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아포칼립스 생존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잿빛 먼지가 뭉텅이로 흩날리는 폐허 위로, 한 줄기 붉은 노을이 길게 그림자를 드리웠다. 무너진 고층 빌딩의 앙상한 철근들이 하늘을 긁고, 콘크리트 잔해는 거대한 무덤처럼 도시에 깔려 있었다. 이곳은 더 이상 사람이 살 곳이 아니었다. 살아남은 자들에겐 그저 거대한 사냥터이자, 끊임없이 발버둥 쳐야 하는 지옥 같은 생존의 현장이었다.

김현우는 녹슨 철근 조각이 삐져나온 벽에 기대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낡고 해진 방호복은 여기저기 찢겨 너덜거렸고, 찢어진 틈새로 드러난 팔뚝에는 오래된 상처 자국이 섬뜩하게 박혀 있었다. 열병 같은 갈증과 허기가 온몸을 갉아먹고 있었지만, 그보다 더 뜨겁고 지독한 것이 그의 심장을 끊임없이 태우고 있었다. 증오. 박준혁이라는 이름 석 자가 그의 뇌리에서 한시도 떠나지 않았다.

“준혁아….”

핏기 없는 입술 사이로 터져 나온 이름은 쓰디쓴 독 같았다. 쨍한 칼날이 심장을 꿰뚫는 것 같은 고통이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그 이름은 그의 유일한 안식처이자, 가장 굳건한 동반자였다. 세상이 지옥으로 변한 그 순간에도, 현우는 준혁만 있으면 살아남을 수 있다고 믿었다. 함께라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고, 이 끔찍한 세상을 끝까지 견뎌낼 수 있다고.

하지만 그 믿음은 한순간에 산산조각이 났다. 재앙이 닥치고 몇 달 후, 식량과 물이 바닥나고 변이체들이 득실거리는 폐 병원에서였다. 그들은 마지막 남은 약탈품을 지키려 사투를 벌였다. 변이체 무리가 좁은 복도를 향해 미친 듯이 달려들었고, 절체절명의 순간, 준혁은 현우의 뒤를 등지고 싸우다 갑자기 그의 어깨를 강하게 밀쳤다.

“미안하다, 현우야…!”

그 절규는 진심이었을까. 아니, 현우의 등 뒤로 날아든 변이체의 날카로운 발톱과 함께, 준혁의 그 말은 배신과 비겁함의 잔인한 표식으로 영원히 각인되었다. 현우는 그대로 변이체 무리 속으로 굴러 떨어졌다. 팔과 다리가 찢기고 피가 솟구치는 고통 속에서도, 그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자신을 향해 뻗어오는 변이체의 촉수와, 그 너머로 재빨리 몸을 돌려 달아나는 준혁의 뒷모습이었다. 녀석의 손에는 그들이 죽기 살기로 지켜냈던 마지막 식량 보따리가 들려 있었다.

그날 이후, 현우는 죽음의 문턱에서 기어 나왔다. 한쪽 눈은 거의 실명 상태였고, 온몸은 깊은 상처와 흉터로 뒤덮였다. 하지만 육체의 상처보다 더 깊이 패인 것은 그의 영혼이었다. 잿더미가 된 세상 속에서, 현우는 더 이상 인간적인 감정을 느낄 수 없었다. 오직 복수만이 그의 심장을 뛰게 하는 유일한 동력이었다.

삐걱이는 소리에 현우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잔해 더미 위에서 그림자처럼 어른거리는 무언가. 날카로운 갈고리가 달린 앞다리를 치켜든 채, 거미처럼 기어 다니는 소형 변이체였다. 현우는 망설임 없이 허리춤에 찬 칼을 뽑아 들었다. 녹슨 칼날은 햇빛을 받아 섬뜩하게 번뜩였다. 더 이상 두려움이란 없었다. 고통은 그에게 익숙한 친구였고, 분노는 그의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

쉬이이익!

변이체가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며 덮쳐들었다. 현우는 몸을 낮추어 공격을 피하는 동시에, 허공을 가르는 칼날을 휘둘렀다. 쉭,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변이체의 앞다리가 잘려나가며 끔찍한 녹색 피를 흩뿌렸다. 변이체는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뒹굴었지만, 현우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증오가 가득 담긴 칼날은 변이체의 핵이 있는 곳을 정확히 꿰뚫었다. 푸슉! 핵이 터지며 변이체는 미동도 없이 굳어버렸다.

현우는 오염된 피를 대충 닦아내고는 칼을 다시 칼집에 넣었다. 작은 변이체 하나를 잡는 데도 이렇게 온 힘을 쏟아야 했다. 하지만 괜찮았다. 그는 이미 살아있는 시체나 다름없었고, 준혁을 향한 증오만이 그를 숨 쉬게 만들었다.

수소문 끝에 현우는 준혁이 ‘신세기 정착지’라는 곳에 들어갔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잔혹한 약탈자 무리들이 모여 산다는 소문이 도는 곳. 준혁이라면 그런 곳에 어울릴 법했다. 현우는 버려진 자동차들이 겹겹이 쌓인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피로와 고통은 그의 발걸음을 늦추지 못했다. 발밑에 밟히는 자갈 소리만이 텅 빈 폐허에 울려 퍼졌다.

“박준혁… 네놈을 찾아낼 거다.”

낮게 읊조린 목소리는 메마른 모래처럼 거칠었다. 현우의 입가에 섬뜩한 미소가 번졌다. 그 미소 속에는 지난 세월의 고통과 인내가, 그리고 이제 막 터져 나오기 직전의 잔인한 복수심이 숨 쉬고 있었다. 신세기 정착지, 그곳이 네놈의 무덤이 될 것이다.

붉게 물든 노을이 완전히 사라지고, 어둠이 세상을 뒤덮었다. 현우는 그림자 속으로 스며들며, 복수의 칼날을 더욱 날카롭게 벼렸다. 지옥의 입구로 향하는 그의 발걸음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