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역사물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회색빛으로 물든 하늘 아래, 무너진 고층 건물들이 앙상한 뼈대처럼 솟아 있었다. 먼지와 모래가 뒤섞인 바람이 삭막한 거리를 훑고 지나갈 때마다 쇳소리가 났다. 이진은 낮게 엎드려 무너진 버스 잔해 뒤에 몸을 숨긴 채 낡은 쌍안경을 들어 올렸다. 렌즈 너머로 보이는 세상은 언제나 그랬듯 절망적이었다.

“아무것도 안 보여.”

옆에 바싹 붙어 몸을 웅크리고 있던 강우가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의 얼굴은 먼지와 땀으로 얼룩져 있었다. 며칠 밤낮을 쫓아다닌 흔적은 이제 거의 희미해져 가고 있었다.

“보일 리가 없지. 놈들은 애초에 흔적을 남기지 않는 부류니까.”

이진은 대답하며 쌍안경을 천천히 돌렸다. 그의 시선은 부서진 상점 간판, 녹슨 자동차,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기형적으로 자라난 가시 덤불을 훑었다. 이곳은 한때 번화했던 도시의 중심가였지만, 지금은 죽은 자들의 공동묘지나 다름없었다.

“그래도… 최소한 뭔가라도 남겨야 할 텐데.” 강우는 불안한 듯 손에 쥔 구식 소총의 개머리판을 만지작거렸다. “이대로 계속 가다간 연료도 식량도 다 떨어질 겁니다, 진 형님.”

이진은 아무 말 없이 쌍안경을 내렸다. 그의 눈동자는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지만, 그 안에 자리 잡은 미세한 떨림은 그의 내면이 얼마나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그가 본 건 분명했다. 아주 희미했지만, 길가에 솟아난 거대한 바위 파편에 긁힌 듯한 자국. 보통의 이동체라면 절대 낼 수 없는 깊이와 폭이었다.

“여기다.”

이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강우가 놀란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어딜요? 뭘 찾았습니까?”

이진은 바위 파편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강우는 서둘러 그의 뒤를 따랐다. 가까이 다가가자 바위 파편의 한쪽 면이 섬뜩하게 파여 있었다. 마치 거대한 짐승의 발톱에 긁힌 것처럼 날카롭고 깊은 흔적이었다. 그리고 그 주변에는 희미하게 말라붙은 핏자국이 점점이 박혀 있었다.

강우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이건… 놈들이 싸웠다는 증거잖아요. 대체 뭘 보고 이렇게 피를 흘린 겁니까?”

이진은 핏자국을 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쓸어보았다. 검붉게 변색된 핏자국은 바위 표면에 단단히 들러붙어 있었다. 일반적인 생물의 피와는 다른 끈적하고 탁한 느낌이었다. 그는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바위 파편을 중심으로 불규칙하게 퍼진 흔적들은 꽤 격렬한 싸움이 벌어졌음을 시사했다.

“우리가 찾던 녀석들의 피는 아닌 것 같아.” 이진이 나직이 말했다. “이건… ‘변이’된 것들의 피다.”

강우는 침을 꿀꺽 삼켰다. 변이된 것들. 이 세상에 살아남은 인간들을 가장 위협하는 존재들이었다. 그들은 예측 불가능했고, 잔인했으며, 때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방식으로 진화했다.

“그럼 놈들이랑 변이체랑 부딪혔다는 겁니까?” 강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진은 대답 대신 바위 파편 뒤쪽에 움푹 파인 땅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거대한 그림자가 끌려간 듯한 흔적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단순한 발자국이라고 하기엔 너무 넓고 깊었다. 마치 거대한 짐승이 죽어가는 몸을 이끌고 이동한 듯한.

“끌려간 게 아니야. 끌고 간 거지.” 이진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놈들은 변이체를 사냥한 거야. 그리고 뭔가 중요한 걸 찾으려 한 흔적도 있어.”

그가 시선을 옮긴 곳에는 흙바닥에 뿌려진 낡은 천 조각들이 있었다. 군용으로 보이는 질기고 두터운 재질의 천이었다. 그리고 그 천 조각들 옆에는 녹슨 쇳조각이 박혀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낡은 인식표의 파편이었다.

강우가 헐레벌떡 달려가 인식표 파편을 주웠다. “이건… 옛날 군대 인식표 아닙니까? 이걸 놈들이 흘렸다고요?”

이진은 인식표를 건네받아 엄지로 문질렀다. 흐릿하게 새겨진 글자를 읽으려 애썼지만, 너무 마모되어 알아보기 힘들었다. 하지만 인식표가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다. 놈들은, 분명히, 이 혼란한 시대 이전의 기술과 체계를 알고 있는 자들이었다.

“놈들은 단순한 약탈자들이 아니었어. 뭔가 목적이 있어. 그리고… 그 목적은 변이체와도 관련이 있을 거야.” 이진의 목소리에 전에 없던 긴장감이 서렸다. “이 인식표가 이곳에 있다는 건, 놈들이 여기까지 왔다는 뜻이다.”

바로 그 순간, 정적을 깨고 섬뜩한 울음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단순한 동물의 울음소리가 아니었다. 피를 얼어붙게 만드는 듯한, 기계음이 섞인 날카로운 비명이었다. 강우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진… 진 형님, 저 소리는….”

이진은 이미 총을 고쳐 잡고 소리가 난 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의 눈빛은 맹수처럼 번뜩였다. 그들이 추적하던 흔적이, 이제는 그들을 추적하는 존재로 변모한 것 같았다.

“서둘러. 놈들이 여기로 오고 있어.”

이진은 손짓하며 무너진 건물 사이로 재빨리 몸을 숨겼다. 강우도 그를 따라 총을 든 채 엎드렸다. 먼지와 폐허로 가득한 골목길 저편에서, 흐릿한 그림자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거대한 몸집과 비정상적으로 긴 팔다리를 가진 그것은, 이전까지 이진이 마주했던 어떤 변이체보다도 기괴하고 위협적이었다. 인식표를 흘린 자들이 사냥했던 변이체가, 이제 그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이진은 총의 안전장치를 풀었다. 차가운 쇠붙이의 감촉이 손끝에 전해졌다. 어둠 속에서 번뜩이는 그 그림자와 그들이 찾고 있던 진실. 그 모든 것이 바로 코앞에 있었다.

“준비해, 강우. 이번엔… 우리가 사냥당할지도 몰라.”

총구가 그림자를 향해 겨눠졌다. 숨 막히는 침묵 속에서, 또다시 기계음 섞인 비명이 찢어질 듯 울려 퍼졌다. 이곳의 모든 폐허가 그 비명에 화답하듯 진동하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