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챕터 3: 그림자 속에서 피어나는 작전 회의**
음습한 지하 창고, 흙벽에 드문드문 박힌 횃불이 깜빡이며 긴 그림자를 흔들었다. 습기 머금은 공기 속에는 곰팡이 냄새와 함께 묘한 긴장감이 떠다녔다. 낡은 나무 탁자 위에는 너덜너덜한 수도 지도가 펼쳐져 있었고, 그 주위로 몇 명의 그림자가 웅성이고 있었다.
“그러니까, 진호. 너는 지금 이 제국군 보급창을 털자는 거냐? 그것도 백주대낮에?”
이수아는 탁자 위 지도를 손가락으로 툭툭 치며 눈썹을 치켜떴다. 붉은색 천으로 질끈 묶은 머리카락이 횃불 빛에 반사되어 활활 타오르는 불꽃처럼 흔들렸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불신과 함께 묘한 흥분이 섞여 있었다. 마치 금방이라도 칼을 뽑아 들고 당장 쳐들어갈 기세였다.
김진호는 안경을 고쳐 쓰며 한숨을 쉬었다. 이수아의 저 불같은 성정은 때로는 추진력이 되지만, 때로는 전략 회의를 시장판 싸움으로 만들곤 했다.
“백주대낮은 아니지, 수아. 해 질 녘, 교대 시간의 틈을 노린다는 거잖아.”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어딘가 피곤함이 묻어 있었다. 며칠 밤낮으로 이 작전 구상에 매달렸던 탓이었다.
“교대 시간 틈이든 뭐든, 거긴 수도에서 제일 경비 삼엄한 곳이야. 제국군 보급창이라고! 거길 털다니, 미쳤어?”
옆에 있던 건장한 청년, 태오가 작게 중얼거렸다. 그의 눈에는 공포감이 서려 있었다. 대부분의 동지들도 비슷한 표정이었다. 무모함과 용기는 다르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었다.
“미치지 않고서야 이런 짓을 시작했겠냐?” 진호는 픽 웃으며 되받았다. “하지만 단순한 미친 짓이 아니라, 계산된 미친 짓이다. 제국군 보급창은 식량뿐만 아니라 무기, 의약품까지 비축되어 있어. 우리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들이지. 게다가… 거길 털면 제국 놈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 수 있다.”
그의 눈빛이 순간 날카롭게 빛났다. 언제나 능글맞고 유들유들해 보이던 평소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코를 납작하게 만들 수는 있겠지.” 수아는 팔짱을 끼며 진호를 위아래로 훑었다. “하지만 네 코가 먼저 납작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안 해봤어? 이 작전은 너무 위험해. 우리 병력이 얼마나 되는지는 알고 말하는 거야?”
“병력 문제는 해결책이 있다.” 진호는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대규모 병력을 동원하는 게 아니라, 소규모 정예 요원들이 침투하는 방식이야. 내부 협력자도 확보했고.”
“내부 협력자?” 태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누가 제국군 보급창에 그런 인물이 있어?”
“그건 나중에 이야기하고.” 진호는 지도의 특정 지점을 가리켰다. “중요한 건, 이쪽 후문으로 잠입해 주방 직원으로 위장한 뒤, 밤늦게 경비병들에게 술을 먹이는 거다. 물론 그냥 술이 아니라, 숙면을 유도하는 약을 탄 술이지.”
“약을 탄 술? 그거 효과가 확실해?” 수아는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녀의 마음속 저울추가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완벽한 레시피로 제조했다. 잠꼬대조차 안 할 정도로 깊은 잠에 빠질 거다. 깨어나면 다음 날 아침 해가 중천에 떠 있을 때쯤일 거야.” 진호는 자신감 있게 말했다. “그 사이에 우리는 필요한 물품을 챙겨서 지하수로를 통해 빠져나오는 거지.”
수아는 한참 동안 지도를 노려보았다. 그녀의 이마에는 깊은 주름이 잡혔다. 그녀는 머릿속으로 작전을 시뮬레이션하고 있는 듯했다.
“지하수로라… 거긴 예전에 한 번 들어가 봤는데, 꽤 복잡했어. 길 잃기 딱 좋다고. 게다가 물도 차고.”
“그래서 내가 미리 탐사해놨지. 지도는 완벽하게 외웠고.” 진호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고 물이 차다는 건, 다른 놈들이 접근하기 어렵다는 뜻도 된다. 완벽한 도주로지.”
수아는 마침내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빛은 여전히 날카로웠지만, 처음의 불신보다는 탐색하는 빛이 강했다.
“네가 직접 탐사했다고? 언제? 나 몰래?”
“너 몰래 하는 일도 좀 있어야지, 내가.” 진호는 피식 웃었다. “밤에 잠 좀 줄이면 충분하다.”
“진짜 못 말린다니까.” 수아는 한숨을 쉬었다. 그러다 갑자기 그의 어깨를 툭 쳤다. “좋아. 네 작전, 믿어볼게. 하지만 조건이 있어.”
“조건?”
“네가 직접 선봉에 서야 해. 약 탄 술 만드는 것도 네가 직접 하고, 경비병들한테 건네는 것도 네가 해. 혹시라도 약효가 없어서 경비병이 깨어나면, 네가 나서서 막아.”
진호는 눈을 깜빡였다. 그는 분명 작전을 짜는 역할이었지, 최전선에서 싸우는 역할은 아니었다. 칼 휘두르는 것보다 머리 쓰는 데 훨씬 능했다.
“내가? 하지만 난…”
“‘하지만’은 없어. 네가 짠 작전이니까, 네가 제일 잘 알 거 아니야? 그리고… 네가 책임을 져야지.” 수아는 매서운 눈빛으로 그를 응시했다. 그 눈빛은 마치 ‘내 계획 망치면 가만 안 둬’라고 말하는 듯했다.
“책임이라… 그래, 뭐. 내가 짠 작전이니까. 좋다. 내가 한다.” 진호는 결국 두 손을 들었다. 어차피 이 작전은 그가 아니면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수아의 저 도전적인 눈빛을 피하고 싶지 않았다.
“흐음, 결단력은 좀 있네.” 수아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지금부터 인원 선발하고, 각자 역할 분담 들어간다. 보급창 침투는 이틀 뒤 밤이다.”
모두의 얼굴에 긴장과 함께 희미한 희망이 스쳤다. 진호는 고개를 숙여 지도를 다시 살폈다. 그의 손가락이 수도의 복잡한 골목들과 지하수로를 따라 움직였다.
‘제국 놈들, 이번에는 네놈들의 목구멍에 제대로 가시를 박아주겠어.’
* * *
이틀 뒤, 해가 서쪽 하늘 너머로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주황색으로 물든 하늘 아래, 수도의 번화가는 여전히 북적였지만, 골목 안쪽은 서서히 그림자에 잠기고 있었다.
진호는 낡은 행상인의 옷차림으로 변장한 채, 시장통 한구석에 있는 허름한 주점에 앉아 있었다. 그의 앞에는 갓 튀겨낸 만두와 탁한 막걸리가 놓여 있었다. 옆 테이블에서는 왁자지껄한 술꾼들이 목청을 돋우며 웃고 떠들었다. 그는 자연스럽게 그들 사이에 섞여 있는 듯 보였다.
하지만 그의 내면은 칼날 위에 서 있는 듯 날카로웠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오늘 밤, 그들이 해낼 일은 제국의 심장에 비수를 꽂는 일이었다.
“너무 긴장하는 거 아니야?”
낮게 깔린 목소리가 귓가에 스며들었다. 진호는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이수아가 넉살 좋은 주모 행색으로 그의 옆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큼직한 보자기를 머리에 두르고, 얼굴에는 검댕을 묻혀 놓았지만, 특유의 날카로운 눈빛은 숨길 수 없었다.
“네가 옆에 앉아 있으면 긴장이 풀리겠냐?” 진호는 툴툴거렸다. “혹시라도 네 눈빛 때문에 우리가 첩자라고 들킬까 봐 더 조마조마하다.”
“쳇, 농담도. 내가 그만큼 완벽하게 변장했다는 거지.” 수아는 팔꿈치로 테이블을 툭 치며 말했다. “근데 왜 이리 늦어? 약은 제대로 준비된 거 맞아?”
“완벽하다니까. 숙취도 없고, 뒷탈도 없는, 아주 부드러운 수면제야. 이걸 한 사발 들이키면… 꿀잠이지.” 진호는 자신의 배낭을 슬쩍 가리켰다. 그 안에는 특별히 제조된 술과 약병들이 들어 있었다. “정확한 때를 기다리는 중이야. 너무 일찍 들이키면 경비 교대 전에 깨어날 수도 있고, 너무 늦으면 우리 잠입 시간이 부족해져.”
그때, 주점 문이 벌컥 열리며 덩치 큰 사내들이 우르르 들어섰다. 허리춤에 찬 칼과 번쩍이는 갑옷이 그들이 제국군임을 알려주었다. 그들의 우렁찬 웃음소리가 주점 안을 가득 채웠다.
“이봐, 주모! 여기 시원한 막걸리 한 사발씩 가져와! 오늘 경비 서는 날이라 목이 타 죽겠다!”
그들의 목소리는 우악스러웠고, 표정에는 오만함이 가득했다. 진호는 저절로 주먹을 꽉 쥐었다. 저런 놈들에게 우리는 수탈당하고, 고통받아 왔다.
수아의 눈빛도 순간 날카롭게 변했지만, 이내 능숙하게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 장군님들! 금방 가져다드리겠습니다요!”
그녀는 과장된 몸짓으로 주방으로 향했다. 진호는 숨죽이며 그녀의 움직임을 지켜봤다. 수아는 쟁반에 막걸리 사발을 가득 채워 들고, 군인들 테이블로 향했다. 그들의 술잔에 막걸리를 따르면서 능숙하게 농담을 건네고, 군인들의 농지거리를 웃으며 받아넘겼다.
‘저 여자, 연기력은 또 언제 저렇게 늘었대?’
진호는 겉으로는 만두를 우물거리는 척했지만, 온 신경은 수아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그의 심장이 불안하게 요동쳤다. 약을 넣어야 할 타이밍. 그들의 술잔을 비울 타이밍.
수아는 능숙하게 군인들과 떠들면서, 슬쩍 시선을 돌려 진호와 눈을 마주쳤다. 그녀의 눈빛이 미묘하게 빛났다. ‘지금이다.’ 진호는 그 메시지를 읽어냈다.
진호는 주모가 없는 틈을 타, 배낭에서 작은 약병을 꺼냈다. 투명한 액체가 담긴 약병이었다. 그는 주저 없이 그 액체를 자신의 막걸리 사발에 들이부었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아주 자연스럽게.
그리고는 테이블 아래로 손을 뻗어, 엎드려 있는 강아지에게 만두 조각을 던져주듯, 미리 준비해둔 똑같은 약병을 슬쩍 수아의 발밑으로 밀어 넣었다.
수아는 군인들과 한바탕 웃어넘기고는, 자연스럽게 허리를 굽혀 떨어진 행주를 줍는 척하며 약병을 집어 들었다. 그녀의 손놀림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그녀는 다시 군인들의 술잔을 채워주러 갔다. 군인 한 명이 수아에게 팔뚝으로 툭 치며 농지거리를 던졌다.
“주모, 오늘따라 얼굴이 발그레한 것이 아주 매력적이구만!”
“어머, 장군님도 참!” 수아는 얼굴을 붉히는 척하며 웃었다. 그 순간, 그녀의 손에 들린 막걸리 주전자 속으로, 약병 속 투명한 액체가 조용히 흘러들어 갔다. 군인들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들의 술잔에 다시 막걸리가 가득 채워졌다.
“자, 시원하게 한잔 하시죠! 오늘 경비도 잘 서시고, 나라에 충성하는 멋진 장군님들을 위해 제가 특별히 준비했습니다!”
수아의 과장된 연기에 군인들은 헤벌쭉 웃으며 막걸리 사발을 들이켰다. 꿀꺽꿀꺽, 목젖을 타고 넘어가는 소리가 진호의 귀에 선명하게 들렸다.
한 잔, 두 잔… 군인들은 연신 막걸리를 들이켰다. 평소보다 더 달고 시원한 맛에 이끌린 듯, 그들은 잔을 비우고 또 채웠다. 진호는 침착하게 자신의 만두를 먹는 척하면서, 그들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가장 덩치가 크던 군인 한 명이 하품을 크게 하더니, 테이블에 엎드려 버렸다. 옆에 있던 군인이 그를 흔들었지만, 그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내 다른 군인들도 하나둘씩 고개를 떨구기 시작했다.
“어이, 박 상병? 왜 그렇게 축 늘어져 있어? 술이 약해졌나?”
말을 하던 군인 자신도 눈꺼풀이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멍한 표정으로 잔을 들던 그의 손에서, 결국 막걸리 사발이 툭, 하고 바닥에 떨어져 깨졌다. 요란한 소리가 났지만, 이미 주점 안의 제국군들은 모두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진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수아도 재빨리 달려왔다.
“성공이야!” 그녀의 눈빛이 반짝였다.
“아직 성공한 거 아니야. 이제 시작이다.” 진호는 침착하게 말했다. “태오와 다른 팀원들은 벌써 후문에 대기 중일 거야. 서둘러야 해.”
그들은 재빨리 주점을 빠져나왔다. 밤이 깊어지면서 수도의 거리는 인적이 드물어지고 있었다. 어두운 골목을 가로질러, 진호는 수아를 이끌었다.
“이쪽이야. 보급창 후문은 이 골목 끝에 연결되어 있어.”
그들이 도착한 곳은 으슥한 담벼락이었다. 그곳에는 이미 태오와 몇몇 동지들이 몸을 숨기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의 눈빛에는 긴장과 함께 비장함이 서려 있었다.
“진호 형! 수아 누나! 무사히 온 거야?” 태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응, 계획대로 제국군 놈들은 꿀잠에 빠졌어.” 수아가 속삭였다. “이제 우리가 활약할 시간이다.”
진호는 담벼락에 기대어 귀를 기울였다. 보급창 내부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들의 계획이 성공한 듯했다.
“문 따는 팀, 준비됐지? 서둘러.” 진호가 지시했다.
숙련된 잠입조가 조용히 자물쇠에 달라붙었다. 찰칵, 찰칵, 미세한 금속 소리가 어둠 속에서 울렸다. 잠시 후,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후문이 살짝 열렸다.
차가운 밤공기가 그들의 얼굴을 스쳤다. 눈앞에는 거대한 보급창의 어둠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진호는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다.’
그의 옆에서 수아가 결연한 표정으로 칼을 고쳐 쥐었다. 그들의 눈빛이 어둠 속에서 마주쳤다. 무언의 약속처럼, 서로를 믿고 나아가자는 듯한 강렬한 시선이었다.
진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가자.”
그리고 그들은 그림자처럼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다.
거대한 제국의 심장부에, 평민들의 작고 대담한 발걸음이 시작되고 있었다.
이 밤, 제국은 깊은 잠에 빠져들 것이다. 그리고 깨어났을 때, 자신들의 심장이 도둑맞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아니, 심장이 아니라, 최소한 쌀가마니와 의약품 박스 정도는 말이다.
진호는 속으로 픽 웃었다.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 시작에는 언제나 그녀, 이수아가 함께 있었다.
어쩌면 그것이 가장 중요한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