히 살핀 후, 고개를 갸웃거렸다. “바늘에 찔린 자국 같습니다만… 아주 작습니다. 윤대감께서 스스로 찔렀을 리는 없고…”

“현수, 하녀 복례를 불러오시오.”

하녀 복례는 공포에 질린 얼굴로 나타났다.

“윤대감께 언제 마지막으로 차를 올렸지?” 지우가 차분하게 물었다.

“어젯밤 늦게… 대감께서 서재에서 책을 읽으시다 차를 찾으셔서 올렸습니다. 따뜻한 약차였습니다.” 복례가 더듬더듬 대답했다. “그리고 아침 일찍 다시 차를 올리러 왔을 때… 문이 잠겨 있어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항상 열려 있었는데…”

“어젯밤 차를 올릴 때는 문이 열려 있었다는 말인가?”

“예. 제가 들어가서 차를 놓아드리고 나왔을 때도… 대감께서 ‘수고했다’ 하시며 계속 책을 보고 계셨습니다.”

지우는 하녀의 말을 곰곰이 생각했다. 그는 다시 한번 시신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윤대감의 책상 위에 놓인 만년필과 종이를 살폈다. 종이에는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았다. 하지만 만년필 뚜껑이 열려 있었고, 잉크가 미처 마르지 않은 채였다. 그리고 만년필 바로 옆에는 작은 유리병이 놓여 있었다. 현장감식반은 이를 약병으로 추정했다.

“흠…” 지우는 무언가 결론을 내린 듯한 표정으로 섰다.

“이지우 나으리, 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범인은 대체 어떻게 이 밀실을 빠져나갔단 말입니까?” 현수가 답답함을 토로했다.

지우는 현수를 바라보았다. “범인은… 이 방을 나갈 때 이 방을 잠그지 않았네.”

현수는 깜짝 놀랐다. “네? 하지만 문은 안에서 빗장이 걸려 있었고, 열쇠도 안에 있었지 않습니까?”

“바로 그 점일세. 범인이 이 방을 잠갔다면, 그는 열쇠를 가지고 나갔어야 했지. 하지만 열쇠는 분명히 방 안에 있었네. 게다가 윤대감은 검지에 작은 상처가 있었지. 그리고 만년필 뚜껑이 열려 있었고, 잉크가 마르지 않았네.”

지우는 천천히, 그러나 또렷하게 설명을 시작했다.

“범인은 어젯밤 윤대감과 함께 서재에 있었네. 그는 윤대감 몰래, 혹은 윤대감이 눈치채지 못하게 독침을 사용했네. 아주 미세하고 빠르게 발사되는 독침이었겠지. 윤대감의 검지에 박힌 상처가 바로 그 증거일세.”

“독침…! 하지만 어떻게 그런 것을…”

“요즘 신기술로 만들어진 정교한 소형 발사기가 있다고 들었네. 아마 이 약병은 그 독침을 담은 것이었겠지. 범인은 독침을 사용한 후 서재를 나갔네. 문은 잠기지 않은 채였지. 하녀 복례의 증언이 이를 뒷받침하네.”

현수는 지우의 말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윤대감은 범인이 나간 후, 독이 서서히 퍼지기 시작했을 걸세. 처음에는 미미했지만, 점차 고통이 심해졌겠지. 그는 자신이 독살당하고 있음을 직감했을 걸세.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기에는 너무 늦었고, 무엇보다 침입자가 다시 돌아올까 두려웠을 거야. 그래서… 그는 자신의 마지막 힘을 다해 문을 잠갔네.”

지우는 빗장이 걸린 문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윤대감은 빗장을 걸고, 열쇠를 꽂아두었네. 그리고 책상으로 돌아와… 자신이 겪고 있는 일을 기록하려 했을 걸세. 하지만 펜을 들었을 때, 독은 이미 그의 몸을 완전히 지배했겠지.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그는 쓰러져 죽음에 이르렀네.”

“그렇다면… 밀실은 범인이 만든 것이 아니라, 윤대감 스스로가 만든 것이군요!” 현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정확하네. 이 밀실은 범인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범인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던 윤대감의 처절한 마지막 시도였지.”

“하지만 누가 윤대감을…?”

지우는 고개를 돌려, 방 한구석에서 초조하게 서 있던 윤대감의 비서, ‘박진우’를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은 파리했고, 손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윤대감의 유산은 상당한 규모일세. 자네는 늘 대감의 곁에서 일해왔고, 대감의 사적인 일까지 모두 알고 있었지. 대감이 가장 신뢰하는 사람이었으니, 독침을 사용할 기회도 많았을 걸세. 무엇보다, 자네가 가장 먼저 시신을 발견했다고 했지? 아마, 윤대감이 죽었는지 확인하러 다시 왔던 것이겠지. 열려있어야 할 문이 잠겨 있는 것을 보고 자네는 놀랐을 걸세. 그리고 그 밀실이 자네를 보호해 줄 것이라 생각했겠지.”

박진우 비서의 얼굴은 하얗게 질렸고, 이내 무릎을 꿇으며 모든 것을 자백하기 시작했다. 윤대감의 재산을 노린 그의 범행은 밀실이라는 기묘한 장막 뒤에 숨어 있었으나, 이지우의 날카로운 통찰력 앞에서는 한낱 환영에 불과했다.

경성 하늘은 어느덧 아침 햇살에 물들기 시작했다. 대정원 제국의 수도는 잠에서 깨어나 또 다른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이지우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다시 증기 자동차에 올라탔다. 그의 발걸음은 다시 허름한 서재로 향했지만, 그의 머릿속은 이미 또 다른 미지의 수수께끼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경성이라는 거대한 퍼즐 속에서, 그는 영원히 진실을 좇는 그림자처럼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