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니바퀴 도시, 벨로시아는 언제나 같은 잿빛 아침을 맞이한다. 굴뚝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가 하늘을 검게 덮고, 새벽부터 울려 퍼지는 증기 기관의 웅장한 포효가 도시 전체를 진동시켰다. 거대한 황동 파이프가 거미줄처럼 얽힌 건물들 사이로, 증기를 내뿜는 강철마차들이 바쁘게 오가고, 톱니바퀴 문양이 새겨진 가로등은 옅은 가스 불빛을 깜빡였다. 이 모든 톱니바퀴와 증기, 그리고 묵직한 금속 냄새가 뒤섞인 혼돈 속에서, 도시의 심장이 뛰고 있었다.
이 혼돈의 가장자리, 비교적 조용한 주택가의 낡았지만 견고한 건물 3층. 서율은 오늘도 아침 식탁에 앉아, 차가 식어가는 것도 잊은 채 작은 시계 부품들을 조립하고 있었다. 손가락만큼 작은 태엽 하나하나가 그의 섬세한 손길에 따라 정확한 위치를 찾아가고, 확대경 너머로 비치는 그의 눈동자는 세상의 모든 비밀을 해독할 듯이 빛났다. 그의 방은 온갖 기계 부품과 고서적, 그리고 미완성 발명품들로 가득 차 있었지만, 놀랍도록 정돈되어 있었다. 마치 혼돈 속에서 질서를 찾아내는 그의 성격처럼.
“탐정님! 서율 탐정님!”
아래층에서부터 다급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늘 그렇듯, 불길한 전조였다. 서율은 조립하던 미니어처 자동인형의 팔을 제자리에 끼워 넣고,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이 도시에서 그를 이토록 다급하게 찾는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박 경감, 그렇게 뛰어 올라오다가 심장이라도 멎으면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문을 열자마자 땀으로 축축한 얼굴의 박원호 경감이 숨을 헐떡이며 서 있었다. 그의 제복은 먼지로 얼룩져 있었고, 이른 아침부터 얼마나 뛰어다녔는지 짐작게 했다.
“젠장, 서율 탐정님! 농담할 때가 아닙니다! 비극이, 재앙이 터졌습니다!”
박 경감의 얼굴은 공포와 절망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서율은 그를 방으로 들이고 차분하게 의자에 앉혔다. 뜨거운 차 한 잔을 내밀자 박 경감은 단숨에 들이켰다.
“클로드 백작입니다. ‘강철의 클로드’ 백작이… 살해당했습니다.”
클로드 백작. 벨로시아의 철강 산업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거물. 그의 이름 앞에는 항상 ‘강철의’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냉혹하고 잔인하며, 동시에 비할 데 없는 사업 수완을 가진 인물. 그의 죽음은 도시 전체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이 분명했다.
“살해? 누가 감히 그에게 손을 댈 수 있었겠습니까?” 서율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의 저택은 요새나 다름없지 않습니까?”
“바로 그겁니다, 탐정님! 밀실입니다! 완벽한… 밀실 살인!”
박 경감의 목소리는 떨렸다. “저택의 모든 경비 시스템은 정상 작동했고, 백작의 서재는 안에서 잠겨 있었습니다. 창문도 내부에서 걸쇠로 굳게 잠겨 있었고, 외부 침입 흔적은 전혀 없습니다. 마치 유령이 들어와 백작을 찔러 죽이고 사라진 것 같습니다!”
서율의 눈빛이 순간 날카롭게 빛났다. 밀실. 그가 가장 사랑하고, 동시에 가장 증오하는 수수께끼.
“안내하십시오.”
***
강철의 클로드 백작의 저택은 벨로시아의 부유층 거주 지구, ‘황동의 언덕’에 위치해 있었다. 높게 솟은 강철 담장과 그 위에 촘촘히 박힌 톱니바퀴 모양의 감시 장치들, 그리고 정문에서부터 느껴지는 육중한 압박감은 이곳이 얼마나 견고하게 지켜지는 곳인지 여실히 보여주었다.
하지만 지금, 그 견고한 문 안쪽은 혼란 그 자체였다. 경찰 병력이 사방을 에워싸고 있었고, 백작가의 하인들은 공포에 질려 삼삼오오 모여 울부짖고 있었다. 기자들은 멀찌감치 떨어져서 셔터를 눌러대고 있었다.
“시신은 서재에서 발견되었습니다. 부인께서 아침 문안을 드리러 갔다가 문이 잠겨 있자 경비들을 불렀고… 결국 문을 부수고 들어갔을 땐… 이미 늦었습니다.”
박 경감이 침통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서율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저택 안으로 들어섰다. 복도에는 어두운 마호가니 가구들과 벽을 가득 채운 고풍스러운 그림들이 진중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고급스러움 위로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이쪽입니다.”
서재 앞에 다다르자, 현장을 지키던 경찰관들이 긴장한 표정으로 서율에게 길을 터주었다. 문은 이미 부서져 활짝 열려 있었지만, 부서진 빗장과 문고리의 잔해는 그 문이 얼마나 견고하게 잠겨 있었는지를 웅변하고 있었다.
서율은 문턱을 넘어 서재 안으로 발을 들였다.
방 안은 온통 비싼 책들과 희귀한 지도, 그리고 난해한 기계 장치 모형들로 가득 차 있었다. 중앙에는 거대한 월넛 목재 책상이 놓여 있었고, 그 뒤편의 육중한 가죽 의자에는 클로드 백작이 몸을 기댄 채 싸늘한 주검으로 변해 있었다. 그의 등에는 서재 책상 위에 늘 놓여 있던, 은으로 장식된 화려한 편지칼이 깊숙이 박혀 있었다. 피는 이미 굳어 검붉은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시각은 오전 6시 30분경으로 추정됩니다.” 현장 조사관이 서율에게 보고했다. “외부 침입 흔적은 전혀 없습니다. 창문은 내부에서 잠겨 있었고, 문은 보시다시피 안에서 걸쇠가 채워져 있었습니다. 내부에서는 아무도 나가지 못했고, 외부에서는 아무도 들어오지 못했습니다.”
서율은 아무 말 없이 방을 훑었다. 그의 시선은 바닥의 미묘한 얼룩, 벽난로 위의 시계, 그리고 책상 위 흐트러진 서류들까지, 방 안의 모든 것에 머물렀다. 그는 마치 사진을 찍듯 모든 것을 기억하고, 분석하는 듯했다.
“백작의 손에… 이게 뭡니까?”
서율의 시선이 백작의 오른손에 멈췄다. 굳게 쥐어진 손 안에는, 종이 조각이 있었다. 경찰들이 이미 발견하고도 의미를 파악하지 못했던 그것이었다. 박 경감이 조심스럽게 그 조각을 꺼냈다. 검게 그을린, 아주 작은 조각이었다. 마치 무엇인가 불에 타다 남은 것처럼.
“아무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탐정님. 그냥 타다 남은 종이 조각….”
“아니요.” 서율이 고개를 저었다. “이 방에서 발견되는 그 어떤 것도 ‘아무것도 아닌 것’일 수는 없습니다.”
그는 천천히 방을 가로질러 창가로 향했다. 두꺼운 암막 커튼을 걷어내자, 육중한 강철 창살이 박힌 창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창문은 내부에서 철컥 소리를 내는 튼튼한 걸쇠로 잠겨 있었고, 외부에서 깨진 흔적은 없었다.
“이 방은 완벽하게 밀폐되어 있었습니다.” 박 경감이 강조했다. “백작은 혼자였습니다. 누군가 그를 죽였다면, 대체 어떻게 이 방을 벗어났을까요?”
서율은 창문 유리에 손을 가져다 댔다. 차가운 유리 위로 그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는 한참을 그렇게 서 있었다.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경찰들의 웅성거림마저 멎었다.
그리고 마침내, 서율이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나직했지만, 방 안의 모든 이들에게 또렷하게 들렸다.
“밀실? 아닙니다. 이 방은 처음부터 밀실이 아니었습니다.”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서율에게로 향했다. 박 경감은 혼란스러운 얼굴로 되물었다. “네? 탐정님, 무슨 말씀이십니까? 보시다시피….”
“이것 보세요, 박 경감.” 서율은 창틀에 박힌 작은 못 자국 하나를 가리켰다. 그리고 그 위에 아주 희미하게 묻어 있는 검은 흔적. “이 못은 분명히 바깥쪽에서 망치로 박힌 흔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자국… 마치 얇은 실 같은 것이 지나간 흔적이군요.”
그는 다시 백작이 죽어있는 책상으로 돌아왔다. 책상 위, 백작의 시신 옆에는 서류들이 흐트러져 있었다. 그리고 그 서류들 한쪽에 놓인, 거의 눈에 띄지 않는 작은 유리 조각. 일반적인 서재에서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종류의 유리였다.
“이 유리 조각… 그리고 백작의 손에 쥐여 있던 검게 그을린 종이 조각….”
서율은 방의 한가운데 서서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 떴을 때, 그의 눈은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한 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것은 살인이지만, 단순한 살인이 아닙니다. 치밀하게 계산된, 완벽한 장치였습니다. 범인은 이 방 안에 있었지만, 동시에 바깥에 있었죠.”
그는 책상 위의 편지칼을 응시했다. 은빛 칼날은 마치 모든 진실을 비웃는 듯 차갑게 빛났다.
“클로드 백작은 혼자 죽은 것이 아닙니다. 그는… 자신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조작당하고 있었습니다.”
서율은 손을 뻗어, 서재 한쪽 벽에 걸려 있던 정교한 태엽식 시계를 가리켰다. 시계는 째깍거리며 정확하게 시간을 알리고 있었다.
“이 밀실의 트릭은 시간을 이용했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의 흐름을 읽지 못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범인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날 겁니다.”
그는 박 경감에게 몸을 돌렸다.
“박 경감, 이 저택에서 작동하는 모든 태엽 장치와 시계, 그리고 백작의 일상 패턴을 조사해 주십시오. 아주 사소한 습관 하나까지도 놓치지 말고요.”
서율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그것은 난해한 퍼즐을 마주한 천재의 흥분된 미소였다.
“이제부터 진짜 게임이 시작될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