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현실 게임 (VRMMO)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철마 구역의 잿빛 하늘 아래, 강한은 낡은 방독면 너머로 희미하게 들이쉬는 흙먼지 섞인 공기를 느꼈다. 붕괴된 콘크리트 잔해들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햇살은 뿌옇게 부서져 내렸다. 녹슨 철근이 뼈대처럼 앙상하게 드러난 빌딩들은 마치 죽은 거인들이 서 있는 듯했다. 그의 발밑에서 부서지는 유리 조각 소리가 이 고요한 폐허에서 유일한 생명력을 가진 듯 울렸다.

“또 아무것도 없나.”

강한은 중얼거렸다. 그의 눈에 비치는 HUD(헤드업 디스플레이)에는 체력과 스태미나 바가 간신히 녹색을 유지하고 있었다. 식량은 바닥났고, 물은 한 병 남았다. 이런 상황에서 재료 수급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 그 자체였다. 그의 손에 들린 낡은 휴대용 탐색기는 삐- 소리만 내며 고장 난 듯 묵묵부답이었다. 이런 쓰레기 같은 장비로는 더 이상 희망을 찾을 수 없었다.

그가 찾아 들어간 곳은 한때 쇼핑몰이었을 법한 거대한 건물의 잔해였다. 부서진 유리창을 통해 들어온 모래와 먼지가 겹겹이 쌓여 발목까지 차올랐다. 천장에 매달려 있던 간판은 반쯤 찢긴 채 힘없이 너덜거렸다. 강한은 익숙하게 한쪽 팔로 얼굴을 가리고, 다른 손으로는 낡은 쇠지렛대를 휘둘러 잔해를 헤집었다.

‘쓸 만한 건 없을까. 하다못해 찌꺼기라도.’

그의 시선은 날카롭게 주변을 훑었다. 빈 선반들, 뜯겨 나간 자판기, 그리고 누군가의 비명 소리가 아직도 남아있는 듯한 싸늘한 공기. 한참을 그렇게 헤집고 다니다, 그의 눈에 저 안쪽, 무너진 계단 밑 작은 틈새가 들어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몸을 숙여 기어들어갔다.

좁은 공간 속에서 퀴퀴한 먼지 냄새가 코를 찔렀다. 손전등을 비추자, 먼지에 덮인 작은 금속 상자가 나타났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설마. 조심스럽게 상자를 열었다. 그 안에는 녹슬지 않은 에너지 셀 두 개와, 얇은 단백질 바 하나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젠장, 이게 얼마만이야.”

강한의 입에서 작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에너지 셀은 그의 낡은 에너지 권총에 불을 넣어줄 생명줄이었고, 단백질 바는 며칠은 버티게 해줄 귀한 식량이었다. 그는 즉시 에너지 셀 하나를 권총에 장전하고, 단백질 바를 주머니에 넣었다. 이 작은 성공이 그의 등 뒤에서 번득이는 감시자의 시선을 감지하지 못하게 했다.

그가 좁은 틈새에서 몸을 일으키려 할 때였다. 등 뒤에서 섬뜩한 소리가 들려왔다.

쉬익-!

금속이 날카롭게 긁히는 듯한 소리, 동시에 끈적한 체액이 축축하게 들러붙는 듯한 불쾌한 마찰음. 강한은 본능적으로 몸을 굴려 옆으로 피했다. 그가 있던 자리에 거대한 그림자가 덮쳤다.

콰앙!

잔해가 무너져 내리는 굉음과 함께, 육중한 몸체가 땅에 처박혔다. 강한은 재빨리 자세를 잡고 섬뜩한 존재를 마주했다.

철마 구역의 흔한 변이체, ‘스크래퍼’였다. 덩치 큰 멧돼지를 닮았지만, 온몸이 녹슨 철근과 부서진 금속 조각으로 뒤덮여 있었다. 네 개의 다리는 날카로운 갈고리 형태로 변해 있었고, 입에서는 검붉은 침을 질질 흘렸다. 놈의 눈은 붉게 번뜩이며 살의를 드러내고 있었다. 세 마리. 젠장, 무리였다.

강한은 낡은 전투 도끼를 뽑아 들었다. 등 뒤로 느껴지는 서늘한 기운. ‘사냥꾼의 직감’ 스킬이 발동된 것인지, 몸의 모든 감각이 날카로워졌다.

“덤벼라, 고철 덩어리들.”

첫 번째 스크래퍼가 으르렁거리며 돌진했다. 놈의 철골로 이루어진 머리는 육중한 망치 같았다. 강한은 재빠르게 몸을 숙여 공격을 피하고, 그대로 도끼를 휘둘러 놈의 옆구리를 찍었다.

쨍그랑!

금속과 금속이 부딪히는 불쾌한 마찰음과 함께 불꽃이 튀었다. 스크래퍼의 외피는 단단했지만, 강한의 도끼는 ‘강철 가르기’ 스킬의 효과를 받아 깊숙이 박혔다. 놈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몸을 비틀었다.

하지만 그 사이, 다른 두 마리가 좌우에서 달려들었다.

‘젠장, 너무 많아!’

강한은 등 뒤로 한 발짝 물러서며 에너지 권총을 꺼내 들었다. 한 발, 한 발이 소중했다. 주저할 시간이 없었다.

탕! 탕!

두 발의 에너지 탄이 연이어 발사되었다. 한 발은 우측 스크래퍼의 다리에 명중했고, 다른 한 발은 좌측 스크래퍼의 눈을 정확히 관통했다.

키이이이익-!

눈에 맞은 스크래퍼는 비명을 지르며 고통스럽게 몸부림쳤다. 다리에 맞은 놈은 균형을 잃고 비틀거렸다. 강한은 이 틈을 놓치지 않았다. 비틀거리는 놈에게 달려들어 도끼로 놈의 목덜미를 강하게 내리찍었다.

푸욱! 콰직!

쇠사슬이 끊어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스크래퍼는 완전히 움직임을 멈췄다. 강한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아직 한 마리가 남았다. 눈을 잃고 고통스러워하던 놈이 광분하며 맹렬하게 달려들었다.

강한은 도끼를 단단히 고쳐 쥐었다. 이젠 정면 승부다.

놈의 육중한 몸체가 강한을 덮치려 할 때, 강한은 옆으로 굴러 피하며 재빨리 에너지 권총을 겨눴다. 마지막 남은 에너지 셀이었다. 망설일 틈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에너지 탄은 정확히 스크래퍼의 약점 부위인 목덜미, 이전에 도끼로 찍었던 상처 부위를 강타했다. 놈은 한 번 더 비명을 지르더니, 이내 거대한 몸을 무너뜨리며 쓰러졌다.

쿵!

주변이 잠시 침묵에 잠겼다. 강한은 숨을 헐떡이며 몸을 가누었다. 손목에서는 욱신거리는 통증이 전해졌다. 그의 체력 바는 이미 붉은색 경고등을 깜빡이고 있었다.

“휴… 겨우 살았다.”

그는 잠시 벽에 기대앉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땀과 먼지로 뒤범벅된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의 HUD에 전리품 획득 알림이 떴다.
[스크래퍼의 금속 조각 (희귀) 3개 획득]
[스크래퍼의 갑피 (일반) 5개 획득]
[오염된 육질 (일반) 10개 획득]

나쁘지 않은 수확이었다. 금속 조각은 무기 수리에 유용했고, 갑피는 방어구 제작에 쓰일 수 있었다. 오염된 육질은 정화 과정을 거쳐 비상식량으로 쓸 수 있었다. 강한은 빠르게 쓰러진 스크래퍼들의 잔해에서 필요한 것을 수거했다.

이제 막 전투가 끝난 직후였지만, 그의 ‘사냥꾼의 직감’은 여전히 찌릿하게 경고음을 보내고 있었다. 무언가, 놓치고 있는 것이 있었다. 강한은 주변을 다시 한번 꼼꼼히 살폈다.

스크래퍼들이 숨어 있던 곳, 무너진 잔해 너머로 희미하게 빛나는 무언가가 눈에 들어왔다. 일반적인 변이체들의 은신처치고는 너무도 깨끗한 벽면, 그리고 그 중앙에 박혀 있는 낡은 철문. 강한은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철문은 녹슬어 있었지만, 그 형태는 꽤 견고했다. 그는 도끼 손잡이로 문을 두드렸다.

쿵, 쿵.

묵직한 울림이 전해졌다. 분명 내부가 비어있지는 않았다. 이런 폐허 속에 아직 온전한 공간이 남아있다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그리고 스크래퍼들이 이 문을 건드리지 않고 이 주변에만 머물러 있었다는 사실도 이상했다.

‘설마… 안전 지대?’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다. 이런 위험한 철마 구역 한가운데에 안전 지대가 있을 리 없었다. 하지만 호기심이 그의 발걸음을 이끌었다. 문고리를 잡아당기자, 녹슨 경첩이 삐걱이는 소리를 내며 미동도 없었다. 잠겨 있었다.

강한은 주변을 탐색했다. 어딘가 잠금장치를 해제할 방법이 있을 터였다. 그의 시선은 문 위쪽에 새겨진, 바래고 지워진 고대 문양에 멈췄다. 마치 과거 문명의 상징 같기도 하고, 어떤 장치의 작동 방식처럼 보이기도 했다.

문양 주변을 손으로 훑자, 특정 지점에서 희미한 에너지 반응이 느껴졌다. 역시. 단순한 문양은 아니었다. ‘기술 해독’ 스킬을 사용하자, 그의 눈앞에 투명한 패널이 떠올랐다.

[고대 잠금장치]
[해제 시도 하시겠습니까? (성공률 32%)]

32%는 너무 낮은 성공률이었다. 실패하면 경보가 울리거나, 문이 영원히 잠길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대로 포기하기엔 너무 아쉬웠다. 이 문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생존을 위한 중요한 단서가 있을지도 몰랐다.

강한은 깊은 숨을 내쉬었다.

‘그래, 해보는 거야.’

그는 손가락을 들어 투명한 패널의 ‘해제’ 버튼을 눌렀다.

두구두구.

심장이 격렬하게 뛰었다. 패널에 복잡한 수치들이 빠르게 움직였다. 띠링-! 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면 좋으련만, 세상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았다.

띠리링… 띠리링…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젠장, 실패인가!

강한은 당황했지만, 이내 패널에서 흘러나오는 메시지를 확인했다.

[고대 잠금장치 해제 실패]
[추가 인증 필요: 생체 인식 확인]
[주변에 적대적 개체 접근 중…]

적대적 개체? 강한은 즉시 권총을 겨누고 뒤를 돌아봤다. 텅 비어 있던 복도 끝에서 희미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단순한 스크래퍼의 발소리가 아니었다. 좀 더 규칙적이고, 무거운. 마치… 인간의 발소리 같았다.

그리고 곧이어, 어둠 속에서 두 개의 붉은 눈이 섬뜩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누구인가. 플레이어인가, 아니면 이 폐허 속에 도사리는 또 다른 위협인가.

강한은 굳게 닫히지 않고, 살짝 벌어진 철문 안쪽과,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미지의 존재 사이에서 망설였다.

철컥.

권총의 탄창을 확인하는 소리가 이 고요한 폐허에서 유일하게 들리는 소리였다.
그의 눈은 문 너머의 미지의 공간과, 점차 가까워지는 위협 사이를 오갔다.
선택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