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이스 오페라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정수리부터 발끝까지 낡고 거친 방호복으로 중무장한 시온은, 콧등에 걸린 바이저 너머로 탁한 풍경을 응시했다. 거대한 먼지 폭풍이 지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아크로폴리스 행성의 대기는 아직도 붉은 먼지로 가득 차 있었다. 바람 한 점 없는 폐쇄된 격납고 안인데도, 흙먼지는 끊임없이 바닥을 굴러다니며 웅장했던 과거의 흔적들을 무의미하게 쓸고 있었다.

“이번에도 헛걸음인가, 비트.”

시온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통신기를 통해 옆에서 붕붕거리는 드론에게 전달됐다. ‘비트’라는 이름의 소형 정찰 드론은 푸른빛 센서로 주변을 스캔하며 ‘삐릭, 삐리릭’ 하는 기계음을 냈다. 마치 그녀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라도 하듯.

시온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수십 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함선들의 무덤이었다. 한때는 은하계를 가로지르던 최첨단 운송선들이었고, 전투함선들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녹슨 고철 덩어리가 되어, 서로 기대거나 무너져 내린 채로 거대한 산맥을 이루고 있었다. 그 안은 어둠과 미세먼지, 그리고 알 수 없는 끈적한 유기물로 가득했다. 바로 이곳이 그들의 삶터이자, 생존을 위한 투쟁의 현장이었다.

그녀의 목표는 단 하나였다. ‘코멧호’의 워프 드라이브에 장착될 동력 코어. 며칠 전, 알 수 없는 전자파 교란으로 코멧호의 핵심 부품이 손상됐다. 이대로는 아크로폴리스 성계를 벗어날 수 없었다. 이 죽어가는 행성에서 벗어나려면, 반드시 수리해야 했다.

“대상 함선, A-712 화물 수송선. 마지막으로 부품이 확인된 곳은 격납고 델타-7 구역입니다. 하지만… 구조물 붕괴로 진입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비트의 합성 음성이 이어졌다.

시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스캐너도 이미 같은 정보를 보여주고 있었다. 델타-7. 그곳은 한때 아크로폴리스에서 가장 번화했던 우주항이었지만, 지금은 핵전쟁의 상흔과 시간의 풍화가 뒤섞여 거대한 미궁이 되어 있었다. 방사능 수치도 다른 곳보다 훨씬 높았다.

“진입이 어렵다는 건, 아직 다른 놈들이 손대지 않았을 확률이 높다는 뜻이기도 해. 가자.”

그녀는 다 허물어진 화물선의 잔해를 타고 조심스럽게 기어 올라갔다. 발 밑에서는 녹슨 철판이 삐걱거렸고, 흩어진 잔해들이 아래로 떨어지며 둔탁한 소음을 냈다. 헬멧 안에서 그녀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방호복 안은 습기와 땀으로 축축했다. 고통스러운 등반이었지만, 그녀는 익숙한 듯 묵묵히 몸을 움직였다. 살아남으려면 이 정도는 감수해야 했다.

마침내, 거대한 함선 잔해의 꼭대기에 다다랐을 때, 시온의 눈앞에는 거대한 구멍이 뚫린 함선 내부가 드러났다. 아마 핵폭격 당시의 충격으로 생긴 균열일 것이다. 붉고 탁한 먼지 너머로, 함선 내부의 어둠이 끊임없이 그녀를 손짓했다.

“내부 방사능 수치, 외부보다 30% 높습니다. 진입 시 주의 필요.” 비트가 경고했다.

“알아. 다른 선택지는 없어.”

시온은 허리춤에 매달린 밧줄을 꺼내 단단히 고정시킨 후, 거대한 구멍 속으로 몸을 던졌다. 밧줄은 삐걱거리는 마찰음과 함께 그녀의 몸무게를 지탱했다. 수십 미터를 내려갔을까. 그녀의 발이 무언가에 닿았다. 함선 내부의 바닥이었다.

사방은 완벽한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시온은 헬멧에 부착된 라이트를 켰다. 빛이 닿는 곳마다 녹슨 철골 구조물과 정체불명의 잔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천장에서는 거대한 전선 다발들이 마치 거미줄처럼 늘어져 있었고, 바닥은 먼지와 부서진 패널들로 뒤덮여 있었다. 썩은 쇠 냄새와 함께 알 수 없는 화학 약품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녀는 스캐너를 켜서 동력 코어의 위치를 다시 확인했다. ‘델타-7 중앙 제어실’이라는 표시가 희미하게 깜빡였다.

“이쪽이야, 비트.”

그녀는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럽게 전진했다. 발밑에서는 부서진 유리 조각이나 금속 파편들이 ‘바스락, 쨍그랑’ 소리를 내며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이 넓은 함선 안에서, 자신들 외에 다른 존재가 있다면? 그 생각에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권총의 손잡이에 손을 얹었다. 오랜 시간 동안 폐허에서 살아남으면서 터득한 본능적인 경계심이었다.

“삑! 미확인 생체 신호 감지. 거리 50미터. 이동 속도 느림.”

비트의 경고음이 낮게 울렸다. 시온은 순간적으로 몸을 굳혔다. 미확인 생체 신호. 이 함선에는 어떤 것들이 살고 있을지 알 수 없었다. 돌연변이 생명체, 혹은 그녀처럼 먹을 것을 찾아 헤매는 다른 생존자. 어느 쪽이든 위험한 존재임은 틀림없었다.

그녀는 라이트를 끄고 어둠 속에 몸을 숨겼다. 희미하게 들려오는 웅크린 숨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철컥, 철컥. 느릿하고 불규칙적인 금속 마찰음이 그녀에게 다가오는 듯했다. 공포는 아니었다. 그저 피곤함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또 싸워야 하나.

“삑! 신호, 정지. 은폐 상태로 전환.”

비트의 음성과 함께 주위가 다시 고요해졌다. 시온은 숨을 죽였다. 그녀 역시 한참을 움직이지 않고 기다렸다. 잠시 후, 희미한 발소리가 멎은 곳에서 흐릿한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크고 둔탁한 몸집이었다. 마치 여러 개의 금속 조각들을 덧붙여놓은 듯한 형태. 그것은 이빨이 돋아난 거대한 금속 턱을 가지고 있었고, 곳곳에서 파란색 섬광이 번쩍였다. 고대의 보안 드로이드였다. 하지만 뭔가 잘못되어 있었다. 온몸에 뒤엉킨 녹과 이끼, 불규칙하게 깜빡이는 센서 등은 그 드로이드가 온전한 상태가 아님을 말해주고 있었다. 아마도 파괴된 시스템 속에서 생존 본능만을 가지고 무의미하게 배회하고 있는 것 같았다.

시온은 가만히 기다렸다. 불규칙한 빛을 내뿜는 드로이드는 마치 무언가를 찾는 듯 잠시 정지했다가, 이내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 드로이드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기다린 후에야 다시 라이트를 켰다.

“젠장, 이런 낡은 놈들까지 살아남아서….” 그녀는 낮은 한숨을 쉬었다.

다시 걷기 시작했다. 델타-7 중앙 제어실은 이 폐허의 심장부나 다름없었다. 긴 복도를 지나고, 무너진 통로를 우회하고, 때로는 환풍구를 기어서 통과했다. 마침내 그녀의 스캐너가 목표 지점을 가리켰다. 거대한 철문이 부서져 반쯤 열려 있었다. 문 주변에는 불에 탄 흔적과 함께 알 수 없는 긁힌 자국들이 가득했다.

시온은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섰다. 제어실은 폭격의 직격탄을 맞은 듯 처참했다. 모든 것이 녹고 엿가락처럼 휘어져 있었다. 유리 파편들이 바닥에 흩어져 별처럼 반짝였다. 하지만 그 혼돈 속에서도, 그녀의 눈은 익숙한 형태의 동력 코어 하나를 발견했다.

거대한 제어판 한가운데, 찌그러진 보호 케이스 안에 그것이 박혀 있었다. 아직 완벽하게 손상되지 않은 채로.

“찾았다.” 시온의 목소리에 희미한 안도감이 섞였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동력 코어는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녀는 멀티 툴을 꺼내 부서진 패널들을 뜯어내기 시작했다. ‘드르륵, 쨍그랑’ 금속과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가 정적을 깨고 울려 퍼졌다. 부품들은 단단히 녹슬어 있었고, 떼어낼 때마다 사방으로 먼지가 튀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그녀는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었지만, 멈출 수 없었다. 코멧호의 워프 드라이브를 고치지 못하면, 이 행성에서 영원히 썩어 죽을 것이라는 냉정한 현실이 그녀의 심장을 채찍질했다.

“삑! 경고! 외부 방사능 수치 급격히 상승 중! 함선 구조물 붕괴 위험 감지!” 비트의 경고음이 전보다 훨씬 다급하게 울렸다.

“젠장!”

시온은 땀으로 흐려진 시야를 닦아내며 마지막 연결 부위를 끊어냈다. ‘파지직!’ 하는 섬광과 함께 동력 코어가 케이스에서 분리됐다. 그녀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그것을 품에 안았다. 무겁고 차가운 금속 덩어리. 그러나 이것은 그녀의 생명줄이었다.

“서둘러, 비트! 탈출 경로를 탐색해!”

“확인! 가장 가까운 탈출구까지 200미터!”

시온은 동력 코어를 단단히 쥔 채 제어실을 빠져나왔다. 진동이 느껴졌다. 함선 전체가 무너져 내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의 눈에 비친 복도는 이전보다 훨씬 많은 먼지로 가득 차 있었고, 천장에서 거대한 금속 파편들이 떨어져 내렸다. ‘콰아앙!’ 하는 굉음과 함께 복도 한쪽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그녀는 달렸다. 방호복의 무거움은 그녀의 속도를 늦췄지만, 살아야 한다는 본능이 그녀의 몸을 밀어붙였다. 발밑의 잔해들이 무너져 내렸고, 그녀는 균형을 잃고 비틀거렸다. 그때마다 비트가 날아와 그녀의 어깨를 밀며 방향을 잡아주었다.

“이쪽입니다! 점프!”

비트의 지시와 함께 시온은 무너진 바닥의 틈을 향해 몸을 던졌다. 그녀의 손이 아슬아슬하게 맞은편 구조물을 붙잡았다. 팔 근육이 비명을 질렀지만, 그녀는 이를 악물고 몸을 끌어올렸다. 뒤편에서는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함선 내부가 서서히 붕괴되고 있었다.

마침내, 그녀가 격납고 외부로 몸을 던졌을 때, 아크로폴리스의 붉은 먼지 속에서 코멧호의 희미한 불빛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지친 몸을 이끌고 코멧호의 출입구로 향했다.

함선 내부로 들어서자마자, 그녀는 헬멧을 벗어던졌다. 땀과 먼지로 뒤덮인 얼굴에는 피로와 함께 안도감이 서려 있었다.

“이 빌어먹을 행성에서… 겨우 살아남았네.”

그녀는 동력 코어를 조종석 옆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이걸 제대로 장착하고, 워프 드라이브를 재가동해야 했다. 하지만 적어도 오늘 밤은, 성공이었다.

“비트, 주변 통신 채널에 혹시 다른 신호는 없어? 아주 희미한 것이라도.” 시온은 혹시 모를 희망을 찾듯 물었다. 이곳 아크로폴리스는 죽은 행성이었다. 하지만 가끔, 아주 가끔, 멀리서 들려오는 희미한 신호가 그녀의 잠 못 드는 밤을 흔들곤 했다.

비트는 조용히 푸른 센서를 깜빡이며 통신 채널을 스캔했다. 잠시 후, ‘삐릭-‘ 하는 작고 희미한 신호음이 들려왔다. 아주 약해서, 노이즈와 구별하기 힘들 정도의 신호였다.

“미약한 신호 감지. 발신지 불명. 반복되는 코드 패턴 분석 중.” 비트의 음성은 언제나처럼 무미건조했지만, 시온의 심장은 격렬하게 요동쳤다.

“코드 패턴? 어떤 코드인데?”

“분석 중입니다… 코드 패턴: 조난 신호와 일치합니다. 하지만 매우 오래된 형식입니다.”

시온은 멍하니 우주 저편을 응시했다. 조난 신호. 아주 오래된.
이 망가진 성계의 어딘가에, 자신들 외의 다른 생존자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 혹은 더 큰 절망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미지의 신호였다. 그녀의 눈에 피로와 함께 새로운 결의가 떠올랐다.

“내일 아침, 워프 드라이브 수리를 시작한다. 그리고… 저 신호를 따라간다.”

코멧호의 엔진은 희미하게 울리고 있었다. 황폐해진 세계를 벗어나기 위한 그들의 여정은, 이제 겨우 시작될 참이었다.