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저택의 묵직한 오크 문이 삐걱이며 닫히자, 바깥세상의 모든 소음이 단절되는 듯했다. 어둠골 저택은 그 이름처럼 늘 어둠을 머금고 있는 곳이었다. 경감 강태수는 이마의 땀방울을 닦아내며 지우를 기다렸다. 그의 얼굴에는 피로와 함께 해답 없는 미궁에 빠진 자의 절망이 뚜렷했다.
“선생, 드디어 오셨군요. 어서 와보시죠. 이젠 저도 제정신이 아닌 것 같습니다.”
강경감의 목소리는 평소의 쩌렁쩌렁한 기세는 온데간데없고, 스산한 저택의 냉기처럼 가라앉아 있었다. 설지우는 어둠골 저택의 칙칙한 복도에 발을 들였다. 그의 날카로운 시선은 강경감의 얼굴을 스치지 않고, 낡은 벽지의 미묘한 색바램, 천장의 장식에 내려앉은 먼지의 층, 그리고 무엇보다 이곳에 드리워진 묘한 공기 – 마치 아주 오래된 숨결이 닿아 서서히 변이된 듯한 – 에 머물렀다.
“급할 것 없습니다, 경감님. 이 세상에 급한 것은 오직 미해결 사건뿐이죠.”
지우의 차분한 목소리는 강경감의 조급함을 조금도 가라앉히지 못했다. 오히려 그의 괴팍함을 더욱 부각시키는 듯했다.
강경감은 한숨을 쉬며 지우를 저택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서재로 안내했다. 문 앞에는 이미 통제선이 쳐져 있었고, 몇몇 형사들이 당황한 얼굴로 서성였다.
“피해자는 진명우 박사입니다. 아시다시피 고대 문명과 오컬트 유물 연구로 유명한 분이죠. 지난밤 늦게까지 서재에서 연구 중이었고, 아침에 집사가 문을 두드렸을 때 아무런 응답이 없어서 비상열쇠로 열고 들어갔답니다. 그리고…”
강경감은 말을 잇지 못하고 침을 꿀꺽 삼켰다. 지우는 아무 말 없이 그의 뒤를 따라 서재 안으로 들어섰다.
서재는 거대하고 어두웠다. 벽면 가득 오래된 책들과 알 수 없는 상징들이 새겨진 유물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공기 중에는 묵은 종이 냄새와 함께 희미하지만 역한, 무언가 타는 듯한 비린내가 뒤섞여 있었다. 지우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리고 방 한가운데, 거대한 호두나무 책상 위에 진명우 박사가 쓰러져 있었다. 그의 얼굴은 극심한 공포로 일그러져 있었고, 눈은 공허한 천장을 멍하니 응시하고 있었다. 옷은 흐트러짐 없었지만, 그의 심장 부근에는 선명하고 완벽한 원형의 구멍이 뚫려 있었다. 상처 주변은 마치 날카로운 칼로 도려낸 듯 매끈했지만, 피는 한 방울도 흐르지 않았고, 오히려 살이 검게 그을린 듯한 기묘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마치 무엇인가가 그의 몸을 *통과*해버린 듯한 상처였다.
“보시다시피, 문은 안에서 잠겨 있었습니다. 창문도 마찬가지고요. 굳게 닫힌 덧문 안쪽으로 빗장이 걸려 있었고, 박사는 항상 이 열쇠를 가지고 다녔죠. 지금도 주머니에서 발견되었습니다. 내부에는 침입 흔적이 전혀 없습니다. 대체 누가… 아니, 대체 *무엇이* 이 방에 들어와 박사를 죽였단 말입니까?” 강경감의 목소리가 떨렸다.
지우는 강경감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하며 서재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그의 시선은 책상 위, 바닥, 벽, 그리고 천장을 꼼꼼히 훑었다. 그의 시선이 닿는 곳마다 강경감이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작은 이상징후들이 빛을 발하는 듯했다.
“경감님, 이 방 공기가… 보통이 아니군요.” 지우가 중얼거렸다. “금속이 타는 냄새와 오래된 박물관 냄새, 그리고 이끼 낀 돌 냄새가 섞여 있습니다. 이 정도는 분명히 알아챘어야 할 텐데요.”
강경감은 머쓱하게 코를 킁킁거렸다. “긴장해서 그랬나 봅니다. 아무 냄새도 못 맡았는데요.”
“이런 곳에선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만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죠.”
지우는 망설임 없이 진명우 박사의 시신에 다가갔다. 그는 장갑 낀 손으로 구멍 난 심장 부근을 조심스럽게 만졌다. 살갗은 차가웠고, 탄력 없이 축 늘어져 있었다. 구멍의 가장자리는 매끄러웠으나, 미세한 균열들이 방사형으로 퍼져 있었다.
“흡사 날카로운 조각으로 구멍을 낸 것 같습니다. 하지만 피가 한 방울도 없다는 것이 의아합니다.” 지우는 읊조리듯 말했다. 그의 눈은 진명우 박사의 눈동자를 파고들었다. 공포에 질린 눈동자 속에서, 지우는 미약하게나마 비치는 어떤 잔상을 포착했다. 그것은 희미한 초록색 빛이었다.
그는 책상 위를 살펴보았다. 잉크병, 깃털 펜, 두꺼운 연구 노트가 펼쳐져 있었다. 노트에는 알아보기 힘든 고대 언어들과 복잡한 기호들이 가득했다. 마지막으로 쓰인 문장은 “경계가 열리고 있다… 그들은 기다리고 있다…” 였다.
“이게 단서겠군요.” 지우는 노트를 들어 올렸다. “피해자는 무언가를 알고 있었고, 그것 때문에 죽은 겁니다.”
그는 책상 옆, 바닥에 놓여 있던 이상한 장치에 시선을 고정했다. 금속과 알 수 없는 광물질이 뒤섞인, 복잡한 기하학적 형태의 오브제였다. 중앙에는 수정처럼 투명한 푸른 구체가 박혀 있었는데, 희미하게 빛을 발하는 듯했다. 장치 주변의 바닥은 아주 미세하게, 육안으로는 거의 식별 불가능할 정도로 검게 그을려 있었다. 마치 강한 에너지가 순간적으로 방출된 흔적 같았다.
“이건… 박사가 최근에 발견했다고 자랑하던 ‘공간 왜곡 연산기’라는 겁니다.” 강경감이 말했다. “그는 이걸 이용해 다른 차원의 문을 열 수 있다고 주장했죠. 물론 우리는 다들 미친 소리라고 치부했지만…”
지우는 장치를 집어 들었다. 차가운 금속 표면에서 미약한 진동이 느껴지는 듯했다. 그의 뇌리 속에서 퍼즐 조각들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경감님, 잠금장치 다시 확인해 주시겠습니까?”
강경감은 의아한 얼굴로 다시 문으로 향했다. 빗장은 굳게 잠겨 있었고, 손잡이는 움직이지 않았다. 창문도 마찬가지였다.
“보셨죠? 완벽한 밀실입니다.”
지우는 서재 한구석에 놓인 고풍스러운 전신 거울 앞으로 다가갔다. 낡은 은색 테두리에 장식된 기묘한 문양들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그는 거울 표면을 손가락으로 훑었다. 미세하게, 아주 미세하게 거울 표면이 왜곡되어 있는 것을 느꼈다. 마치 오랜 세월 동안 어떤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휘어진 것처럼. 그리고 그 거울 주변의 벽지 색깔이 다른 곳보다 미묘하게 탁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 거울, 옮겨보시죠.” 지우가 지시했다.
형사 두 명이 거울을 옮기려고 애썼지만, 거울은 예상외로 묵직했다. 마침내 거울이 벽에서 떨어져 나오자, 그 뒤에 숨겨져 있던 작은 공간이 드러났다. 벽장처럼 보였지만, 안쪽은 아무것도 없었고, 그저 텅 빈 벽면만이 존재했다.
“아무것도 없지 않습니까?” 강경감이 실망한 듯 말했다.
“그렇습니다. ‘아무것도 없게’ 보이는 것이 바로 트릭이죠.” 지우의 눈이 반짝였다. “이것은 벽장이 아닙니다. 바로 이 공간이 진범이 드나들었던 ‘문’입니다.”
그는 자신이 들고 있던 ‘공간 왜곡 연산기’를 벽면을 향해 겨눴다. 그리고 조용히 설명을 시작했다.
“진명우 박사는 ‘공간 왜곡 연산기’를 통해 다른 차원의 경계를 넘나들려 했습니다. 그리고 이 장치는 생각보다 훨씬 강력했습니다. 단순한 차원 이동이 아니라, 공간 자체를 일시적으로 ‘비틀어버리는’ 능력이 있었던 겁니다. 마치 종이접기처럼, 멀리 떨어진 두 지점을 억지로 이어붙이는 방식이죠.”
지우는 거울이 있던 자리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곳은 이 저택에서 미묘하게 공간적인 ‘틈새’가 있는 지점이었습니다. 진 박사는 이 거울 뒤에 이 장치를 숨겨두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 틈새를 통해 다른 공간으로 향하는 작은 문을 열었던 것이겠죠. 그리고 그 문은 완벽하게 열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 방의 벽지, 그리고 이 거울의 표면에 미묘한 왜곡을 남겼습니다. 제가 맡았던 금속 타는 냄새와 비린내는 바로 이 장치가 만들어낸 에너지의 잔류물입니다.”
강경감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벽과 장치를 번갈아 보았다. “그러면 진범은…”
“진범은 박사의 동료이자 이 연구에 깊숙이 관여했던 김선우 박사입니다.” 지우는 말을 이어갔다. “김선우 박사는 진 박사가 이 장치를 위험한 방식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아마 그도 한두 번쯤 이 장치를 통해 ‘그 너머’를 엿보았겠죠. 그리고 그가 본 것은… 인간의 이성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공포였을 겁니다. 그래서 그는 진 박사를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지우는 진 박사의 노트를 다시 펼쳐 들었다. “진 박사는 ‘경계가 열리고 있다’고 적었습니다. 김선우 박사는 그 경계가 완전히 열리는 것을 막기 위해 행동한 겁니다. 그는 진 박사가 마지막으로 장치를 사용하려 했을 때, 뒤늦게 저택에 침입했습니다. 저택의 다른 통로는 이미 밀실을 만들어 놓은 상태였으니, 김선우 박사는 이 장치, 즉 ‘공간 왜곡 연산기’를 이용해 이 벽면에 일시적인 틈새를 만들어 침입했습니다. 그리고 진 박사와 격렬한 다툼이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살해 방식은요? 그 기묘한 구멍은 대체…” 강경감이 물었다.
“그것이 바로 이 장치의 가장 섬뜩한 부분입니다.” 지우는 ‘공간 왜곡 연산기’의 푸른 구체를 가리켰다. “이 장치는 단순한 문을 여는 도구가 아니었습니다. 진 박사가 ‘경계를 여는’ 과정에서, 이 장치는 일종의 ‘정화’ 기능을 수행했습니다. 이 세상의 존재가 다른 차원으로 넘어갈 때, 혹은 다른 차원의 존재가 넘어올 때, 이 장치는 개체의 ‘현실성’을 재조정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었던 겁니다. 김선우 박사는 이 장치를 진 박사에게 겨눴습니다. 일종의 경고였겠죠. 하지만 진 박사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결국, 김선우 박사는 장치를 최대로 가동했습니다.”
지우는 잠시 말을 멈췄다. 서재 안의 공기는 더욱 차갑게 가라앉았다.
“이 장치는 진 박사의 심장 부근에 밀집된 ‘현실의 틈’을 만들어냈습니다. 그의 육체적 존재를 잠시 이 차원에서 ‘삭제’시켜버린 겁니다. 그렇기에 피 한 방울 흐르지 않고, 완벽한 원형의 구멍이 생긴 것이죠. 그의 심장이 있던 자리는 순간적으로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 되어버렸다가, 장치의 가동이 멈추자 다시 현실로 돌아왔지만, 이미 치명적인 손상을 입은 뒤였습니다. 김선우 박사는 그 틈새를 통해 다시 외부로 도주했습니다.”
“그러면 진범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강경감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경계가 완전히 닫히지 않았을 겁니다. 김선우 박사는 이 장치를 사용한 후, 자신의 ‘현실성’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을 겁니다. 그는 아마 지금쯤, 이 세상과 저 세상의 경계 어디쯤에서 방황하고 있거나, 혹은…”
지우는 말을 흐렸다. 그의 눈은 진명우 박사의 시신을 지나, 서재 가장 어두운 구석에 놓인, 기묘하게 일그러진 조각상을 응시했다. 그 조각상은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었지만, 팔다리는 비정상적으로 길었고, 얼굴에는 수많은 눈들이 박혀 있었다.
“혹은, 그가 그렇게 막으려던 ‘그들’과 조우했거나요.”
지우의 마지막 말은 서재의 묵직한 침묵 속으로 흡수되었다. 강경감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장치를 바라보았다. 밀실 살인의 트릭은 깨졌지만, 그 해답은 새로운, 더 거대한 미궁의 문을 활짝 열어젖힌 듯했다. 설지우는 뒤돌아 저택의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의 등 뒤로, 서재의 문이 닫히는 소리가 섬뜩하게 울렸다. 강경감은 그제야 자신의 땀이 식은땀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다시 한 번 코를 킁킁거렸다. 이제야, 그 역겨운 비린내가 희미하게나마 느껴지는 듯했다. 그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마치 다른 세상의 공기가 폐 속으로 스며드는 듯한 기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