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픽 하이 판타지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각성하는 증오**

차가운 바닥이 등줄기를 훑었다. 온몸의 뼈마디가 비명을 지르는 듯했다. 의식이 희미한 틈 사이로, 거친 숨소리가 폐허가 된 공간을 채웠다. 눈을 뜨자, 짙은 어둠이 그를 집어삼키려 들었다. 아니, 이미 오래전부터 어둠은 그의 전부를 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부서진 돌기둥들이 그림자처럼 솟아있는 곳. 이끼 낀 벽과 무너져 내린 천장이, 이곳이 한때 신성한 장소였음을 웅변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죽음과 절망만이 서려 있는, 거대한 무덤에 지나지 않았다. 차디찬 돌바닥이 찢겨나간 살과 피로 얼룩져 있었다. 그 피는 그의 것이었다.

“크윽…”

터져 나오는 신음을 막을 수 없었다. 갈라진 입술 새로 피 맛이 났다. 끔찍한 갈증이 목구멍을 태웠다. 그는 손을 들어 제 가슴을 더듬었다. 흉터가, 아물지 않은 깊은 상흔이 손끝에 닿았다. 누군가 정확히 심장을 노리고 찔렀던 자리였다. 조금만 더 깊었다면, 혹은 조금만 더 옆이었다면. 그는 이미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그 얼굴이 떠올랐다.

환하게 웃던, 믿어 의심치 않던 그 얼굴. 금빛 머리카락이 햇살 아래 눈부시게 빛나던, 선량하고 곧은 영혼을 가진 줄 알았던 그 얼굴.

시온.

친구라 불렀던 자의 이름이, 그의 뇌리를 칼날처럼 꿰뚫었다.

등에 꽂힌 칼날의 감촉은 아직도 생생했다. 따뜻한 체온이 갑자기 차갑게 변하며, 심장을 꿰뚫는 듯한 고통이 전신을 마비시켰던 그 순간. 그의 등 뒤에 서서 웃고 있던 시온의 모습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지옥의 풍경으로 그의 의식 속에 각인되어 있었다.

배신감?

아니, 그것은 이미 너무나 미약한 감정이었다. 배신감이란 단어로는 이 끔찍한 고통을 담아낼 수 없었다. 그의 가슴속에서 타오르는 것은 단순한 배신감이 아니었다. 절단된 혼의 파편들이 산산이 흩어지는 듯한 고통, 존재 자체가 부정당하는 찢어지는 아픔이었다.

시온은 그에게 모든 것을 빼앗았다. 영광스러운 기사단에서의 명예를, 그가 꿈꾸던 미래를, 그리고 무엇보다도 삶 자체를. 이 폐허에 버려져 죽어가던 자신을 비웃는 듯한 시온의 잔인한 미소는, 밤마다 그의 악몽을 지배하며 피를 토하게 만들었다.

죽음은 그를 비웃는 듯했다. 여러 번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었다. 상처는 곪아 터지고, 열병에 시달리며 그는 수없이 의식을 잃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시온의 얼굴이 그의 눈앞에 아른거렸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어.’

그는 이를 악물었다. 피 맛이 더 진하게 느껴졌다.

‘그에게 복수해야 해. 그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가 죽음을 거부할 때마다, 어둠이 속삭였다. 차가우면서도 달콤한 유혹. 그의 존재를 파고드는 불경하고도 강력한 힘.

“네 증오가 너를 살렸다.”

어둠 속에서, 낮고 굵은 목소리가 울렸다. 그의 심장을 직접 울리는 듯한 음성이었다. 소리의 근원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소리는 늘 그의 곁에 있었다. 그가 고통에 몸부림칠 때, 죽음의 유혹에 흔들릴 때, 혹은 시온을 향한 증오가 극에 달할 때.

“이곳은 죽은 자들의 땅. 너는 죽음을 거부했다. 어둠이 너를 받아들였다.”

목소리는 그의 내면을 꿰뚫어 보는 듯했다.

“무엇을 원하느냐. 너의 의지가 굳건하다면, 어둠은 너에게 답할 것이다.”

아렌은 고개를 들었다. 피로 얼룩진 눈이 어둠 속에서 번뜩였다. 이미 그의 눈동자에는 과거의 빛이 사라진 지 오래였다. 이제 그곳에는 오직 복수를 향한 맹렬한 광기만이 불꽃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복수.”

갈라진 목소리였지만, 그의 의지는 그 어떤 강철보다도 단단했다.

“시온의 모든 것을 부술 힘. 그가 내게서 빼앗아간 모든 것을, 내가 그에게서 빼앗을 수 있는 힘.”

“네가 원하는 것은 고통인가? 파괴인가? 아니면 죽음인가?” 목소리는 조용히 물었다.

“그 모든 것. 그리고 그 이상.” 아렌의 입가에 섬뜩한 미소가 번졌다. “그가 내게 안겨준 고통보다 더한 고통을 돌려주리라. 그가 내게서 앗아간 삶보다 더 처참한 파멸을 선사하리라.”

어둠 속의 목소리는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다시, 존재 전체를 흔드는 듯한 묵직한 울림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

“그 대가는?”

아렌은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이미 모든 것을 잃었다. 더 이상 잃을 것이 남아있지 않았다.

“내 영혼, 내 존재, 내 모든 것. 이 육신마저도, 당신의 의지대로 사용하소서.”

그 말이 끝나자마자, 폐허가 된 신전 전체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벽에 박힌 돌들이 우수수 떨어져 내리고, 바닥에는 균열이 생겨났다. 아렌의 몸에서, 검붉은 기운이 솟구쳐 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단순한 마력이 아니었다. 혐오스러울 정도로 진하고, 압도적인 힘이었다.

피부 위로 불타는 듯한 문양이 새겨지기 시작했다. 그의 심장을 노렸던 상처는 검붉은 빛을 내며 아물어 갔지만, 흉터는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선명하고 거대한 문신처럼 그의 가슴팍에 새겨졌다. 고통스러웠지만, 동시에 전율할 정도로 강렬한 쾌감이 그를 휩쓸었다.

내면에 잠자던 무언가가 깨어나는 소리. 뼈와 살이 뒤틀리는 듯한 감각. 그의 눈동자는 핏빛으로 물들어 갔다. 과거의 순수했던 아렌은 죽었다. 이제 그곳에는 오직 복수만을 위해 존재하는, 새로운 존재가 탄생하고 있었다.

“시온… 네가 나를 이리 만들었으니, 그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아렌은 천천히 일어섰다. 몸을 휘감던 통증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막대한 힘이 채웠다. 그는 이제 더 이상 나약한 인간이 아니었다. 그의 그림자는 더욱 짙어졌고, 그의 존재는 어둠 그 자체와 동화되어 가는 듯했다.

폐허의 어둠 속에서 그의 눈이 번뜩였다. 핏빛으로 물든 차가운 광채였다. 그는 부서진 돌기둥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돌은 그의 손길 아래 미세하게 떨리는 듯했다.

그는 폐허의 출구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한 걸음 한 걸음이, 땅을 울리는 거대한 진동처럼 느껴졌다. 긴 여정의 시작을 알리는 발걸음이었다. 피와 증오로 얼룩진, 돌이킬 수 없는 파멸의 서곡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세상은 이제, 아렌의 복수극에 휘말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