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바람이 회오리치며 청운산맥의 깎아지른 절벽을 할퀴었다. 아랑은 얇은 도포 자락을 여미며 발 아래로 아득하게 펼쳐진 심연을 내려다보았다. 희미하게 떠오르는 새벽녘 안개 사이로 옥빛 약초인 옥류초가 자생한다는 전설 속의 협곡이 어렴풋이 보였다. 일주일째였다. 고작 하급 영사인 자신의 미약한 진기로는 도무지 옥류초의 영험한 기운을 감지할 수 없어, 오로지 고문헌에 기록된 지형지물에 의지해 헤매는 중이었다.
“젠장, 이러다가는 또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돌아가겠군.”
아랑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중얼거렸다. 그의 단전은 텅 빈 물통처럼 허전했고, 며칠 밤낮 이어진 수색은 육체를 한계까지 몰아붙였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이대로는 영원히 제자리걸음일 터. 옥류초만 얻는다면, 숙련 영사의 경지로 나아가 비로소 어엿한 수련자의 길에 들어설 수 있으리라.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절벽의 좁은 틈새를 밟아가던 아랑의 발끝이 갑작스럽게 미끄러졌다. 눅눅한 이끼에 숨겨져 있던 날카로운 돌부리가 그의 발목을 강타했고, 아랑은 비명조차 지를 새 없이 허공으로 몸을 내던졌다. 추락하는 순간,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절벽 중턱에 숨겨진 거대한 균열이었다. 본능적으로 손을 뻗었지만, 닿지 않았다. 죽음을 예감한 찰나, 그의 몸은 균열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사라졌다.
쿵!
무언가에 부딪힌 충격에 정신을 차린 아랑은 자신의 몸이 깊고 어두운 동굴 바닥에 떨어진 것을 깨달았다. 다행히도 낙하 거리가 그리 길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온몸의 뼈마디가 비명을 질렀지만, 치명상은 없었다.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킨 아랑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 동굴은 자연적으로 형성된 것이 아닌 듯했다. 동굴 벽면은 매끄럽게 다듬어져 있었고, 곳곳에는 희미하게 빛을 내는 야광석들이 박혀 있었다. 발아래 쌓인 먼지로 미루어 보아 수천 년은 족히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을 공간이었다.
아랑은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어둠 속을 헤쳐 나갔다. 동굴의 끝에 다다르자, 거대한 석실이 나타났다. 석실 중앙에는 거대한 돌 제단이 놓여 있었고, 그 위에는 세월의 흔적으로 새까맣게 변한 돌판이 얹혀 있었다. 돌판의 표면에는 복잡하고 기묘한 문양들이 깊게 새겨져 있었다. 일찍이 어느 문헌에서도 본 적 없는 고대의 상형문자들이었다. 돌판은 차가운 기운을 내뿜는 듯했으나, 동시에 형언할 수 없는 영험한 기운이 아랑의 오감을 휘감았다.
“이것은… 대체…?”
아랑은 홀린 듯 돌판에 가까이 다가섰다. 손을 뻗어 조심스럽게 문양을 쓰다듬자, 차갑던 돌판에서 묘한 온기가 솟아올랐다. 이윽고, 돌판에 새겨진 문양들이 희미한 푸른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빛은 점점 강렬해지며 석실을 가득 채웠고, 아랑의 눈앞에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문양들이 마치 살아있는 듯 꿈틀거리며 허공으로 솟아올랐다. 빛으로 이루어진 문자들은 스스로 형상을 이루어 하나의 거대한 빛의 소용돌이를 형성했다. 소용돌이는 아랑의 단전을 향해 강렬한 흡입력을 발휘했고, 아랑은 저항할 틈도 없이 빛의 소용돌이에 휩쓸렸다.
“크으윽!”
전신을 관통하는 엄청난 고통과 함께, 아랑의 몸은 격렬하게 떨렸다. 그의 단전은 마치 폭풍우 속의 바다처럼 요동쳤고, 오랫동안 정체되어 있던 진기가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들어 단전을 가득 채웠다. 미약했던 그의 영혼은 거대한 해일에 휩쓸린 듯 격동하며, 미지의 힘에 잠식당했다. 그의 눈앞에는 수많은 고대의 이미지들이 섬광처럼 스쳐 지나갔다. 기이한 존재들이 하늘을 날고, 거대한 마법진이 대지를 뒤덮는 모습,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언어로 속삭이는 소리들… 그것은 마치 잊혀진 문명의 기억이자, 사라진 시대의 지혜였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고통과 황홀경이 뒤섞인 감각이 사그라들고, 아랑은 흐릿한 정신으로 겨우 눈을 떴다. 그의 몸은 바닥에 쓰러져 있었지만, 육체의 피로는 온데간데없었다. 오히려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활력으로 가득 차 있었다. 단전 속의 진기는 강물처럼 세차게 흐르고 있었고, 그의 의식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또렷하고 광활해졌다.
아랑은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둘러보았다. 돌판의 문양들은 여전히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지만, 그 강렬함은 처음보다 훨씬 줄어든 상태였다. 그의 손바닥을 펴자, 손바닥 중앙에 돌판의 문양과 똑같은 푸른빛의 그림자가 희미하게 새겨져 있었다. 마치 문신처럼.
그 순간, 아랑은 깨달았다. 자신은 옥류초를 찾으러 왔다가, 비교할 수 없는 고대의 힘을 마주한 것이었다. 이 힘은 단순한 진기 축적이 아니었다. 그의 몸 안에 흐르는 것은 세상의 이치를 뒤흔들 수 있을 것 같은, 거대하고 잊혀진 마법의 흔적이었다. 그의 영혼이 한 단계 뛰어넘은 것을 넘어, 마치 새로운 존재로 재탄생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랑은 허리에 찬 검의 손잡이를 꽉 쥐었다. 이 힘이 무엇인지,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앞으로 어떤 파란을 불러올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그의 삶은 더 이상 이전과 같지 않을 터였다. 그의 내면에서부터 끓어오르는 거대한 힘이, 마치 잠에서 깨어난 용처럼 포효하고 있었다.
“이것이… 새로운 시작이로군.”
아랑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의 눈은 이전과는 다른, 깊고 형형한 빛을 띠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